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1
영양사가 잔반지도 하면서 아이를 때리고 쓰레기를 먹였다는 보도가 났다. 그런데 후문을 들어보니 그 영양사는 영양지도와 잔반지도와 식습관교정이라는 자기업무를 충실히 하려 했는데,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게 된 아이가 집에 와서 얘기한 것이 침소봉대돼 오해를 낳게 됐다는 것이다.

# 상황2
이틀 뒤엔 학부모들이 소리를 지르고 젊은 여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잘못했다며 비는 화면과 함께 급식지도에서 비교육적 소행에 학부모가 분개했다는 보도내용이 있었다. 그 뒤 교사단체는 사건관련내용은 교권침해라 간주하고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으며, 해당 학부모들은 사과문을 보내왔다는 것과 함께 교권확립이 필요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돌이켜 생각을 해 보자. 교사는 당연히 급식지도를 해야 한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며 중요한지를 가르치며, 입맛과 더불어 삶의 습관교육이고 일상의 식사기 때문에 교사는 밥상머리교육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학교는 3교대 식사를 해야 하는 시설 때문에 이러한 교육에 한계를 분명히 안고 있었다. 해당교사는 학사일정과 학교현실을 감안하면 남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어서 아이들이 음식을 체할 정도로 급한 식사지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반성문을 쓰게 하고 체벌까지 했다면 당연히 학부모들은 항의를 해야 한다. 하지만 본질적인 교육에 대한 학교현실의 문제를 접근하지 않고 교사개인에 대한 분노의 표출은 시위를 잘못당긴 꼴이다. 게다가 항의 상황에 도를 넘어 교사의 사퇴를 종용하고 무릎까지 꿇게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교사가 아니라 학교의 현실이며, 이를 해결하도록 교장과 협의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학교운영위(학운위) 소집을 요청했어야 한다. 그동안 교장이나 학운위에서 이렇듯 이상한 식사습관을 길들이게 했던 학교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지 않았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학교를 방치하고 있는 지자체와 교육청, 정부와 교육당국에 공식적인 항의를 해야 맞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그도 저도 다 물리고 교사에게 몰려가 수차례 항의하면서, 학교를 바꾸기엔 아무런 힘도 없는 교사 한 명의 인격을 짓밟아버리는 ‘당당한 몰상식’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문제는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교의 현실

그러나 우리 모두 솔직해 지자. 학교의 현실에서 학부모의 위상은 여전히 약자다. 학교는 학부모를 교육주체로 여기지 않고 있다. 교육 수익자로서 학부모는 교육비를 2중 3중으로 부담해야 하고, 교육관료들의 전횡에서 맹목적 노예일 뿐이며 무조건적 봉으로서 여전히 철저하게 갈취당하고 있다. 학교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낸 것은 헌법도 지키지 않고 있는 교육당국의 무원칙과 무책임에서 비롯된다. 보여주기 식 전시행정과 무철학의 시장논리와, 20대 80의 논리로 정리되는 개인주의-줄세우기-학력학벌주의-공교육붕괴까지 이어지는 철저한 신자유주의로 학교를 운영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원평가니 승진점수니 하며 주체들 간 싸움을 조장하는 교육정책으로 학교 내 공동체의식을 붕괴시켰다. 교육에서 평등이나 공공성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자녀 귀하지 않은 부모가 없듯이, 적어도 자기 반 아이들이 귀하지 않은 교사 또한 없다. 자연스럽게 교사와 학부모는 아이들의 삶과 교육을 위한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소중히 가꾸는 일에 집단적 이해관계란 있을 수 없다. 상식과 관습, 문화와 법도에 따라 살아가면서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다면 물론 해결되어야 한다. 세상 그 어떤 문제라도 분명한 개요와 발생과정을 가지게 되므로 이를 해결하는 것에는 반드시 절차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를 판단하고 조절하는 기구를 분명히 두고 있으며 학교에는 학운위라는 법적기구를 설치하여 주체 간 의사소통에 의해 합리적으로 논의하며 바람직한 공동체사회를 만들어가도록 했다.

교육주체 간 문제는 제도화된 기구에서 풀어야

주체 간 분쟁이 발생하면 학운위가 학교분쟁조정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육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주체에 대한 분명한 위상정립이 필요하다. 학부모회와 교사회와 학생회의 법제화가 우선되고 그로부터 민주적으로 선출되는 진정한 대표가 학운위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가 진정한 교육현장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할 것이다. 시설을 비롯한 교육제도의 잘못된 지점을 조속히 해결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도록 학교를 바꿔야 한다. 그동안 사람을 중히 여기지 못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없었던 학교현장에서 빚어지는 아귀다툼 같은 서글픈 현실을 이제라도 함께 풀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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