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한국측 협상단을 실질적으로 압박하는 집회가 부족했다는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 이런 차원에서 민주노총 원정투쟁단을 중심으로 재미위원회 동지들이 함께 하는 협상단 숙소 앞 항의집회를 오늘 새벽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평소보다 이른 7시30분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숙소 앞에 집결한 투쟁단은 일부는 택시로, 일부는 재미위원회 동지의 차로 한국 협상단이 머물고 있고 메리어트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 도착 후, 피켓과 핸드마이크, 깃발 등 시위용품을 꺼내고 막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는데 호텔 경비원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6월8일…“민중 옥죄는 ‘론스타’, ‘카길’을 보내버려!”

우리 변호사와 대화하는 모양새를 보니 지금 투쟁단이 서 있는 곳이 호텔 사유지니 밖으로 나가달라는 요청인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사유지 밖으로 나가 힘차게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연락을 받았는지 경찰도 도착했다. 핸드마이크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열 받지만 별 도리가 없다. 목이 터져라 더 크게 외치는 수밖에.

어제 준비한 대로 일단 구호를 중지하고, 협상단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우리는 당신들을 한국 협상단이라고 인정치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번 양보해서 당신들과 대화하고자 한다. 대화 요청과 함께 민주노총 대표단이 호텔 정문쪽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호텔 경비원은 물론이고 경찰이 다가와 가로막는다. 경찰은 호텔 경비원들도 원정투쟁단과 접촉하는 걸 막는다.

기자 한 명이 호텔의 협상단과 우리 투쟁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협상단 움직임을 전해 준다. 우리 때문인지 평소보다 출발이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협상을 더 늦출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힘을 내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10분, 20분, 30분, 늦어지는 시간만큼 협정문 문안 하나 하나 합의가 늦어질 것이다. 그만큼 FTA 저지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협상단은 9시를 훌쩍 넘겨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협상장소인 미 무역대표부로 떠났다. 우리를 의식해서인지 버스도 평소처럼 정문 앞에서 타지 않고, 호텔 뒤쪽 주차장에서 탑승했다.

무역대표부 앞에 와보니 론스타, 카킬, USTR 등을 장례지낼 꽃상여 제작이 한창이다. 언제 준비했는지 정말 그럴 듯한 모습이다. 10시30분 드디어 론스타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한국사회에서 금융시장 개방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론스타 펀드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간단한 보고를 시작으로 노동, 농민 열사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다.

이어 론스타 영정을 앞세우고 한국 민중들의 삶을 무참하게 유린한 IMF 빌딩 앞까지의 장례행렬이 출발했다. “아임에프 필요없다~”, “다운 다운 에프티에이~”. 전농 나주농민회 유상욱 동지의 걸쭉한 선소리가 끝나면 원정투쟁단의 뒷소리가 여운을 끌며 워싱턴 시가지를 진동했다. 주위의 미국 시민들은 사진 찍느라 정신없다. 아마도 이런 장례 행렬은 처음 봤으리라. IMF와 세계은행 빌딩 앞에서 상여소리를 더욱 힘차게 소리 높인 원정투쟁단은 IMF 빌딩 앞쪽의 머레이 공원에 상여를 내려놓았다. 이어 계속된 집회에서 민주노총 사무연맹 수석부위원장인 전대석 동지의 힘찬 연설이 시작됐다.

점심 후 이어진 장례행렬은 머레이 공원에서 출발하여 세계 3대 메이저 곡물회사인 카길사 앞까지 이어졌다. 원정투쟁단의 장례행렬은 일종의 퍼포먼스 차원이기도 하지만 한국 민중들은 물론이고 전세계 민중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첨병기관(IMF, 세계은행, USTR 등)을 민중들의 손으로 장례지낸다는 상징적 의식이기도 하다. 워싱턴 카길 지점 앞에 다다른 장례행렬은 흥겨운 풍물패의 사물놀이로 투쟁단의 기를 먼저 북돋았다. 집회 도중 풍물패가 카킬 빌딩의 로비로 진입하여 힘차게 풍물을 울리기도 했다. 전통 장례행렬은 마지막에 상여를 불태우는 것으로 끝나지만 원정투쟁단은 현지법을 존중하여 카길의 영정을 발로 짓이겨 부수는 것으로 장례의식을 마무리했다.

미 무역대표부 앞으로 다시 이동한 원정투쟁단은 USTR을 에워싸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시작했다. 머리띠, 옷, 깃발, 손수건 가능한 한 모든 물건을 동원하여 원정투쟁단이 건물을 완전히 감쌀 수 있도록 준비가 진행됐다. 함성과 구호 소리와 더불어 원정투쟁단이 무역대표부 건물을 감싸기 시작했다. 오늘은 상징적 차원에서 USTR을 압박했지만, 미국 대자본의 요구를 앞장 서 한국에 강요하고 있는 너희들을 언젠가는 진짜 장사지내리라는 각오를 다지며 숙소로 돌아왔다.


6월9일…“한국 협상대표단이 거부한 항의 면담, 미국대표단은 수용하고”

한미FTA 1차 본협상 기간의 마지막날. 원정투쟁단의 공식투쟁 일정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어제보다 더 많은 원정투쟁단 동지들이 한국 협상단이 머물고 있는 메리어트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 입구 두쪽으로 대오를 나누어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야유의 함성을 부르짖었다.

이어진 무역대표부 앞 집회는 미국 농민들과의 연대집회다. 한국의 “한미FTA 저지 농축수산 비상대책위원회”와 미국 “전미가족농연합회(NFFC)"가 한미FTA에 대한 공동의 성명을 발표하고 함께 투쟁하는 집회를 시작했다. 전미가족농연합회는 미국 30개주의 소농과 가족농들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미국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한미FTA가 체결되어 한국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 카길, 델몬트 등 수소의 초국적 농업기업과 유통업체들은 이익을 보겠지만 한국의 농민들은 물론이고 미국의 소농과 가족농 또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데 양국 농민들이 의견을 같이했다.

나주 농민회 유상욱 동지는 한미FTA는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강제무역협정, 폭력무역협정이라며 우리 정부도 미국의 공세적 농산물시장 개방 요구에 맞서 미국과 FTA 체결을 거부한 스위스 정부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미 양국 농민단체들은 오늘의 연대는 물론이고, 향후 7월 서울에서 열리는 2차 본협상, 9월 워싱턴에서의 3차 본 협상에서도 FTA 저지라는 공동의 목표아래 상호방문, 공동집회, 공동 토론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1차 본협상의 마지막날. 어제의 론스타 및 카길사 장례의식에 이어, 오늘은 USTR을 장례치르는 날이다. IMF 앞 머레이 공원에서 출발한 장례행렬이 무역대표부 앞에 도착해 건물을 한바퀴 도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늘도 USTR이 세계 민중들에게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를 거세게 나무라는 것 같다. 장례식 중 원정투쟁단 대표(오종렬 단장/강기갑 의원/전대석 민주노총대표/이강실 목사)들이 한미FTA 미국측 협상대표들과의 항의 면담을 위해 USTR 빌딩안으로 이동했다. 원정투쟁단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대표단을 환송했다. 비 속에서 진행된 USTR 장례식 후 원정투쟁단은 백악관 앞 라파엣 공원으로 마무리 문화제를 위해 이동했다.

문화제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을 때 미국 협상대표단과의 항의 면담에 나섰던 원정투쟁단 대표들이 도착했다. 네 가지 선결조건 수용 등 불공정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또다른 NAFTA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오종렬 대표의 보고를 시작으로 항의 면담 참가자 전원이 면담 자리에서 오고간 이야기를 자세하게 보고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태양, 공기, 물, 농업은 무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만약 이런 것이 무역의 대상이 되면 큰 재앙이 온다는 강력한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민주노총 사무연맹 전대석 수석부위원장과 이강실 목사도 한미 FTA는 한국 노동자와 민중들의 삶과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은 물론 출발부터 공정하지 못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고, 한미 FTA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집회의 마무리 순간부터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기 시작했다. 우비를 걸쳤지만 숙소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모두들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비에 흠뻑 적었다. 원정투쟁의 마지막날을 기념하여 숙소에서 이어진 단합대회는 원정투쟁기간 동안 진행된 투쟁의 모습을 담은 슬라이드쇼로 시작됐다. 여러 동지들의 다양한 투쟁의 모습들을 함께 지켜보며, 지난 1주일의 투쟁을 각자 마음속으로 되새겨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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