밀실에서 소수의 권력자들이 주무르던 안보는 민주적 참여가 보장돼야 할 대상으로 변했다. 이 문제를 사회적·정치적으로 전면화시킨 사람들은 다름 아닌 현 집권세력이다.

2004년 겨울, 이전 집권세력이 국가안보의 최후의 보루로 신봉했던 국가보안법을 ‘없애느니, 마느니’ 싸움을 붙였던 것은 현 집권세력이다. 우리 군대를 이라크로 보내는 문제를 두고 진보진영 대 참여-보수진영의 대립각이 섰던 것도 참여정부 집권기에 있었던 일이다.

올해도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지금은 ‘친미자주파’의 집권기이니, 그쪽의 의도가 많이 관철되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입장을 표할 권리가 있다. 자기 입장은 자기가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게 민주노조다. 공무원노조 눈에는 을지훈련이 '전쟁연습'으로 보였다. 사실 을지훈련이 ‘전쟁연습’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공무원노조 말고도 많다. “분단된 조국의 자주, 민주,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공무원노조 강령에 따르자면 을지훈련은 반대할 대상일 것이다. 지난 17일 공무원노조는 을지훈련을 폐지하라는 논평을 냈다. 더구나 을지훈련은 공무원들의 업무를 과중시킨다.

공무원노조 한 간부는 “을지훈련이 시작되면, 일선 공무원은 밤샘 업무를 해야 하고, 그에 따른 민원업무 차질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한 “공공청사 앞에 무장을 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 시민들은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노조의 주장이 억지만은 아닐 것이다.

이같은 노조의 입장에 대해 행정자치부는 26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했다. “공무원이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주는 행위”를 했으며, “북한의 선전논리와 동일한 주장을 했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북한 선전논리 운운은 언급하기도 ‘촌스러우니’ 넘어가자.

국가안보에 대해 한마디씩 걸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이 시절에 행자부는 왜 검찰조사까지 의뢰하며 강경한 반응을 보일까? 행자부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공무원노조특별법 시행 이후에) ‘전공노’만이 합법노조 전환을 거부하며 이번 을지훈련 폐지 성명서 발표는 물론, 행정자치부 장관실 점거농성, 특정정당 지지선언, 총파업,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집회 등 불법집단 행동을 주도하며 극렬 투쟁을 함으로서 공직사회 내 건전 노사관계 정착을 방해하고 있다.”

추려서 말하면 "말 안 듣는 것들이 군사훈련까지 왈가불가한다"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한반도 남쪽을 통치했던 여러 권력은 모두 ‘신성한 안보’를 통치력의 명분으로 삼았지만, 그 의도가 순수했던 적은 참 적었다. 2006년, 행자부 발 새 버전이 나온 것 같다. 이 버전은 ‘공무원이 어디서…’로 시작되는 구시대적 인식의 옹색한 변주로 보여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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