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스러웠다’고 하면 결례이겠지만 그는 또한 ‘공무원답기’도 했다. ‘공무원’이 주무 현안 문제 이외의 것에 답변하는 인터뷰는 격에 맞지 않는다고 고사하기를 수차례, 기자의 입을 바짝 타게 하더니 인터뷰가 성사된 이후에 그는 누구보다 성실히 준비한 답변을 내놓았다. 간혹 예상 질문을 빗나가자 “법(미리 건넨 예상 질문)대로 하자”고 농반진반 답을 던졌지만 때로는 비보도를 전제로 깔끔하게 자신의 견해를 말해줬다. 예민한 주제였던 ‘비정규법’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과연 ‘근로기준의 달인’답게 노동계의 반박근거를 먼저, 일일이 언급하며 재반박을 했다.

선수 인터뷰 열한번째, 이번엔 '과천 선수'였다. 지난달 28일 하갑래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을 만났다.


“이제 베팅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의 상황판단부터 먼저 물었다. 과천에서 바라본 노사관계, 노정관계의 현실은 어떤지.
“그동안 노동운동은 분명 민주화와 약자보호, 경제발전에 기여해 왔다”고 운을 뗀 그는 “하지만 여전히 노사정 관계의 경쟁력은 낮고 심한 불균형 양상을 띤다”며 “대기업노조의 영향력은 큰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 이익 대변 기능은 적고, 그런데다 낮아지는 조직률, 국민과 사회로부터 거세지는 비판 등 노동운동에 대한 위기의식은 크다”고 한다.

그 위기의식을 부추기는 것은 또한 노동계의 ‘발목잡기식’ 투쟁 관행이라고도 했다. “근로시간 단축이나 비정규직보호법도 논의는 6~7년, 4~5년은 했다. 그런데 계속되는 노동계 반발 때문에 입법이 늦어졌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가 일찍 합의됐다면 지금은 20인이하 사업장에까지 적용됐을 것이고, 비정규법 역시 적어도 지금 환경노동위 통과 법안 수준이라도 일찍 시행됐더라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검증되고 어떤 부분이 노동자 보호에 소홀한 지 판단돼 재개정 논의를 할 수 있는 시점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계의) 시장현실 부정, 단계적이지 못한 접근 때문에 몇년간 허송세월한 느낌”이라며 “87년 이전 탄압국면, 즉 노동운동 한다는 것만으로 국민들이 정당성을 인정했던 ‘과거’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가 인정하든 안 하든, 혹자의 표현대로 못 하든, “특정그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어느 노조활동가의 지적처럼 서경석 목사 등이 울산까지 내려가 ‘현대차노조를 규탄’하는 집회를 연 것도 노조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기댄’ 측면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아닌가.

“그런 얘기들이 나온다. 대기업노조가 양보하면서 그 파이를 외부 노동시장으로 돌려서 비정규직 보호에 쓸 수는 없느냐 하는. 시간이 갈수록 그런 목소리는 많아진다. 노동계에 충분한 짐이다. 이제 답을 할 때가 됐다.” 그는 큰 ‘베팅’을 노동계에 주문하기도 했다.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한시적으로 동결하는 대신, 비정규직 정규직화, 고용확대 등을 요구하는 선언 같은 것 말이다. 물론 ‘노동문화’를 바꿔보자는 식의 선언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처방인지, 설사 그렇게 선언한다 한들 백짓장이라도 맞들어야 할 경영계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유도 뚜렷이 없으면서 기업이 힘들면 ‘노사관계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노동계는 무조건 ‘골치 아픈’ 집단이라는 이상한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정책에 대해 좀더 공세적일 필요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투쟁적? 평화적?…당연히 꼴찌로 나오지”

약력
1955년 출생
1979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제23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1994년 주 이란·중국대사관 노무관
1998년 노동부 고용정책실 고용정책과장
2000년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석사)
2001년 노사정위원회 운영국장
2002년 노동부 국제협력관, 고용정책심의관
2003년 동국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법학박사)
2005년 교육부(평생학습국장, 인적자원개발국장)
2006년 노동부 근로기준국장
그는 “참여(대화)는 하되 늘 방어기제로만 작동” 하는 경영계의 태도 변화도 함께 주문했다. 현장에서는 되도록 싼값으로 쉽게 노동력을 사용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노동문제에 지나치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등 떠밀리는 기분으로 소극적 참여를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툭하면 해외이전’을 거론하는 경영계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해외이전의 가장 큰 이유가 ‘시장개척’ 차원이겠지만 싼 임금을 찾거나 노사문제를 회피할 목적으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중국 하는데 중국 노동법을 자세히 보면 규제가 엄청 심하다. 지금까지 왜 문제가 안 됐냐면 투자를 유치하려고 법을 사문화시켜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차휴가를 줘야 한다고 법에 돼 있지만 주지 않아도 처벌을 안 했다. 하지만 조만간 사람이 지배하는 구조에서 법이 지배하는 구조로 분명 바뀔 것이다. 앞으로 노사분규도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중남미 예도 들었다. “나프타가 체결된 뒤 미국시장을 겨냥한 우리 기업들이 중남미로 진출했지만 미국 주문자들과 계약내용 안에는 ‘샤워시설을 갖추라’는 등 우리 노동법과는 비교가 안 되는 조항들이 있었다. 그거 안 지키면 물량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니까 막연히 밖으로 나가면 싼값에 쉽게 근로자 쓸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외국에 진출해서 성공했다는 기업, 많이 듣지 못했다.”

또한 노사관계 이야기만 나오면 경영계가 꺼내드는 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세계경쟁력 보고서인데, 얘기인즉슨 1995년 노사관계 순위는 25위였으나 2005년에는 60위로 조사대상 60개국 중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신선했다.

“그 순위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아느냐. 질문은 단 하나다. 기업들한테 ‘당신네 나라 노사관계는 투쟁적이라고 보느냐, 평화적이라고 보느냐’ 라고 묻는다. (문제가 생기면 노사관계 탓을 하는) 우리 기업들이 뭐라고 답했겠냐. 그런 게 취합되니까 꼴찌라고 나오는 거다.”

경영계가 “정서적 비판만 앞서 있는” 상황에서는 노사관계 발전 역시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아직도 노사관계는 정부가 풀어야 할 것으로 기대하지 말고 좀더 주도해가는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법제화 떠나 로드맵, 끝장 토론 해보자”

그렇다면 정부는? “노사관계에 대해 정부는 업보를 갖고 있다”던 그는, “특히 87년 이전 노조에 대한 감사권까지 갖고 있을 정도로 기본권 억제정책을 펴 왔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업보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는 아직도 노사관계가 경쟁력을 낮추는 주범이라는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고, ‘대화와 타협’ 또는 ‘법과 원칙’ 구호 아래 노동배제적, 노동통제적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는 “거꾸로 말하면 노사관계를 잘 다루면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니까 노사정 모두 노사관계 개선에 더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아쉬움도 없지 않다. “노동질서가 변해가는 상황에서 갈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아직 마련되지 못한 것 같아”서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나 “노사자율과 국제기준, 2가지 가치를 토대로 정리된 노사관계 로드맵이 잠자고 있어 안타깝다”던 그는, “법제화 여부를 떠나서 로드맵 개별 주제를 놓고 속 시원하게 끝장 토론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신들이 만들고서도 홍보를 제대로 못한 탓도 있지만 ‘잘 모르면서 비난만 앞서는’ 경향이 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한 노동계 관계자가 이번 정부 법안이 차별해소를 못하는 법이라고 하길래 차별시정을 위반하면 1억원 과태료가 있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더라.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상황에 별로 놀라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너무 흔한 일이어서일 것이다. 노사정 모두 자신에게만 유리한 부분을 강조하지 않고 본질에 더 천착해서 정책논의를 했으면 좋겠다.”

“비정규 활용은 넓히고 보호는 강화하고”

자, 이제 슬슬 본론에 가까웠다. ‘양극화’로 대변되는 노동시장 구조의 왜곡 문제, 어떤 접근법을 갖고 있을까. “이 정권이 풀어야 할 핵심과제가 양극화 해소다. 원인은 역시 양적인 비용절감 문제로만 접근하는 세계화 신자유주의인데,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문제나 고용안정성 등이 변수로 등장할 수 있다. 어서 정책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아직 정책적 대응은 지체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법안을 국회에 제출(2004년9월)한 지 벌써 1년8개월째 접어드는 노동부 입장에서는 ‘빨리 치고나간 뒤 다음 단계를 고민’ 해야 할 테지만 더디고 또 더디다. “예를 들어 자본의 거래관계에서 도급을 주든 파견을 쓰든 다 할 수 있지만 적법하고 공정한 테두리에서 해야 한다. 예컨대 말로만 도급이라 하고 사실상 지휘감독권을 원청업체가 다 행사하는 불법적 사내하청은 근절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아무 근거규정이 없어 (불법파견 노동자의 고용의제 등이) 법원에서 매번 지는 현행법을 보완해야 하는데, 그게 벌써 몇년째 안 되고 있으니….”

그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또 있다. 접근법의 문제다. 예를 들어 특수고용 보호방안에 대해서는 논의 초입에서부터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냐, 아니냐’ 하는 문제로만 접근되는 데 대한 아쉬움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어떤가. 공정거래법이나 약관법, 하도급법 등을 개정해 서면계약을 의무화 하는 등의 방식으로 적어도 학습지 목표강제 및 대납요구 금지, 골프장 부당한 출전제약 등을 명시하는 것부터. 일단 보호받을 수 있는 내용부터 얻어낸 뒤에 ‘그래도 부족하니 노동법상 보호방안에 대해 논의하자’고 하는 등의 단계적 접근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비정규 해법은 ‘활용기회는 넓혀주고 보호는 강화하자’는 것이다. 파견 등에서 보듯이 시장상황에 따라 업무형태가 너무 다양해서 일일이 법으로 규제할 수 없는 현실인 만큼 비정규직을 쓰는 것을 법으로 너무 제한할 필요 없이 법안의 핵심 포인트라고 그가 얘기하는 ‘차별금지’를 시장에 안착시키면 자연 비정규직 남용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정도면 노동계가 섭섭하지 않을 꺼야”

파견을 보자. 현행과 지금 국회 환경노동위를 통과한 파견법 개정안이 뭐가 다른지.

불법파견은 크게 △기간 초과 △허가받지 않은 업체 △절대 금지업종 △파견허용대상 아닌 업무 등 4가지 유형이다. 현행법은 이 가운데 2년 기간 초과인 경우에 대해 ‘고용의제’를 적용하고 있다.

당초 노동부는 나머지 유형에 대해서도 고용의제 돼야 한다고 치고 나갔지만 법원에서 판판히 깨졌다. ‘불법파견’일 경우 근로를 제공한 날(혹은 2년이 지난 날)로부터 사용사업주와 직접 고용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었지만, 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한 단지 ‘주장’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법 개정안에서는 4가지 모두의 경우 고용의무 해야 한다고 했다. 고용의제에 비해 고용의무가 근로자 보호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인정하지만 현행법과 비교할 때 (보호수준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또 이런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파견업체 노사 간 고용계약을 사용사업주-파견노동자 간 고용계약으로 ‘의제’ 하는 것이 사적계약의 자율을 보장한 자본주의 법 논리 상 적절한가 하는 점 말이다. “법 논리상으로는 고용의무가 맞다. 그리고 고용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때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내도록 돼 있다. 여기에다 불법파견에 대한 벌칙까지 확대, 강화하였기 때문에 노동계로서 섭섭하지 않을 꺼다.”

여기서 3천만원 이하 벌금이 ‘건별’ 부과냐 ‘인별’ 부과냐 하는 논란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9,234명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 현대차의 경우, 고용의무를 행하지 않았을 때 3천만원을 내느냐, 2,770억2천만원(3천만원 곱하기 9,234명)을 내느냐는 엄청 다른 문제이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그는 답변하지 않았는데, 만약 ‘건별’ 부과라 하더라도 9,234명의 불법파견 진정을 일일이 제기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한다면 ‘인별’ 부과의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노동부 판단이 무엇일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파견허용 업무에 대해서 그는 “현행법 조항에 ‘업무의 성질’이 추가로 들어갔는데, 대상업무를 확대하는 조항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당초 정부법안처럼 네거티브(일부만 제외하고 모두 허용하는 방식)도 아니고 ‘업무의 성질’이란 말 안에 노사의 의견을 구한다는 뜻이 포함됐기 때문에 우려할 수준의 확대라고 보긴 어렵다”고 한다.

“임금·직무체계 정립 없이 동노동임 어려워”

다음은 차별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명문화 해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에 대해 그는 임금체계, 직무체계 정립을 전제조건으로 언급했다. “상식적 기준에서 뭐가 차별인지 기준을 얼마든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독일이나 프랑스 사례를 찾고 있고, 인권위 차별기준이나 남녀고용평등법의 시스템도 보면서 계속 연구 중이다. 기준이나 지침을 만들어 강제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참조할 수 있도록 자료를 지금부터 축적해 나가려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직무평가도 제대로 안 돼 있는 상황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 해도 실효성이 거의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 한 우리 법은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가치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8조1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법이 제정된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이 조항 위반으로 제소돼 노동자가 구제된 적은 2003년에 단 1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법에서는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은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 등으로 한다”(8조2항)고 쓰고 있는데, 그는 “그만큼 동일가치노동이 뭔지를 따지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지금 노동부는 학자들에게 용역과제를 발주해 ‘임금체계와 직무체계 연구방안’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건 내년 1월1일부터 차별을 시정하라는 요구가 몰려들 텐데 그만큼 차별이 뭔지를 축적해 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두를 것이고, 올 하반기 두 달 가량은 각종 차별사례나 시정절차 등을 시뮬레이션 해 볼 것이다. 그 과정에 차별이라고 걸려드는 사례는 적지 않을 것이다. 노동부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비정규보호법이 유야무야 되는 꼴을 보는 건 자존심의 문제다. 그 부분은 강하게 치고 나갈 생각이다.”

지키기, 나누기, 채우기, 만들기

인터뷰 내내 그가 강조한 대목은 바로 ‘일자리’였다. ‘보호’와 적절히 배분되는.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이란 말에서나 고용탄성치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현실에서나 그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는 참여정부 인수위 시절, 대통령 보고자료 초안을 만들면서 일자리 5대 과제라 하여, 지키기, 나누기, 채우기, 만들기, 잔여적 단기적 일자리 등을 강조한 바 있다.

‘지키기’는 더이상 저부가가치 산업에 매달리지 말고 빨리 차세대 성장산업 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자리 창출은커녕 지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나누기’는 특히 주40시간제 시행과 함께 자발적인 사람을 대상으로 단시간 일자리를 만들어 나누자는 것이고, ‘채우기’는 한쪽에서 일손이 모자라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까지 쓰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에서는 청년실업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일손 모자라는 중소영세기업에 우리 아들을 보내도 될 만큼 매력적인 곳이 되도록 육성정책을 쓰자는 것이다.

‘만들기’는 서비스업이 거의 유일하다. 나머지 미스매치(mis-match)되는 영역은 노동부가 노사와 함께 고용안정시스템을 가동시켜서 줄여나가야 하고, 이 과정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공공근로나 단기적 일자리 창출 등의 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문은 넓혀두되 불합리한 차별적 대우를 없애고 또한 고용불안정성을 감안해 정규직에게는 없는 임금보상까지 주어지는 노동시장 구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또한 정부나 중앙단위 노사정 관계에서뿐 아니라 지역단위에서, 또한 업종단위로도 일자리, 비정규 차별해소 등을 위한 거버넌스(협치 協治)가 다양하게 형성되길 바란다.”


저서는 이뿐이 아니다. ‘노동법’, ‘외국인 고용과 근로관계’도 있고, ‘노동위원회 권리구제 제도의 운용실태와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석사), ‘외국인근로자 활용제도에 관한 입법론적 연구’(박사) 등 학위논문도 유명하다. 이같은 왕성한 저술활동은 “앉아서 하는 건 다 좋아한다”던 성격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그만큼 합리적인 ‘기준’을 정립해 노동행정을 펴야 한다는 그의 직업관이 반영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상사를 가리키는 4가지 단어가 있다.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똑게’(똑똑하지만 게으른), ‘멍부’(멍청한데 부지런한), ‘멍게’(멍청하면서도 게으른)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직원들이 가장 일하기 편한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똑게’이고, 가장 싫은 사람은 당연 ‘멍부’일 테다. 힘들지만 일을 배우기 가장 좋은 사람은 ‘똑부’임에 틀림없다.


그는 노사 관계자는 물론 직원들로부터도 좋은 평을 받고 있었다. 노사정위 경험을 제외하면 '집단적 노사관계' 업무를 맡은 적이 없어 다소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근로기준’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달인이고 권위를 남용하지도 않으면서도 대가 세며 소탈하면서도 일처리가 깔끔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는 똑부? 아니면 똑게?


“그저 안타깝지만, 조금은 무뎌진 듯한…”


지난 1979년 행시에 합격한 그는 출발이 노동부가 아니었다. 국방부에서 7년간 사무관 시절을 보낸 그는 우연한 기회에 노동부 발령을 받았는데, 근로기준에 대한 열정적 관심 역시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크리스천인 그는 다니던 교회에서 지역사회 공헌사업에 함께 나섰는데, 신자 중에 의사는 의료상담에, 변호사는 법률상담에 나설 때 그는 근로청소년 임대아파트에 살던 노동자들을 상대로 노동상담을 했다. 그가 현장에서 만난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의 삶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그는 “당시 최저임금, 각종 보험혜택, 근로시간 등등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일일이 상담했는데 법이 너무 안 지켜지는가 하면 심지어 사업주들도 말이 사장이지 근로자만큼이나 열악한 사람도 많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털어놨다. “딱 1주일 하고는 손놓겠더라.”


그게 80년대 말의 일인데, “지금도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의 실태는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그의 ‘아픔’이다. 근로기준 업무의 책임자로 비정규법에 이어 연소자 장애인 여성 등 ‘5대 취약계층’ 보호방안을 만들어 좀더 치밀하게, 좀더 정밀하게 보호방안을 강구하려 하는데,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밤이 이슥해질 즈음, 2시간여 인터뷰를 마치고 노동부가 위치한 5동 정문 앞으로 나오자 인터뷰를 위해 청사에 들어설 때도 있던 코오롱 정리해고자들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섰다.


물었다.


“출퇴근 때마다 (시위자들을) 보면 어떤 생각 듭니까?”


“그저 안타깝지만…. 글쎄 조금은 내 스스로가 무뎌진 느낌도 있고…. 빨리 해결은 해야 하는데…. 조만간 중노위 판정이 날 테니 일단은 지켜봅시다.”


마주하고 있는 코오롱 본사처럼 과천청사의 봄은, 아직은 더뎠다.

<편집자주> 무릇 ‘세상의 모든 일’은 지도자에 의해서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꿔내는 더 큰 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어디를 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도자의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지면에서는 한국의 노사관계, 노정관계를 주도하는 ‘지도자’, 이른바 ‘선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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