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이 금융권의 현안으로 부각되기 시작하고 있는 가운데, 공청회 일정이 마련되는 등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노동계 역시 사무금융연맹과 증권산업노조를 중심으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의 올해 9월 정기국회 상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4차례에 걸친 공청회를 지난달 26일부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증권노조가 재수정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증권노조 강종면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26일 열린 공청회에서 우리의 요구 사항 중 투자자 보호와 관련된 사법적 제재조치만 관심 있게 담아내고 있다”면서 “각종 규제 완화는 투기자본의 진입을 쉽게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규제 강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증권노조는 향후 재경부와 교섭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한편, 노사정 교섭틀을 만들어 사회적 의제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강 위원장은 “자통법은 금융공공성의 성격을 담아내는지 여부가 초점”이라며 “공시제도 완화 등 일련의 규제완화 조치와 더불어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미국의 금융 침략의 모멘텀으로 자통법이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금융공공성을 지켜내는 것은 더욱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자통법의 내용 가운데 새로 도입되는 판매권유자제도는 금융산업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양산으로 이어지게 돼, 이를 막기 위해 이 부분은 전면 백지화에 나선다는 게 증권노조의 입장이다. 이와 관련, 정부가 대형화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자본이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고용불안에 노동자가 직면할 것이지만, 증권노동자 저변에는 대형 금융투자회사를 만들어 은행과 대등하게 가야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증권사 노조간부 출신으로 올 3월 사무금융연맹 금융정책국장을 맡고 있는 이한진 국장으로부터 몇가지 쟁점을 짚어봤다. 이 국장은 “자통법이 시행되면 일부 재벌 자본이 자본시장에 유입될 것”이라며 “이는 외국투기자본이나 재벌자본이 소유한 대형 금융투자회사가 국내 자본시장의 독점적 시장체제를 구축하기 때문에 국민경제 전반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자통법이 담고 있는 판매권유자제도의 도입은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 후 투자상담사로 재고용하는 일상적인 증권노동자 퇴출 프로그램이 정착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며, 대규모의 인력감축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현재 진행 중인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자통법은 국내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공동요구
자본시장 '돈 놓고 돈 먹기' 가속화


- 자통법의 도입배경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국내 자본시장 참가자들이 경영의 효율성을 앞세워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내부적 요구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한미FTA의 연장선상에서 초국적 자본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핵심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는 국적을 불문하고 대자본의 일관된 요구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 정부 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예상되는 변화는 무엇인가.
“정부가 생각하는 바 그대로 금융산업 내 '빅뱅'이 일어날 것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 조건이 대형화이기 때문에 범위의 경제 달성을 위한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사 간의 합병은 물론이고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한 증권사간 합병도 무차별하게 일어날 것이다. 금융상품의 범위가 기존의 열거주의(Positive System)에서 포괄주의로 바뀜에 따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신종 금융상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 외형적 변화 외에 다른 변화는.
“사실 이러한 외형적 변화는 중요하지 않다. 재경부안 그대로 자통법이 통과됐을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외국의 투기자본은 물론이고 산업자본 특히 일부 재벌자본이 자통법 시행과정에서 급속히 금융투자회사로 유입될 것이란 점에 있다. 겸업화에 따른 대형화는 물론이고, 은행이 독점적으로 수행하던 지급결제기능의 부여, 금융상품의 포괄주의나 펀드운용의 규제 완화 등은 금융투자회사를 먹기 좋은 떡으로 포장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국 IMF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 금융시장이 외국의 초국적 자본들의 독점적 놀이터였다면 이제 일부 국내 재벌들도 이에 가세하게 되었을 뿐이다.”

-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 은행업에 대해서는 산업자본의 출자총액이 규정돼 금산분리의 원칙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향후 재벌자본이 자본시장을 통해 은행 이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은행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자통법은 금산분리를 통해 금융과 실물 간의 건강한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함으로서 경제 전반의 균형발전이나 금융자산의 효율적 재분배라는 금융시장의 본질적 기능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선결적 과제를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투기자본이나 재벌자본이 소유한 대형금융투자회사가 국내 자본시장의 독점적 시장체제를 구축할 경우 국민경제 전반을 위협하는 폭풍의 눈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자통법 도입되면 금융 공공성은 해체
특수고용노동자 양산할 판매권유자제도


- 법안 통과 시 먹이사슬 구조는 어떻게 변화될 것으로 보는가.
“IMF 이후 은행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났던 먹이사슬 구조가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먹이사슬의 가장 상층을 구성했던 외국자본에 일부 국내 재벌자본이 끼어들 뿐이다. 물론 금융상품 개발 및 관리의 풍부한 노하우는 물론 금융상품 관련 전문인력을 풍부하게 보유한 외국의 초국적 자본이 가장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금융기관 간 지속적인 인수합병과정에서 많은 중소형 증권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으로, 그 모든 책임과 결과는 증권노동자들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무분별한 시장 개방을 통해 주주와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초국적 자본의 전횡에 대한 결과를 보라. 구조조정이라는 허울 아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국민경제 차원의 국민적 요구는 무시된 채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명목으로 초국적 투기자본들만의 배만 불려왔지 않은가? 선진경영기법의 도입 결과 서민들은 정체불명의 각종 수수료를 물어야 했고, 중소기업은 사채시장을 전전해야만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의 이면에는 바로 무분별한 시장개방이라는 주요 원인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산 교훈을 자통법 제정과정에서 효과적으로 담아내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자통법은 대자본의 잔치상에 푸짐한 음식거리를 제공해주는 역할만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나.
“자통법의 기본기조는 개방과 경쟁이다. 말 그대로 시장원리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이다. 시장원리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금융자산을 생산적 투자와 서민경제에 재분배하는 금융의 공공성을 포기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수익성을 볼모로 노동자의 생존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더구나 자통법이 담고 있는 판매권유자제도의 도입은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 후 투자상담사로 재고용하는 일상적 증권노동자 퇴출 프로그램을 더욱 심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즉 구조조정을 빌미로 대규모의 인력감축이 예상됨은 물론이고, 이미 상당부분 진행 중인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 노동자 외에 일반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있을텐데.
“노동자의 생존권 외에 투자자 보호 문제도 심각한 부분이다. 자본시장의 존립 자체가 투자가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국민들의 자본시장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도 따지고 보면 이해상충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결과에서 기인한다.
겸업화와 더불어 금융상품 열거주의 및 펀드운용에 대한 각종 규제의 철폐는 작금의 현실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이해상충 발생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역사 및 이해상충 규제가 우리보다 앞서 있는 미국의 엔론(Enron)사 회계부정 사례만 봐도 대형투자회사의 조사분석, 투자은행업 등에서의 왜곡 및 부정 사례로 투자자들의 피해는 물론 증권산업의 신뢰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자통법상의 이해상충 방지체제는 최소한의 기본적 장치에 불과하다. 자통법의 주요 모델인 미국에서조차 우리 정부안보다 더욱 엄격한 장치인 집단소송제나 징벌적손해배상제 등을 가지고 시장을 규제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겸업화 등 규제완화에 대응할 길은
"투자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개입해야"

- 자통법에 긍정적인 내용도 있다고 보나.
“자본시장 내 관련 법률을 통합하고 금융업무를 기능별로 재분류하여 동일한 금융업에 대하여 동일한 규율과 투자자 보호 법제를 적용하겠다는 통합법의 기본방향은 적절하다고 본다. 현행 자본시장 관련 법령체제는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규율하는 기관별 규율체제로 각 금융회사별(증권사, 선물사, 자산운용사 등)로 각기 다른 법률이 존재한다. 이 안에서 해당기관이 영위할 수 있는 금융업무를 열거하고 있어 동일한 금융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됨에 따라 발생하는 규제차익이나, 파생상품거래 및 비정형간접투자 등 현재 법제화가 되지 못해 나타나는 투자자 보호의 공백을 방지하는 등 소기의 필요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융투자상품의 포괄주의 전환 또한 수수료 수익에 의존하는 업계의 현실상 필요성이 인정된다. 여기에 모든 경제 현상이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으로 규정됨으로써 다양한 경제위험에 대한 '헤지'(hedge, 위험요소 분산 또는 방지)가 가능해진다는 장점 또한 가진다. 지급결제 기능의 부여도 금융산업 간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소기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본다.”

- 자통법 제정 시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문제는 전체 금융시스템의 균형 발전을 위해 자본시장 규제체제를 정비하겠다는 목표가 어설픈 금융허브 구축 논리나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탄생시키겠다는 장밋빛 환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시각이나 수요기반 자체가 극히 부족한 상태에서 급진적인 시장 변화는 은행업에 이어 자본시장과 보험시장마저 초국적 투기자본의 잔치판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통법은 철저한 준비는 물론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사전적 방지시스템을 사전에 구축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점진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수십년간 각종 규제의 틀 속에서 살아온 국내 자본시장 참가자들이 급격한 환경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 앞으로 증권노조가 중점적으로 대응할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겸업허용을 통한 대형화, 이를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단순논리는 환상에 불과하다. 국내 5대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 규모는 1조5천억억원대인데 비해, 세계 3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의 평균은 28조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겸업화를 통한 대형화로 외국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규모의 경제 실현을 바란다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증권업과 자산운용업을 동일 몸체에서 운영한다는 것은 심각한 이해상충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자통법의 실질적인 벤치마킹 대상인 미국에서도 동일 몸체에서 자산운용업과 증권업을 겸업하는 사례가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초국적 투기자본의 폐해나 일부 산업자본의 독점적 금융지배라는 예상된 문제에 대한 사전적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금융산업의 역할 및 위상은 경제의 동맥과 같은 것으로 생산적 투자와 서민경제로의 재분배라는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인프라인 금융산업 특히 자통법의 적용을 받는 투자금융회사에 대한 지배구조 문제는 경제의 성장동력과 위기 대응력 유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자통법 제정과 함께 금융투자회사의 바람직한 소유구조에 대한 고민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