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노조(위원장 강종면)가 금융공공성을 제기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간 은행권에서 주로 제기한 공공성의 문제를 증권노조가 제기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그만큼 노무현 정부의 반공공적 금융정책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음을 증권노동자의 문제제기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강종면 위원장의 대답을 들어보면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진다. “증권노동자도 노동자다. 자본주의의 꽃다운 첨단자본으로부터 어느 업종보다도 더욱 탄압받는 노동자다. 따라서 역으로 증권노동자들이 금융 공공성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한다.” 강 위원장의 역설이다.

강 위원장은 또한 증권노동자의 노동강도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는 “증권시장은 개별 노동자들의 경쟁구도를 통해 노동자를 쥐어짜내는 방식이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완성되어 있다”며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폭력이 이미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미 증권노동자는 주5일제를 시행되고 있음에도 지난 3월 모 증권사 부지점장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고 지난해에는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사망한 노동자가 나오는 등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강종면 증권산업노조 위원장으로부터 상호 밀접하게 연관된 이슈인 증권산업의 공공성과 증권노동자의 노동강도 문제를 중심으로 증권노동자의 삶을 들어본다.


- 증권산업노조가 금융공공성의 문제를 제기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이 땅의 경제체제를 바꾸지 않는 이상, 건전한 직접금융시장의 조성은 요원하다. 현재 작동하고 있는 직접금융시스템을 냉정하게 평가할 때라고 본다. 증권시장은 금융수요자와 금융공급자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직접금융시장이다. 쉽게 말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는 증권시장을 통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다. 건전한 증권시장 조성을 위해서는 기업은 정직하게 시장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고, 투자자는 투명하고 안정적인 시장 환경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증권노동자, 증권관련사, 정부 등 증권시장을 둘러싼 3주체는 이런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
직접금융시장 체계 자체가 이 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적 산업의 성격이 짙고,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공공성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직접금융시장은 소수의 대기업만을 위한 금융체계로 자리잡은 것도 모자라, 최근 론스타게이트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정부와 사기꾼들은 이를 방치하고, 증권노동자는 이 시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비하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산업의 공공성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필수적인 요구라고 생각한다.”

증권은 직접금융시장…"공공성 요구가 더 강할 수밖에 없다"

- 일각에서는 자본주의의 꽃은 증권시장이라며 증권노동자들이 공공성을 주장하는 데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왜곡된 증권산업의 구조 때문에 생긴 사회적 오해다. 증권노동자도 임금을 받고 살아가는 임금노동자다. 특히, 증권노동자는 자본주의의 꽃인 첨단자본으로부터 어느 업종보다도 더욱 탄압받는 노동자다. 직접금융시장 내에서 공공성이 올바르게 정립되지 못한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증권노동자다. 따라서 역으로 증권노동자들이 금융공공성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한다.”

- 금융공공성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정부 정책은 뭔가.
“신자유주의를 확대하고 금융공공성을 해치는 한미FTA 추진, 금융지주회사법을 통해 산업재벌의 폐해를 답습하는 금융재벌 탄생 비호, 산업재벌의 숨을 터주는 출자총액제한 완화 움직임, 투명한 직접금융시장 조성에 역행하는 공시제도 완화 등을 꼽을 수 있다.”

- 증권노조에는 굿모닝신한증권, 하나증권, 대투증권, 대투운용, 한투증권, 우리투자증권 등 금융지주사의 자회사 사업장이 많다. 금융지주회사법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최근 금융지주회사법의 기안 단계에서부터 특정 지주회사의 의사가 상당부분 반영돼 법안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금융지주회사법은 외환위기라는 혼란한 시기에 본격적으로 논의가 됐고, 우리나라에선 처음 도입된 법이다. 이후, 금융지주회사법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법안 개정에서도 지주회사들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원래 도입 취지는 금융기관이 산업자본의 사금고화가 되는 것을 막자는 금산분리 원칙에 충실하고 금융기관의 체계적 구조조정을 위한 것이었다.
법안 도입 이후 상황을 보면 현재 두 가지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동원산업과 한국금융지주의 경우다. 금산분리의 원칙이 깨지고 있는 사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산업자본이 금융부문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은 금융지주회사를 만들면 된다. 이것을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동원자본이 이 부분을 파고 든 것이다.
금융지주사는 또 체계적 구조조정을 위한다는 취지에서 벗어나 대주주를 위한 금융재벌로 변질되어 있다. 은행은 예대마진으로 이익을 챙기고, 증권사는 고객들과의 약정 위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은행은 은행대로 증권사는 증권사대로 주주자본주의에 함몰돼 금융의 커다란 발전상을 그리지 못하고 대주주에게 고배당만 안겨주고 있다. 정부는 내실 있는 성장 없이 ‘덩치 키우기’ 논리인 대형화를 밀어 붙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융지주사라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재벌’ 탄생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
금융지주사가 문제가 되는 것은 또 있다. 노사 문제와 관련해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거 재벌 구조본에서 사장에게 지시를 하는 것과 유사하게 금융지주사에서 금융지주사의 자회사 사장에게 지시를 내리는 구조가 안착되어 있기 때문에 자회사에서는 노조를 탄압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 형성되어 있다. 과거 재벌로 상징되는 산업자본이 해 왔던 파행적 외형확장과 노조탄압을 지금 금융지주회사가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답습하고 있는 형국이다.”

금융지주회사법…대주주 위한 금융재벌 양산

강종면 위원장은
지난 1997년 환란 당시 SK증권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SK증권은 1998년에 증권선물위원회에 퇴출대상으로까지 올랐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1998년 3월 40% 가까운 SK증권 노동자가 구조조정됐다. 당시 강남지점에 근무했던 강 위원장은 2개 지점이 통폐합 될 상황에 처한다. 이 과정에서 40명의 노동자가 15명만 남게 된다.


“이전까지 노조에 대한 상은 막연했다. 뭐가 뭔지 몰랐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1998년 과정에서 노조의 필요성을 느꼈다. 실제 체험하고 난 뒤에 필요성을 느꼈다." 2004년 서울증권이 SK증권을 인수하는 것을 막아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강 위원장은 “현장의 조합원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질책도 듣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금융지주사에 천착하고 있다. 금융지주사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쳐, 결국 금융지주사법 개정투쟁을 이끌어내겠다는 다짐이다.


- 1998년 SK증권노조 사무국장
- 2000년 SK증권노조 부위원장
- 2002년 증권산업노조 SK지부 위원장
- 2006년 (현)증권산업노조 5대 위원장
- 자본시장통합법의 재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해 금융상품이 광범위해지면 외국 투기자본과 외국 유명자본이 국내금융시장을 완전히 장악해 탈법적, 불법적 폭리를 취해 ‘먹튀’를 자유롭게 행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선 우선, 외국자본의 적격성 심사, 자본변동 규제, 사회기여제도 의무이행 등 공공성 실현을 위한 규제강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공시제도를 강화하고, 불법적 캠페인을 통제하는 등 실질적으로 투자자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요건들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자통법에서 도입하려고 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인 판매권유자제도 도입은 전면 백지화하고, 현재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증권노동자에 대한 전문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통합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막아낼 산업적 고용안정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각종 제도개선을 위해 노사정 합의시스템을 구축해 국민들을 위해 금융공공성을 담보해나갈 주체인 증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된다고 본다.”

- 미조직 증권노동자의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마다 ‘우리는 증권노동자’라는 팩스신문을 발간해 미조직사업장에 전송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부터 알려주는 선전물이다. 또한, 월1회 이상 미조직 사업장 주변에서 전단을 배부한다. 증권산업노조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조직적인 투쟁이 노동자에겐 유리하다는 것을 알리는 선전물이다. 상당한 관심들을 보이고 있다.”

- 은행권 노동자들은 결제기능이 있는 CMA(자산관리계좌) 도입 등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민감한 문제다. 기본적으로 지급결제기능의 독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독점으로 인해 국민들은 이중의 수수료를 부담하는 모순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접금융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기관투자자 및 개인투자들이 고압적 지급결제기능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껴온 것도 사실이다.”

작년에만 10명이 자살, 돌연사…새벽 출근-점심시간도 없고-퇴근시간도 없다

- 한미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되면 증권노동자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증권시장은 더이상 개방될 것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외국자본이 유입되면 될수록 그 무한경쟁 구조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외국 금융사 일변도의 시장 재편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 충격은 증권노동자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다가올 것이다.”

- 투기자본 규제책에 대한 고민은.
“사회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투기자본이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금융공공성 확보 차원의 규제강화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투기자본을 규제하기 위해 주요출자자 요건 강화, 금융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적격성 심사 강화, 진입부터 퇴출까지 엄격한 자본변동 규제 등 규제강화가 시급한 시점이다.”

- 증권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어느 정도인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개별 노동자들의 경쟁구도를 통해 노동자들을 쥐어짜내는 방식이 외환위기 이후 증권시장에서는 완성되어 있다. 9시에 오전장이 시작되지만, 대개 7시30분까지 출근해야 준비를 할 수 있다. 장이 시작되면 매매와 관련한 연구, 상담, 매매의 시점을 잡기 위한 찰나를 잡기 위해 고민은 계속된다. 점심시간이 없어 굶는다. 장이 끝나면 완전히 녹초가 된다. 그러나 정시 퇴근은 없다. 장이 끝나면 이것저것 정리를 해놓고, 퇴근 후엔 약정을 위해 고객을 찾아 나선다. 퇴근시간은 결코 없다.
과거 고객들과 나눴던 향수어린 관계나 사무실의 끈끈한 조직문화가 없어졌다. 소수만 헤쳐 먹고 나머지 대다수는 배제되는 방식이 정착된 것이다. 이와 같은 노동조건이다 보니 정확하게 조사는 해보지 않았지만 드러난 것만 봐도 지난해 1만여명의 증권노동자 중 10명이 자살 내지는 돌연사를 당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