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수상하여, 비정규직이 고용시장의 ‘주류’를 차지하며 발생한 문제다. 오랜 기간 ‘박봉’의 대명사였던, 공무원이 '선망의 직업'이 된 지 한참이 지났다. 또한 그들의 산재·노후 대책인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기금 고갈 위기에 처한 국민연금을 살리기 위해,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를 합의하기 위해선 공무원연금부터 희생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맞다. 진작 손 봤어야 했다’는 말이 여러 신문 사설에 등장을 하고 있다. 과연, 이 주장들이 정당한 '강요'인지, 살펴보자.

공무원연금, 국가 보존액 증가 중

공무원연금은 1960년 정부가 공무원의 노후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공무원과 정부가 절반씩 부담해 온 공적연금이다. 군인연금, 사립학교연금과 더불어 특수연금에 속한다. 현재 공무원연금은 공무원이 보수월액(기본급+수당)의 8.5%씩 내는 기여금과 정부 부담금, (기금 고갈에 따른) 정부 보전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지난 93년부터 적자를 내기 시작해, 5년 전부터는 기금이 고갈돼 정부가 보전해주고 있다. 2001년 599억원이던 국고 보전액은 2005년 6천여억원으로 늘었고, 올해에는 8,400억원을 국고에서 보전했다. 내년에는 1조4천억원을 보전해야 하는 등, 정부 보전금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공무원의 기여금과 정부의 부담금만으로는 운영되지 않는다는 점은 최근 공무원연금이 도마 위에 오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면 왜 정부 보전이 없이는 운영되지 않는 것일까. 첫번째 이유로는 정부의 보전금액이 지나치게 적은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는 공무원이 7%, 정부가 34.2%를 부담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도 각각 9.185%와 25.6%를 부담해 왔다. 독일의 경우는 공무원연금 전액을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8.5%에 정부 보전금을 합쳐도 13~15%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턱 없이 적은 금액을 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부, 부담금 턱 없이 적어

두번째로, 1998년 이후 벌어진 공직사회 구조조정에 따라, 연금 지출이 크게 늘어난 데도, 공무원연금 고갈의 원인이 됐다. 정부는 지난 1998년 국가공무원의 16%, 지방공무원의 30%를 줄이려고 했고, 실제로 11만명의 공무원 노동자가 퇴직했다. 이들 중 2/3 정도는 일시불로 연금을 받았고, 이는 연금 고갈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정부가 연금 지출 확대를 계산하지 않고, 일단 공무원 수를 줄이는 데에만 주력했고, 그 부담을 온전히 공무원연금기금에 부담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역대 정부가 공무원의 보수 상승을 억제하면서, 그것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금 지급율 인상을 손쉽게 이용했다. 이는 당시 정부에는 부담을 주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엄청난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고, 연금은 고갈됐다.

1962년에는 연금지급개시 연령제를 폐지하고, 퇴직 즉시 연금지급을 시행했고(이 제도는 2000년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1995년 이후 가입자는 60세부터 받는 것으로 고쳤다), 연금 지급율을 최초 39~50%에서 1967년 50~70%, 1981년 50~76%로 높였다.
또한 1967년 일시금 지급을 택할 경우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의 1.5~1.78배로 지급하도록 했고, 유족연금 지급율도 1988년 50%에서 70%로 확대시켰다. 또한 연금지급의 기준이 되는 보수월액의 범위에 기말수당(1980년), 정근수당(1986년), 장기근속수당(1987년)을 포함시키며 확대해 왔다. 올릴 임금은 안 올리고 후불임금만 확대하면서, 당장의 ‘박봉’을 무마시켜 온 것이다.


박봉 무마를 위해 연금을 늘렸다

1967년의 경우 공무원의 보수는 민간기업의 48% 수준이었고, 1983년에는 70.7% 수준이었다. 현재는 대기업 노동자의 85%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물론, 비정규직의 확대로 인해 사회적 보수 기준과 ‘국민감정’은 공무원노동자의 보수와 민간기업의 그것을 단순 비교할 수 없게 조성됐지만 말이다.

이밖에도, 기금의 방만한 운영, 증시안정대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기금을 통한 주식투자의 실패 등도 기금고갈에 한몫씩 담당했다. 더구나 공무원연금기금 조성에 절반의 기여를 하고 있는 연금 가입 당사자들은 기금 운용에서 사실상 배제(15인 내외에 공무원연금 운영위에는 단 2명의 공무원 '대표'가 들어간다)된 상태다.

공무원연금은 20년을 부으면, 퇴직 전 3년간 월급 평균의 50%를 보장해 준다. 반면, 국민연금은 20년을 부으면,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30%를 보장해 준다. ‘이게 특혜가 아니면 뭐냐’는 게 국민연금 개혁에 선행해, 공무원연금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두 연금은 단순히 드러난 숫자만으로 비교할 수 있지 않다. 아니, 드러난 숫자만 살펴도 공정한 비교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숫자만 봐도 공정한 비교 아니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이 보장하는 범위와 기여율 등이 모두 완전히 다르다. 일단 국민연금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각 임금의 4.5% 씩 부담하는데 반해, 공무원연금은 국가와 공무원노동자가 각각 8.5%씩 부담하게 된다. 기여율이 다르다는 것이다.

거기에 공무원연금은 퇴직금과 노후연금, 산재보험이 합쳐진 것이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노동자의 경우 정년 퇴직을 하면, 마지막 3개월 간의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한 퇴직금을 받게 되고, 국민연금의 수급을 받게 된다.

반면 공무원노동자는 근속연수에 퇴직 전 3년간 보수의 일정부분만 곱한(누진적으로 적용된다. 20년이상 근속을 경우 60%) 퇴직수당을 받게 된다. 전국공무원노조는 “민간기업보다 낮은 보수까지 감안하면 민간기업의 퇴직금에 비해 퇴직수당은 7.5~46%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퇴직금의 전액을 사용자가 부담하는 민간기업과 달리, 공무원 퇴직수당은 공무원연금에서 지불된다.

또 한가지 중요한 차이는, 두 연금의 보장 목표. 국민연금은 노령, 장애, 사망시에 기본적인 생활보장을 목표로 한 연금이라면, 공무원연금은 퇴직 이후에도 퇴직수준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금이다. 그래서 국민연금보다 더 낸다.


공무원의 사회적 기여는 얼마인가?

또한 공무원연금의 공무원 노동자의 사회적 기여를 전제로 만들어진 연금이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공무원의 경우, 연금액의 절반밖에 받질 못한다. 즉, 자기 보수에서 빼서 낸 돈이야 뺐지 않지만, ‘반사회적인’ 일을 한 경우 국가는 연금을 지급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연금에 없는 규정이다. 결국, 국가가 공무원연금에 일정부분을 부담하는 것은, 사용자로서 해야할 부담에 더해, 공무원 노동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보상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무원의 노후보장을 위해 고용자인 국가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공무원 노동자의 사회 기여도를 어떻게 평가하고, 이를 위해 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말이다. 또한 이해당사자인 공무원 노동자들과 상의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걸 빼고,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의 급여율을 수치로만 비교하는 것은, 설렁 그 계산법이 현재처럼 ‘산수능력 부족 현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해도, 정당한 비교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공복의 희생’, ‘철밥통에 대한 반감’이 사회적 합의의 전제와 기준이 될 순 없는 일.

적대감으로 사회적 합의할 수 없다

정부는 2007년부터 총액인건비제도의 본격 시행을 예정하고, 몇 곳의 지자체와 중앙부처에서 시험 실시 중이다. 현재, 기본급과 수당, 복리후생비, 업무추진비 등 경비로 구성된 공무원 보수제도를 몇단계에 걸쳐 기본연봉과 수당, 성과연봉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보수월액 기준으로 산정되던 기여금과 부담금의 기준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결국, 총액인건비제도를 정부 안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공무원연금법을 크고 작게 손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무원노조총연맹은 총액인건비제와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6급 이하(57세)와 5급 이상(60세)로 차별 적용되는 공무원 정년을 평등하게 맞춰야 한다는 2004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이후, 관련 법안이 행자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전제로 한 관련 법안을 제출한 상태이며, 정부는 정년 연장에 따른 예산 증가를 최대한 막는 방식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공무원노조는 노령화 사회에 맞게, 공무원의 정년을 연장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표4> 공무원과 민간기업직원과의 퇴직금 비교
근무년수공무원민간기업직원차이
보수월액퇴직수당보수월액(근기법)퇴직수당
4년 5월975,000원 438,750원1,300,000원5,850,000원-5,411,250원
9년 5월 1,500,000원4,987,500원2,000,000원19,000,000원-14,012,500원
14년 5월 1,875,000원12,234,375원2,500,000원36,250,000원-24,015,625원
19년 5월 2,250,000원21,937,500원3,000,000원58,500,000원-36,562,500원
20년 2,625,000원31,500,000원3,500,000원70,000,000원-38,500,000원
*이 표의 공무원 보수월액은 민간기업의 75%수준으로 산정했음.
(자료:임광현; 공무원사기와 공직자연금제도의 안정적 운영,1999. 인용)

공무원연금, 고구마줄기처럼 얽혀 있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경우, 임금 적용의 변화 없이 정년에 늘어날 경우, 정년 이후부터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는 것 등이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그에 맞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연금기금의 변화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무원 보수제도 변경, 정년 변경과 관련해 공무원 단체와 정부의 갈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 앞뒤로 ‘고구마 줄기’처럼 뒤따라 올 쟁점들이 산적하고 있다.

현재 공무원연금의 구조는 98여만명의 현직 공무원이 21만명의 연금 수급자를 먹여 살리는 구조. 연금 수급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직공무원 100명이 연금수급자 몇 명을 부장하고 있는지를 나타나는 부양비율은 1995년 6.6에 머물렀지만, 공직사회 구조조정 이후인 99년 14.1까지 치솟았다. 2005년의 경우 22.1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5명의 현직공무원이 1명의 퇴직공무원의 연금을 책임졌다는 말이다.

부양비율은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2020년에는 13조8천억원의 정부보전금이 필요하며, 이는 GDP의 1%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연금에 대한 국가 부담금 인상이 해법”이라면서 “유시민 장관의 무책임한 발언은 실패한 국민연금의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공노총은 “하위직 공무원의 정년을 높여 나감으로써 연금지급 기간 단축이라는 방법을 통해 연금재원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해법은 무엇인가? 논의된 적 없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공무원연금 희생론’ 이후에, 담당 부서인 행정자치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은, 국민연금 살리기를 위한 ‘마취제’로 쓸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연금개혁 순서를 맞춰해야"
“국민연금제도는 노태우 정부 때 벌인 대국민 사기극이다.” 2005년 4월,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한 말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첫 시행 이후, 지속적으로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가기 위해 몸부림을 쳐 왔다.


노태우 정부에서 3%를 내면, 급여의 70%를 주겠다며 시작된 국민연금은 김영삼 정부 시절 6%로 올렸고, 김대중 정부에선 9%를 걷고 있다. 앞으로 15% 이상 내고, 50% 미만으로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연금재정이 고갈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800억원의 잠재부채가 시한폭탄처럼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느낌”이라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더구나 ‘현세대와 차세대의 재분배’를 기본구조로 하는 국민연금의 구조상 어떤 식으로든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 유시민 장관은 “국민에게 자기 이익을 희생하는 개혁을 요구하면서 공직사회가 자기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며, 공무원-군인-사학 연금개혁을 주장했다.


오건호 철도정책연구센터 정책위원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이 연금구조 자체는 다르지만 ‘정치적으론’ 연결된 문제”라고 지적하며, 일의 순서가 거꾸로 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오 정책위원은 “유시민 장관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말하고 있는 것은, 개혁의 필요성보다, 국민연금 급여율 하향조정을 위한 언급”이라면서 “국민연금 개혁 이후에, 그에 의거해서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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