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의 불안이 간간히 보도되는 각종 시설비리, 급식비리 등을 통해 가중되고 있는 요즘, 어린이집의 보육서비스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지난 16일 보육중장기계획안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개최하면서 어린이집의 서비스 수준을 자율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평가인증제를 2008년까지 모든 시설에 시행하겠다는 안을 제출하였다. 또한 평가인증제도가 서비스 질 관리시스템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2009년 이후부터는 정부의 재정지원과 이를 연계하겠다는 안을 제출하였다.

문제는 공공부문에서 서비스의 질이란 공공성의 확보 수준과 국가의 지원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이 점을 간과한 채 평가만이 유일한 방안인 양 주장하는 것이다. 오히려 인건비 지원 폐지, 보육료가격기준 자율화 등 시장화 정책을 도입하면서 어린이집을 무한경쟁의 세상으로 내몰고 있다.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보육노동자와 그들이 맡고 있는 아이들이다.

노동강도의 강화와 질 저하

2005년부터 시범 운영되는 보육시설 평가인증제는 현장 보육노동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평가에 참여했던 어린이집 근무자들 사이에서는 1년 동안 개인 생활을 모두 접어두고 밤10시 이전에는 퇴근해 본 일도 없다는 ‘간증’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한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는 평가를 준비하기 위해 원장이 일지를 새로운 양식에 맞춰 다시 정리하라는 업무지시에 따라 6개월이 넘는 보육일지를 다시 쓰는 일까지 하고 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시간에 청소와 환경구성, 서류정리로 시간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집까지 일을 가져가고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다음날 출근하면서 어떻게 보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노동강도의 강화는 지원과 연계될 경우 교묘한 방식으로 자발성의 허울을 쓰게 된다. 실제로 인천에서는 보육노동자의 저임금을 다소라도 완화하기 위해 지원해 오던 처우개선비(지자체 인건비 지원항목)를 인증을 통과한 시설에 대해서만 지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가뜩이나 저임금인 보육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는 자발성(?)으로 매일 저녁 늦게까지 인증지표를 분석하고 일감을 산더미처럼 들고 퇴근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법적 기준도 못 지키면서 질적 평가가 가능한가?

원장들 사이에서는 법적기준을 지키면서 운영하다간 적자를 면치 못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이 보육현장의 현실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시설의 경우 반별 정원 초과나 시설면적에 따라 인가받은 정원을 위반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임금에서 퇴직적립금을 떼거나 시간외수당 미지급, 심지어는 최저임금조차 위반하는 등 아이들과 보육노동자의 기본권리조차 지켜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교사와 아동은 친밀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정부가 시행하는 평가인증의 대부분의 지표는 이러한 기본문제에 대해서는 눈감은 채 기본서류의 구비여부나 시설환경에 초점을 주로 맞추고 있어 인증을 받기 위해 잔업을 강요하거나 설비투자로 지출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임금을 체불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지금 보육현장은 질적 평가이전에 법적기준의 준수여부를 평가해야 하는 수준이다. 충분한 보육 공간, 보육노동자의 적정근무시간, 필요한 인력의 확보 등 기본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육의 질을 이야기할 수 없다.

직접고용, 인건비 지원 없이 보육의 질적 수준을 보장 어려워

보육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평가이전에 보육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제대로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평가는 단지 하나의 쇼에 불과하다. 그동안 민간위탁이나마 국공립어린이집은 설치비와 인건비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질을 유지해왔다. 물론 기존의 지원 역시 충분하지 않아 5년이상의 장기근무자의 경우 지속적으로 해고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있던 인건비 지원을 폐지하고 아이 머리수에 따라 보조금을 지원하는 아동별 지원방식을 국공립과 민간 모두에게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보육노동자들은 평가인증에 통과하기 위한 온갖 잡무를 떠맡고 원아모집에 혈안이 된 시설운영자들은 점점 더 많은 행사와 잡무를 요구하게 된다.

아이와 직접 대면하여 정서적 지지를 주어야 하는 보육노동자가 만성적 고용불안과 과도한 업무, 저임금에 시달린다면 과연 보육의 질이 보장될 수 있겠는가? 형식적인 평가인증이 아니라 국공립의 확충, 필요인력 충원, 인건비 지원이 보육의 질 향상을 위한 기본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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