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세상의 모든 일’은 지도자에 의해서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꿔내는 더 큰 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어디를 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도자의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지면에서는 격주로 한국의 노사관계, 노정관계를 주도하는 ‘지도자’, 이른바 ‘선수’를 만난다. <편집자주>



아무래도 민주노총 내부 갈등 문제로부터 말문을 터야 할 것 같았다. <선수 인터뷰> 여덟번째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과의 만남은 당초 임시대의원대회(2월10일) 전으로 약속돼 있었다. 그런데 대회 준비를 이유로 미뤄졌다가, 이 대회가 무산되고 21일 ‘또’ 대회가 잡혔기 때문에 어차피 ‘21일 대회’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대회마저 무산됐다면 2월24일 인터뷰는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얘기될 수 있다. 하나는 민주노총 출범 때까지는 전체 운동의 대의와 과제가 선명했는데 출범 이후의 대안, 즉 산별노조, 정치세력화 등에서 상이 분명치 않았고, 다양한 이견을 조율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둘째는 대중운동과 더불어 성장한 정파운동이 폐해를 너무 많이 드러냈고, 이제는 내부 민주주의가 훼손될 정도로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인터뷰 시작부터 담뱃갑으로 자주 손이 간다. 내뿜는 담배연기만큼이나 그가 고민하는 노동운동 진영 내부는 뿌옇고 무겁다.

“87년 이후 기업별노조 중심의 전투적 싸움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물질적 실리를 주고 그걸 통해 대표성을 부여받았는데 96~97년을 정점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기업별노조가 더이상 조합원들에게 실리를 주기도 어렵고, 전사회적인 정당성을 갖기도 어려운 구조가 됐다. 또한 제도개선 과제를 논의할 공간이 생겼지만 그 공간에서 어떤 룰을 갖고 움직일지 고민이 정리되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의 고민은, 과거의 낡은 틀은 없어졌지만 관행과 의식은 여전하고, ‘대안 제시’를 요구받지만 대안을 만들기엔 실력이 부족한, 이것이 민주노총의 딜레마라는 것이다.

“일례로 4기(이수호) 집행부가 ‘총파업을 남발하지 않겠다, 준비된 총파업을 하겠다’고 했는데, 지난 한해만도 수차례 파업을 했고 민주노총 주도로 수십차례 집회를 열었다. 이는 지도부 의지와 상관없이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말도 되지만, 자기주장을 관철시켜 낼 만큼 지도부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그렇게까지 반대할 엄청난 문제였던가

약력
1957년 출생
1980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8년 전국병원노조협의회 정책국장, 조직국장 등
1995년 민주노총 총무기획국장, 고용안정센터 소장, 정책기획실장 등
2000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2003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원장
2004년 민주노총 정책실장(현),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 위원
그런데 민주노총의 그 딜레마를 ‘오히려’ 부추기는 것이 정파갈등이고, 건강하지 못한 방식의 내부 투쟁이다. 최근까지의 민주노총 모습은 20세기 최고의 맑스주의 역사학자로 불리는 에릭 홉스봄이 진단했던 1890년대 유럽 노동운동의 상황과도 흡사하다. 홉스봄의 분석은 이렇다. “서로 다른 정치적 지도부 간의 격렬한 대립과 투쟁에 대해 노동자 대중은 ‘그들에게 왜 지금 이 시기에 그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대중과 지도부 간의 분리의 시작이었다. 그들 - 정파운동의 지도부들 - 은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잊으려 하지 않았고, (미래로부터)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았다. 이것이 (좌파)보수주의의 시작이었다.”

민주노총 역시 좌파보수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그 역시도 민주노총 최대(?) 파인 ‘국민파’라는 딱지를 달고 있기도 한데, 갈등이 빚어지는 원인과 갈등을 치유하는 방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사회적 교섭 방침’을 둘러싼 논란을 예로 들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정파든 사업추진 과정에서 일정하게 오류를 가질 수 있다. 그걸 대중중심의 조직원리로 풀어내야 하는데, 우린 서로에게 딱지 붙이기에만 바쁘다. 지난해 대의원대회에서와 같이 (사회적 교섭 관련 안건이) 그렇게 극렬하게 반대할 정도로 엄청난 문제였던가.”

사회적 교섭과 관련, 이미 민주노총은 지그재그의 과정을 밟아왔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노사정위원회, 국회 주도의 협상 등 사회적 대화기구(틀)에 참여했다가 탈퇴했다가 또다시 참여했다가…. 비단 ‘국민파’ 집행부 때만 그랬던 건 아니다. '중앙파'(단병호 위원장)나 '현장파'(이갑용 위원장) 시절에도 그랬다.

“왜 사회적 교섭을 하나의 전술로 이해하지 않고 ‘이데올로기’로만 사고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제도적 틀 속에 민주노총이 존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교섭’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교섭 얘기만 꺼내면 ‘특정한 어떤 주의’라고 매도되기 때문에 전술의 발전을 꾀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에게 1998년 정리해고의 아픔이 유전자에 각인된 듯한 상처이듯이 ‘사회적 교섭’이라 불리는 것들에 대한 민주노총의 상처도 깊다. 98년 2월 합의안이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자 지도부는 사퇴해야 했고, 이미 노사관계개혁위 합의사항인 정치활동 허용이나 교원·공무원 단결권 허용과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맞교환한 것은 이익보다 손실이 컸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정권과 자본의 합리화) 도구로 전락했다, 끌려 다니기만 했다는 등의 ‘들러리론’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집회나 파업 같은 ‘맨땅에 헤딩’ 하는 방식만을 통해서는 요구안이 사회적으로 쟁점화가 안 된다. 사회적 교섭을 통해 쟁점을 널리 알려내고, 그걸 통해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물론 그 역시도 사회적 교섭을 시도했던 역대 정부가 노조를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한치의 환상’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까지 했다.

“아직까지 노동운동이 뭔가 일이 되게 할 수 있는 힘은 없지만 (안 되게) 걸고넘어지는 힘은 있다. 그러니까 권력과 자본이 처음에는 완전 박멸구도로 갔다가 박멸이 안 되니까 일정하게 제도적으로 순치시키려는 형태를 취했던 것이다. 형식적으로 대화는 하지만 순치시키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왜 ‘사회적 교섭’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걸까? “기업 내에서도 노사가 교섭을 하듯이 법제도 개선을 위한 중앙 단위의 교섭은 너무도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장외투쟁만 했던 건 노동이 완전히 배제돼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 그런 장은 열려 있다. 내셔널센터인 민주노총으로서는 1,500만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제도개선 과제를 관철하기 위한 다양한, 중층적 대화의 창구가 필요하다.”

결국 대화로 표현되든 교섭으로 표현되든 다양한 창구는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 논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투쟁의 힘’만큼인 것이고 교섭을 병행하지 않고 투쟁만으로 요구를 관철시키기는 어렵다, 는 말이다.


왜, 제도개선 투쟁에선 ‘양보’가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사회적 교섭에 나서는 민주노총의 실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제도개선 투쟁의 상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정확치 않다. 여전히 장외투쟁 관행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그가 말하는 장외투쟁 관행은 ‘민중봉기’식의 사고, 정치권력 및 총자본을 상대하는 싸움에선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사고를 말한다. 그는 “사업장 임단협에서는 일정한 수정안도 내고, 양보도 하는데 제도개선 과제에 대해서는 양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최상 수준의 법을 만든다는 건 우리가 권력을 잡았을 때 가능한 일 아닌가. 처음에 낸 요구사항을 벗어나면 개량이고 타협이라고 비판하는 건 좀 심하다”고 말했다. 그런 예가 이를 테면 이번 비정규법 논의 과정에서 나왔던 기간제 사유제한 관련 수정안이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이미 국회에 제출한 비정규보호법안의 내용 중에는 기간제 사용이 가능한 사유를 출산·육아 또는 질병·부상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결원을 대체하는 경우, 계절적 사업의 경우 등 4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 논의과정에서 단 의원이 10가지 항목을 명시한 수정안을 내자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사유제한을 더 엄격하게 하지는 못할망정 사유를 확대했다며 비판과 격론이 일었다. 특히 10번 항목인 ‘그밖에 일시적·임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사실상 ‘다 퍼주기’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그런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놓쳤던 지점이 있다. 그 10번 항목은 당초 단 의원이 낸 법안에도 똑같이 명시돼 있었다. 정부가 비정규법(2004년 9월)을 내기도 전에 단 의원 법안이 제출됐음에도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이미 사유제한을 10개로 확대한 것은 ‘원칙을 벗어난 것’이라고 문제제기하는 걸로 정리가 됐기 때문에 내가 더 말하기가 그렇긴 한데…, 어쨌든 새로 들어간 ‘6가지 사유’는 단 의원 발의법안에서 추상적으로 명시된 4번 항목을 좀더 구체화시켜 늘어놓은 것이다. 사실 4번 항목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아는 중집위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문제를 좀더 진지하게 깊이 논의했어야 했는데, 여전히 대충 기존의 관행대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정리하고) 끝나버렸다.”

이런 문제를 미리 공론화시켜 ‘쓸데없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는 없었을까. 현장투쟁이나 현안 문제에 바쁜 노조 활동가들이 비정규법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일일이 숙지하긴 쉽지 않을 터, 민주노총 정책실의 역할이 그런 건 아니었을까.

“지금 총연맹 정책실 인력이 산업안전까지 포함해서 6명이다. 출범초기부터 (인원수의) 변화가 없다. 총연맹에 요구되는 정책을 포괄할 수 있는 구조라 보기 어렵다. 제도개선, 산업정책, 노동시장, 직업훈련 등 해야 할 일들은 산적해 있는데 말이다. 어떻게 보면 지도부의 의중도 바뀌지 않았다는 건데, 실제 현장의 투쟁을 받아 안는 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도 노동의 시민권이 현장 단위에서 획득되지 않았기 때문일 텐데….”

산별 재편도 방해, 기업별도 무력화

말끝이 그리 명쾌하진 않다. 현재 발 디딘 곳과 앞으로 가야 할 곳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갈 길’은 ‘가야’ 하지 않는가. 2006년 노사관계, 노동정책 핵심 과제로 얘기를 옮겨갔다.

“가장 분명하게는 특수고용노동자 보호방안을 포함한 비정규법과 로드맵 문제다. 정부는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기존 낡은 틀을 신자유주의식으로 새롭게 재편하려 하고 있다. 올해의 시도는 그 완성판을 만들기 위함이다.”

인터뷰를 한 것은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비정규법이 처리되기 사흘 전이지만 그는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정책적인 문제로는 우리 손을 떠난 문제”라며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위해, 정규직화를 위해, 차별해소를 위해 실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구호는 남발했지만 구호를 실현하기 위한 단계나 내용을 채우는 데는 실패한 것 아닌가” 하는 자문 끝에 나온 답이었다.

로드맵 또한 만만치 않은 산이다. 그는 “산별노조 재편도 방해하면서 기업별노조를 무력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혹평했다. 복수노조의 교섭창구 사업(장) 단위로 제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물론 공익사업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겠다든가, 최소업무범위를 규정하겠다든가, 하는 내용은 기존 노조를 옥죄는 ‘수단’일 뿐이라는 평가다.

교섭창구와 관련, “무조건 자율교섭에 맡겨야 한다”던 그에게 “자율적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지 못할 경우 더 큰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겠냐”고 다시 물었더니, “앞으로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소수화 될 수도 있는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교섭구조의 문제에서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최소화시키고 노조의 자율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전임자 임금 역시도 이미 법에 ‘금지’가 명시돼 있는 상황에서 ‘노사자율’이 달성 가능한 목표냐고 묻자 “다른 식의 편법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라고 강조한다.

또 하나의 쟁점은 공무원이다. 이미 지난 1월28일부터 시행된 공무원노조특별법 상 ‘법외노조’라는 이유로 곳곳에서 탄압과 저항이 물고 물리고 있다.

“공무원노조가 법외노조로 남게 된 것은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다. 하나의 권리인 노동3권을 분리시킨 것도 모자라 노조 가입범위도 지나치게 좁혀버렸다. 특별법에 따르면 현재 노조간부 상당수가 노조활동을 할 수 없는 대상이다. 결국 말도 안 되는 누더기 법을 통과시킴으로써 공무원노조는 상당기간 법외노조로 남으면서 투쟁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래서 민주노총 정책실장인 그는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공식 가입하게 되면 최소한 공무원노조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법 재개정을 위해 더욱 부산하게 움직일 생각이다.

정부 노동시장 정책, 출발부터가 틀렸다

‘양극화’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구조적 문제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정부는 덴마크나 네덜란드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유연안정성’만을 계속 내세우고 있다. 그는 “현실 진단부터가 잘못돼 있다. 노동시장 내 비정규직이 너무 남용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제어장치를 마련하는 것부터가 보호의 시발점인데, 정부는 그 부분은 눈 감고 있다”고 지적한다.

차별해소를 위한 정책도 취약하다고 덧붙인다. “비정규직의 4대 보험 가입률이 20~30%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보다는 더 직접적인 차별해소 정책인 최저임금제를 더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회안전망이라는 사후보장책도 중요하지만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해소하는 가장 유력하고 강력한 제도인 최저임금을, 노동자 평균임금의 50%까지만이라도 올리면 어느 정도 차별이 해소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저출산 문제와 함께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는 그 역시도 뚜렷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다만 예전 같으면 퇴직 후 10여년을 보장한다는 개념이었던 국민연금을 앞으로 20년, 30년 보장책으로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최근 유행하듯 ‘이모작’, ‘삼모작’(예전에는 평생 한 직업만 가졌으나 이제는 2개, 또는 3개의 직업을 갖는다는 뜻) 등 재빠르게 변하는 산업변화 속도에 따른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어떻게 구상할 것인지, 이런 과정에서 노조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다급함만을 던져준다.

2시간여 인터뷰가 끝날 즈음, 담배꽁초로 수북해진 재떨이만큼이나 그가 안고 가야 할, 그가 중심이 돼 내놔야 할 민주노총의 정책적 과제도 산적하다.

고민 많은 그에게 한 산별연맹(노조) 관계자는 이렇게 주문하기도 했다. “산별교섭에서 산업정책과 노동시장, 노사관계는 핵심 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기업 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노사관계 영역에만 치중돼 있다. 산업정책 개입력을 키워야 하지만 산별노조만의 힘으로는 벅찬 측면도 있다. 민주노총 정책실이 중심이 돼서 각 산업별로 네트워킹을 형성, 노동운동의 실력을 키우는데 좀더 노력을 해 주길 바란다.”

‘지도부’ 아닌 ‘노동자 대중’ 바라봐야…리영희 선생에게서 얻는 성찰

그에 대한 주변의 평은 대체로 비슷하다. 화려하거나 튀지 않으면서도 큰일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 사람관계나 업무관계에서 잡음이 없는 사람…. 또한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성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평도 있다. 그래서인가, 그는 인터뷰 중에도 ‘실사구시’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지난해 4월 비정규법 협상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한국노총과 공조를 위해서는 공동요구안을 만들어야 했는데, 당시까지 파견법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은 ‘폐지’였다. ‘개정’이라는 한국노총과 달랐다. “물론 (민주노총) 내부적으로도 얘길 했겠지만 김 실장이 현실여건을 감안, ‘폐지’라는 당초 민주노총 방침을 철회했기 때문에 공동요구안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노총 한 관계자의 말이다. 여전히 ‘파견법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 보면 ‘개량’이고 ‘타협’이겠지만, 노동시장의 현실과 그 현실을 개선시켜낼 만큼의 노동운동의 힘 등 여러가지를 고려한 제도개선 투쟁의 전술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발을 디딘 것은 지난 88년. 졸업한 뒤 노동현장이나 상담소 등에서 일을 했던 그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운동의 주체인 노동자들의 조직에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88년 당시 전국병원노조협의회(병노협·지금의 보건의료노조)를 만들고 정책과 조직 부문에서 일을 했다. 친동생인 김유미 전 병원노련 위원장 등과 함께 그는 병원노동운동의 1세대로 꼽히기도 한다.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 넘어서


그렇게 20년의 시간이 지났다. ‘베테랑’이 된 만큼 고민도 많다. ‘대중의 성장’보다 ‘특정 지도부’를 바라보고 진행되는 노동운동, 스스로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정도로 심각한 내부 정파갈등, 세상은 변해 가는데 여전히 발목을 잡는 낡은 관행…. 최근 전노협 시절부터 민주노총까지 중앙조직에 몸담았던 지근거리의 한 동료가 노동운동판을 떠나는 것을 보며 스스로가 “나도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그래서 그의 손에 잡힌 책이 리영희 교수의 ‘대화’이다.


“혁명에 대한 낙관성을 가졌던 리 교수가 나중에 사회주의도 무너지고 하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고민하면서 얘길 한다. 맛깔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문체로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질타하더라. 지금 힘이 부치니까 그런 글이 더 마음에 다가왔던 것 같은데 ‘노동운동’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이 ‘선(善)’이라는, 그런 정당성 부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우리 내부에 ‘비판의 칼날’을 먼저 들이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참을 끊었다 다시 이었다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아직 겨울의 찬바람이 섞인 쉰 소리가 나는 듯도 하다. 그래도 봄이다. 봄은 희망이다. “날이 풀리면 그동안 추워서 중단했던 자전거 타기를 할 생각”인 그에게도, 그가 몸담고 있는 노동운동 진영에도, ‘봄기운’이 완연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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