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한 민주노동당 경기도지사 후보와 인터뷰는 ‘평택’과 ‘대추리’ 이야기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90년부터, 주한미군기지의 평택이전 반대투쟁을 주도해 온 인물이다. 평택은 진보정치인 김용한의 기반이며, 그는 왕왕 ‘평택은 제2의 고향’이라고 말을 하곤한다. 그런 평택은 지금 ‘전쟁터’가 돼 있다. 13일 김 후보와 인터뷰를 하기 직전에 그의 일정은, 주한미군기지 평택이전 반대 촛불집회였다.

"대추초등학교는 공개처형 당했다"

“노무현 정부가 군대까지 동원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햇다. 공개처형은 가장 악랄한 방식이다. 특히 무죄인 사람을 공개처형 하면 엄청난 공분을 일으킨다. 대추초등학교는 공개처형을 당했다. 초등학교는 무죄였다. 주민들이 쌀 보태고 보리 보태고, 노동력 제공해서 만든 학교다. 그런 대추초등학교를 보란 듯이 포크레인으로 부수어 버렸다. 마치, ‘나한테 까불면 이렇게 된다’는 협박처럼.”

그는 1990년대 주한미군 재편 문제를 두고, 진보진영에서도 미쳐 고민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제기한 당사자이다. “주한미군이 서울에 있으면 민족의 수치고 지방에 있으면 민족의 자랑이냐.” 이 논리를 처음 꺼낸 사람이 김용한 후보다. 이 논리는 민주노동당 강령에 있던 ‘주한미군의 감군 및 후방 재배치’를 ‘단계적 철수’로 개정한 2005년 2월 당대회의 결정의 배경이 됐다.

이 덕분인지 13일 평택미군지기 이전 반대 집회에서 민주노동당 김종철 서울시장 후보는 이렇게 연설을 했다. “서울 시민이, 용산 시민이 편하자고, 그 부담을 지역에, 평택에 미루는 것이 맞는 말이냐. 이건 몇표 더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김용한 후보는 평화운동 진영에서 손꼽히는 동북아 평화와 주둔군 지휘협정(SOFA) 문제의 전문가이다.

"서울은 안 돼도 지방은 된다?"

“간단한 문제다. 평택으로 미군기지가 옮겨오면, 미군은 전쟁 부담이 적어진다. 그들이 말하는 ‘적국’의 반격으로 인한 희생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쟁 가능성이, 한반도의 군사 위협이 높아지는 것이다. 평택에 올 그 미군은 ‘동북아 기동대’ 역할을 할 것이다. 왜, 한국정부가 국민에게 위협이 될 일에, 이전비용까지 줘 가면서, 자국의 경찰과 군대로 자국민을 폭행하고, 쫓아내면서 나서야 하는 것인가.”

이어진 그의 말이다. “국가는 평택 미군기지 주변 주민들에게 해 준 것이 없다. 도로가 파손돼도 주민들이 고쳤고, 낙엽이 떨어져도 주민들이 쓸었다. 장마철에 길이라도 떠내려가면 주민들이 삽들고 나섰다. 평택 그 땅의 바다를 막을 때도, 정부는 도와준 것이 없다. 자식의 목숨을 버려가면서 땅을 만들었더니, 국가가 한 것이라곤, 땅 등기내주고 돈 받아간 것 밖에 없다. 일본군이 와서 주민 쫓아냈고, 미군이 온다고 또 쫓겨나고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위 대한민국 전체의 ‘안보’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해야 하나? 설령 기지이전이 안보의 도움이 된다고 해도, 단 한명의 인권과 생존권이라도 희생해야 한다면, 그건 안보가 아니다.”

만약 김 후보가 경기도지사 후보가 아니었다면, 평택 대추리에서 그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을 뛰어다니면서, 한켠 마음 무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방송토론, 현장 투쟁과 유세다. 이 문제를 방송토론에서 거론하며 이슈화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주 가보지 못해 대추리 주민들께 죄송한 마음도 있다. 다른 방법이 없다. 전국 이슈화를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는. 한편 죄송하고, 한편 열심히 뛰고 있다.”


"국가는 그들에게 횡포만 부렸다"

이 즈음에서 경기도지사 선거의 쟁점으로 이야기를 옮겼다. 경기도는 서울과 인천을 말굽처럼 감싸고 있다. 경기 남부에서 북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서울을 통과하는 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수도권 규제에 묶여 있고, 북부 지역의 경우는 여기에 더해 군사시설에 묶여 있다.

그런 만큼 진대제 열린우리당 후보와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의 공약은 규제완화에 맞춰져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덜 개발된 지역인 북부지역에 대한 개발공약이 집중돼 있다. 그러나 김용한 후보의 공약에는 개발공약이 드물다.

“우선 수도권이라는 말을 인정할 수 없다. 내가 경기도에 인구도 더 많고 면적도 더 넓으니, ‘서울은 경기권’이라고 말하면 서울사람들이 기분 좋겠는가. 앞으로 서울 경기라고 불러달라.”

이어진 말. “경기 북부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물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경기도를 남북으로 가르자는 ‘경기북도론’에는 반대한다. 손학규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북부 지방의 세수는 경기도 전체의 20% 미만이고, 전체 세출의 32%를 북부 지역을 위해 썼다. 나누면 북부 지역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북부 지역 개발의 핵심은, 그곳의 원주민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부의 농업지대는 농민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가꿔야 한다. 원주민을 몰아내는 개발이 되선 안 된다. 농민이 농지를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막는 게 민주노동당의 역할이다.”

"군 기지 옆에 집 지으면 왜 안 되나"

그는 수도권 규제를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론이며, 현실적으로 필요한 규제라는 것이다. 반면 ‘군사시설 규제’와 관련해선 규제 무용론을 제기할 만큼 과격하다.

“모든 군사보호구역을 없애야 한다. 기지 부근의 넓은 땅을 묶어 두고 있는 것이 문제다. 군사기지 철조망 옆에 집을 짓고 산다고 해서 뭐가 문제가 되냐. 있는 군사기지는 축소하고, 합쳐야 한다. 기본적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방향으로 조정해 가야 한다.”

미군 공여지 문제와 관련해서 그는 약간은 생경한 주장을 했다. “미군 공여지역 해제 이후 개발과 관련한 특별법이 내년부터 발효된다. 내가 지역운동을 하면서 그 법의 초안을 썼다. 그런데, 초안에서 주장한 것을 정부와 국회가 엉뚱한 법으로 변질시켰다. 공여지 개발은 민간기업이 개발이익을 챙기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 그곳 주민들이 수십년 동안 받아온 고통에 대한 보상에 집중해야 한다. 동두천, 송탄, 의정부, 군산 등 이른바 ‘기지촌’ 주민들은 수십년 동안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왔다. 결혼한 정년기의 여성들은 고향을 숨기며 살아야 할 만큼 나쁜 인식에 시달려왔다. 이른바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당해온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다. 공단과 병원, 대학과 문화시설, 도서관과 박물관 국가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손가락질 받은 사람들이 이제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

"설움만큼 특혜 줘야 한다"

그와 경쟁하고 있는 김문수 후보는 90년대 초반 진보정당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1994년 그는 진보정당을 떠나 신한국당으로 갔다. 김용한 후보는 1997년 국민승리21 시절부터 진보정당 운동을 벌여왔다. 먼저 하다 ‘될 일이 아니라’며 보수정당에서 3선 국회의원을 하고, 이제 도지사 후보로 나온 김문수 후보. 그에 대항하며, ‘진보정당이 희망’이라며 후보로 나선 김용한 후보. 김 후보는 1995년에 있었던 한 일화를 소개했다.

“내가 평택에서 에바다 투쟁을 한창 하던 시기였다. 알고 지내던 선배한테 한번 보자고 연락이 왔다.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둔 였다. 선배를 만나러 갔더니 당시 신한국당 사람하고 함께 있더라. 당시 그 선배가 했던 말이, ‘평택시장 후보로 널 영입하려고 한다. 선거비용 1억3천만원을 당에서 제공하겠다. 네가 승낙한다면, 이 자리에서 현금 3천만원을 줄테니 준비를 해라’. 나는 당시에 ‘신한국당은 사라져야 할 정당으로 본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신한국당에는 김문수나 이재오(현 한나라당 원내대표, 민중당 사무총장 출신)처럼 더 과격한 운동권도 있다’고 하더라.”

이어진 말이다. “그때 알았다. 사람들이 ‘변절’할 때, 이런 식으로 변절을 하게 되는 구나. 그때 거론됐던 사람과 경쟁후보로 마주친 셈이다. 내가 더 좋은 정치를 할 자신이 있다. 내가 이길 수 있게 하겠다.”

그에게 김문수 후보를 평해달라고 하니, 거칠고 박한 평가가 돌아왔다. “김문수 후보는 박쥐같은 사람이다. 재벌과 서민 사이를 오간다. 평소에는 서민인 척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재벌 쪽으로 간다. 아직 세상이 어두워서 여러 박쥐들이 활개치고 다진다. 민주노동당이 태양이 돼 박쥐들을 어서 동굴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어진 진대제 후보에 대한 평이다. “진대체 후보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빼앗고 있는 삼성의 경영자 출신이다. 나는 그 집단을 범죄집단으로 본다. 진 후보는 범죄집단의 경영자가 후보로 나선 것이다.”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아픈 사람이다"

그는 경기도지사의 역할, 좀더 넓게는 정치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환자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정치인, 도지사는 그들이 도와줘야 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재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가. 아니다. 이미 몇세대가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 만큼 부를 축적한 집단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는 그런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고, 돈을 더 벌게 도와줬다. 10 대 90의 사회에서 10만을 위한 정치를 끝내야 한다.”

이어진 말이다. “민주노동당은 의사가 필요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건 사람에게 투자하면 되는 일이다. 건물이나 도로에 돈을 낭비하지 말고, 사람을 위해 돈을 써야 한다. 도청에 비정규직부터 없애고, 사회복지 공무원과 교육 공무원을 확대해야 한다. 장애인 활동 보조인을 채용하고, 그렇게 일자리를 더 만들어야 한다.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선거 때 도와준 사람들에게 준 공공사업을 다시 직영으로 회수하고, 좀더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게 노력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경기도지사 당선 예정자?"

김용한 후보는 인터뷰 내내, 가벼운 농담들을 쏟아냈다. 그는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하면, “미스터 민주노동당 김용한입니다”라고 소개하곤 했다. 도지사 후보 블로그에는 “경기도지사 당선 예정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입담 좋기로 유명한데, 2000년 매향리 사격장 투쟁을 하다가 법정에 서서 진술을 할 때, “여기 온 사람들은 (사격장 주변에서 시달려서) 귀먹은 노인들이 많다. 큰 소리로 말하라”고 판사와 검사에게 말한 것은 두고 두고 회자되는 말이다.

몇차례 이어진 방송 토론에서도 그는 유머를 많이 쓰곤 한다. 그래서 ‘실없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인지도가 높지 않은데, 처음 보는 유권자가 좀 허황된 사람으로 보지 않겠냐’고 묻자 그는 잠시 정색을 하고 말했다.

“중앙당에서 크게 잘못한 것이 있는데, ‘300명 당선자, 300명 공직자’가 목표라고 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후보는 800명 가까이 선거에 나섰다. 이들을 다 당선시킬 목표를 잡아야 한다. 허황된가? 그럼 300명 당선 주장은 솔직한 것인가?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유권자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다. 우리가 다가서면 우리를 지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 노선과 유권자에 판단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뛰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감도 생긴다. 짧은 기간이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유권자와 우리 노선에 대한 믿음부터"

인터뷰를 마칠 즈음, 기자는 6월1일부터 뭘 할 것인지를 물었다. 지역 현장에서 구상하고 있는 사업이 궁금해서 물은 것이다. 그런데 그는 “도지사 일정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날부터는 출근해야죠”라고 답했다. 기분 좋게 웃고 헤어졌다. '김용한식' 유머든, 진보정치인의 자신감이든, 정말 기분 좋게 웃었다.


1990년 박위논문을 쓰기 위해 평택에 내려와 있던 그는, 정부가 미군기지 평택 이전 방침을 결정한 이후부터, 이전 반대투쟁에 나섰다. 그후로 16년. 그는 SOFA 전문가가 됐고, 매향리 사격장 투쟁을 참여했고, 한미 군사동맹 체제와 싸워왔다. 더해서 지역 사회복지 시설의 비리·파행 운영 문제였던 에바다 투쟁을 이끌어왔다. 주한미군과 관련된 수많은 투쟁, 평택에서 벌어진 수많은 지역싸움 중 그가 관여하지 않은 싸움은 적다.


그는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통해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운동하는 방식도 약간 다르다.


평택의 경우 기존 미군기지를 기반으로 벌이를 하는 사람들과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명확한 도시다. 평택에 외국군 시설은 도시의 일부이며, 그를 적대시 하는 사람과 주둔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도 첨예한 도시다. 김용한 후보는 양쪽 진영과 다 관계를 잘 맺고 지역 운동을 해 왔다. “열심히 양쪽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갈등 없이 서로 도울 부분이 생긴다”는 게 그의 지론.


더해서 그는 2000년 매향리 투쟁으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은 것을 제외하면 검경과 인연을 맺은 적이 없다. 항상 부딪치고 싸워온 지역활동가들의 이력 치고는 특이한 부분이다. “나는 큰 싸움을 질기게 해야 될 사람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법, 집시법 같은 법은 잘 지키고 산다. 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미군기지 담이라도 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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