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바로미터 중 하나가 선거운동원들의 표정이다. 지난 21일 인천 부평지역의 한 네거리를 ‘장악’한 김성진 민주노동당 인천시장 후보의 운동원들의 표정을 밝았다.

휴일을 맞아, 가족들을 데리고 선거운동을 나온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주황색 옷을 입고, 춤을 추며 흥을 돋웠다. 엄마가 춤을 추면 꼬마가 따라 추고, 어색한 듯 손가락 네 개를 펼쳐든 늙은 노동자도 웃었다. 김성진 후보에게 유권자와 악수할 때 ‘손맛’이 어떠냐고 묻자, 그저 함박웃음만 지었다.

이달초 동아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김성진 후보의 지지율 따르면 15.3%에 이른다. 2등인 최기선 열린우리당 후보의 지지율은 17%. 2등의 뒤통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지지율 1등을 달리고 있고, 현직 인천시장인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47.2%)가 독주하고 있는 가운데, 치열한 2위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2등의 뒤통수가 잡힐 듯하다

인천에서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구도심인 동구와 서구 지역은 인천의 도시빈민이 모여 사는 지역. 70년대말,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기억되는 동일방직에서 5분 거리에 맥아더 동상이 서 있는 자유공원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인천 서쪽 끝 도로로는 고철을 실은 차량이 부산을 오가고 있고, 그 지역 아이들은 만성적인 아토피에 시달리고 있다.

인천 상권의 중심으로 부각된 부평으로 오면 누구를 위해선지 모를 화려한 간판이 줄지어 들어서 있고, 그 옆 계양구 주민들의 상당수는 서울로 출근하는 ‘베드타운’이다. 서쪽으로는 섬이, 동서로는 농토가 자리잡고 있다. 지역의 중소기업들이 모여 있던, 남동공단에는 빈 공장이 늘어가고 있다. 송도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인천 경제자유구역’이 한창 조성되고 있다.

김성진 후보는 “인천을 위한 인천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공약의 전제라고 강조했다.

“인천에서 돈 벌어서 서울에서 쓰는 것이 ‘상식’이 돼 버렸다. 지난 몇십년 동안 계속 그래 왔다. 문화도 복지도 전국에서 꼴지를 달리고 있다. 이제, 인천을 위한 인천을 만들어야 한다.”

김 후보는 자신과 안상수, 최기선 후보의 차이를 “인천 자립경제 건설 대 경제자유구역”이라고 설명했다. 약간은 생소한 이야기. 설명을 들어보자. 

"인천을 위한 인천을 만들어야"

“인천에서 번 돈을 인천에 재투자하는 순환구조를 가지는 경제구조를 주장하는 것이다. 인천 전체가 공사판이다. 그런데 지역업체의 발주률은 20%가 안 된다. 외지 대기업들이 다 수주해서 돈 벌어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기업들이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망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해서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 남동공단은 공동화 되고 있고, 두산인프라코아는 군산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대우전자도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기업이 떠나면 일하던 노동자도 함께 떠난다. 협력업체까지 생각하면 그 숫자가 만만치 않다. 이런 가운데 서민 경제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다. 인천은 가진 게 땅뿐인데, 왜 인천은 기업에게 저렴하게 제공하고 임대하지 못하는가. 우리가 주장하는 자립경제론은 시 정부가 토지와 자금을 중소기업과 향토기업에게 배려하고, 기업은 지역에 기여하고,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에 대해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생경한 이야기였다. 진보정당 후보의 공약 설명에서 ‘기업정책’부터 설명을 들을 것이라곤 생각을 못했다. ‘질 좋은 일자리 제공’은 진보정치세력이 주창할 첫 과제 중 하나겠지만, 일단은 낯설었다. 더 이야기를 들어보자. 

공동화를 막아야 서민경제 살아난다

“새 기업을 유치하자는 것이 아니라 있는 기업을 살 찌우자는 것이다. 일단 떠나면 여러 규제 때문에 다시는 못 들어온다. 인천은 점점 더 공동화 될 것이다. 토지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기업의 지역사회의 기여를 요구하면 된다. 대기업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하도급 관계도 파악하고, 고용의 문제도 파악해 가야 할 것이다. 지원하되 책임도 지우며 지역 경제를 함께 받쳐가야 한다는 것이다.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울산에선 대우차를 몰고 다니면 ‘나쁜 놈’이 된다. 그런데 대우차가 있는 인천에서 그렇지 않다. 순환구조를 가진 자립경제를 만들기 위해 시 정부가 할 일은 다양할 것이다.”

이 즈음에서 인천국제공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항은 인천에 있지만 서울에서 ‘공항 고속도로’ 이외의 인천 땅을 한번도 밟지 않고 공항으로 가게 된다. 영종도 주민들은 도로 통행료 때문에 싸워 왔다. 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은 비싼 집값 때문에 영종도 안에서 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개발하고 있다”이라고 김성진 후보는 말했다.

지역민의 삶을 고려한 개발, 질 좋은 고용을 동반한 기업지원 등 인천 지역의 ‘진보 정치세력’의 주장을 인천시민들은 얼마나 지지할까? 우선 상대 후보들에 대한 김성진 후보의 평을 들었다. 

안상수 “뭉그적”…최기선 “안쓰럽다”

“안상수 시장 후보는 귀를 닫고, 잘 뭉그적거리는 사람이다. 현직 시장이면, 활동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것을 전제로 여러 공약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정보를 정확히 제공하지 않는다. 주택보급율이 100% 안팎인데, 무주택자가 30%가 된다. 그럼 그 30%가 집을 가지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냥 아파트만 건설한다. 부평미군기지 반환 이후인 2003년에는 환경오염 조사와 활용방안을 시와 시 의회, 주민들이 함께 논의하자는 주민발의 조례를 접수했는데 접수증을 주지 않았다. 그후로 공청회 한번 안했다. 건설 공사장 곳곳에서 특혜 시비가 터져 나오고, 비리 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귀를 열지 않고, 뭉그적 일을 추진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어진 최기선 후보에 대한 평이다.

“우선 안쓰럽다. 신한국당과 자민련, 열린우리당까지 워낙 당적을 자주 바꿔 온 사람인데, 이번에 당선 되려고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스스로 확신을 가지지 않은 것 같아 보여 안쓰럽다. 예산 10조를 받아서, 구 도심을 개발하고, 이것저것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 좀 웃기는 말이며, 인천시민에 대한 실례다. 다른 사람이 되면, 줄 10조원을 안 주겠다는 것인가. 논리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안됐다 싶고 다른 한편에선 좀 너무한다 싶기도 하다. 전직 시장인 최기선 후보는 인지도는 100%에 가깝다. 반면 나는 인지도가 얼마 안 된다. 최기선 후보는 이미 호불호가 확실한 만큼 더 올라갈 곳이 없지만, 나는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지지율이 더 올라갈 것이다. 지금도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는데, 나를 찍어 줄 사람은 아직 다 모이지 않았다.” 


"저들은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다"

인천은 진보이론의 용광로였다. 80년대 “한국의 똑똑한 사람들은 모두 인천에 모였다”는 말이 나올 만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걸출한 사상가들이 키워졌다.

그들 중 일부는 진보정치인으로 커 나갔고, 일부는 보수정당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하다. 시민운동의 지도급 인사의 상당수는 인천을 거쳐 갔다. 인천을 거쳐 가고, 인천에서 성장한 정치인은 많지만 인천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은 많지 않다. 인천의 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올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정치는 중앙의 공중전과 지역의 지상전이 함께 가는 것이다. 이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다 물거품이 된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인천 곳곳에서 지역사업을 해 왔다. 공부방도 만들고, 독거노인도 돕고 있다.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싸웠고, 싸움에서 이겨왔다. 그 지역사업의 결과가 내 지지율로 표현되고 있다.”

선거 이후에 인천의 진보정치세력이 할 역할을 물었다.

“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한나라당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선거운동을 하는 이유였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은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구청장이 바뀌면 위탁 사업자는 바로 위태로워진다. 그들은 서로 물고 물리며 이권을 챙겨왔다. 목숨을 걸고 선거투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뜻과 대의를 걸고 선거에 나섰다.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생각도 든다. 지역에서 우리의 ‘커넥션’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일상적 공간에서 우리의 권위와 이해를 관철해 가야 한다.” 

어려운 길이지만 ‘대안’이 될 것

사실 진보정치인들이 가장 못 하는 게 자기 자랑이다. 이 콤플렉스에서 김성진 후보 역시 자유롭지 않다. 마지막 질문으로 ‘왜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성진이어야 하는지’ 총론적으로 말해달라고 했다.

“전에 보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장 자질 중 가장 필요한 것이 도덕성이라고 나오더라. 그럼 내가 되는 게 맞는데….(웃음) 민주노동당이 가는 길이 어렵고 길 것이다. 힘들게 갈 길이지만 우리가 대안이 될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먹거리를 걱정하며 어렵게 살던 어린 시절. 가난을 떨칠 길은 대학밖에 없다며 공부를 했고, 장학금 많이 준다는 인하대에 들어가던 해가 1980년. 광주항쟁이 벌어지고, 군부의 대학살이 있던 해였다.


그후로 3번 구속이 됐고, 학교는 결국 졸업하지 못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석방된 김성진은 ‘빵잽이’라 현장에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들과 모여 청년회 활동을 시작했다. ‘민주주의 민족주의 인천연합’이 결성되고,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굴업도 핵 폐기장 반대 투쟁, 지역 판공비 공개 투쟁 등 다양한 지역 이슈에 붙어서 싸워 왔다. 특히 유명한 것은 인천 부평미군기지 반환운동. 1996년에 시작된 이 싸움이 2002년 기지 반환결정으로 끝나기까지, 김성진은 그 투쟁을 질기게 이끌어왔다.


지난 2006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최다득표로 당선됐고, 인천시장 후보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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