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1일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주최하고 차별철폐 서울실천단이 주관한 <사회공공성 기획 교육>이 끝났다. 4월13일부터 시작돼 5주 간에 걸쳐 진행된 <사회공공성 기획교육은> 4회의 강연과 한 차례의 실천사업(차별없는 서울 대행진 결합)으로 구성됐는데, 처음 기획 단계에서부터 서울실천단에 결합하고 있는 현장 노동자들의 고민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회 양극화 해소 및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실천 모색을 위해
 

사회양극화 해소 및 공공성 강화. 올해 청와대에서 민주노총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주요 계획으로 제출하지 않은 곳이 없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도 사회공공성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장하고, 노동자다운 실천 과제와 방식을 정선해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서울실천단은 구성 단계에서부터 단위 사업장의 현안을 뛰어넘어 사회적·계급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해 왔고, 그 과정에서 올해 사회공공성 및 빈곤 해소는 주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 한 개인이 현장에서 또는 지역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하지 못 하는 게 현실이다. 총연맹이나 산별연맹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 쟁취’나 ‘사회공공성 강화’를 슬로건으로 하는 집회를 잡으면 거기에 결합하는 것, 단위 사업장 현안을 위한 투쟁에 공공성 요구를 덧붙이는 것…. 사회공공성 투쟁은 여전히 우리에게 ‘일정’과 ‘구호’로 표현되는 것을 뛰어넘지 못 하고 있다.

서울실천단의 고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공공성이라는 범주로 묶여 제출되는 요구나 구호들이 자신의 일상적 활동 과제로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임금과 고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자기 현장에서 공공성이나 양극화 문제를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비정규 문제나 최저임금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같이 집회에 나가자고 하면 ‘우리 문제나 잘 해결하자’고 하거나 아예 피해버려요.”라는 어느 실천단원의 말은, 노동 현장의 정서를 잘 반영한다.

먼저 사회공공성이나 양극화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당장 자신의 이해가 걸려 있지 않다 하더라도 평등하게 잘 사는 것을 위해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먼저 공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하고 사례를 공유하고자 했다.

일선 간부들 힘들게 하는 교육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이런 취지에서 이번 교육사업을 기획했지만, 또 하나 문제는 남았다. “과연 우리 스스로가 이것을 집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감이 처음부터 충분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 노동조합운동에서 교육사업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던가? 상층에서 기획해서 결합 요청하면 수많은 일선의 간부들은 가서 교육을 받는 것도, 현장선전물이나 교육자료 하나 만드는 것도 버거워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의 자신감 부족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물론 사업 규모와 방식에 대한 여러 차례의 논의 끝에 다소 미흡하고 좌충우돌 할지라도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보자는 데 다들 동의했다.
 


참가자들, 자신의 생계비가 어떻게 지출되고 있는지 사례 발표

4월13일에 진행된 1강은 “사업장 담벼락을 넘어 지역으로! 사회로!”라는 제목으로 홍세화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듬고 자기 고용에만 갇히는 운동이 아니라 지역과 호흡하고 사회를 변혁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자 배치한 강연이었다. 홍세화 선생님은 체계적인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통한 의식화 작업 속에서 노동자가 스스로 피지배계급이면서도 자기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것을 깨뜨리기 위한 탈의식화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2강은 “왜 이리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요?”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내 집 마련, 아이들 교육비, 혹시나 아플 때를 대비해서 등등의 이유로 우리 노동자들은 당장 먹고 살 것들 외에도 돈을 모으기 위해 아등바등 산다. 인간적인 삶을 위해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거의 전적으로 개인 부담으로 떠넘겨져 있는 현실 때문이다. 사회공공성이라는 거창한 개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런 문제들을 인식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먼저 사회공공성을 파괴하는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한미FTA에 대해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의 강연을 들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한미FTA를 ‘미국의 압력에 의해 한국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추진하는 것’ 혹은 ‘초단과 구단이 바둑을 두는데 구단이 넉 점 먼저 깔고 싸우는 형국의 한국 대 미국의 다툼’으로 보지 말 것을 주문했다. 오히려 한국과 미국의 자본가집단이 한국과 미국의 민중을 더욱 심각하게 수탈하려는 과정임을 인식해야 함을 몇 가지 사례와 협상 동향들을 소개하면서 설명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참가자들이 자기 집 생계비가 어떻게 지출되고 있는지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생 아이 둘을 둔 어느 노동자가 주거-의료-교육비와 공공요금으로 매달 지출되는 액수가 약 120만원. 무리해서 대출받아 내 집을 마련한 어느 노동자는 대출이자 때문에 약 140만원. “이 돈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면, 혹은 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에 대한 질문에, ‘그 질문 내용 자체가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서 웃음이 난다’는 어느 노동자의 미소가 떠오른다. 아등바등 살아가느라 뭘 하고 싶은지 꿈조차 생각나지 않는 노동자들이지만, 또 다른 삶을 향한 열망이 꿈틀대는 모습을 봤다.

3강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교?”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으며, 빈곤의 실태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함께 본 후 조철순 포이동 철대위원장님의 강연을 들었다. 빈곤의 극단적 형태를 보여주는 포이동 주민들의 이야기는 그저 ‘에이그, 불쌍한 사람들이네’ 하는 연민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4강의 제목은 “우리의 노동이 공공의 적인가요”이었다. 노동자들은 이윤을 위해 사회 진보와 공공성을 배반하는 노동을 끊임없이 강요받는다. 철도공공성을 파괴하는 구조조정과 상업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자본가집단이지만, 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노동자의 손발이다. 자동차공장 노동자들은 라인 유지를 위해 자동차 위주의 교통 및 건설정책에 눈감는다. 물론 이것은 자본의 강요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개별 기업 차원의 고용 유지를 위해 노동자 스스로가 선택하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새 공공의 적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우리 자신의 노동에 칼을 겨누는 투쟁, 지금 이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채 정리되지 않은 문제의식이지만 노동자의 사회공공성 투쟁 사례를 통해 이런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기획된 것이 바로 4강이었다. 노동자의 질병을 계기로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투쟁으로 시작해 여수 지역 환경운동으로 나아간 GS칼텍스(당시 LG정유) 노동자들의 투쟁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철도역사 공공성 투쟁을 전개해 온 철도노동자는, 끊임없이 철도공공성을 외쳐온 철도 현장에서조차 공공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일상적 활동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으며 좌충우돌 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장기요양보장제도 쟁취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사회보험 노동자 또한 자기 노동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사회공공성 투쟁은 소박한 연대와 실천에서부터

이번 기획교육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나누었는지 지금 당장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평소에 접해 보지 못 했던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었다거나, 사회공공성 투쟁을 추상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연대와 실천에서부터 만들어가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몇가지 긍정적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이밖에 포이동 주민들과의 연대, 한미FTA에 대한 좀더 깊이 있는 교육과 토론, 노동자들의 토론 공간을 지속적으로 열어갈 것 등 몇가지를 약속했다.

그리고 서울실천단은 5~6월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에 많은 역량을 집중시키기로 했다. 투쟁 계획을 논의하면서 여전히 이야기한다. “정규직 사업장에서 최저임금 문제에 대한 현장 선전전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갑갑하다.” 그러면서 또 결의한다. 내 사업장 이해관계에 갇혀서 내가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고 해서 연대하지 않는 현실을 뛰어넘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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