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얼굴을 보면 예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산별노조가 손에 잡히기 시작한 때문이다. 산별전환 저 너머에 또 난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래도 고개 하나를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다.

산별전환으로 되살아나는 노동운동의 희망

참으로 오랫동안 눌려 있었다. 조합원들의 실리주의적 경향은 강화되고, 정파간 잣대에 상처받은 탓에 좀처럼 신바람이 나지 않았었다. 그토록 십수년간 염원하며 이룬 진보정당으로부터 대한민국 위기의 주범으로까지 몰리는 지경이니 오죽했을까. 어느새 40대로 향하거나 건너가는 나이에도 큰 목소리 내지 않으면서 노동조합의 ‘문지기’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이 자랑스럽다.

하반기에는 금속산업에 이어 공공, 서비스, 화학섬유 등에서 산업별 전환운동이 펼쳐질 예정이다. 산별전환으로 시작된 새로운 열기가 노동운동의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단, 이를 위해서는 기존 틀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사고와 활동이 필요하다.

사회공공성 가로막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나는 공공연맹 노동조합들과 일을 해 온 편이다. 그래서 더욱 하반기 공공부문에서 전개될 운수산별과 공공산별의 양 날개 시도에 관심이 크다. 아마 연맹조직이나 단위노조 간부 모두 하반기 총투표에 벌써 손에 땀을 쥐고 있을 것이다. 멀리서나마 공공산별 전환운동을 지켜보면서 오래전부터 곰곰이 생각하던 제안을 전하고자 한다.

공공연맹은 한국사회 공공부문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사업장이 조직기반이다. 교통, 에너지, 정보통신, 사회복지 등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사회공공성 영역을 포괄한다. 그만큼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사회공공성 운동을 전개할 유리한 지형에 있으며 책임도 막중하다. 사회공공성 운동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생산물이 지니는 공공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활동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한국사회의 사회연대성을 강화하고 서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그런데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사회공공성 운동에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바로 공공기관 경영평가다. 현재 정부투자기관, 정부산하기관, 정부출연연구기관, 지방공기업 등이 경영평가라는 이름 하에 순위가 매겨지고 성과상여금이 다르게 지급된다. 지난 6월 발표된 2005년 경영평가 결과에 의하면, 정부투자기관은 경영평가순위에 따라 성과금이 기관별로 200~500%로, 정부산하기관은 100~188%로 차등적용 되었다. 연봉제와 임금피크제 도입에 모범을 보이고 혁신도시 건설을 차질 없이 수행한 토지공사는 1위 영광을, 공사 전환 이후 과중한 부채로 노사관계 갈등을 빚었던 철도공사는 ‘전반적인 경영관리시스템 미흡’을 이유로 꼴찌가 되었다.

나는 공공기관의 한해 활동에 대한 평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에게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당연히 서비스의 질과 생산성을 평가받고 모두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문제는 평가의 기준이다. 정부는 재무개선과 비용절감만을 절대적 가치로 내세우는 상업적 부가가치로 공공기관을 평가하고 이를 실질화하기 위해 성과금을 차등지급 한다. 경영평가는 노동자를 눈 앞의 실리에 좌지우지되는 경제주의 동물로 몰아가면서, 공공기관을 시장친화적 조직으로 재편해가니 정부에게 일석이조를 선사하고 있다.

경영평가 결과 대응은 결국 단위노조별로

기획예산처가 올해부터 경영평가에 퇴직연금 도입 항목을 포함하겠다고 발표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투자기관 노동조합들은 이에 공동 대응하는 모임도 결성하는 모양이다. 노동조합으로선 당연한 행보다. 그런데 조폐공사 노동조합이 어느새 퇴직연금 도입에 동의해 버렸다. 올해 경영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마 힘든 이유가 있었으리라. 그래도 노사가 합의할 경우에만 도입하도록 퇴직연금법에 명시된 제도를 경영평가 점수에 반영하여 사실상 노동조합의 합의권을 백지화하고, 노동진영 전체가 아직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퇴직연금에 먼저 도장을 찍었다는 기사를 읽고 씁쓸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편에선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저항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4일간 공공연맹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노정교섭과 사회공공성을 주제로 철야농성을 벌였다. 경영평가 방식을 규탄하기 위해 기획예산처 앞에서 벌인 집회도 수차례에 달한다. 꼴찌를 당해 성과금이 200%로 줄은 철도노조는 다시 이것을 160~240%로 차등지급하기 위해 내부평가를 실시하려는 철도공사에 맞서 조합원 개개인에게 성과금 반납동의서를 받는 균등배분투쟁을 벌이고 있다.

경영평가는 개별 공공기관에 한정되지 않는 제도의 문제다. 그래서 공공연맹도 매번 기획예산처를 규탄하고 노정교섭을 요구한다. 기획예산처는 끄덕하지 않는다. 결국 경영평가 결과는 발표되고 공공기관별로 각개전투를 벌여야 한다. 과연 경영평가 문제가 꼭 기획예산처와 교섭해서만 풀릴 수 있는 것인가. 우리에게 다른 카드는 없는가.

경영평가 차등성과금, 공공산별이 분배하자

사회공공성 운동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주도적으로 벌일 수 있는 진취적 운동이다. 하지만 사회공공성에 역행하는 공공기관 운영을 강요하는 현행 경영평가가 존재하는 한 공공부문의 사회공공성 운동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금도 성과금 차등지급이 조합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데, 이후 그 폭이 더 확대될 예정이라 한다. 이러다 정말 사회공공성은 깃발만 나부끼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우리는 경영평가 기준을 바꾸라는 투쟁을 해 왔다. 정부는 절대로 현행 경영평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현행 방식의 투쟁으론 경영평가를 중단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은 더욱 상업적 기관으로 변모해 가고, 조합원들은 경영평가 결과와 사회공공성 사이에서 매번 갈등해야 하며,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사회공공성 운동은 상징적 수준에 머무를 개연성이 크다.

생각을 거듭하다 여기에 결론이 이르렀다. 우리만 단결하면 경영평가 자체를 무시할 수 있지 않은가. 산별전환운동에 맞추어 공공산별 핵심사업으로 초기업단위 성과금배분투쟁을 추진해 보자. 이름을 붙이면, ‘상업적 경영평가 무력화 및 사회공공성 대안평가’이다. 1위부터 꼴찌까지 지급되는 성과금을 노동조합들이 한 곳에 모아 우리가 마련한 기준으로 다시 공공기관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 방식으로 나누자. 동일 금액으로 배분해도 좋고, 일부 차이를 줄 수도 있으며, 이왕이면 일부를 기금화 하여 불안정 노동자를 위한 활동에 쓰면 더 좋을 것이다.

당장 이루기는 힘든 일이다. 2~3년의 중기 활동목표로 설정하고 지금부터 준비해가자. 정책적으론 공공기관에 대한 사회공공적 운영평가 대안모형을 개발해야 한다. 종래 기업회계방식에서 벗어나 공공기관 본연의 역할에 맞는 공공적 부가가치를 계량화하고 이를 반영하는 ‘사회적 회계’도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시작하면 충분하다. 대안평가의 신뢰성과 공평성을 위해선 우리의 취지에 동의하는 시민사회, 전문가에게 운영평가 역할을 맡길 수 있다. 조직교육팀도 무척 바빠질 것이다. 차등지급된 성과금을 반환할 수 있는 조합원의 자발적 동의가 사업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산별 1기, 장대한 사업을 꿈꾸어라

금세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누가 그것을 모르랴? 지금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참 어렵다. 조합원들의 참여도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제안은 좋지만 과연 가능하겠느냐?’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새로운 물결의 사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활동을 하자고 산별을 만드는 것 아닌가? 산별로 전환하는 이 시점에 초기업적 의제로 조합원을 만나고, 사회공공성활동의 기반을 닦는 사업으로 할 만하지 않은가?

산별전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공공산별이 출범할 것이다. 공공산별 1기 기간에 상업적 경영평가를 무력화시키고 사회공공적 평가틀을 마련하는 장대한 사업에 승부를 걸어보자는 초대 대의원총회 토론장을 상상해 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