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가 3월23일 각 시군구에 시달한 “불법단체 합법노조 전환(자진탈퇴) 추진지침”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위 지침의 불법단체 규정은 부당하다. 노동조합의 설립신고는 노동조합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며 사용자가 좌지우지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편, 학계의 통설은 노동조합 설립신고제도는 노동조합에게 노동쟁의조정신청·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의 자격 내지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설정된 것에 불과하므로 설립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여 ‘노동조합으로서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설립신고 여부는 노조가 자주적으로 결정할 문제

대법원 역시 “노동조합법 상의 노동조합이 아닌 근로자의 단결체는 무조건 단체교섭권 등이 없다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여 법외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있고(대법원 1997. 2. 11. 선고 96누2125 판결), 한편 과거 노동조합이 노동관계 법령을 위반할 경우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의 해산을 명령할 수 있었던 독재 시절조차도 “노동조합 설립총회 참석자 34명 중에 조합원 무자격자 2명이 끼어 있었다 하더라도 이것만을 이유로 그 노동조합의 해산을 명하는 것은 재량권의 남용이다”라고 판시하며, 법외노조의 단결권을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1971. 3. 30. 선고 71누9 판결).

다시 말하면, 통설과 판례에 따를 때 설립신고를 하지 않거나 소극적 요건(결격 요건)에 해당하는 노동조합이라고 하여 바로 불법단체가 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적격 요건을 갖추어 설립신고를 마친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7조 제1항에 따라 행사할 수 있는 쟁의조정신청권·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권 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에 불과하고, 이러한 경우를 법의 일정한 보호 범위 밖에 있다는 점에서 ‘법외노조’라고 부르는 것이다.

10년 전보다 후퇴한 정부 인식

1995년 11월에 결성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1997년 3월 연합단체의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될 때까지 1년여 동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소정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지만 당시 정부는 민주노총을 불법단체로 매도하지 않았다.

노사관계의 합리화를 위해선 대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기에 정부 역시 민주노총을 노사관계의 파트너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정자치부의 법외노조인 공무원노조에 대한 불법단체 운운은 과연 정부에게 합리적 노사관계를 형성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사용자인 정부는 노동조합의 해산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 노동조합의 관계 법령 결격 여부 및 노동조합의 지위에 대한 해석 권한은 노동위원회와 법원에 있을 뿐이며, 사용자가 직접 노동조합에게 ‘불법단체 운운’하며 해산할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공무원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의 지위에 있는 행정자치부가, 직접적으로 노동조합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해산을 요구하며 이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명백히 월권인 것이다.

정부는 '해산'요구는 명백한 '월권'

세째, ‘합법노조 전환’, ‘자진탈퇴’ 추진 및 징계조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공무원노조특별법 제17조 제2항, 제3항이 준용하고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7조 제2항은 법외노조가 쟁의조정신청권·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권 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제81조 제1호·제2호 및 제5호에 의한 근로자 보호를 부인하는 취지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하고 있다.

따라서 공무원노조특별법이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의 효력에 대하여 과도한 제약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무원노조가 사용자의 부당한 단체교섭 거부(제81조 제3호)에 대한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권 등의 보호를 포기하면서까지 법외노조의 길을 선택하였다고 하더라도, 행정자치부의 위 합법노조 전환(자진탈퇴) 및 징계 지침은 ‘근로자가 법외노조에 가입 또는 가입하려고 하였거나 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하였거나 기타 노동조합의 업무를 위한 정당한 행위를 한 것을 이유로 그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제81조 제1호), 근로자가 어느 법외노조에 가입하지 아니할 것 또는 탈퇴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행위(제81조 제2호), 근로자가 정당한 법외노조의 행위에 참가한 것을 이유로 그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제81조 제5호)’로서 여전히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고 이 경우 당해 근로자는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부당노동행위 하나?

나아가 위 지침이 설립신고를 강제하거나, 총회·대의원대회 등을 통해 자진탈퇴 또는 합법노조 전환을 결의하도록 추진한다거나 심지어 지도부 사퇴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모두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제81조 제4호)’에 해당하는 바 이 때 법외노조가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위 행위가 부당노동행위라는 결론에는 변화가 없으며, 따라서 법외노조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넷째, 공무원 개별 면담·가정방문·전화 등을 통해 본인 및 가족을 설득하겠다는 것은 과도한 인권침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헌법 제19조 양심의 자유란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받지 않는 것을 포함하며 따라서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인가 혹은 탈퇴할 것인가는 공무원 노동자 스스로 결정할 양심의 문제이며 기본적 인권에 해당한다. 그런데 ‘설득 전담반’까지 구성하여 개별 면담을 진행하면서까지 탈퇴를 강요하겠다는 것은 국가권력이 인간 존엄의 근간인 양심의 자유까지 침해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가족까지 방문하여 노조탈퇴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과거 독재 시절, 사용자들이 민주노조 건설을 추진하는 노동자들의 가족들을 찾아가 온갖 협박을 하고 불이익을 주며 노조를 탄압했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는 지금 역사의 시계를 20년 전으로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는바, 위와 같은 발상은 명백한 인권 침해요 공권력의 남용이라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가정방문?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려려는가

다섯째, 위 지침은 지방자치제에 대한 월권적 침해를 버젓이 행하고 있다. 지방공무원의 임용권자는 시·군·구청장이고, 공무원노조특별법 상 노동조합의 최소설립단위는 시·군·구이며, 시·군·구청장은 단위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사용자로서의 권한을 갖고 있는 바 따라서 공무원 노사관계에 관한 시·군·구청장의 사무는 자치단체의 고유사무로서 행정자치부가 지침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행정자치부 장관이 기관평가 시 페널티 부여 등 행·재정적 불이익 조치를 운운하며 자치단체에게 자진탈퇴 실적을 강요하는 것은 권한을 일탈·남용한 행위이며, 헌법재판소법 제62조 제2호 소정의 권한쟁의심판의 사유가 된다고 할 것이다. 정부 고위관료들은 언제쯤에나 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중앙집권의 꿈에서 깨어날 것인가?

행정자치부는 부당한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지방자치제를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정부는 부당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려 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 제4조는 “정보 주체의 동의가 있거나 다른 법률에 수집대상 개인정보가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아닌 한 “공공기관의 장은 사상·신조 등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현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수집하여서는 아니된다”, 동법 제11조는 “개인정보의 처리를 행하는 공공기관의 직원이나 직원이었던 자 또는 공공기관으로부터 개인정보의 처리업무를 위탁받아 그 업무에 종사하거나 종사하였던 자는 직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 또는 권한 없이 처리하거나 타인의 이용에 제공하는 등 부당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동법 제23조 제2항은 제11조 위반의 경우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노조탄압, 인권 침해 등 부당한 목적을 위하여 개인정보를 수집해서는 안 되며, 업무상 필요에 의하여 기왕에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라고 하더라도 이를 노조탄압, 인권 침해 등 부당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위 지침은 각 시군구에 파면·해임자를 포함하여 지부 간부급 이상의 공무원노조 지도부 명단을 제출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오히려 나서서 인권을 침해하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인권침해 하겠다는 발상을 어찌 이해할까

정부는 39만 가입 대상자 중 14만명이 가입하고 있는 공무원노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한 채 공무원 노사관계를 갈등과 투쟁으로 내몰 수밖에 없는 극한 방식의 지침을 시달할 것이 아니라, 위 지침이 오히려 ‘불법을 조장’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공무원 노동자들이 보다 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공무원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집단이기주의가 아닌 ‘공직사회 개혁, 부정부패 척결 등’ 진정 국민들이 원하는 활동을 하는 공적 단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공무원노조특별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고, 공무원노조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상호 합리적인 주장과 설득을 통해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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