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출신의 배일도 의원은 한나라당 영입파다.

지난 2004년 총선 직전 박세일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장은 “후보자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전문정책능력이 있는 분들을 모셔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 의원은 유일한 ‘노동’ 분야 전문가로 영입 대상에 올랐다. 한나라당은 배 의원에게 18번을 배정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정당득표 목표를 39%로 삼았다. 목표를 달성하면 비례대표 22번까지 당선된다. 그러나 당선 안정권은 15번으로 보고 있었다. 정당득표 26%였다. 배 의원은 ‘준 당선권’으로 분류됐다. 그리고 이후 그는 ‘당당하게’ 국회에 입성했다.

배 의원은 노동계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 가운데 한명이다.

그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과 생일이 같은 전노협 창립의 주역 중 한명이었다. 노동운동을 하다 두번이나 투옥되기도 했고, 해고 노동자 생활도 경험했다. 1998년, 10년만에 복직한 그는 이듬해 서울지하철 9대 노조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11대 위원장까지 지냈다.

그러나 그는 10년전의 그가 아니었다. 돌아온 위원장은 서울지하철 무쟁의 선언을 주도하며 노동계 인사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더 나아가 그는 노동운동 진영으로부터 ‘보수원조’로 불리는 한나라당에 입당, 국회에 입성했다. 비판 또는 비난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그의 이름 앞뒤에 ‘배신’, ‘변절’이라는 꼬리표 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10여년의 해고기간 동안 노동운동의 근본부터 고민을 거듭하다 내린 결론은 ‘공존론’이었다. 복귀한 서울지하철에서 그는 ‘공존의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공존의 질서를 만들기 위한 그의 ‘고군부투’는 계속됐다.

국회의원 배일도. 후반기 원구성 당시 1,2,3 지망 모두 환노위 배정을 희망했다는 그를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한나라당 ‘노동’전문가

배 의원을 만날 때마다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노동계 주변에서 나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특히 과거 민주노조운동을 함께 했던 이들이 말하는 ‘배신’, ‘변절’ 비판과 비난에 대해 배 의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늘 궁금했다. 기회가 없어 물어보지 못하기도 했지만, 이런 것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모르게 조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에서는 끄집어냈다. “민주노조운동을 했던 이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변절’이니 ‘변했다’라는 비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그런 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서노협 의장 할 때 단병호 의원이 부위원장을 했다. 심상정 의원이 사무처장이었다. 권영길 의원은 업종회의 대표를 했다. 천영세 의원이 서노협 지도위원을 했다. 그래서 국회의원을 하려면 노동운동의 정체성 문제가 있으니까 당연히 민주노동당이나 열린우리당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이런 발상 자체가 모두 구시대적인 생각이다.”

그는 분명히 과거 노동운동을 했던 이들이 민주노동당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좀더 들어보자.

“과거 민중당의 사례를 보자. 민중당은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해서 결국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정치는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다. 어찌됐건 한나라당은 제1야당이다. 얼마전 선거에서도 봤듯이 국민의 약 50%가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보수정당이다.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취약하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 지지를 받는 정당이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문제에 취약하다. 만일 한나라당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더 가지고, 노동자들도 한나라당을 활용하면 더욱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색깔에 따라서 어느 정당은 되고 어느 정당은 안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그 자체로 틀린 생각이다. 노동운동은 노동문제에 취약한 한나라당을 활용해야 한다. 내가 한나라당에 왔다고 ‘변했다’거나 ‘잘못했다’고 비판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와 한나라당을 많이 활용해서 현안 등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는 ‘현실’을 말하고 있었다. 어찌됐건 절반 가까운 국민의 지지를 받는 한나라당의 실체를 인정하고, 노동계가 과감하게 한나라당을 활용해 달라는 말이었다. 자신이 그 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뜻도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그는 후반기에도 환노위를 지원했단다.

변절했다고? 그런 발상이 더 문제

“한나라당은 노동문제에 취약하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을 영입했다. 나는 한나라당에서 거의 유일한 노동 전문가이다.” 그는 한나라당 안에서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전반기에는 환노위 간사를 맡았다. 당내 기구로 ‘노동선진화특위’도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한나라당이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얼마전 당에서 포스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자고 했을 때, 나는 단장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일회적이고 형식적인 조사만 하고 그칠 수 있는 조사단을 구성하면서 노동계 출신이라는 당위론만 가지고 나에게 단장을 맡으라고 하는 데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이를 계기로 당에게 요구했다. 일시적이고 한시적으로 노동문제를 맡는 기구가 아니라 노동문제를 제대로 다룰 상설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상설위원회 형태의 노동위원회가 적당하다고 했다.”

배 의원이 상설기구로서 노동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나라당이 큰 틀에서는 보수정당이지만, 노동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당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노동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 교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나라당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는 대체로 ‘노동’을 ‘경제’의 하위 개념으로 여긴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자 수가 1,400만명에 이른다. 부양가족까지 합하면 2,500만명이 산업 질서 속에서 노동자와 가족으로 살아간다. 이만한 비중을 지닌 ‘노동’을 경제의 하위 개념으로만 치부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자본주의 사회라서 돈이 많이 오가는 건설교통부나 산업자원부를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는데, 이런 분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금을 걷고 건설을 하고 산업을 일으키는 이유는 결국 인간이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게 하는 정책 가운데 핵심이 노동정책이다. 그래서 노동분야는 노사문제, 고용문제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노동문제는 국가적 사회적 관점 속에서 해석돼야 한다. 그렇게 접근할 때만이 노사관계나 고용문제도 모두 풀릴 것이다.”

약력
1950년  전북 김제 출생
1987년 서울지하철공사 노동조합 초대위원장
1991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대기업
               노조 특별대책위원장
1999년  서울지하철공사 노동조합 
                9, 10, 11 대 위원장
2001년  전국지방공기업노동조합협의회
               초대 의장
2004년  17대 국회의원, 환경노동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2005년  한나라당 노동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
‘노동’은 국가적으로 중요

‘노동’에 대한 이런 시각은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것일까. 환노위는 국회 안에서 인기없는 상임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사실 이는 환노위 다른 의원 인터뷰에서도 줄기차게 던진 질문이다. 질문은 같은데 답은 가지각색이다.

배 의원은 자본주의라는 체제와 정치제도에서 답을 찾았다. “우리가 농업중심국가라면 아마 농림해양수산위가 가장 인기있는 상임위였을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다. 자본주의는 돈을 흐름을 쫓는데 민감하다. 그러다보니 경제를 다루는 분야나 건설교통을 집행하는 분야, 공장이나 산업과 관련된 분야 상임위가 인기가 좋다.

또 국회의원 선거제도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 국회가 미국처럼 상하원제로 운영되거나 직능이나 직종별 대표들이 진출하는 비례대표 구조가 중심이라면 노동분야는 인기있는 상임위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국회는 지역구가 중심이어서 지역 중심의 활동을 요구받고 있다. 지역주민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상관을 맺고, 현상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상임위가 선호대상인데, 그곳이 바로 건교위 같은 경우이다.

사회체제가 아무리 바뀌어도 그 중심은 항상 ‘인간’이다. 그런 측면에서만 보면 환노위는 매우 중요한 상임위이다. 현재의 인기 비인기 상임위는 자본주의 속성의 결과와 지역중심 정치질서가 낳은 결과물로 보인다.”

“농업사회라면 농해수위 인기”

어찌됐건 그는 이런 환노위에서 지난 2년 동안 간사를 맡아 의정활동을 폈다. 전반기 환노위원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그 또한 비정규직 입법을 둘러싼 갈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만큼 논란이 치열했다는 뜻이다.

배 의원은 지난해 12월초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를 겪으면서 “정치란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시 배 의원은 소속 정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의원들의 면면을 생생하게 지켜봤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초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싸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격돌할 때였다. 환노위가 열리는 중에 국회 본회의가 열렸다. 환노위가 중단되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본회의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의 반대 속에 두 당이 손잡고 사학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나는 몇시간 동안이나 환노위에 앉아서 기다렸다. 표결이 다 끝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환노위를 찾았다. 아마 내가 법안소위 회의장을 떠났을 것이라고 여겼나 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겸연쩍어 했다. 단병호 의원을 급히 불러서 법안소위를 재개했다. 그날 처리할 수도 있었던 비정규직 법안은 역시 처리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의 눈치를 봤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국회의원들이 소속정당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비정규직법은 우여곡절끝에 올해 2월말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가운데 환노위에서 처리됐다. 배 의원은 그날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사실상의 여야 합의안인 ‘수정안’을 제안했다. 법안은 수정안대로 처리돼서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그렇다면 배 의원은 비정규직 법안 논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비정규직법은 2년전에 만들거나 1년전에 만들거나 내용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또 세상이 자꾸 변하는 만큼 법이라는 것도 시점이 지나거나 상황이 변하면 그에 따라서 바꿔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법안 처리 시기를 조금이라도 더 당겼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하루라도 빨리 입법했다면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규직 차별과 남용의 기준이 정해져 있을 것이다. 인권위가 법안의 기준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줬다. 차별 입증 책임을 사용자가 지게 한 것은 상당한 성과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서는 법안 처리 지연의 이유를 사회적 합의로 거치지 않은 채 입법만을 밀어붙인 정부와 여당의 태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갈등이 더욱 커졌고,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도 없는 법안이 ‘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부터라도 재논의를 해서 제대로 된 법안을 마련하자는 주장을 편다.

“비정규직법 조속 처리해야”

그럼, 법안 처리가 지연된 이유를 배 의원은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열린우리당의 명확하지 않은 입장으로 인해서 처리 시기가 늦어졌다. 노사정위도 책임이 있다. 노사정위에서 2년 동안 논의하다가 결론을 내지 못한 법안인데, 국회에서마저 시간을 끌었다는 것이 아쉽다. 한나라당도 사학법 문제가 불거지면서 왔다갔다 했다. 사학법은 사학법이고,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법으로 분리해서 대응했어야 했다. 한나라당도 명확한 입장을 세우지 못해, 법안이 결국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아쉬운 대목이다.”

배 의원은 처리 지연의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라도 조속하게 처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제기하는 재논의에 대해서 배 의원은 어떤 입장일까. 조속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의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 그래도 던져봤다.

“논의는 항상 해야 한다. 그런데 한번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지금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에서는 비정규직법을 보호하려면 사용 사유제한의 근거를 조금이라도 넣자는 것 아니냐. 이는 접근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용 기간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또 차별시정 구제절차와 처벌절차를 통해서 비정규직의 남용을 억제하고 보호하자는 방식도 있다.

정부는 현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틀 안에서 법안을 제출했다. 환노위는 여기서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해서 수정안을 만들어 처리했다. 충분하게 논의하는 것은 좋지만, 시행 시기의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주40시간 노동제를 두고 논란이 일다가 시행시기가 늦어진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해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시기가 후퇴했다. 만약 당시 주40시간 노동제를 빨리 처리했다면 이제는 이미 주40시간 노동제가 전 사업장에 정착되고 문제점까지 발견돼 해결점을 찾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것이다.

비정규직법 정부안은 첫 접근부터 노동시장 유연화 제고와 비정규직 보호라는 2가지 목적을 다 담으려다 보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는 유연화를 반대하고 사용자는 보호를 규제로 바라보며 반대한다. 첫 단추부터 문제가 있었다. 차라리 이 둘을 따로 떼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부안이 나온 이상 국회는 여기에 준해서 심의하고 처리했다.

재논의를 하자고 하는데, 비정규직 관련법이 정비된 나라들도 비정규직 문제가 많이 대두되고 있더라. 더이상 왈가왈부 해서는 안 된다.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처리 지연의 책임은 논외로 하고, 법안 내용의 부족함도 인정할 수 있지만, 처리 시기를 더이상 늦출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재논의 반대

따라서 배 의원은 비정규직법이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처리까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 국회 상황을 보면 법사위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사학법을 두고 밀고 당기는 상황은 이제 지나갔다. 졸속으로 처리한 사학법을 재개정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에서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사학법의 쟁점 조항과 유치원 관련 조항 등은 분리해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비정규직 법안은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조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쪽으로부터도 처리를 미루자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고, 한나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자는 입장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마저도 처리하지 못하면 더이상 비정규직법안은 없다. 앞으로 대선도 있고 해서 누구도 선뜻 나서려 들지 않을 것이다. 재논의를 하려면 법사위에서 환노위로 법안을 환부해야 하는데, 어떤 형식으로 폐기하고 환부할지, 마땅한 방법도 없다. 이제 소모적 논란은 중단하고 비정규직법안을 처리해서 하루빨리 차별의 기준이라도 만들어놔야 한다.”

배 의원의 이런 전망은 어디까지가 객관이고, 이디까지가 주관적 기대일까.

인터뷰 하루 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사학법 개정에 온 몸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오는 정기국회에서도 사학법 논란이 거세질 것임을 예고하는 말이었다. 배 의원의 전망과 달리 9월 국회에서도 사학법 논란이 격화되면 비정규직 법안은 지난 4월과 6월 국회에서와 같은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강 대표의 이같은 발언을 전하자 배 의원은 “허허…, 그것 참”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배 의원은 “사학법과 모든 법안 처리를 연계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선언적 의미를 했을 것”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9월 국회 처리될 것”

지난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접었다. 이제 다가올 현안과 환노위의 역할론 등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배 의원은 후반기 국회에서 환노위 간사직으로 선출됐다가 일주일만에 그만뒀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쪽 간사는 안홍준 의원이 맡게 됐다. 배 의원이 왜 간사직을 그만뒀는지 궁금했다.

“간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었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이 나를 간사로 지목하고 회의에서 선출했다. 연속성 측면에서 자의반 타의반 간사를 맡았다. 하지만 간사를 하게 되면 활동반경이 원내로 묶일 수 있다. 전반기 2년 간사를 해 보니 원내 활동만으로는 목표를 관철시키기에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나는 전국 노동계 현장에 자주 가 볼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사를 하는 것보다 위원으로 남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간사직을 사양하고 안 의원에게 부탁했다. 다른 위원들과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노동계 현장을 더 많이 다니기 위해서 간사직을 사양했다는 배일도 의원. 현장 감각을 살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어 원내 활동에 결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대로 하면 후반기 국회에서는 달라진 배 의원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간사직을 그만두다

원내외 활동의 결합을 구상하는 그에게 환노위는 어떤 상임위일까. 또 어떤 상임위여야 하는 것일까.

“국회는 정부의 대응기구이다. 정부부처가 18개가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노동부가 국에서, 청으로, 독립 부처로 승격하는 과정을 보면 국가가 어느 부처 중심에서 정책을 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여성부가 생긴 것이나 산자부가 생긴 것도 마찬가지이다.

노동부는 노사문제만 다루는 부처가 아니라 1,500만 노동자와 2,500만 가족들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부처가 됐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노동부는 한 인간이 취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해고되는 과정을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다루는 부처가 돼야 한다. 그런데 노동부의 예산이나 인력을 보면 국민이 원하는 이런 기능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부는 정부 전체예산의 1/100도 쓰지 않고 있다. 말이 안 된다.”

배 의원은 정부조직 개편을 말하고 있었다. 내침 김에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개칭하는 문제까지 물어봤다.

“정부의 현재 조직 편제는 산업화 초기에 만들어진 형태 그대로다. 정부조직 체제가 빨리 개편돼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주요목표나 필요성에 따라 정부조직을 바꾸는 식의 기능적 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정하고 조직을 재편해야 한다.

노동부는 우선 보건복지부와 합쳐야 한다. 현재 복지부는 장애인 문제와 최저생계비, 국민연금까지 다루고 있다. 이는 노동에서 이탈된 사람이거나 취약계층의 문제이다. 이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 사람이 학교를 다니고 취직을 해서 삶을 영위해가는 과정을 추적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복지대책이라는 것은 시혜 수준이다. 시혜 수준으로 복지정책을 펴면 문제가 재정 문제가 발생하는 등 문제가 더욱 복잡해 진다.

가장 좋은 복지는 일을 통해서 먹고 사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노동현장에서 이탈한 사람을 어떻게 다시 궤도에 올려 놓는가 하는 문제는 현재의 복지부와 노동부가 함께 연구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산자부의 일부 기능과도 합쳐져야 할 필요도 있다. 산업정책으로 사용자를 설득해야 일자리 안정도 기해진다. 노사문제를 다루는 노동부는 기업 운영에 관계된 부분까지 다루는 종합적 행정을 펼 수 있어야 한다.

고용노동부로 개칭하겠다는 데는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국가가 아무리 지원해 준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취업을 해서 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 방법이 가장 좋다. 장애인도 장애인만이 잘 할 수 있는 직업도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최근 시각장애인의 고유한 직업으로 불리던 안마 사업과 관련된 논란이 벌어졌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시각장애인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은 안마사뿐 아니라 많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은 소음이 심한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다. 그런 사업장은 청각장애인을 많이 고용하게 한다. 청각장애인이 수화를 할 줄 안다면 장애인 동반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 장애인들은 일반적으로 인내심이 강한 특성도 있다. 그런 특성들을 잘 고려하면 거기에 맞는 더 많은 직업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노동부 복지부 통합해야”

이제 현안으로 넘어가보자.

하반기 최대 현안은 역시 특수고용직 문제와 노사관계 로드맵이다. 배 의원은 두가지 문제 모두 그리 복잡할 것이 없다고 했다.

먼저 특수고용직 문제에 대한 복안을 들어보자.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직종이 자꾸 생긴다. 그래서 문제를 하나 해결해 놓더라도 다른 직종이 생겨서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원칙만 정리해 두면 문제는 간단하다. 스스로 노동자라고 하면서 단결하겠다고 하면 단결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 대신 이들은 사용자성이 사라지니까 그 부분은 소멸된다. 새로운 직종에 일일이 판단하지 말고 자연에 맡기자는 것이다.”

자연에 맡기자? 그렇다면 스스로 노동자라고 하면 이들에게는 무조건 노동3권이 주어지게 하자는 뜻인가.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단결은 폭넓게 인정하고 교섭에서 사용자와 충돌되는 부분은 의무를 강하게 하면 된다. 앞으로 노동위원회는 심판 기능이 강화될 것이다. 교섭대상 여부는 노동위가 판단하도록 하면 된다. 노동위원회법, 노조법, 비정규직 관련법 등을 노동위원회의 조정기능과 심판기능과 연동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노동자성 인정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한나라당도 특수고용직 관련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노사정위가 논의하고 있다고 하는데, 노사정위에 맡겨놔 봐야 답이 안 나온다. 이와 관련된 법은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일단 내부적으로 논의중이라고 한다. 법 개정안의 윤곽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어떤 내용으로 특수고용직 문제를 규정할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특수고용직 일일이 판단 힘들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서 그는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복수노조는 내년부터 허용되니 그대로 하면 된다. 문제는 교섭구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인데, 나는 다수대표제를 도입하되 소수노조에게도 교섭권을 주는 방안을 병행하자는 입장이다. 그런 식으로 노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 분쟁이 발생하면 노동위가 처리하도록 했다.

복수노조가 되면 산별노조가 만들어져도 산별노조가 조직된 사업장 안에 기업별 노조가 또 만들어질 것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산별과 교섭할지 기업별노조와 할지 고민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 소수노조라고 하더라고 교섭요구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복수노조가 되고 각 노조가 교섭을 해서 합의하면, 교섭 범위 내에서 조합원을 책임지는 구조가 될 것이다. 지역적 구속력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복수노조 ‘다수대표제’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서 일부 노조가 반발하고 있는데 대해 그는 “노조가 좀더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칙적으로 전임자 임금은 노조가 책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세사업장 소규모 노조라서 임금을 부담할 수 없다면서 법이 해결해 달라고 하는 노동계 주장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노조는 산별로 하든 업종으로 꾸리든 법적 제약이 없다”며 “감당할 수 있는 구조로 조직을 구성하고, 그 노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전임자를 두면 된다”고 했다. “사용자는 ‘노조가 자주적인 조직이라면서 자신 조직의 전임자 급여 부담을 왜 우리가 해야 하냐’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포스코 사태를 보면서 노조의 노력 부족을 사태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만약 포항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까지 노조로 조직해서, 포스코 본사더러 나오라고 했다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풀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는 서울지하철노조 시절에 전임자로서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았다. 그랬던 그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원칙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서울지하철에 처음 노조를 만들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사용자가 노조를 인정하느냐, 인정한다면 얼마나 인정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걸로 힘겨루기를 했다. 당시에는 전임자 몇명을 인정하는가가 사용자가 노조를 인정하는 크기로 치환됐다. 초대 노조는 조합원이 6천명일 때 25명의 전임자를 인정받았다. 준 전임자까지 포함하면 58명이었다. 사용자가 그만큼만 노조를 인정해줬던 것이다. 지금은 조합원이 1만명인데도 전임자 수는 그대로이다. 전임자 임금은 노조가 자기 노력으로 따내야 하는 것이지, 법으로 얼마를 인정하니 마네 하는 것은 자주적인 노조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전임자 임금은 한편으로 노무관리비 성격도 지니고 있다. 노조가 강력한 집행력을 가지고 회사와 교섭해서 노조관리비든, 운영비로 하든 이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올려놓고 사용자나 국가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것이 맞다. 전임자 임금은 원칙적으로 노조가 해결해야 하고, 소요비용은 사용자가 부담하든지 국가가 부담하든지 하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더이상 유예하자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없다.”

법으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노조가 강력한 교섭력을 발휘해서 사용자나 국가에게 ‘노조인정비용’을 협상, 합의하는 방법으로 생존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배 의원은 “복수노조든 전임자임금이든 더이상 유예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노사정이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정부가 법안을 낼 것이고, 국회는 법안심의를 주도해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임자임금, 더이상 유예 안 돼”

그는 현재의 노동계가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그는 물리적 힘을 통한 해결을 강조하는 노조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결국 ‘전쟁논리’인데, 이 논리의 끝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 온 적이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지역노조가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알선하는 사업에 매진하면, 해당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얻고 힘도 커진다는 것이다. “선배들의 이런 충고를 ‘어용’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며 “그렇게 하면 도움을 주고 싶어도 못 주게 된다”고 말했다.

경영계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주문했다.

“정부가 대신 나서서 공권력으로 노조를 통제해 주는 과거식 경영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모습을 국회에 와서 느꼈다. 경영진이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나 전망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전세계 사회에서 노조라는 것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다. 노조와 함께 기업의 공동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노조가 없는 기업 운영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노조를 동반자로 인식하고 함께 가는 것이 글로벌스탠더드다. 기업이 노조와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과거와 같은 관치나 노동통제적 운영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편집자 주> 6월부터 후반기 17대 국회가 시작됐습니다. 환경노동위원회 구성도 대폭 바뀌었습니다. 우선 위원장이 새로 선출됐습니다. 16명의 위원 가운데 6명만 전반기에 이어 환노위원을 맡았습니다. 국회는 환노위 정원 16명 가운데 15명만 우선 배정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9명이 ‘새 인물’들입니다.

환노위원들은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보좌진 역할을 조정하는 등 내부 정비에 바쁩니다. 특히 환노위가 처음인 의원과 보좌진들은 생소한 노동과 환경 분야를 공부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매일노동뉴스>가 15명의 환노위원들을 차례차례 만나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인사도 하고, 후반기 국회를 맞이하는 다짐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인터뷰는 7월24일자에 홍준표 위원장부터 시작해 약 3주 동안 무순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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