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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교사 단병호 "권리, 찾으려는 사람만 누릴 수 있어"실업고 방문 노동인권교육
“자~ 보너스 퀴즈 입니다. 인천정보상업고등학교 얼짱 배문석 학생이 방학을 맞아 휴게시간 1시간을 포함해 낮 2시부터 밤 10시까지 시급 3,200원을 받고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분식집 주인이 ‘오늘 하루만 11시까지 일해 달라’고 부탁을 해왔는데요. 그렇다면, 이날 배문석 학생이 받게 될 하루 일당은 얼마일까요?”

웅성웅성, 재잘재잘…. 이리저리 숫자를 꿰어 맞추던 학생들이 스케치북에 답을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스케치북에는 ‘2만7,200원’이라는 답과 ‘2만8,800원’이라는 답이 가장 많이 적혔다. 그렇다면 정답은?

“정답은 2만8,800원입니다. 시급 3,200원에 이날 근무한 8시간을 곱하고, 연장 및 야간수당을 각각 1,600원씩 더한 것이 하루 일당이 됩니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봐서 그런가, 정답자가 많네요.”

▲ 도전! 노동인권 골든벨. ⓒ 매일노동뉴스

“알쏭달쏭…<전원일기>의 응삼이 아저씨는 노동자인가 아닌가?”


13일 오전 인천정보상업고등학교 대강당. ‘노동기본권 실현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이 지난 11일에 이어 실업계 고등학교 방문수업을 진행했다. 이날의 강사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윤성봉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과 박명혜 단병호 의원실 보좌관의 진행으로 ‘도전 노동인권 골든벨’ 퀴즈대회가 열렸다. 문제를 많이 맞춘 팀에게는 어마어마한(?) 상품이 돌아간다는 사회자의 말에, 시큰둥하던 학생들도 눈빛을 빛내기 시작한다. “도전 골든벨, 지키자 노동인권”이라고 외치는 사회자의 말에 몇몇 학생들을 ‘큭큭큭’ 웃음을 날린다.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들을 묶어 노동법이라고 부릅니다. 다음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전원일기>의 원조얼짱 응삼이 아저씨 ②드라마 <어느 멋진 날>의 성유리 ③영화 <연애의 목적>의 박해일 ④MBC 김주하 아나운서”

‘엥?’ 하는 표정이 학생들이 속출하더니, 금새 쑥덕쑥덕 조별 토론이 시작된다. 이어지는 사회자의 문제풀이.

“정답은 1번 응삼이 아저씨입니다. 다이버, 교사, 아나운서처럼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고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사람들을 노동법상 노동자로 분류합니다. 응삼이 아저씨와 같은 농민은 일은 하지만 임금을 받거나 지휘를 받지는 않죠. 자~ 그럼 이번엔 주관식 문제입니다.”

‘객관식은 모르면 찍기라도 하지’, 얄궂은 사회자는 높은 점수를 주겠다며 주관식 문제를 읽기 시작한다.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장(사용자)들도 일을 처음 시킬 때 했던 말이랑 일을 막상 시작한 후에 하는 말이랑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애초 약속보다 임금을 덜 준다거나 더 오랫동안 일을 시킨다거나 하는 식이죠. 이런 경우를 미리 막기 위해서는 약속 내용을 문서로 잘 적어두어야 하는데요. 일을 시작할 때 노동자와 사장(사용자)이 써야 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이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문제. 스케치북에는 금새 ‘근로계약서’라는 답들이 채워졌다. 강당에 모인 100여명의 학생 중 상당수가 아르바이트를 경험했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해봤다는 학생은 한명뿐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 퀴즈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노동인권 도서가 상품으로 돌아갔다.
ⓒ 매일노동뉴스

미션, “생리휴가를 되찾아라!”


이날 특강은 퀴즈를 통해 노동에 대한 일반 상식을 알아보는데 그치지 않았다. 진행자가 ‘사장’이 되고 학생이 ‘노동자’가 돼, 부당한 처우를 당한 노동자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상황극으로 연출해 보기도 했다.

노동자 : “사장님 생리휴가를 쓰려고 하는데요”
사장 : “뭐 생리휴가, 그런 게 아직도 있었나? 당신이 생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증명을 해 보이던가. 남자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왜 여자들만 쉬겠다는 거야?”
노동자 : (주춤 하는가 싶더니) “여상과 남성은 신체구조가 다르잖아요. 그리고 생리휴가는 법에 보장돼 있는 것 아닌가요? 법대로 해 주세요”


학생들은 그밖에도 △임금체불 △산업재해 △사용자의 폭언·폭행 △휴가 미지급 △사측의 노조결성 방해 등 노동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연극을 통해 해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날 수업을 참관한 학생들은 취업과 대학 입학을 목전에 둔 3학년들. 빠르면 내년, 늦어도 2~4년 뒤면 노동자가 돼 있을 이들은 웃고 떠드는 속에서도 잠시마나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는 듯했다.

▲ 단병호 의원에게 듣는 노동자로 사는 법. ⓒ 매일노동뉴스

“권리, 찾으려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


예상 시간을 넘겨가며 학생들의 호응 속에 진행된 골든벨 퀴즈대회가 끝나자, 단병호 의원이 학생들 앞에 섰다. 단 의원은 “미래의 노동자들 앞에 선 본인 역시 상고 출신”이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연.

“여러분들은 지난 3년간 갈고 닦은 기량을 사회에 나가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이중에는 취업을 하는 친구도 있고,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될 친구도 있겠죠.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할 겁니다. 청년 실업을 걱정하는 친구도 있을 거고, 취직을 하더라도 금방 해고되지는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하는 친구도 있을 줄 압니다.”

단 의원은 이제 곧 ‘사회’라는 바다로 뛰어들 차례인 ‘예비 노동자’들에게 ‘기죽지 말고 당당할 것, 자기 권리는 자기가 찾을 것’ 등을 주문했다.

“우리나라에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40개 넘게 있지만, 법만으로는 보호되지 못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여기 있는 친구들 중에는 ‘사장님’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노동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권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권리를 침해당할 경우엔, 인내와 양보가 미덕이 될 수 없습니다. 권리는 찾으려는 사람만 누릴 수 있습니다.”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진지하게, 이날 강연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학생들은 “지루하지 않게 꼭 필요한 내용을 배운 것 같다”고 반응했다.

그러나 이날의 수업이 학생들에게 ‘예비 노동 교육’으로써 어느 정도 기능하게 될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이 학교 3학년 장선혜 양은 “우리 반 34명 학생 중 취업에 나가는 학생은 5명에 불과하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대학 졸업 뒤를 생각한다면 이런 수업이 많아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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