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에 계류된 가운데 파견법을 고쳐 파견제 노동자 수를 확대·조정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여전한 것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청와대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연설<사진>에 파견노동 관련 대목을 포함시키려다 연설시간 부족으로 최종 원고에서 뺀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구술 내용을 직접 받아 적었던 강원국 연설비서관은 2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40분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라는 글에서 “파견근로의 범위는 현실화 하되, 감독을 한층 강화해서 법적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지만 각 주체들 간에 합의가 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비정규직법안 국회통과 지체에 대한 아쉬움을 담으려다 분량 때문에 본 연설원고에는 담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밝힌 파견범위 ‘현실화’는 이번에 파견법 개정을 통해 현행 26개 업종을 조정하거나, 업종 숫자를 그대로 두더라도 대상 업무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파견 노동자 수를 늘리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계는 그간 노사정 교섭 등에서 파견제도 자체를 폐지하지 않을 바에는 현행 26개 업종을 그대로 두되, 이후에 필요하면 노사정 협의를 통해 업종을 조정하자는 주장을 펴 왔다. 하지만 그간 정부여당은 지난해 법 개정 과정에서 파견대상 업종 조정을 시사해 왔다.

특정 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파견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네가티브’ 리스트 방식의 파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던 노동부는, 지난해 12월8일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 심의 과정에서 이 대목을 ‘포지티브’로 바꾸면서 파견업종 확대를 시사하는 수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노동부 수정안은 현행법의 파견대상 업무인 “전문지식 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에서 “업무의 성질, 직종별 인력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무”라고 바꿨다. 이에 대해 당시 노동계는 “말만 포지티브로 바꾸고 실제로는 파견대상을 전면 확대하겠다는 의도”라고 크게 반발했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제5정조위원장도 지난해 11월20일 정책브리핑에서 “현행 26개 업종은 일본에서 그대로 본떠 가져온 것으로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현재 26개 가운데 일부 업종에서는 파견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현행법의 26개에 포함돼 있지 않은 다른 업종에서 파견을 허용하면 고용이 창출될 수 있는 업종도 있다”고 파견대상의 조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시 그는 “파견법은 당초 정부안과 달리 ‘포지티브’로 하고, 노사간에 26개 업종 숫자도 건드리지 않기로 의견이 접근돼 있지만, 어떤 업종으로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쟁점으로 남아 있다”며 “고용이 창출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업종 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대통령 신년연설에 대해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고용의 질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한다”며 “최저생계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비정규직의 대량 양산이 그 해법이 될 수 없고, 비정규직 확대 재생산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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