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위기’란 말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인가, 특히 민주노총 관계자들을 만날 때 먹먹함이 앞선다. <선수 인터뷰> 열두번째, 이수봉 홍보실장(대변인)도 그랬다.

지피지기를 위해 ‘시장 원리주의자’인 하이에크(1899~1992)부터 꼼꼼히 살폈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자본과 정권의 본질을 파헤치면서 ‘각개전투’로는 '매판적 자본권력'을 전복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정작 ‘그 실력’에 대해선 "희망을 갖자"고만 한다. 물론 ‘사람만이 희망’이고 운동하는 스스로부터 ‘낙관적’이어야 하겠지만, 더디더라도 실력만큼 진전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선 짠한 마음이 함께 묻어난다. 지난 7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이수봉 실장을 만났다.


지금은 ‘저항의 시대’일 수밖에

“87년 이후 형성된 노동자들의 권리가 향상되기는커녕 많은 타격을 받고 있다. (노동계에) 밀렸다고 판단한 자본이 새로운 반격에 나섰고, 그게 90년대 초반부터 ‘신경영전략’이란 이름으로 현장에 접목돼 왔다. 핵심 인력만 정규직으로 쓰고 부가 인력은 외주하청 등 비정규직으로 빼돌리면서 현장은 와해돼 가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운동) 상층은 빨리 깨닫지 못했고 또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지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마저 덧씌워지면서 위기의식조차 떨어졌다.”

노동운동의 힘을 어떻게 측량하고 있느냐에 대한 답이었다. 양과 질 모두에서 발전, 아니 현상유지조차 힘든 상황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외국자본권력에 의한 노동시장 재편이다. IMF는 시장이 경제의 폭력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극악적 구조조정이다. 최근 김재록 사건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브로커 정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료들은 한국의 노사관행, 시스템을 외국자본이 더 많은 착취를 하기에 좋은 구조로 재편하는 역할에만 충실했다.”

이 과정을 통해 현장은 현장대로 피폐해졌고, 상층은 상층대로 형식적 민주주의 진전에 따라 권리가 주어지는 듯도 했으나 현장과의 간극은 갈수록 그 거리를 벌리고 있다. 그는 “특히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2차례나 발동한 긴급조정권 등 야수적인 자본의 속성만 반영할 뿐"이라면서, "거의 본색은 다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저항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저항? 어떻게?

약력
1961년 출생
1981년 고려대 사회학과 입학
1982년 집시법 위반 구속
1984년 부천지역 노동현장 활동(용접공, 프레스공)
1988년 빈민운동(철거민 운동)
1990년 전국병원노조연맹 인·부천지역본부 사무차장
1995년 현대그룹노조총연합 정책실장, 사무차장
1997년 금속산업연맹 사무차장
1999년 민주노총 고용안정센터 소장
2004년 민주노총 홍보실장(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조운동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실리를 주지 못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물질적 실리만큼은 ‘챙기지’ 않았나.

“본질적으로 자본이 노동에 대한 포섭전략이 관통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대기업 노동자에겐 당근을 줬지만 대신 대의원들을 장악했다. 중소기업은 당근을 제공할 여유도 없어 조합원 탈퇴에만 열을 올렸다. 다 회유의 과정이었고 계급의식을 빼앗는 과정이었다.”

결국 지난 20년의 노조운동은 자본주도 순치과정을 거스르기는커녕 개입조차 못했다는 말인데, 지나온 시간에 대한 너무 박한 평가가 아닐까. “상층에 대한 형식적 포섭과 현장에서 가해지는 탄압에 대한 총체적 전략을 가졌어야 했는데, 좀더 래디컬한 위기의식을 갖고 총전선을 만드는 데 실패한 거지.”

그가 ‘실패’라고 평가하는 근저에는 바로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 몰라서 대응을 못하는 것과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대응하지 못하는 건 다른 문제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해서 세련된 안을 내놓으려면 고도의 작업이 필요한데, 노동의 관점에서 경제를 분석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제도권에 들어가 있거나 파편화돼 있고, 총론 대응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맑시즘적 해법을 얘기하는 것 이상의 구체적 현실적 대안을 못 만들고 있다.”

그래서 강조한 것이 ‘준비된’ 총파업이었다. 노동자가 제 권리를 오롯이 보장받기 위해선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봤다. 매판적 권력을 전복시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래서 세상을 바꿔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부터 바꿔야 했다. “지난해 이러저러한 문제 때문에 좌초했지만 그런 문제인식은 여전히 타당하다고 본다. 지금 조건에서 하나하나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의 문제가 남은 거지.”

노무현 정권은 ‘매판’정권

이쯤에서 그의 사구체(사회구성체) '강의'를 들어보자. 그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대학원에서 정통 시장경제를 공부할 정도로 자본과 정권의 성격 규명, 본질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논리도 정연했다.

“철저하게 매판정권이다. 봐라. 지금 미국 경제가 상당히 위험하다. 10년 안에 더 어려운 조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자신의 통제가능 영역에서 안정된 수탈구조를 만들려고 더욱 애쓸 것이다. 2008년에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는 것이 군사전략인데, 미국 입장에서는 엄청난 금고 하나를 잃어버리는 상황이다. 이런 중국-미국 간 다툼에서 우리는 경제는 물론 군사적, 정치적 통제까지도 더 미국에 복속될 것이고, 큰 재앙에 빠질 수도 있다.”

그는 현 정권 핵심 관료층조차도 미국 관계에서, 미국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 발언을 봐라. 김재록 사건에 대해 ‘이런 식으로 조사하면 외국 자본이 철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나. 브로커들에게 맞장구치는 말을 경제수장이 하고 있는 거다. 그게 매판 아닌가.”

상관습과 언어가 달라 외국기업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중간 기능을 수행했던 중국 상인을 가리키는 ‘매판’과 우리 정부가 뭐가 다르냐며 그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잇는 말은 우리나라에는 애시 당초 ‘시장경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차관 투입 경제, 관료독점 자본주의였을 뿐이다. 극단적 보호경제였다. 시장경제라는, 존재하지도 않은 말에 현혹돼 그릇된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것이 노동운동이 더 래디컬하게, 계급운동으로 발전하는데 일정한 사상 제약을 가하고 있는 거다.”

결국 장하준 교수가 이야기하듯 국방예산으로, 또한 철저한 보호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해 온 미국이 이젠 “뒤늦게 자유무역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식으로 사다리를 걷어차며 시장경제를 하라고 등 떠미는 상황인데, 마치 시장경제가 공정한 양 이해되는 상황은 그 자체로 ‘거짓’이란 말이다.

“그러다보니 완강한 투쟁전선을 만들지도 못하고 계급적 대중적 산별노조 건설도 더디고 정권에 대한 태도도 애매해져 결국 전략적 기조까지 흔들리게 하는 측면으로 나타난다. 이는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 다 마찬가지다.”

유연화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잘못된 신화는 또 있다고 했다. 비정규법 논의과정에서 정부여당이 그토록 강조했던 유연성 확보 필요성이다.

“법을 만드는 목적은 비정규직을 ‘보호’ 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정부가 상당히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자본을 압박하는 내용이 되지 않으면 보호하기 어렵다. 조직률이 10%인 상황에서 노사관계 차원에서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규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재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법은 사유제한도 없고 기준도 없는 차별 금지이고, 2년 동안 거의 맘대로 썼다, 잘랐다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리해고와 같은 거다. 심리적 마지노선도 없애는 거지.”

그런데 고용문제에 대한 접근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시장효과’다. 법(기업이 '규제'라고 말하는)이 어떻게 시장에서 작동할 것인지 예측을 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만약 민주노총 주장대로 법에 ‘사유제한’을 담을 경우 현재 기간제로 일하는 비정규직 중 절반가량은 해고된 뒤 또다른 형태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어 고용안정성을 더 떨어뜨릴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사용기간 2년 역시, 2년이 가까워지면 정규직으로 고용의제(고용한 것으로 간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해고를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2년보다는 3년이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서도 더 나을 것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 노동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신화가 깨져야 한다. 그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지금도 사실 해고시키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10%의 조직률이기 때문에 90%는 언제든 사용자 마음대로 해고가 가능하고 10% 중에서도 일부 대공장 노조들만 해고제한의 보호를 받는 거다. 사실 이런 곳도 생산성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주고 있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도 부담이 아니다.”

이미 ‘유연화’가 만연한 상황에서 더이상의 유연화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고립된 섬은 일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인데, 이 역시도 자본이 수십배의 이윤을 걷어 들이고 있으니까 그만한 ‘경직성’이 보장된다는 판단이다. 만약 그런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유연화라는 해일이 몰아닥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일 테고.

그런데, 해를 거듭한 비정규법 논의 과정에서 시장 상황에 대한, 입법목적에 대한 논의보다는 ‘사유제한’, ‘고용의제(혹은 의무)’, ‘사용기간’ 등 앙상한 법조항에 대한 공방만 오갔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논의의 천박함이 바로 그런 거다. 기초적인 상식조차도 비상식으로 치부되는 상황이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도 아니고 사유제한 넣으면 시장상황이 더 어려워진다, 실업자가 더 생긴다는 식의 참주선동만 가득했다”던 그에게 실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지를 물었다. “지금은 룰을 정하는 과정이다. 성매매방지법 논의할 때 성매매의 유연성 얘기한 건 아니잖아. 지금 비정규직이 60%에 가까운 상황에서 접근법은 비정규직으로 더 이상 고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거기서 유연화 얘기가 왜 나오나.”

결국 외국자본의 입맛에 맞는 노동시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온갖 방식의 얼치기 논리가 만들어지는데, 이는 논리의 정합성 문제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힘의 관계’로 치환돼 있는 문제인 셈이다.

“정부여당이 얼마나 표피적으로, 아마추어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는지 하는 부분에서 반성해야 한다. 그래, 논의는 많이 했지. 하지만 논의의 양과 질은 다른 문제다. 논의 많이 했으니 힘들다, 그러니까 그만하자고 할 수는 없다. 우리도 지치지. 하지만 원칙을 놓치는 순간 비정규 보호는 완전히 물 건너간다.”

민주노총은 씹다버린 껌?

그런 정권과 자본의 속성은 중앙 단위 노사정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씹다버린 껌 취급을 받았다”고 표현할 만큼 그들의 ‘속성’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리 만큼 분명했다.

“노사정위 등 각종 사회적 대화는 형식적 포섭 내지는 순치과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활용하는 건 노동운동의 몫이다. 노동의 시민권, 정책 발언권, 사회적 권리를 열려진 공간을 통해 최대한 얻어낸다는 차원에서 접근했고, 그런 걸 토대로 현장을 복원하겠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정권과 자본의 생각은 명확했다. 미국 주도 수탈구조의 하위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는 노사정위조차 활용가치가 떨어지니까 우리가 (정리해고, 파견제 등에 합의해 준 뒤에) 버린 껌 취급당했잖아.”

하지만 당시 합의내용 중에는 전교조를 합법화하고 공무원노조 합법화의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도 있었는데, 집단관계에서의 성과가 전혀 없었다고 폄하하는 건 무리 아닐까. 그는 “정권과 자본의 수탈구조를 재편해가는 과정에서 본질을 가리기 위한 호도책에 불과했다”고 혹평한다.

민주노총이 합법 내셔널센터로서 일정한 위상을 확립하긴 했지만 여전히 정권의 기본 속성 자체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을 대하는 방식이 ‘겉으론 솜사탕이지만 안에는 쇠망치를 숨겨둔’ 것과 같다는 판단이다.

속성에 대한 판단이 이럴진대, 잠시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조금 의아하기도 하다. 연이은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의 ‘원인’이 바로 ‘사회적 교섭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바늘귀 같은 틈이라도 우린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장에선 지금도 문제 생기면 노동부 만나달라고, 또 누구 만나달라고 한다. 그런 문제 해결하려면 좀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저쪽에서는 순치이겠지만 우린 활용해서 조금이라도 근거를 확보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현장의 논리가 곧바로 ‘이데올로기’화 되면서 많은 아픔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지난해 노동위원회에서까지 근로자위원들이 모두 사퇴할 정도로 경색됐던 노정 관계가 노동부장관 교체로 새 국면을 맞고 있지만 한국노총과 달리 민주노총은 여전히 노사정위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 노사정 대표자회의에도, 노사정위에도. 판단의 근거는 뭘까?

“문제는 하도 당하고 데이는 과정에서 어떤 단어든 개념이든 상당히 오염된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지금 ‘사회주의’라고 하면 선입견을 갖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노사정위도 그렇다. 노 정권의 태도가 우리가 볼 때 저열하고 반노동자적이기 때문에 자칫 조합원들이 오해될 수 있는 소지는 고려하면서 판단해야 한다.”

그 오해를 풀 수 있는 조치로 그는 비정규법 재논의, 장기투쟁사업장 문제 해결 등을 꼽았다. “선결과제들이 조치된다면 우린, 의제가 분명하고 열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곳이라면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파업? 홍보기간?

지금 민주노총은 ‘파업 중’이다. ‘준비된’ 파업을 강조해 왔지만 어느 정도 준비가 됐는지는 결과를 놓고 유추해석 할 뿐이다. 각자 제 처지를 감안하고 반영한 방식으로 ‘파업’을 하고 있지만 그 파급 효과는 크지 않다. ‘파업’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은 14일 금속연맹 13만여명이 거의 전부다.

“통상 얘기하는 총파업의 개념을 놓고 위력성을 얘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요구가 전 민중적 요구가 돼야 한다는 불가피성에 대해 국민적 인식을 높여야 한다. 그 방식이 파업이든, 무상진료든, 계기수업이든 국민들의 호응을 얻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굳이 ‘총파업’이라는 이름을 걸어야 했을까. ‘총파업’이 부담되는 조직을 감안해 ‘총력투쟁을 포함한’ 이라는 수식어를 달기도 이제 좀 머쓱하다. “얼마 전 회의에서 파업 안 하는 곳은 왜 안 하냐, 왜 우리만 들어가야 하느냐는 등의 얘기가 나오길래 ‘금속만 할 꺼면 하지 말자, 홍보기간 이런 식으로 하자’고까지 말했다. 조직별로 추궁하는 방식이기보다는 실력에 맞는 방식으로 하자는 차원이었다.”

역설적인 말이었던 셈이다. ‘총파업’이라고 어쩔 수 없이 포장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긴장을 걸지 않으면 현장이 안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 ‘약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그의 표정도 조금 머쓱한 듯하다. 이번엔 구호의 문제를 물었다. 당위적인, 너무도 당위적인 듯한 구호에 대해.
실제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 같은 요구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시하는 대안까지 바뀐 것 없이 똑같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자본의 그 고리나 법제도, 행정력 같은 철옹성이 너무 강고한 탓도 있겠지만, 역으로 노동의 개입력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지 않은가. 당위로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야 필요하지만 그것과 함께 단계적인 접근법도 함께 나와야 할 텐데, 여전히 그 프로세스는 ‘안개 속’인 듯하다.

“노동운동의 집행력, 관료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아서 그렇다. 관료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관료주의가 안 됐기 때문에 문제다. 2~3년짜리 위원장에게 집행력이 담보되겠나. 집행력의 안정성을 담보해서 지속적인 운동 흐름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한 것은 경영에 대한 개입이다. 노동계급의 핵심 요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불공정 거래가 모기업이 파시즘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 돈을 축적하는 과정 아닌가. 그렇게 때문에 노조가 경영 투명성을 위해 적극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이는 정부에 대한 개입력으로도 이어진다. 지금도 고용창출을 명목으로 각종 지원금이 많은데 노조가 이 역시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민주노총 고용안정센터에서 일할 때 비정규직 및 실업자를 위한 고용안정센터를 만들어 자활사업도 하고 직업훈련도 시키자는 제안을 하면서 정부에 400억원을 요청할 생각도 했다. 노동조합이 양극화 해소, 고용문제에 적극 개입해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안 됐다. 당시 민주노총에서 정부 지원금은 ‘사업비’가 아닌 ‘건물’에 한해서만 받기로 결정한 것도 한 이유였고. “있는 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건 문제다. 하지만 투명하게 관리할 능력이 없으면 ‘독’이 된다. 우리 역량과 실력을 종합적으로 봐야 할 텐데, 그런 점에서 보면 아직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늘 ‘칼날’ 위에 서 있지”…“도둑질 안 하려면 노동운동 하는 수밖에”
노동판에서 회자되는 몇몇 불가사의 중 하나가 이수봉 실장의 석사학위 지도교수가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학)란 사실이다. 노동운동의 ‘입’이 어떻게 시장경제의 신봉자, 대표적 시카고학파의 지도를 받았을까 하는 점에서. 이유는 의외로 담백했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시장경제의 허구를 잘 모르니까 노동운동 하던 사람들이 자본의 논리에 잘못 빠지기도 하고, 얘길 듣다보면 그 말도 맞는 것 같이 여기기도 한다. 시장경제의 허구성도 모르면서 극단으로 빠지는 사람도 여럿 봤다.”


면장(面墻, 견식이 없음)이 아닌 면장(免墻, 面墻에서 벗어나는 것)을 위해서 먼저 ‘알아야’ 했다. 2년 반, 공부를 하고 나니 “그나마 면역주사라도 맞은 느낌”이다. “시장 경제를 공부하니까 노동현장에서 그 허구성, 그 거짓말을 깨는 논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그러니까 내가 자신 있게 말하잖아. 시장경제는 죽었다고.”


“수탈구조에 들어가라고? 난 못해”


81학번인 그는 비교적 저학년이던 2학년 때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다. 적어도 3학년 이상이어야 ‘빵’에 가는 것이 관례(?)적이던 당시 이례적인 일이었다.


“광주사태 충격도 있었고 문무대에 끌려간 동지들에 대한 아픔도 있었고…, 그때 선배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2학년 4명이 뭉쳤다. ‘전두환 독재 타도’ 유인물 작업을 했다. (비밀유지를 위해) 호텔방 잡아 등사기로 밀고 뿌리고…. 근데 그게 새 버려서 (공안검사인) 정형근한테 잡혀갔고, 1년6개월 (선고) 받아 1년 살다 나왔다.”


뭐가, 스물한 살 꽃띠 청년이던 그를 ‘투사’로 만들었을까? 김지하의 <오적>이나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등의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깨우쳐’ 갔다던 그의 말은 이렇다.


“1학년 말 즈음이었다. 도서관 가는 길에 우연히 앞서 가던 2명이 하던 얘길 들었다. 직장을 어떻게 잡고 시험공부를 어떻게 하고, 뭐 이런 말들을 하더라고. 아…, 그때 갑자기 도서관 쌓은 큰 돌들이 마구 무너져 버리는 장면이 순간 상상이 되더라. 살인마가 정권을 잡고 있었고 살인마에 의해 사회가 굴러가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저런 얘길 나눌 수 있나, 너무 역겨웠다. 세계관이 팍 바뀌는 과정이었지.”


그는 마흔 넘어서 계속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단다. 당시에는 ‘운동’ 한다고 하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상황 아니었나. 그런데 마흔 하고도 여섯 해가 지났다. ‘다른’ 선택을 생각해보진 않았을까?


“자본은 어느 나라에서든 가장 비민주적인 파쇼체제인데, 거기를 간다? 적응 못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정권은 매판적 성격이 아주 강한데, 기업과 연합한 수탈구조에 들어간다? 그럴 용기가 없었다. 자본의 광고 없이 성장할 수 없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구조에서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니까 운동하는 게 가장 나은 삶이었다. 물론 이 삶도 어렵고, 갈등도 많고, 고통스럽지만….”


그와 비슷한 연배들의 고민이 그러했듯이 사회주의 몰락이 준 충격은 그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같이 활동하던 동기, 선후배들이 ‘파쇼체제’, ‘수탈구조’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라고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리는 명쾌했다.


“사회주의 몰락이 이론체제의 몰락이 아니었고, 스탈린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 아니었다고 정리하고 넘어갔는데, 굳이 그것과 연계시켜 보지 않더라도 현장은 계속 힘들었다. 우리 사회 기만적 시스템의 문제는 현장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 시스템에 잘못 들어가면 도둑질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도둑질 하지 않으려면 노동운동하는 수밖에.”


“철판 깔고 다녔지만…”


직무가 직무인지라 그는 ‘노출빈도’가 높은 사람이다. 늘 ‘칼날’ 위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은 길을 갈 때나 지하철, 버스를 탈 때마다 느껴진다. 굉장한 부담이었다. “특히 지난해 폭력집단, 비리집단으로 매도당할 때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뻔뻔스럽게 얼굴에 철판 깔고 다녔다. 가장 주목 받는 어려운 자리이지만 마음을 비웠다.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만큼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지 않은가. 지난해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깨우치고 있고, 상대적으로 저쪽(정권과 자본) 공격에 늦을 수 있겠지만 실력만큼 계속 전진하고 있다. 결국 “우리한테 달려 있는 문제”다. 조금 더 긴 호흡으로, 희망을 가져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무릇 ‘세상의 모든 일’은 지도자에 의해서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꿔내는 더 큰 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어디를 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도자의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지면에서는 한국의 노사관계, 노정관계를 주도하는 ‘지도자’, 이른바 ‘선수’를 만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