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열사여 평안하신지요?

황망한 비보를 접하고 겨를 없이 당신의 주검을 쫓아 눈물만 흘리던 때가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그랬듯이 조만간 큰 비가 내리면 열사의 덥수룩한 수염에 선한 눈하며, 충주와 서울 종로를 거쳐 마석 모란공원에 그 무거운 육신을 놓으실 때까지의 아수라 같은 기억들이 후드득 쏟아지며 강물처럼 흐를 것만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아직도 열사의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하필이면 왜 열사께서 희생이 되어야 했으며, 총연맹 간부들이 함께 했던 현장에서 어떻게 그런 무참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당장이라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것 같던 분노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열사께서 그토록 말씀하고자 하셨던 특수고용노동자는 도대체 어찌된 것인지? 당신의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도 정작 가슴에 제대로 새기고나 있는 것인지? 저는 여전히 혼돈스럽습니다.

생각해 보면 열사께선 굳이 주검이 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정규직이셨던 당신께선 당신의 사업장에 관계된 일도 아닌 일에 레미콘노동자들과 함께 시청사 앞에 수십여일을 천막치고 밤샘하며 죽음의 현장까지 달려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많았던 사람들 중에 굳이 당신께서 용역레미콘차량 앞길을 몸으로 막아설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토록 귀여워하고 사랑하셨을 귀여운 딸과 부인을 두고선 더더욱 못할 일이였지요.

그런데 당신께선 남들이 결코 가지 않을 길을 가시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에 대한 원망과 회한이 더욱 크게 밀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당신을 좀더 오래 두고 깊게 사귈 기회를 잃은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열사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지역 출신의 노동조합 활동가라는 이유로 지난 연초에 당신께선 혁신도시(공기업 지방이전) 유치와 관련하여 이전대상 기관의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총연맹 대의원대회 때를 비롯해 두어 차례 만났고 그후 전화 몇번 한 것이 인연의 전부일 터인데, 저는 왜 그리 당신의 기억이 생생한지 모르겠습니다.

충주라는 곳이 본디 작은 도시라 그러했는지 한 다리 건너 남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우리는 진작에 알 듯한 관계였다는 것과 열사가 어떠했던 분이셨다는 것을 당신이 가신 후에야 알았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정의롭다 하는 일에 차마 무관심해 하지 못하는 당신이 성품이 결국 죽음을 부르고야 말았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것입니다.

당신이 가신 지 꼭 1년!

그 당시 우리 노동계는 안팎으로 내홍을 겪고 있던 때였습니다. 노동계의 각종 부정과 비리 사건, 그리고 폭력 행위가 연일 폭로되는 와중에 정부는 비정규직법 개악을 시도하고 노사관계 로드맵 등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등 공세가 판을 치고 있어 현장 활동가들은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당신께선 죽음으로 우리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비정규 및 특수고용노동자 문제에 무관심 했던 사회에 대한 경종이었으며, 노동운동을 백안시 하던 정부의 정서가 빚어낸 참극이었습니다. 아직도 이 땅에선 너무도 당연한 노동운동조차 소중한 생명을 담보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일깨워주신 것 입니다.

당신께선 특수고용노동자의 실상을 새겨 되돌아보게 하시고, 이 문제가 단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모든 노동자들이 곧 겪어야 할 문제이며, 후손들도 겪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열사께선 더불어 분노도 함께 가르쳐 주셨습니다.

충주와 서울을 오가며 연일 계속되던 집회에 분노의 함성은 높아져 드디어는 10만여명의 함성이 서울 종로거리를 메우게 하였고, 열사의 참 뜻과 정신계승을 위한 결의가 어느덧 850만 노동자 가슴마다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달려있게 하셨습니다. 열사의 죽음에 분노하지 않고 그 분노를 조직화하지 못한다면 열사의 고귀한 죽음마저 헛되이 할 수 있다는 위기가 만들어낸 전율스런 광경이었습니다.

지금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속속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노동열사 김태환 열사 정신계승 사업회’가 발족되고, 추모기간이 설정되며, 기간 중에 추모전야제와 추모노제 및 추모제가 잇달아 열리게 됩니다. 차마 그땐 눈물만 흘렸을 뿐 열사의 희생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지 못하였으나, 이젠 좀더 차분한 마음으로 열사를 되뇌어 보려 합니다.

전태일 열사가 가신 지 35년여가 지나고 또 김태환 열사가 비명에 가신 지 1년이 겨우 지난 지금도 노동현장에서는 여전히 용역깡패와 경찰특공대가 진을 치는 후진적 만행이 서슬 퍼렇기만 합니다. 열사께서 그토록 소리쳤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은 해결난망인 채, KTX 여승무원, 하이닉스-매그나칩등과 같은 분규사업장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한미FTA 체결 협상, 평택미군기지 이전 등으로 사회는 두 조각 난 채 신음하고 있고, 사회양극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열사께서 보여주신 사회의 약자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관심,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끝없는 추구,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희생정신,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이제야 필요할 때일 것입니다.

이 땅의 노동자 농민이기에 겪어야만 하는 문제들을 함께 나누고 갈구하며 쟁취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열사 정신의 온전한 계승임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또한 열사의 생생한 흔적들을 세월에 빼앗기지 않으려 합니다.

열사는 저에게 노동운동의 또다른 고민을 안겨준 자랑스러운 동지이자 고마운 스승이십니다.

김태환 열사여!

열사의 참 뜻을 기억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무거운 짐일랑 훌훌 벗어놓고 열사께서 이루고자 했던 일일랑 산 자의 몫으로 남겨두시고 이제 그만 평안히 잠드소서!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