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1월16일자 1면 머리기사로 실렸다. 서울 북쪽 비무장지대에 가까운 접경 지역에 대한 규제가 대폭 풀리면서 개발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다는 게 주내용이다.

이 글을 쓴 제임스 브룩 기자는 개발자들이 들이닥칠 이 지역을 “지난 두 세대 동안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 일종의 완충지대이자, 국제적으로 개발이 가장 안 된” 곳으로 묘사했다. 그는 “남한의 경제적 팽창이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오랜 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비무장지대의 남쪽 끝자락까지 밀려오고 있다”면서 한나라당 대권주자의 한 명인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말을 소개했다. “경기도의 북쪽 지역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정말로 성장하고 있다. … 이곳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필립스가 1백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었겠는가.”

“북한 전차가 내려왔던 곳을 남한 불도저가 밀고 올라갈 것”

1면과 8면에 걸쳐 실린 이 기사는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서울 북쪽의 지형을 표시한 지도를 보여주면서 파주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두 세대에 걸쳐 남한 남자들 사이에 최전방 군사도시로 알려져 있는 접경도시 파주는 노동자들이 서울보다 값싼 아파트를 찾음에 따라 2003년 이래 인구가 두 배 늘어 30만에 달하게 되었다. 남한의 수도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이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건설 노동자들이 자유로의 너비를 8차로로 두 배 넓히는 중이다. 서울의 지하철은 2008년 이곳까지 연결된다. 파주시의 지도자들은 고속열차인 KTX를 끌어오기 위해 로비를 하고 있다. … 산업단지 세 곳과 인구 15만의 계획도시 한 곳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모두 비무장지대 남단으로부터 25킬로미터 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제임스 브룩 기자는 “지난 10년 동안 땅값은 열배나 뛰었는데, 이는 서울보다 빠른 것이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북 사이의 “정치적 긴장완화가 경제적 성과를 낳고 있다”는 표현이 그렇고, “거의 파산한 나라인 북한의 경제규모는 남한의 3%에 불과하다”는 표현도 그렇다. “우리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정달호라는 남한 외교관의 말을 인용한 것도 그렇다. “한반도 평화에 관한 신뢰가 커지고 있다는 신호는 남한 정부가 군용지 140곳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한 데서 잘 알 수 있는데, 이 중에는 비무장지대와 서울 사이에 위치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대목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기사는 “북한의 전차가 밀고 내려왔던 협곡을 조만간 남한의 불도저가 밀고 올라가게 될 것”이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수도 서울의 ‘무장해제’에 침묵하는 보수우익

여기서 짚어볼 문제가 있다. 비무장지대와 서울 북쪽 사이는 어떤 지역인가. 이곳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북한의 침공으로부터 사수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제임스 브룩 기자의 글에 따르면 북한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120만 병력의 절반이 비무장지대에서 150킬로미터 안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휴전선을 중심으로 북한은 세계 최대규모의 포병부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 그리고 남한을 방문하는 미국 정치인들은 비무장지대의 남쪽 지대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부른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남한 정부는 이 지역에 소재한 군사지역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했고, 공단과 도시를 짓고 있다. 노무현 정부야 “친북좌파에다 김정일의 하수인”이라서 그렇다 치자.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떠들고 철통같은 국가안보를 부르짖으며 국가보안법 절대사수를 고집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우익들도 수도 서울이 맞이한 이 희대의 비상사태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백만을 굶겨 죽인 범죄정권”이자 “호시탐탐 적화야욕에 불타는 전쟁광”인 북한 군대의 바로 코앞에서 ‘개발 열풍’에 들뜨고 ‘땅값 상승’에 눈멀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고 있는 이 희한한 사태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하는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조차도 사실 보도만 할 뿐이다. “군 보호구역 6천5백만평 해제, 개발사업 활기”라는 환영조의 제목을 달아놓고는 “국방부는 작전환경 변화와 국민재산권 보장을 위해 6522만평에 이르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하고 623만평을 통제구역에서 제한구역으로 완화한다고 밝혔다”는 게 요지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가 나가기 불과 일주일 전인 1월6일자 사설에서 국정원이 민간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휴가나 외출을 나온 병사들에게 물어본 결과 현역 병사 10명 중 6명이 앞으로 전쟁이 날 가능성은 없다고 믿는다는 조사결과에 시비를 걸면서, 이렇게 썼다.

“지구상 어느 곳보다 첨예한 갈등의 현장에서 복무하는 우리 현역 병사들이 전쟁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의미 없는’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연히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선, 북한의 남침이나 붕괴를 상정하고 짜여 있는 군 작전계획, 각종 전술훈련, 북한을 향해 배치돼 있는 수많은 육해공 화력들은 대체 무얼 위해 있다는 말인가. … 북한은 지금도 여전히 최상위 규범인 노동당 강령에서 ‘남한 적화(赤化)’를 지우지 않고 있다. 수십만 정규군을 공격형으로 전진배치하고, 재래식 무기의 40%를 휴전선 가까이 벌여놓고 있다. 이 상황에서 마지막 보루라 할 군의 중추세대가 일방적으로 정신무장을 해제 당해버린 현실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마음이 무겁다.”

물신에 눈먼 보수우익의 진면목

비무장지대인 휴전선 일대가 역설적이게도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개발의 열풍, 부동산 투기의 바람은 이제 그곳까지도 집어삼키고 있다. 지난 1월13일 국방부가 발표한 6천만평이 넘는 군사지역 규제 철폐·완화 발표는 본격적인 신호탄이다. 서울 이북 지역 어느곳을 가나 군대가 만든 군사시설과 진지를 만날 수 있다. 이제 그 앞뒤로 아파트가 서고 공장이 서고 도로가 난다. 북한군의 탱크를 저지하려 만든 대전차장애물을 비웃듯 그 옆으로 4차선 도로가 뚫리고 있다.

지금 경기도 북부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발과 건설은 군대에 크고 작은 불편을 초래하며 군사작전에 어려움을 줄 게 틀림없다. 만에 하나 북한군이 남침한다면 남한군의 방어작전에 크게 불리할 것임도 자명하다. 무엇보다 최전방 사단 작전구역 안에서 이뤄지는 개발 광풍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근무하는 젊은 병사들의 다수가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수도 서울의 안보 상황이 이러한 데도, 눈만 뜨면 북한의 남침야욕과 군사적 위협을 들먹거리며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의 진보를 가로막던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이 땅의 수구기득권세력이 침묵하고 있는 실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제임스 브룩 기자가 밝혔듯이 “지난 10년 동안 땅값은 열 배나 뛰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으로 대표되고, 언론으로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수구기득권세력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줄기차게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으로 부를 축적해 왔는데, 이들에게 휴전선 일대 지역은 그야말로 마지막 노른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셀 수 없는 돈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자신들이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북한의 남침 위협이 생각났을 리 만무하다.

사실 한국의 보수우익 가운데는 물신(物神)에 눈이 어두워 휴전선 일대 군사지역 규제 ‘개혁’을 (자신들이 수십년 동안 주장해 온) 북한의 군사적 위협 증대와 남한의 군사적 약점의 노출, 그리고 젊은 병사의 ‘정신무장’ 해이와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하는 우둔한 자들이 많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우익의 엘리트들은 이 문제들의 연결고리를 생각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침묵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돈과 이권 앞에서는 자신들이 해야 할 말을 못하거나 일부러 안하는 자들, 이런 자들이 한국의 보수우익들이다. 사회라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데, 이래서 우리 사회가 이토록 어려운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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