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노동정책연구소가 12일 창립 심포지엄을 갖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기관으로 공식 출범했다. 노동계에서 산업 전반을 다루는 첫 연구소란 의미를 갖는다. 연구소의 구호는 “노동자의 산업정책 개입”이다. 개입의 필요성은 대다수가 공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아직 모른다. 의견도 분분하다. 창립 심포지엄을 앞둔 김성희 소장을 11일 만났다. 김 소장은 “개입의 필요성과 현실성의 비어 있는 지점에 다리를 놓겠다”고 했다.

- 어떤 고민에서 산업노동정책연구소를 출범시키는가.
“노동자가 산업영역에 개입하자고 하면 노동시장 영역 안에서 교섭과 협의를 통하는 방식으로는 이미 벌어진 결과에 대한 논의를 할 수밖에 없다. IMF 구조조정 때 다 경험했던 것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해 고용을 해결하자고 고용영역에서 방법을 찾았지만 산업정책에 따라 이미 기업의 투자정책이나 전략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산업정책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노동자의 입장에서 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업정책의 결과물만 갖고는 아무리 열심히 싸우더라도 한계가 있다. 잘해야 문제점을 원래 위치로 되돌리는 수준 정도밖에 안 된다. 이런 한계는 산업적 변화의 흐름이 가속화 되는 앞으로는 점점 더 심해진다. IT산업의 변화가 산업 간에 횡적종적 연계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포착해서 산업별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노동자의 산업정책 개입은 아직 미개척지

- 산업정책 개입의 필요성에 대한 노동계의 공감은 어느 정도인가.
“상당수가 공감하고 있다. 금융정책연구소가 만들어졌고 운수정책연구소도 만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각 산별로 산업정책연구소를 만들려고도 하고 큰 기업별노조에서, 특히 현대차노조가 독자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을 보면 요구는 높다. 일반적인 노동관련 제도에 대해서는 내셔널센터에서 하거나 외부에서 충원하면 되지만 자기 산업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흐름이 강해진 것이다.”

- 그냥 각 산업별 연구소로 가면 되지 않나.
“연구인력이 줄어드는 마당에 개별적으로 구멍가게 차리듯이 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그것이 우리 수준이지만, 특정산업이 아니라 산업 전반을 포괄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러 연구자를 모으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특정 산업과 기업에 해당하는 분야만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작은 각 분야에서 하되 조만간 합쳐져야 한다. 전문분야별로 두세명씩 모이면 전문성이 높을 것 같지만 원래 우리가 분야별로 세분화되어 있지 않다. 연구원도 확보하지 못한다. 그래서는 연구역량이 없는 연구소가 만들어지거나 외부에 의존하는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 기대와 함께 걱정도 있을 것 같은데.
“어려움도 많을 것이고, 한 산업에 주력하는 것에 비해 이도저도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일단은 중점 분야에 집중한다. 현재와 같은 신자유주의 자유시장 체제 하에서는 산업이라는 영역 자체가 없다. 모든 것을 기업에 맡기려 하기 때문이다. 심포지엄 주제를 “노동자의 산업정책 개입은 가능한가”라고 했더니 “불가능하다”고 답하려고 그렇게 잡았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산업정책에 개입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높지만 현실적으로는 개입의 통로나 수단이 줄어드는 흐름이다. 이 지점에 어떻게 다리를 높을 것인가. 이 비어 있는 영역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각오다. 여기서 노동계가 영역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노동의 수단과 기반은 협소해진다. 필요성의 측면뿐 아니라 현실성의 측면에서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세부적인 답을 찾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기대보다는 호기심이나 우려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개척의 필요성이 있으니까 먼저 도전한다는 것이다.”

- 한꺼번에 모든 산업분야를 연구할 수는 없고, 집중할 분야가 있을 것 같다.
“자동차와 궤도, 유통, 제2금융이 연구소의 네 축이고 다른 산업은 부수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할 것이다. 자동차는 연구자도 많고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출발점이었다. 자동차 연구는 이종탁 부소장이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궤도가 또 하나의 축이고, 그동안 제1금융에 비해 정책적으로 소외되었던 제2금융도 관심분야다. 제1금융과 제2금융을 결합시킨 금융문제가 주가 될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유통산업이다. 서비스업이 팽창하는 추세고, 유통산업의 변화의 속도가 빨라져 유통산업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 현실 변화의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것이다.”

- 연구소에는 어떤 분들이 참여하고 있나.
“소장인 저와 자동차 연구를 오래 해온 이종탁 부소장이 있고, 상근연구자들이 자동차, 궤도, 유통에 1명씩 있다. 연구위원들과 현장의 정책위원들은 구성하고 있는 단계다.”

- 연구위원들과 정책위원들은 어떤 그룹들인가.
“연구위원들은 연구소에 이름만 거는 정도의 연구자들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수행하는 소장파 연구자들이 주다.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수료중인 사람들이다. 현장의 정책위원은 현장 활동가들 중심으로 궤도, 사무, 유통 이렇게 구축해 나가는 중이다.” 

"전문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연구소 될 것"

- 연구 성과나 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 생각인가.
“프로젝트 사업이 주가 된다. 연구소를 운영해야 하기도 하고, 개입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발표회를 통해 문제제기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동안 자동차산업에서 모듈화의 영향을 연구하며 문제제기 기능을 수행했는데 그것을 좀더 정착시켜서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입장을 수립하는 데 초점을 두려고 한다. 정부의 금융산업정책에 대한 대안도 시급한 분야다. 궤도산업은 지하철과 철도의 변화를 어떤 식으로 끌고 갈 것인가. 상업성을 어떤 수준에서 제어하고 방어해 공공성을 띠게 할 것인가, 그것이 노동자의 삶과 고용의 안정성과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 정리할 것이다.”

- 프로젝트 사업을 한다고 했는데, 그것만으로 먹고 살 수 있나.
“연구위원과 정책위원이 외곽에 있지만 같이 만들어가는 형태로 해야 한다. 그것이 활동의 기본이기도 하고, 앞으로 재정안정의 기초역할도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신뢰성이 있어야 하고 정책역량을 인정받아야 한다. 연줄이나 특정정파의 입장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재단이나 투자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에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불가피하다. 출발은 비정규노동센터가 가진 약간의 여력을 나누면서 간다. 생계 때문에 기존 연구소로 가는 사람들을 끌어올 수 있는 수준이 목표인데 1년쯤 걸리지 않을까 싶다.”

- 현장 활동가들과는 어떻게 연계가 되는가.
“연구위원들 중심의 연구위원회는 가동되고 있고, 현장 활동가들과 함께 하는 세미나를 시작할 생각이다. 곧 ‘노동과정’ 세미나가 가동된다. 산업별로 네 개 정도의 세미나를 일상적으로 가동할 계획이다. 현장에서 이론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는 부분을 이 연구세미나에서 해결하고 그때그때 심층적인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추가할 예정이다.”

- 비정규센터와는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나.
“연구소가 비정규센터 부설기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독립적으로 운영할 것이다. 지금은 초기니까 홈페이지나 기반을 같이 활용하고 상호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을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비정규센터가 산업정책과 노동정책 관련된 것을 다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앞으로 비정규센터는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집약적인 대응과 연대사업 중심으로 간다. 정책도 비정규직 문제에 특화된다. 비정규직 문제도 지금과 같은 입법과 제도를 둘러싼 총론적인 국면이 지나고 나면 세부적인 해법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가 대두될 것이다. 그때는 산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산업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산업문제를 이야기 하는데 노동시장 비정규직 문제가 필요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 하는데 산업이 빠질 수 없는 그런 관계다.”

- 마지막으로, 어떤 연구소를 지향하는가.
“시작부터 특정 목적의식에 따라 슬로건을 정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영역에 초석을 만든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동의 대안을 추구하는데 산업영역의 연구가 필수적이고, 산업정책에 핵심적인 개입수단이 될 것이다. 조직의 최고는 작지만 알찬 조직이다. 전문적인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계가 다루는 분야에서 여기와 이야기 하지 않고는 말이 안 될 정도의 신망을 얻는 조직이 되겠다. 그러면서 현장과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만드는데 가속을 붙여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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