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피복회사 여성노동자 146명이 불에 타 죽은 끔찍한 사건을 계기로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노동3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면서 투쟁에 나선 지 98년이 지났다. 그러나 대한민국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 노동3권 보장 요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나이 37살,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사진>은 14년 전인 23살에 서울 구로공단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비록 적은 월급이긴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로 갑을전자에서 8년간 여성노동자의 삶을 살아 왔다.


지난해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기륭전자에서 3년여 파견노동자로 근무했던 소연씨가 동료들은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회사쪽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소연씨들에게 돌아온 것은 핸드폰 문자메세지로 날아온 ‘해고통보’였다.

“정규직으로 갑을전자에 있을 때도 열악한 노동환경과 적은 임금으로 살아 왔지만 그래도 노조가 있었고 고용도 보장돼 있었어요. 물론 회사가 파산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결혼도 하고 한 가정의 아내로, 어머니로 살고 있지 않았을까요….”

헛헛한 웃음을 짓는 소연씨에게 기륭전자는 악몽이었다. 하루 12시간 근무를 해도 최저임금조차 손에 쥐어지지 않는 생활이 반복됐고, 하루아침에 함께 일하던 동료는 회사쪽 관리자들의 전화 한 통화로 해고되기 일쑤였다. 화장실 가는 것도, 옆자리 동료와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눈칫밥 3년,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는 ‘꿈’에 불과했다.

더욱이 기륭전자는 노동부로부터 지난해 8월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비정규직인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함에도 회사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업무방해를 이유한 고소와 13억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 청구로 화답했다. 소연씨 역시 이로 인해 3개월 가까이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끔찍해요. 단지 3개월 근로계약이 부당하다고 안정되게 일할 수 있기를 요구했을 뿐이었는데. 인간보다 못한 생활에 기분좋게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법에 보장된 최저임금과 노조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에도 회사쪽은 우리와 마주앉아 대화를 하기는커녕 용역직원과 회사 관리자들을 동원해 폭력으로 일관했어요.”

98주년 세계 여성의 날을 며칠 앞두고 기륭전자 앞에서 200여일간 천막농성을 벌였던 이들의 농성장이 용역직원과 회사쪽 관리자들로 인해 또다시 훼손됐다.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55일간 공장점거농성을 벌였을 때도 회사는 이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었고 경찰 또한 공권력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공장 밖으로 내쫓았다. 그뒤로 공장 앞에서 계속된 이들의 천막농성장은 오랜 농성기간 만큼 수차례 철거되기를 반복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입니다. 특히 구로공단에서는 이들을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로 고용하고 있어서 이직도 쉽고 사실상 노조를 설립하다 하더라도 기륭전자처럼 사쪽의 탄압이 계속되면 ‘투쟁’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여전히 천막농성장을 ‘사수’하고 기륭전자를 상대로 한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세계 여성의 날 전날인 7일에도 이들 조합원들은 금속노조의 비정규직 4사 상경투쟁에 결합했고, 또 지난 6일 있었던 회사쪽의 폭력을 방관했던 경찰을 항의하는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소연씨 역시 지난 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아세아시멘트본사 앞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이날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집회에 결합하느라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냈다.

“여행 다니는 거 참 좋아하는데 구로공단에서 전전하면서 그 흔한 산행 한번 못했습니다. 조합원들과 약속했어요. 올해는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가서 함께 금강산 산행하자고 말이에요. 투쟁이 길어질수록 많이 힘들고 지치지만, 여성노동자들이 여성노동자로서의 삶을 보장받는 그날까지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지난 6일 폭행으로 인해 깨진 안경을 끼고 있던 그였지만,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다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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