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산재보험제도 개혁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던 가운데 올해 입법을 앞두고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이란 줄기 속에서 산재보험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동과건강포럼, 노동기본권실현국회의원연구모임, 산재보험공투위는 19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이다’란 주제의 세번째 노동과건강포럼을 개최, 산재보험제도 개혁과제를 정립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사진>


산재보험제도 개혁 추진 현주소는?

현재 산재보험제도 개혁 추진은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정부가 구성한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는 1, 2기를 거쳐 지난해 말 정부에 최종보고서를 보내면서 업무가 끝났다. 정부는 아직 이 결과를 밝히지 않은 사태로 조만간 노사단체 등 관계기관에 송부하고 홈페이지에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노동건강단체들은 2003년부터 산재보험제도를 ‘선보장 후평가’ 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을 해 왔으며,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해 이를 반영해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입법 발의한 바 있다.

이밖에도 장복심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심사기구 일원화를 주장해 왔고, 정부기구 중 하나인 지방혁신분권위원회도 산업안전보건 행정 및 체계 개편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임준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만 하더라도 여러 입장이 혼재돼 있어 재정과 급여 부분을 담당한 연구자와 위원은 상대적으로 산재보험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사용자배상책임보험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며, “반면 요양관리와 재활부분을 담당한 연구자와 위원은 사회보험적 성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풀어가는 등 (산재보험제도 개혁을 둘러싼) 최근 현상은 매우 복잡하다”고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의 요양급여의 심사평가기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근로복지공단 관리운영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제기되는 등 논란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용자배상보험이냐 사회보장이냐

현재 산재보험제도를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성격을 놓고 벌어지고 있다. 임준 공동대표는 이날 발제를 통해 “산재보상 경로가 과실책임주의에서 무과실책임주의로 이행하면서 산재보험제도가 도입됐다고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며 “현행 산재보험제도는 재해발생에 있어 업무수행성 또는 업무기인성이라는 원인(요건)이 있어야만 이를 산재로 인정하고 보상해주는 원인주의에 입각해 있지만 유럽 일부국가는 이러한 조건 없이 재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보상의 조건이 충족되는 결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산재보험은 사회보장적 성격으로 질적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적용대상이 전국민에게 확대되고 보상재해 인정범위도 업무상재해에 국한되지 않으며 보상수준도 생활보장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재보험이 사용자배상책임보험의 성격에 충실할 경우 적용대상은 임금노동자에 한정되고 급여보상 범위는 업무상재해에 한정되며 보험요율은 위험발생율에 따른 차등보험료율 산정체계를 강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곧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재보험제도 개혁논란과도 맥이 닿는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구성한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의 재정과 급여 부분에서 제출되고 있는 안이 “산재보험을 사용자배상책임보험으로 이해하고 재정의 안정화와 효율화를 달성해 그 부담을 경감하는 시각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의 ‘폐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인주의 아닌 결과주의 접근 필요하다

하지만 억울하게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놓이는 산재노동자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산재 인정방식이 원인주의적 접근이 아닌 결과주의적 접근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질환의 원인을 다른 일반적인 개인적 질병요인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재해인정이 소극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원인주의적 접근방식으로는 많은 산재노동자가 산재보험에서 배제될 것이란 지적이다.

우리나라도 점차 단순사고성 재해의 비중이 줄어들고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질환의 비중이 증가하는 선진국형 진입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과주의적 접근방식이 모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준 공동대표는 “산재보험은 점차 사회보장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며 “결과주의적 원칙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방향과 산재보험에 남아있는 사용자배상보험적 성격을 탈각하고 사회보장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재보험제도 개혁과제는 무엇이 있나?

이날 포럼에서는 올해 산재보험제도 개혁입법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산재보험제도 개혁과제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임준 공동대표는 앞으로 검토해야 할 개혁과제로 우선 적용대상의 확대를 꼽았다. 비정규직, 이주,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사업주가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영세 자영업자, 농민도 산재보험에서 많이 배제되고 있다며 전체 국민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선보장 후평가’에 대한 중요성도 다시 강조했다. 이를 위해 모든 의료기관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당연지정제도가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진료비 중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요양급여의 보장성이 강화되고 하며 따라서 요양급여 범위와 수준의 대폭적 개선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재활 및 사후관리체계와 관련, 근본적으로 직장복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직업재활 및 고용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하며, 장애인 복지수준이 OECD 수준이 돼야만 요양의 장기화 및 산재장애인의 빈곤화 문제 등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 조직체계의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재심사기능은 독립적 심사기구인 ‘산재보험심사평가원’을 따로 마련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예방부터 재활까지 폭넓은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의견은 지난해 단병호 의원이 입법발의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에서도 분명히 담고 있는 상태다. 단병호 의원은 이날 토론에서 “60년대부터 산재보험법을 통해 산재환자를 보호하는 노력은 계속돼 왔으나 그 수준이 미약하다”며, “이제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산재보험제도가 도입·정착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올해 정기국회 내 입법 추진

이같이 뜨거운 논란 속에서 정부는 아직 산재보험제도발전위의 최종보고서를 받았지만 정부 입장이 정해지진 않았다고 밝혔다. 권영순 노동부 산재보험혁신팀장은 “산재보험의 재정여건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라며 “법정책임준비금이 2조4천억원이 모자라고 재정수지도 3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해 어느 정도 효율적 운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했다.

권 팀장은 이날 토론에서 “(발제자의) 산재인정방식을 원인주의적 접근에서 결과주의적 접근으로 전환하고 산재보험의 사회보장적 성격을 강화하자는 의견은 일부 사회보장적 요소를 도입할 여지는 있으나 현재의 산재보험 성격이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결과주의적 접근이나 순수 사회보장적 성격으로 가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산재보험을 전 노동자, 국민에게 확대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권 팀장은 “산재보험으로 보호 필요성이 있는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위험작업 자영업자에 대해 적용확대는 가급적 조기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노동자성과 결부될 때 교통정리 여부에 따라 (적용시점)속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권 팀장은 “전체적으로 사회보장성 강화에는 동의하나 부분적 비효율성(재정악화)은 개선돼야 한다”며 “오늘 제기된 내용을 앞으로 제도개선안에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정기국회에 정부 개정안 마련이 가능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산재보험제도, ‘사회보험’ 역할 요구받아

이날 임준 공동대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재보험제도 개혁안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건강단체들이 제기하고 있는 개혁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개혁안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노동건강단체들은 그동안 주장해 온 ‘선보장 후평가’와 ‘원직장 복귀’의 당위성을 넘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쟁과 주장에 대한 검토 속에서 산재보험제도 개혁의 쟁점과 과제를 새롭게 도출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도 산재보험제도 개혁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산재보험은 어느 때보다도 ‘사회보험’으로서 자리매김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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