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법안 처리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조속한 입법’을 촉구해 왔던 한국노총은 이 상황이 달갑지 않다.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 내용이 한국노총이 제시한 ‘최종안’보다 후퇴했을 뿐 아니라 처리 시점도 당초 노총이 주장했던 지난해 국회가 아닌 2월 임시국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노총은 이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이미 손을 떠나버린 법안이 하루라도 빨리 국회에서 처리되길 바라고 있다. 물론 당초 한국노총이 밝힌 대로 ‘조속한 입법만이 차별받는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뜻도 있지만, 후퇴된 법안에 처리시점까지 늦어지면 한국노총 내부 또한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환노위에서 손 맞잡고 강행처리를 주도했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2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던 본회의를 오후 7시로 미뤄가면서 처리공방을 벌였다. 국회의장의 직권사정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미지수다.

2일 한국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입법 마지노선’이라고 밝히며 내놓은 ‘비정규 법안 수정안’은 결국 ‘최종안’이 아닌 말 그대로의 ‘수정안’이 되고 말았다. 한국노총은 “거대 여야정당의 파행 강행처리”라고 이를 비난하면서 “민주노동당에도 문제가 있다”고 책임의 일단을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한국노총은 마지막 수정안을 내며 “그동안의 협상과 투쟁의 결과를 온전하기 보전하기 위한 결단”이라며 이 안이 입법 마지노선임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이용득 위원장 또한 “이 안대로 연내 입법되지 않는다면 전면적인 총력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안이 후퇴하고 처리시점까지 늦어졌지만 한국노총은 “구체적인 행동계획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만큼 어쩔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기 이전인 2월 한달 동안 한국노총이 법안의 조속한 처리와 스스로 낸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여야의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등을 만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한 게 전부다.

한 산별노련의 간부는 “김대환 장관이 퇴진한 이후에는 한국노총에서는 노정간의 모든 문제가 풀린 것처럼 느껴진다”며, 현 한국노총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나타냈다. 또한 몇몇 산별의 간부들도 “법안이 후퇴했는데 한국노총은 왜 가만히 있느냐”며 불만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노총 사무총국 내에서도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이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 사무총국 간부는 “한국노총의 결단이 정치권에 의해 이렇게 훼손된다면 다시는 똑같은 결단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용득 위원장은 이미 “법안 내용에 문제가 있는 만큼 법이 통과되더라도 재개정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든 안 하든 한국노총이 지난해 11월 안팎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나름대로 ‘결단’이라고 내놓은 조합원들과의 약속을 지켜나갈 것인지는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전적으로 한국노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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