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본격적인 싸움을 벌인 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유명 영화배우들의 1인시위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제 그것도 뒷심이 딸릴 때가 됐다. 스크린쿼터 사수에서 시작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의 ‘본 대오’가 등장할 시점이 지났지만, 아직 대열은 조직되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스크린쿼터 투쟁을 이끌어 오고 있는 이은 집행위원장은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한 영화인들의 싸움이 반FTA 운동의 일부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공동행동이 필요할지, 어떤 수위가 적당할지, 노동자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에 대해선 속 시원히 말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을까. “그건 노동자들이 말해야 할 부분”이라는, 연대할 상대에 대한 배려였을까, 아니면 타박이었을까. 이은 집행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인터뷰는 27일 영화제작사 '강제규&명필름' 대표이사실에서 한시간 동안 진행됐다.


-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발표된 지 한달이 지났다.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발표하기 전날 밤에 정부 관계자에게 소식을 접했다. 정부의 급작스런 발표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방침을 철회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모여서 몇가지 원칙을 만들고 싸우기 시작한 게 한달이다.”

- 초반 여러 배우들이 1인시위에 등장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제 그것만으로는 어려운 때 인 것 같다. 그 다음 방향은 무엇인가.
“한미 FTA 자체는 통상협정이지만,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미래의 운명이 좌지우지 된다. 영화계가 먼저 이번 사안을 먼저 내걸고 싸우면서 사람들에게 알렸다. 영화계는 스크린쿼터 저지 투쟁을 하면서, 축소 방침의 원인이 됐던 한미 FTA가 체결돼선 안 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러나 여러 대중조직들, 노동자, 농민, 전교조, 방송, 음반 등 여러 분야의 역량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의 근본적인 희망은 스크린쿼터 축소를 막는 것이다. 그 전제가 되는 한미 FTA 저지를 통해 스크린쿼터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영화계만의 싸움이 아니다. 오는 4월 이후에는 노동자, 농민, 교육계, 의료계, 법조계 등이 함께 하는 싸움을 만들어야 하고, 영화계는 그 일부가 돼서 싸워야 한다고 본다. FTA 저지를 위한 한국사회 민주적 역량이 총 결집을 해야 한다. 협상 시한 1년 동안 버티는 싸움이 아니라 초기에 신속하게 결집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3월 한달이면 반FTA 전선 결집될 것"

- 지루하고 어려운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 경제 관료들의 기본적 생각은 전자제품 등 몇가지 물건을 더 팔기 위해, 다른 분야를 희생하자는 것 아닌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협상은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본다. 더구나 협상시한의 뒤가 막혀 있는 상황(협상 시한은 2007년 6월까지다. 정부간에는 3월 안에 협상 타결을 해야 한다.)이다. 5월1일 협상 개시 이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본다. 각 분야가 이 문제의 심각한 본질을 파악하고, 심각한 정도로 싸워야 하는 싸움이다. 그러나 노동계도 민주노동당도 관련된 준비가 잘 안 돼 있는 것 같다. 경제관료들이 집요하게 미국과 협상해 뭔가를 따내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수 있다.”

- 아직 민주노총의 관련 방침은 ‘선언적 반대’ 이상의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문제의식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선거도 막 끝났고,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신임 조준호 위원장께선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주노총이 광범위한 조직이기 때문에, 전 조합원에게 교육이 이뤄지고, 피부로 체감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그것이 3월 한달 정도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농은 일찍부터 움직이고 있다. 3월 한달이면 반FTA 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할 준비가 될 것이라고 본다.”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발표한 직접적인 원인이 한미 FTA다. 영화인들은 이번 사안의 예봉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한미 FTA와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는 하나의 사안으로 묶여 있지 않다. 또한 영화계는 통상개방의 장벽을 허용하고 있는 ‘문화다양성협약’을 한 축의 명분과 우군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들의 탓은 아니지만 일단, 어디가 전선인지 불분명하다. 신자유주의 ‘본래적 목표’인 고용의 문제와 노동의 질의 문제는 아직 사회적으로 제기된 바 없다.

“일단 스크린쿼터 투쟁 자체로 FTA 전전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정확한 인식인지부터 볼 필요가 있다. FTA 전선은 아직 없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형성해야 될 일이다.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축소의 전제인 한미 FTA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것을 우리 사회 총역량이 결집된 전선이라고 볼 수 없다. 이제 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영화계도 그 전선의 한 역량으로 붙어서 싸워야 한다고 본다.”

이어진 말이다.

“나도 영화만 하다 이제 막 FTA의 심각성을 느끼는 단계다. 노동문제를 두고 어떤 문제가 있다, 없다고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 확신하는 것은 노동계도, 농민도 이 문제를 두고 논의할 시간과 절차,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과 교육, 의료 문제를 두고 적어도 1년간은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정부는 그 절차를 생략하고 가고 있다. 2년 후면 그만둘 대통령의 독선 때문에 국민들이 엄청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두고 4천만 국민 일반이 싸울 수 있나. 그런 만큼 민주노총이든, 전교조든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 노무현 정부의 초대 문화부 장관이 영화계 인사였다.
“영화인 일반의 실망감은 크다. 이 정부의 건강성을 믿고 지지했던 사람들의 실망은 크다.”

- 노동자, 농민, 영화인 모두에게 FTA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어떻게 접점을 찾아야 할지도 관건이다.
“노동운동을 통해 배우고 싶다.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분야에 대해 뭐라 방향을 말하기 어렵다. 노동운동이 오히려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동병상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정서적으로 느낀 수준이다. 기회가 되면 지난 ‘쌀과 영화’와 같은 집회처럼, ‘노동과 영화’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동을 해 나가야 할 행동의 수위가 어느 정도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미 FTA가 가져다 줄 여러가지를 함께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권리를 주장해야 하고, 나서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운동 힘 없으면, 사회도 힘 없어"

잘 알려진대로, 이은 집행위원장은 영화 <파업전야>의 감독이었다. 여러 노동자들과 젊은 청년들의 심금을 울렸던 <파업전야>의 감독은, 그 이후 ‘노동계’와 다른 접점을 찾으며 살아오진 않았다. 15년 전 그가 그렸던 노동자들은, 이제 ‘귀족노동자’라는 놀림을 받고 있다. 더해서, 당시에는 쟁점이 아니었던 ‘비정규직’이라는 계층이 만들어졌다. 그들을 대상으로 ‘구사대’가 다시 등장한다는 소식도 간간히 들린다. 한미 FTA 정국에서, 이은 ‘감독’은 다시 노동계와 손을 잡아야 할 입장이다.

“솔직히 말하면, <파업전야> 만드는 데 함께 했지만 노동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진 못했다. 영화 제작자는 하나의 소재를 잡으면, 거기에 충실한다. 그 부분을 공부해서 알게 되지만 지속적이진 않다. 노동현장에 대한 애정이 없진 않지만, 현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적었고 잘 모른다. 영화를 하다보니, 영화사의 CEO가 돼 있다. 개인적으론 아이러니 하다.
막연히 보면, 노동운동이 뭔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필요가 있다는 것 정도를 느낀다. 좀더 힘을 주고, 희망을 주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만 막연히 한다. 가끔은 도덕성 문제도 나오는 것이 안타깝다. 노동운동이 힘이 없으면, 사회가 힘이 없을 수밖에 없다. 건강한 대안세력이 없다는 것이 한국사회의 문제다. 스크린쿼터 문제로 싸우면서도 고통스럽고 비루한 것도 현실이다.
개인적으론, 노동 농민 교육이 함께 모여서 한미 FTA 반대하며 피터지게 싸운는 것보단 소외 개방이라는 의제에 각 부문대로, 천착해 붙어서 정부의 어설픈 시도를 지연시키거나 막고, 선택해 갈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대안적 정치세력도 나온다고 본다. 그 전선에 기댈 때 민주노동당도 자기 세를 늘릴 수 있는 것 아닌가. 당장의 성과보단, 초심으로 돌아갈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나는 반 FTA 국민운동본부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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