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노위를 통과한 비정규법안은 비정규노동자들을 정말 보호하는 법안인가.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비정규법안 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간 현재, 노동계는 파업을 비롯해, 연맹별 순환파업 등을 계획하는 등 전면 철회를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식상할 정도로’ 수없이 외치고 있다. “비정규법안 철회하고 비정규권리보장입법 제정하라”고.

5일 오전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민주노동당 비정규철폐운동본부 주관으로 이들 비정규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비정규법안 반대 긴급 증언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예정된 2시간을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를 토대로 현재 환노위를 통과한 비정규법안의 철회를 재차 강조했다.


비정규법 시행도 전에 폐해 속출

“비정규직으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곳은 금융권”이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한 권혜영 금융노조 비정규직지부 위원장은 정부여당의 비정규법안 통과를 앞두고 현재 금융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폐해들을 들었다.

우선 주택금융공사의 경우 11개월씩 계약하는 기간제 노동자들이 생기고 있다. 실적이 우수할 경우엔 1회 재계약이 가능, 22개월짜리 단발계약직도 가능하다는 것. 산업은행의 경우 1년씩 자동재계약이 됐으나 지난해 12월부터는 6개월씩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우리은행 역시 2002년 3년 장기계약을 했다가 2005년 1년씩 계약, 사무행원 등 후선업무쪽은 3개월 6개월, 9개월 단기계약으로 계약방식이 변화되고 있다.

특히 권 위원장은 은행의 후선업무들이 파견, 위탁계약 등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조흥은행 콜센터에 직접고용됐던 후선업무담당 직원의 경우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집단 사직을 강요, 모든 직원을 파견업체로 전환했다. 따라서 노동조건이 열악해짐은 물론, 노동3권 또한 보장받지 못하는 등 폐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권혜영 위원장은 “이미 금융기관에서는 법안의 통과를 가정하고 계약기간을 변경하는 등 장기근무자를 위주로 대량해고의 칼바람이 예상되고 있다”며 “비정규직의 사용사유의 제한, 차별에 대한 철저한 금지 및 차별 발견 시 강제적인 구속력, 파견업종의 허용금지 및 고용의제 등의 문제에 대해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며 비정규법안의 처리를 재검토해 줄 것을 촉구했다.

지난해 2월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과정에서 해고된 하정기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조합원 역시 “차라리 비정규법안을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며 법안 철회를 주장했다.

차라리 비정규법 없는 것이 낫다

하정기 조합원은 “열리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자동차의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이, 왼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조립하는데도 이들의 차별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지만 사실 현장에서 정규직 공정에 투입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행복하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즉, 현장 안에서 정규직 공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는 공정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는 것, 그럼에도 임금이나 처우는 절반에 못 미치는 게 현실이라는 말이다.

하정기 조합원은 “이미 현재의 노동관계법에서 제조업에 불법파견을 금지하고 있고 불법파견 판정 시 고용의제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법안은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의무로 법안을 개악하고 있으니 말이 되느냐”며 비판했다. 그는 이어 “현대차 1만여명의 노동자들이 이미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고 이중 80여명의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해고됐다”며 “노동부의 판정에 따르면 우리는 정규직인 상태에서 해고된 것이므로 현대차에 직접 고용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날 증언대회에서 하정기 조합원은 정부여당이 진정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보호를, 권리보장을 위해 법안을 제정하려 한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차별철폐 △노동기본권 보장, 노조활동 보장 △불안정 고용철폐, 고용보장 △불법파견 철폐, 직접고용·정규직화 실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여당 비정규 보호의지 ‘진정성’ 있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보고 사용자성을 인정하라고 촉구하고 있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사용자성이 없다며 우리는 노동자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마이크를 넘겨받은 서훈배 학습지노조 위원장은 “특수고용의 본질적 문제는 4대보험,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애초 노동자였던 레미콘, 학습지 노동자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사업자등록증을 주더니 너희는 사장이라며 노동기본권을 박탈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 정부여당이 다루고 있는 비정규법안은 기간제, 파견제가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저하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후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현재 비정규 노동자들이 반대하고 있는 비정규법안을 강제처리 하려는 정부여당의 태도를 보았을 때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훈배 위원장은 “비록 현재의 비정규직법에 특수고용노동자 문제가 담겨 있지 않지만 정부여당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보호하겠다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특수고용노동자들도 함께 반대하고,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인 원청사용자성 인정과 노동자성 보장을 함께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남우근 사무국장이 법안의 문제점 및 사회적 효력에 대해 설명, 비정규노동자들의 증언에 힘을 보탰다. 남우근 사무국장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기간제법안과 파견법안은 광범위한 간접고용 노동자와 법 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누락돼 있다”고 전제한 후 기간제법안과 파견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행 노동관계법보다도 후퇴한 비정규법안

우선 남 국장은 기간제법안과 관련 정규직 전환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2년의 기간제 사용이 전체 고용관행에서 공식화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기존의 판례의 경우 근로계약을 한 차례만 갱신하더라도 무기계약을 간주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기간제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러한 판례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점에서 개악의 소지가 있다는 것. 이러한 법안의 개악을 막기 위해선 우선 사유제한의 도입남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남우근 사무국장은 또 차별시정조항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차별의 기준이 없는 것은 뒤로 하더라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명문화 해서 기업활동에 대한 기여도 측면에서 차별적 처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애매한 차별의 기준을 문제로 지적했다. 파견법안과 관련해서도 그는 고용의제 조항을 고용의무로 후퇴한 것, 불법파견의 경우 판정 즉시 직접고용 의제를 비롯해, 불법파견에 대한 엄격한 규제의 필요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남우근 사무국장은 최근 경총의 비정규직(직접고용 비정규직) 활용조사를 인용하고 이날 증언대회를 마무리했다.

“최근 경총의 자체 조사에서 비정규직 활용에 대한 규제가 입법될 경우 인력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기업은 11.6%에 그친 반면, 사내하청이나 아웃소싱으로 전환하겠다는 기업은 27.3%를 차지했다는 조사가 가져오는 의미에 대해서 정부여당은 비정규직 법안 처리에 대해 심각히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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