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과 2008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계절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불린 5·31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압승, 열린우리당의 참패, 민주노동당의 정체, 민주당의 약진으로 결말났다.

민주노동당은 광역비례 정당득표 12% 득표(210만표)를 획득했고, 광역의원 15명과 기초의원 66명 등 모두 81명의 지방 공직자를 배출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 비해 약 2배의 당선자를 냈다. 당시 45명의 당선자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총선 당시 득표율보다는 1% 정도 하락했다.

그러나 ‘진보개혁세력 대표주자 교체’를 내걸고 300명 공직자 진출과 정당 득표 15% 확보, 300만표 획득을 꿈꾼 선거 목표의 달성에는 실패했다. 또 울산 동구와 북구청장 자리도 한나라당에게 내줬다.

이번 선거는 선거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정상적인 분위기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선관위와 시민단체들이 나서 '참공약'(메니페스토)운동을 펼쳤지만 정강정책과 공약은 한나라당을 향한 ‘파란 바람’ 속에 휩쓸렸다. 집권여당이 광역단체장 1곳만 겨우 건사하고, 기초단체장과 광역의회도 거의 대부분 야당에게 내주는 선거는 일찍이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이 치른 역대 선거 가운데 가장 힘겨운 싸움이었다.

문 대표는 “비정상적인 한나라당 광풍의 결과를 한국사회가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며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심기일전해, 진보개혁세력의 대표주자로서 소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남도지사 후보로서 출마해, 그렇지 않아도 구리빛 얼굴이 더욱 검게 그을린 문 대표를 1일 당사에서 만났다.

- 선거 소회는.
“국민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울산 기초단체장 당선과 정당득표 15%, 300만표 득표 등 목표에 미치지 못해 매우 아쉽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국민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한 데 대한 질책이 있었다고 본다.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부족한 점에 대해 뒤돌아보고 심기일전해서 국민의 사랑과 믿음을 받도록 하겠다.”

- 이번 선거의 특징을 꼽자면.
“비정상적인 한나라당 광풍이 전국을 휩쓴 선거였다. 한나라당 광풍을 한국사회가 소화해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잘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라 진보개혁세력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지적이다. 진보 대 보수의 세 싸움에서 진보세력이 밀리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힘이 강한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여당이 2004년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접고 나서부터 이런 현상이 강화됐다.”

- 민주노동당 선거 성적을 평가한다면.
“아주 어려운 조건 속에서 지난 총선에서 얻은 당의 지지도를 유지해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위상을 굳건히 유지한 것은 소중한 성과이다. 비록 당선에 이르지 못했지만 당의 후보들의 득표력이 많이 높아졌다. 차점자로서 낙선한 후보들이 많다. 한나라당 광풍만 아니었더라면 훨씬 더 많은 당선자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이 아쉽다. 울산에서 기초단체장 두 자리를 뺏긴 것도 안타깝다. 지난해 재보선에 이어 이번 선거를 통해 울산이 갖는 정치적 과제를 재확인했다.”

-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지난 선거와 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2002년에 비해 당선자도 2배 가까이 늘었다.
“노동자와 농민, 서민 등 우리 사회 기층의 굳건한 연대와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특히 노조와 농민회, 빈민단체 등 대중조직들이 선거에 적극 결합해 전국을 누빈 결과이다. 노조는 조합원들에게 계급투표를 독려하고 대규모 후보를 발굴했다. 농민회도 대규모 후보를 배출하고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굳게 뭉쳤다.”

-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약진했다. 지역주의 부활로 보는 평가도 있던데.
“그렇게 보지 않는다. 지역부의 부활은 국민들을 쉽게 보고 폄하하는 평가이다. 이번 선거는 비정상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이후에 ‘싹쓸이’로 인한 모순이 드러나고 국민들이 다시 정상적인 정치와 진보개혁세력을 원할 때가 머지않아 온다고 본다. 그때는 국민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그때까지 선거기간에 약속한대로 양극화를 해소하는 복지확대와 비정규직 등 사회적 차별을 해소, 중소기업에 대한 과감한 육성정책을 비롯해 서민경제를 되살리는 데 당력을 쏟는 등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지키고 대중성을 확보하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 선거운동에서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공약이나 구호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장에서 직접 선거를 뛰어보니 한나라당의 ‘중앙정권 심판론’도 먹히지 않았다. 그저 집권여당의 무능함이 선거 분위기를 좌우했다. 구호나 정책은 선거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복지’라는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복지’공약과 ‘진보개혁세력 대표주자교체론’도 한나라당 광풍 속에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았다.”

- 민주노동당이 향후 정국에서 맡을 역할은.
“당과 당의 후보가 10%대의 득표력을 가지게 돼서 이후 대선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질 것으로 본다. 이를 토대로 진보개혁세력을 결집시켜 민주화와 진보정치의 역사적 흐름이 멈추지 않도록 하겠다. 파탄 난 민생을 되살리고 진정한 개혁을 이루는 데 민주노동당이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한 정당의 독식구조는 반드시 부패를 낳는다. 광역과 기초의회에 진출한 의원들은 자치단체가 국민의 뜻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소금’의 역할을 할 것이다. 진출 못한 지역에서는 주민소환제를 적극 활용해서 견제할 것이다.”

- 이후 일정은.
“경남에서는 여당과 정당득표 지지율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기초의원들도 대거 당선됐다. 경남이 ‘영남진보벨트’의 엔진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일단 경남에 내려간 당선자를 축하하고 낙선자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울 생각이다.
경남도지사 후보로 뛰느라 당대표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 다음주부터는 당대표로서 본격 당무를 볼 것이다. 그동안 미뤄져 왔던 당 혁신과제와 하반기 대대, 7월 재보선, 국회 하반기 원구성과 의원대표단 구성, 정계개편 과정에서의 민주노동당의 역할 등등을 꼼꼼히 살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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