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일 밤, 5·31 지방선거 첫번째 TV 토론이 있었다. 김종철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본부는 김 후보에게 ‘배트를 짧게 잡고 치라’고 주문했다. 첫 토론인 만큼 장타나 홈런을 노리기보다 우선 단타를 노리라는 주문이었다. 첫 TV 토론에서 김종철 후보는 경쾌한 중거리 안타를 쳤다. 지난 2004년 4·15 총선 때 ‘얼짱 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솜씨는 어디 가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노동당이 단타만 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맥들이 놓여 있다.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후보와 한나라당의 오세훈 후보. 대중적이며 깨끗한 이미지의 양 보수정당 후보들과의 경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어떤 활로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지방선거의 대표 얼굴로서, 진보정당의 존재와 효용을 알릴 수 있을까. 김종철 후보에게 들었다. 인터뷰는 4일 오후,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선거대책본부에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강금실, 이상한 옷을 만들고 있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김종철 후보는 전날 있었던 서울시장 후보들의 TV토론 이야기를 풀어놨다. 주제는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였다.

“(강금실 선본의) 정책을 짜는 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백 사람이 정책을 연구하면, 그 중 꼭 공약에 넣어야 할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다 공약에 넣을 수 없다. 강 후보의 공약을 보면, 이거 하려고 하니 저기서 충돌하고, 저걸 하려고 하니 한쪽은 허황되게 되는 꼴이다. 옷을 만들면서 팔 부분에 엉뚱하게 레이스가 들어가는가 하면, 팔과 몸통을 지퍼로 연결하는 모양새다. 해괴한 옷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사실 3일 첫 토론회는 오세훈의 '선방', 김종철의 '각인', 강금실의 '헛발'로 정리될 수 있을 만큼 후보 간 득실이 명확했다. 이는 (4일 동아일보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50.2%에 달하는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과 32.2%에 머물고 있는 강금실 후보의 지지율을 반영한 것이다. ‘부자 몸조심’에 나선 오 후보는 여유를 갖고 실수 없이 토론을 진행했지만, 강금실 후보의 급한 마음은 토론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반면, 4.5%에 머물고 있던 김종철 후보의 경우 ‘예의’ 솜씨를 발휘해, 자신을 인식시킬 발판을 잡았다. 3일 밤 TV 토론의 시청율은 11%를 넘겼다.

“서울시 예산이 16조다. 이 중 절반은 각 구청으로 교부하는 예산이다. 8조 가운데 경상경비 빼고 나면, 사업경비를 많이 쓸 수 없다. 그런데 강금실 후보는 교육예산으로 5천억을 공언했다. 물론 되면 좋은 일이지만…. 강 후보가 말한 영어마을의 경우도, 한 구당 이걸 만들기 위해선 300억이 든다. 서울시가 150억, 각 구청이 150억 들여서 만든다고 하는데, 중랑구의 경우 1년에 교육 예산으로 5억밖에 못 썼다. 30년 동안 영어마을에만 투자하라는 소린가. 강 후보가 다 이해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예산 문제에 판단기준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겠다는 식이다.”

신선한 이미지 상쇄? 이제 옥석을 가릴 차례

이 즈음에서 김 후보는 “남 걱정 그만하자”며 말을 돌렸다. 기자가 준비한 첫 질문은 이것이다. 젊고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 이게 부각될 선거지형도 아니고,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이 이미지가 중요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후보들 가운데 누가 ‘진보적’ 인물인지 유권자로 하여금 구분하도록 하는 게 포인트일 텐데, 이것도 좀처럼 쉽지 않다. 김종철 후보의 경우 선거전략을 만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세훈 전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가 됐을 때, 올 것이 왔고, 잘됐다 싶었다. 어제 TV토론을 볼때, 혹시 내가 나이가 어려서 ‘콤플렉스’를 느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나? 그렇지 않다. 오세훈 후보나 나나 (나이 차가 10살 가까이 나지만) 비슷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나아진 측면이 있다. 역설적으로 모두가 개혁적으로 보이고, 그 이미지는 이미 잠식된 것이다. 3명 다 개혁적이라면 누가 더 일관성 있게 개혁을 말하는지, 누가 진짜 개혁인지를 유권자는 판단하려 할 것이다. 온화한 이미지로 반서민적 정책을 끌고 가는 것을 보여주면 될 일이다. 당장은 오세훈 후보의 등장 이후 내 지지율이 떨어진 것도 맞다. 하지만 곧 동등한 입장에서 싸울 수 있다.”

김종철 후보가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호감가는 인물과 ‘정평난’ 미디어 감각과 언술로 민주노동당의 ‘대표 얼굴’ 노릇을 해 달라는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4월말, 진보정치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장 선거전은 더 어려울 것으로 분석돼 있다.

민주노동당 지지층 중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을 사람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전국 평균이나, 타 지역 평균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이다. 이 지표는 민주노동당의 정강정책과 대중을 연결해 줄 ‘인물매개’가 약한 것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강금실·오세훈 후보의 바람’에 당 지지층이 쏠려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는 것이다. 양 바람 사이 김종철 후보는 ‘단타’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을 안고 있었다.

“단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큰 그림 그리는 중”

“단타로 해결 안 될 것으로 나도 보고 있다. 나도 걱정이다. 큰 것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오세훈 후보를 누가 속 시원히 공격하고, 따라잡을 수 있나, 이것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 ‘강금실로는 안 된다는'는 것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럼 ‘김종철로는 되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이미 주자들은 나가 있다. 9회말도 다가오고 있다. 이제 홈런 칠 준비를 해야 한다.”

정당 지지율이 큰 폭으로 오르는 경우 가운데 하나가 내부 쇄신에 성공할 때다. 민주노동당의 지난 2년간의 정치활동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30대 중반, 당의 유력 차세대 주자군의 일원으로서, ‘어떤 진보정당’이 필요한지 제시하는 것도 그의 임무 중 하나다.

“딜레마다. 당을 비판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누구나 생각하는 수준으로 ‘당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뭘 잘못했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자괴하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 나는 당이 잘못한 부분이 보다 급진적이 못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말만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좀더 당의 강령에 맞는 활동을 펼쳤어야 했다. ‘격동과 단절’을 스스로 두려워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공약이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밝힌) 공공의료, 공공교육은 명확한 가치지향과 수단을 밝힌 것이다. 의사들에게 공공주치의 역할을 요구했다. 이런 건 파문이 되는 것이다. 어느 의료전문뉴스를 보니, 공공 주치의 해야 한다고 하고, 공공의료로 재편해야 한다고 하니, ‘개업 때 해 준 것 없는 놈이 설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더라. 반발이 없으면, 반향도 지지도 없다. 어려워도 그렇게 가야 한다.”

“민주노동당, 격동과 단절을 두려워했다”

이어진 김 후보의 말이다. “이게 (당 쇄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선거전에 하면서 하려 하니까 참 어렵다.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당의 혁신을 말하기가 참 어렵다. 이 문제에 나와 선본은 딜레마가 있다. 처음에 내가 ‘민주적 사회주의’를 꺼냈을 때, ‘감표요인이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식의 반응이 나왔다. 일선 당원은 긍정적이라고 보는데, 당 간부층은 무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내가 좀 파격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의 혁신방안의 일반적 방향은 지금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어렵더라도, 공공의료, 교육과 일가구 일주택 법제화 등을 이야기 하며 한발 한발 가야 한다.”

이 즈음에서 이야기를 좀 돌렸다. 그는 20대 중후반 IT업체에서 4년간 일했다. 과다한 업무에 일상적 피로감, 피로를 술로 풀어내는 생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도시에 사는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느끼는 일상의 고단함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시장후보로 나온 그에게 약간은 ‘생뚱 맞은’ 질문을 했다. 도대체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사실 각자가 찾을 몫도 크다.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주말에서, 누군가는 다른 취미를 통해, 누군가는 나눔의 활동을 통해 행복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이 ‘생존’하는 데 모아져 있다. 이런 속에서 행복하기 어렵다. 생존과 불평등, 이걸 해결하지 않고는 ‘행복’을 이루기 어렵다.”

“생존과 불평등 해결 없이 서울시민의 행복도 없다”

김 후보는 ‘서민행복특별시’를 그가 추구하는 서울의 ‘모습’으로 제시했다. 그가 내세운 공약이 다른 후보들의 공약과 두드러지게 차별성을 보이는 부분은, ‘개발공약’이 드물다는 점이다. 용산 16만호 아파트 건설, 서울시청 이전 등이 강금실 후보의 대표공약이고, 뉴타운 건설이 강남북 격차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제시한 오세훈 후보의 주장을 고려할 때, 공공주치의제, 공공임대주택쿼터제, 보육아동의 1/2 국공립 보육시설 담당 등 김종철 후보의 공약은 ‘경기부양’, ‘지역개발’과는 확실한 거리가 있다.

“‘개발서울’이냐, ‘복지서울’이냐, 이 차이다. 그리고 자본의 입장이냐, 노동의 입장이냐에서 갈린다. 노동을 자본의 귀속물로 보고, 자본이 살기 좋은 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모두에게 좋은 나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시작부터 다른 공약들이다.”

하지만 선거전에서 개발논리가 발휘하는 힘이 크다는 것은 주지된 사실.

“사람들은 진보정당이 집권했을 때, 힘이 강할 때의 해택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집권하지 못하면 한해에 대학 등록금 200만원 더 내고, 임대주택에서 쫓겨날지도 모를 상황이라면 다를 것이다. 선거는 으레 반짝 경기를 기대하는 식으로 치러져 왔다. 사람들이 뉴타운에 관심이 있다고는 하지만, 당장 뉴타운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내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다. 이것들을 다 설명하고 설득한 공간과 지지율을 현재 가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는 주제들을 찾아 한발 한발 파문을 만들어가야 한다.”

“비정규직 남용하면, 서울시가 입찰 배제해야”

그는 또한 ‘고용불안 없는 서울’을 제시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서울에 많은 기업들이 있다. 이 기업들의 비정규직 남용과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서울시가 정책의지를 가지고 막겠다. 일단 서울시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고, 서울시와 관계를 맺는 모든 기업에게 비정규직을 줄이고, 여성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을 고용하며, 노동조건을 좋게 만들 것을 요구하겠다. 이를 통해 입찰의 참여할 기준을 만들고, 잘하는 기업은 인센티브를 주겠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제시한 공약 중 서울시장 권한 밖에 있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자칫 허황된 공약으로 비춰질 우려도 있다.

“권한 밖에 있는 공약이 있는 것은 맞다. 특히 교육분야에선 서울시보다는 중앙정부, 서울시 교육감이 담당하는 영역의 문제를 많이 지적했다. 그렇지만 시장의 권한 밖의 문제라고 손을 놓아야 하나. 김종철이 당선될 정도라면, 대중적 열망이 크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으로 다가올 대선에서 다른 정당의 후보들을 압박해 가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일가구 일주택의 법제화다. 여론화를 위해서도 (이런 공약들은) 필요하다.”

“‘당연한 것’은 당연하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민주노동당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받은 표는 100만표에 못 미친다. 그러나 당시 권영길 후보의 출마는 당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2004년 총선에서 13.1%의 정당득표는 거의 집권여당의 과반의석 확보만큼이나 큰 뉴스였다. 2005년 10·26 재선거에서 울산북구 수성 실패는 진보정치의 위기를 자각하는 계기였다. 그렇다면, 5·31 지방선거에 나서는 ‘대표얼굴’은 이번 지방선거가 어떤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을까.

“서울시가 사람들의 기본권 즉, 주택, 의료, 교육 등을 기본을 책임지는 것을 당연하며, 꼭 해야 할 일로 서울시민들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였으면 좋겠다. 마치 부유세가 초반에 과격한 것으로 보였다가 ‘좋은 것’으로 변한 것처럼. 서울시가 해줘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받아내기 위해 투기꾼들과 전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좋은 것은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이길 바란다.”

기자의 마지막 질문은 상대 후보들에 대한 총평 부탁이었다. 김 후보의 강금실 후보에 대해 한 총평은 이것이다. “자유롭고 틀에 매이지 않는 반면 중심도 없다. 서울에 자신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서울을 맞췄다. 계몽적 시장후보다.”

오세훈 후보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부드럽고 겸손하나, 보수적이다. 생각이 옛것이며, 서민의 삶에 대한 대안이 없다.”

같은 식으로 김 후보 자신을 평가해 달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그는 아직 ‘실적주’가 아닌 ‘기대주’이며, 의욕이 넘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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