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어용노총’이라고 비난만 받았는데, 드디어 하나의 이념으로 정립돼서 기쁘다.” 자칫 경색될 것 같았던 토론회장에 한바탕 웃음이 일었다.

지난달 4일, 한국노동연구원 주최 토론회에 참석한 김종각 본부장은 한국노총의 이념유형을 협조적(70년대), 실리적(80년대), 사회개혁적 및 실리적(90년대 이후) 노조주의라고 평가한 발제문에 대해 이처럼 재치 있게 응수하면서도 “하지만 그런 이념잣대로 한국노총을 분류하기 어렵고, 한국노총 안에서도 명확히 하려고 하지 않았다”며 ‘외부자’의 평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다 “(한국노총이) 위장된 노무부서에 불과했다”는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의 토론에 대해서는 따로 발언권을 신청하면서까지 “너무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일축하면서 “조선공사 파업 등 경제적 이익을 챙기려는 투쟁도 적지 않았다”고 주장을 폈다.

웬만해선 큰소리를 치지 않는 사람, 편안하게 조곤조곤 얘기하면서도 그 안에 특유의 날을 세운 ‘논리’로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사람. 올해 마흔넷의 나이에도 30대같은, 요즘 뜨는 코드인 ‘동안(童顔)’의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이 그런 사람이다.

가장 쉽고 편한 게 원칙만 주장하는 것

비나 눈이 나릴 듯이 낮게 하늘이 깔린 1월의 마지막 날,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지난해 말, 한국노총의 용단에도 처리되지 못했던 비정규법에 대한 얘기로 시작됐다.

“정기국회가 열흘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최종안을 냈는데, 이번에 처리되지 않으면 비정규법 처리가 요원해질 것이라고 봤다. 국회는 노사 눈치를 보고 있고, 경영계는 4월 협상을 없던 것으로 하자고 하고, 정부는 논란 과정에서 벗어나 있고, 양대노총도 4월 협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있고…. 어느 누구도 법을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 않았다. 누군가는 총대 메고,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안을 고집해서는 법안 처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던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보호라는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안을 만들겠다고 했고, 그래서 최종안을 내게 됐다.

기간제의 경우 ‘1년 제한 없이 사용 + 1년 사유제한 + 고용의무’(1안) 또는 ‘2년 제한 없이 쓰되 그후는 무기계약으로 간주(고용의제)’(2안)이었다.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그동안 노동계가 주장해 왔던 ‘고용의제’ 요구에 대한 현실적인 저항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 ‘고용의무’로 입장을 정리했다.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민주노총과의 공조도 깨졌다. 그럼에도 김 본부장은 “바람직한 노사관계 형성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수정안을 제시해야 했다”고 말한다.

“가장 쉽고 편한 것은 원칙을 주장하고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남는 것이 뭔가. 물론 노동운동이 월등한 힘의 우위에 있을 때는, 싸워서 관철시킬 수 있을 때는, 그래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만으로 돌파할 수 있는 상황인가? 사회적 지지도 못 받고 있다. 그래서 책임지는 모습 보이면서 국가경제 공동체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판단 속에서 수정안을 내게 됐다.”

그런 용단을 내린 끝에 유례 없이 하나의 사안을 두고 환경노동위 법안심사소위가 5차례나 열릴 정도로 밀도 있는 논의가 진행될 수 있었다던 그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사립학교법 파동’을 상당히 아쉬워했다. “적어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수정안을 수용하겠다고 한 상황에서 법안처리가 끝내 무산됐다. 하지만 올 들어 한국노총을 찾은 김근태 의원 등이 2월 국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하겠다고 했는데 정말 믿고 싶고, 믿어야 한다.”

그가 2월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 중에는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장치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이슈를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생각도 크게 작용한다. “특수고용직 보호방안, 복수노조 시대, 전임자 임금 등 노동운동, 노사관계 판 자체를 바꾸는 지각변동을 일으킬 중요한 이슈들이 코앞에 닥쳐있”기 때문이다.

‘결렬’이 아니라 ‘합의 실패’였다

약력
1988. 2.   한국노동문제연구원 연구원
1989. 2.   한국노총 기획연구실 연구원
1999. 10.   한국노총 정책본부 정책국장
2000. 3.   박인상 국회의원 보좌관
2002. 7.   한국국제노동재단 해외조사부장
2005. 3.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2005. 3. 노사정위 사회소위, 경제소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대책특위, 제조업발전특위 위원
2005. 4.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2005. 5.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
2005. 6.   고용정책전문위원회 위원
2005. 6.   직업능력개발전문위원회 위원
2005. 10. 고용보험심사위원회 위원
비정규법 논의에서 핵심은 지난해 4월 진행됐던 협상이었다. 당시 협상을 주재했던 이목희 의원이 ‘11번, 105시간’이라고 입에 침이 마를 듯 강조하던 그 4월 협상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밀도 있고 진정성 있게, 그리고 끈질기게 협상했다. 지금까지 그런 형태의 협상은 없었는데, 더 발전시켜야 한다. 잘 봐야 할 것이 마지막 협상이 끝난 뒤 어느 조직도 ‘결렬’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들 ‘협상 실패’라고 했다. 뉘앙스 차이가 엄청 큰데, 합의실패는 적어도 '협상 틀'은 유지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적어도 협상에 각 주체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한 것까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남은 건 뭔가. 뭘 얻고 뭘 잃었나. “민주노총과의 공조가 깨진 것은 유감이지만, 정부안을 상당부분 바꿔낸 것은 성과다. 또한 조직된 정규직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위해 적잖은 투쟁을 한 것은 의미있게 평가돼야 한다.”

김종각 본부장은 이런 설명도 덧붙였다. 노동운동은 크게 시장적, 사회적, 계급적 운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회에 기반한 노동운동은 조합원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위치한 사회 전체, 즉 국민경제 국가사회 시민사회 공동체 등을 동시에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한 시장적 운동이나 비타협적 투쟁만 강조될 수밖에 없는 계급적 운동으로는 사회적 지지를 얻어내기 힘들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사회적 노동운동의 핵심은 ‘사회적 대화’일 수밖에 없는데, 대화나 협상은 참여하는 주체의 힘이 균형이 있을 때 가능한 말 아닌가?

“물론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정책결정, 집행권은 고유권한이라 여기고 민간과 공유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정부는 자세를 낮춰 사회적으로 논의된 것을 집행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경영측 역시 효율과 수익에 도움 되지 않는 방식은 거부하고 있는데, 기업 역시 사회를 조직하는 한 주체로서 원만한 사회체제 유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조의 역할에 대해서도 변화를 주문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무엇을 챙길 것인가에만 관심을 둔다면 대화를 원활히 이끌지 못할 것이다. 필요하면 양보도 해야 한다. 물론 여전히 경제적, 권력적 약자인 노조의 일방 희생을 강요하는 대화여선 안 되겠지만 정부, 경영쪽의 변화와 함께 노조의 변화도 필요한 대목”이라고 설명한다.

‘괜찮은’과 ‘더 많은’ 사이의 딜레마

인터뷰 도중 그는 이런 얘길 꺼냈다. “(기간제 사용) 사유제한을 끝까지 고집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앗,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노동계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사유제한’이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사유제한의 핵심은 출산, 질병, 일시적 결원 등 상식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쓰자는 것이고, 그렇지 않음에도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바꿔내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870만까지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용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게 되면 그 비정규직이 ‘괜찮은’ 일자리로 전환되기보다 해고되거나 파견 등 더 열악한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고민은 이렇다. 외환위기 전에도 전체 노동자의 40%대, 400~500만명 가량 존재하던 비정규직은 그나마 용인되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조직노동자들도 그랬고, 사회적으로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처럼 큰 문제로 불거진 데에는 비정규직이 55~56%, 850~870만명까지 늘어난 것도 이유가 되지만, 더 주요하게는 그 늘어난 300~400만명이 바로 정규직이 하던 일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97년에 비정규법이 만들어졌다면 비정규직 수를 400~500만명으로 묶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상황에서 사유제한을 너무 엄격히 하면 양질의 괜찮은 일자리가 생기는 만큼 기존 일자리를 잃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 기간제 가운데 일정한 ‘사유제한’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일 텐데, 사유제한 입법화로 그 사람들이 100%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판단은 정말 '순진'한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괜찮은(decent)’이 아닌 ‘더 많은(more)’ 일자리에만 천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는 늘어날지언정 양극화는 더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딜레마를 해소하는 도구로서 비정규 입법을 강조했다. “수정안에서 복수의 안 중 하나로 사유제한을 담았지만 현실여건을 감안할 때 반영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수정안을 근거로 한) 비정규법이 만들어지면 차별이 무엇인지, 시정방안이 무엇인지 등이 관행으로 정착돼서 비정규직을 맘대로 쓸 유인이 줄어들 것이고 양극화를 좁혀내는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나.” 지금의 차별이 100 대 50이라면 앞으로는 100 대 70~80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대통령 신년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화두로 꺼낸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방법이 단지 ‘더 많은 일자리’에만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일자리가 괜찮은 일자리와 연계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모든 걸 '개인'이 책임지나

그렇다면 '괜찮은'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 걸까. 지금 기업의 인력정책은 작업과정을 자동화시켜 인력 최소화 방식을 꾀하거나 이미 시장에서 훈련돼 있는 사람을 뽑는 방식이다. 더군다나 기업들은 너도나도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시장개척과 비용절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정부 산업정책 차원에서 기간산업 및 고용 보호, 또한 사회시스템으로 인적자원개발, 일자리 연계 등의 프로그램이다.

"4천만명 있는 나라에서 재화를 파는 것과 10억명이 넘는 나라에서 파는 건 다르니까 시장개척 차원의 해외이전을 반대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업의 장기적 경쟁력과 국내 일자리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는 만큼 해외에 진출하더라도 핵심 기술집약 부분을 국내에 남겨두거나 또 그만큼 일자리를 유지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 국내에서 보호해야 할 산업이라면 해외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제한한다던가…."

그는 미국의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만든 옷이 미국에 싸게 들어가는데, 거기엔 조건이 있다. 미국산 면화를 50%이상 쓰라는. 그러면 싼값으로 중국에서 옷이 들어오더라도 미국의 면화산업을 유지, 발전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는 WTO에서도 문제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업에 가격보조정책이 허용되는 것처럼 우리도 정부가 산업정책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정부가 직간접 보조를 해야 한다. 이게 고용문제와도 연계되기 때문에 국민적 동의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이와 함께 그가 지적한 대목은 사회서비스 영역의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다. 아직까지 자동차나 컴퓨터, 이동전화 등 경쟁력 있는 산업이 건재하니까 제조업이 부가가치나 GDP의 30%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대부분 저부가가치 산업의 몰락과 해외이전으로 30%대이던 고용비중은 17%가량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줄어든 일자리를 서비스 영역으로 이전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회, 공공, 개인 서비스 영역이 다 '개인'의 몫이다. 집안에서 한 사람 아프기라도 하면 누구 하나 일자리 그만두고 간병해야 한다. 이를 사회가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재빨리 전환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인적자원 개발에 대한 더욱 체계적이고 정교한 훈련시스템 개발이 시급하다. "지금 국가가 우리를 위해 해주는 것은 전쟁 안 나게 방위해주는 수준이다. 그외 사회생활, 경제생활 모든 영역이 다 개인책임이다. 그러니까 기업에 입맛에 맞는 기능인력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도, 필요한 기술도 개인이 '알아서' 찾는 수밖에 없다. 일자리와의 연계, 훈련시스템과의 연계 프로그램을 확충해야 한다. 공공직업안정망을 통해 일자리를 찾는 비중이 10%에도 못 미치는 건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최소 30%대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노조도 '기능적 유연성' 고민해야

그러기 위해서 노조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특히 중소기업 중심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노사갈등의 유형은 대부분 '고용(수량적 구조조정)'을 둘러싼 것인데, 이에 대한 노조 대응방식은 '해외이전 반대', '국내물량 축소반대' 등과 같은 수세적인 것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노조는 기업이 유지되고 운영되기 위해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해선 안 된다. 생산성 없으면 망한다. 고용도 없다. 적어도 기능적 유연성은 노조가 수용하고, 신기술 도입 등을 통한 경쟁력 확보방안에 대한 대안은 내놔야 한다."

그는 또 지역사회를 통한 일자리 연계, 인적자원개발에 대한 대안도 함께 제시했다. 바로 올해부터 시범 운영되는 지역 노사정협의체를 통한 시스템 확충이다. 즉, 기존 산업인력공단 등의 시설과 교수 인력을 활용해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업종에 걸맞는 기술인력을 훈련시켜 기업도, 노동자도 만족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다분히 공급자 중심인 국가의 공공직업알선망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지역 사정에 밝은 지역 내 수요자와 공급자가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시스템을 마련, 운영해야 한다. 재원은 이미 고용보험기금으로 충분하다. 대부분 실업급여로만 충당되는 고용보험기금을 일자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지원금으로 활용하면 가능할 것이다."

김 본부장은 "물론 노조도 충분한 고민이 성숙돼 있지 못하고 그만한 직업훈련 전문가도 없다"며 아쉬움과 한계를 함께 언급하긴 했지만, 그는 "양극화 심화되고 자살자가 늘어나고 국민소득은 올라가는데 먹고살기는 힘들고…, 신자유주의 폐해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그 해결책은 사회가 적극 개입하는 것 외엔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노조 분명히 약화된다, 이대로라면…

이야기는 오는 4월 정부가 입법예고 하겠다는 '노사관계 로드맵'으로 옮겨갔다. "이대로라면 노동조합이 분명히 약화된다"는 것이 그의 총평이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노사의 참여 없이 만들어졌다는 점. 여전히 정부가 노사관계를 끌고 가고 노사는 따라와야 한다는 관료적 발상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에선 전임자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 대목이나 손배가압류 요건 등은 선진화기획단에서 내놓은 안보다도 후퇴됐다고 봤다. 또한 내용에서도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공익사업 확대 및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노조 행위준칙 신설 등 기존 노조활동을 규제하고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2007년,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는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에 대한 우려가 컸다. "복수노조는 '자유로운 단결권 허용'이라는 점에서 반대할 수는 없지만 기존 노조의 조직력을 약화시키는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 우려를 불식시킬만한 '카드'로 노조가 이제껏 얘기한 것은 '자율'에 맡기라는 것이었다. 전임자 임금이야 '입법적 관여대상이 아니'라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를 근거로, 기업별 형태가 일반적인 우리 현실에서 회사가 해야 할 '고충처리'의 기능을 전임자가 수행하고 있다는 점, 전임자 임금지급이 '자주성 훼손'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관철시켜냈던' 역사 등을 이유로 '자율'에 맡기라는 요구를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복수노조의 경우,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말라는 주장을 펴기는 어렵다. 노동계는 누구보다 '자주성'을 강조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전히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 논의에서 노조는 '자율' 이 한마디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고 있다.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그의 설명은 이렇다. "자율적 교섭 이외의 안을 고민하면 할수록 문제가 생긴다. 교섭단위, 교섭권한, 교섭영역, 범위…. 가장 쉽게 단일화하는 틀은 사업(사업장)일 수밖에 없을 텐데, 이는 곧 기업별 고착화의 힘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노조는 산업, 지역단위로 조직단위를 넓혀야 한다는 고민과 시도를 하고 있다. 만약 사업(장) 단위로 교섭단위가 확정된다면 어렵게 구축해놨던 금속노조의 산별교섭,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이 다 형해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 문제에 대한 보다 정교한 방안이 고민돼야 한다."

그 정교한 방안은 뭘까? 그도 여전히 '고민중'이다.

원만, 합리, 균형…노자의 ‘상선약수’를 새기며

그가 한국노총에 들어온 것은 89년 2월. 81년에 대학에 들어간 그는 3학년이 되던 83년 강제징집을 당해 이른 군대생활을 마치고 졸업은 뒷전으로 한 채 87년 인천에 있는 어느 공장에 들어갔다. “가구회사와 미터기 만드는 회사 2곳을 다녔다. 주도했던 건 아닌데 노조를 만들고 파업하는 데 연루가 돼 구속이 됐다. 기물파손에 폭력에 또 사문서 위조까지. 당시는 위장취업이 흔한 일이었으니까 뭐, 그리 내세울 일도 아니고….”


집행유예로 출소한 그는 인천지역 외곽단체에서 활동을 하려다 88년 <현대노사> 잡지를 펴내던 한국노동문제연구원을 거쳐 89년 기획연구실 연구원으로 한국노총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입사할 당시 노동운동 진영 내 노총 민주화론과 제2노총론이 한창 붙던 시절이었다. 뭐, 내가 ‘노총 민주화’의 큰 뜻을 품고 입사한 건 아니지만 당시 노총 내 개혁파(이성균, 이종복, 조한천, 조성준, 이원보 등)들이 개혁을 도모하던 그 흐름을 타고 들어왔다. 그리고 노동운동을 할 수 있는 내셔널센터가 한국노총밖에 없었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한국노총에 몸담은 지도 어언 햇수로 18년이다. 물론 지난해 3월 다시 복귀하기까지 5년을 국회(보좌관), 국제노동재단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지난 기간 그는 홍보쪽 일을 했던 1년을 제외하면 모두 정책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누구는 그의 이력에 대해 “박인상 국제노동재단 이사장이 ‘영원한 위원장’이라면 김종각 본부장은 ‘영원한 정책브레인’이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늘 공부, 공부…‘정치력 보강해야’ 주문도


그는 정책브레인답게 늘 바지런히 공부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강대 산업문제연구소 교육과정(91년)이나 일본 국제노동재단(JILAF) 일본어연수과정(92년), ICFTU-APRO 고위지도자과정(94년) 등을 거쳐 이미 고려대 노동대학원에서 ‘한-일 고용조정에 관한 비교연구’(2000년2월)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과정은 수료하고 논문작성만 남겨놓고 있다.


정책본부장으로서 그에게 ‘정책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학습의 양도 양이지만 일관성 있는 논리와 항상적인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일 터. 하지만 늘 ‘균형’, ‘합리’를 주장하며 별로 큰소리 치지 않는 ‘신사’다운 성격 때문인가, 정치력을 조금은 더 보강해야 한다는 주문은 있다. 그와 지근거리에서 일을 했던 한 관계자는 “중요한 시기에 정책 총책임을 맡은 만큼 추진력과 결단력, 조직적 감각을 조금은 더 갖췄으면 한다”며 “치고 나가면서, 조직하고 설득하면서, 때론 욕을 먹기도 하면서 한국노총의 운동을 바른 방향으로 끌고 나갈 핵심 위치에 서 있다”고 말했다. ‘정책본부장’이라는 자리의 무게가 ‘똑똑하고 착한’ 사람의 이미지만으로 채워지진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리라.


‘덜커덕’ 직원노조 위원장 되다


그는 한때 한국노총 직원노조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98년 10월, 그가 외국출장을 갔을 때 열린 조합원 총회에서 추대가 돼버린 것이다. 당황스럽기도 했겠지만 흔쾌히 위원장직을 맡았고, 당시 직원노조의 사용자인 당시 박인상 위원장과는 노동조합(한국노총) 내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 핏대를 세우며 논쟁을 하기도 했다는 후문.


인터뷰가 끝난 뒤 술 한잔을 하며 그에게 물었다. 지향하는 세계관, 운동의 이념이 뭐냐고. “이념보다 세상은 훨씬 넓다. 이념으로 재단하기 어려운 세상의 다양한 현상이 있고, 그를 둘러싼 정치가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다. (세상이 그렇게 해석되지 않는데도) 여전히 사회주의자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글쎄… 굳이 따지자면 사민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지.”

<편집자주> 무릇 ‘세상의 모든 일’은 지도자에 의해서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꿔내는 더 큰 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어디를 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도자의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지면에서는 격주로 한국의 노사관계, 노정관계를 주도하는 ‘지도자’, 이른바 ‘선수’를 만난다.


사진 = 정기훈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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