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재미없다. 근 한달째 민주노동당 당직선거를 취재를 하고 있지만, 선거전이 막바지로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조차 기자 역시 당직선거의 쟁점이 뭔지 잘 모르는 상황이다.

정당의 당직선거는 몇가지 유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축제로써, 그 자체가 정당의 홍보가 되는 선거도 있을 것이고, 세대교체 의미를 갖는 선거도 있을 것이다. 또한 당의 내부 지분관계만 파악하는 것에 그쳐 당 내부인사들로부터도 관심을 못 받는 선거도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어떤 선거가 재미없으며, 이번 민주노동당 당직선거는 어떤 유형에 속할까?

당대표 경선…‘착한사람’ 경연대회?


13일 민주노동당 당대표 후보토론회. 지난 9일 토론회가 ‘싱거웠다’는 평가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던 차에, 2차 패널토론에는 기대를 접지 않고 취재에 나섰다.

하지만, 각 후보들은 서로 쟁점을 만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패널들의 질문에 대해 주어진 시간인 2분을 채 못 채우는 사태가 속출했다. 오죽하면 사회를 맡았던 심상정 의원이 “좀더 의욕적으로 토론에 임해 달라”는 주문을 여러차례 했을까. 또한 3명의 후보는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변별력 있는 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여성명부 최고위원 경선에 이어 당대표 경선은 가장 재미없는 선거다. 민주노동당 5년 역사에서 사실상 최초의 경선이자 주대환, 문성현, 조승수 후보와 같이 당 내외에 잘 알려진 인물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문성현 후보의 경우, 중심 슬로건인 ‘통합’ 이후에 다른 쟁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성현 후보는 지난 13일 후보토론회에서는 “청년학생과 함께 하는 민주노동당”을, 같은날 충북 유세에서는 “여성동지들의 지위와 역할을 높이는 당대표”를 공언했다. 각 부문별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통합’이 뭘 말하는 것인지, 각론 수준의 의제를 끌어낼 의지가 없어 보인다. 뺄셈 없는 덧셈의 정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구나, 주 활동무대였던 경남도당 내에서 '비난여론'도 문 후보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미, 경남도당의 주요 당직자 3명이 사퇴를 했다. 혹시 당의 공식 조직 내 동의보다 당의 ‘비공식 조직’의 합의가 후보 출마의 결정적 이유인 것은 아닌지.

조승수 후보의 경우, 선거 직전부터 논란이 된 ‘당권 문제’에 대해 설왕설래가 계속 이어지는 게 아쉽다. 이 논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예정된 수준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또한 조승수 선본 안에서는 “당권 문제가 부각되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선거의 중심 쟁점이 ‘조승수냐 아니냐’로 모아지면, (조 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타 후보가 부상할 수 있는 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자해지 해야 될 일 아닌가. 최소한 현 상황이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면, 네거티브한 문제로 선거쟁점이 흐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절반이상의 책임은 조 후보 진영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승수 후보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선관위와 법적 논란은) 충분히 대응할 수 있고 대응해야 할 사항”이라는 내용의 ‘변호사 지지선언문’을 기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사실, 아쉬운 대목이다. '강력한 진보야댱', ‘미래정당’ 등 몇가지 슬로건이 있지만 왜 선거쟁점으로 부각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조 후보 진영은 내놓아야 할 것 같다.

한편, 주대환 후보의 대중정당론은 대단히 논쟁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선거국면에서 거의 거론되지 못하고 있다. 상대방 후보들이 '맞장구'를 치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각 후보들이 당대표가 되면 당의 무엇이 바뀌는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그림을 유권자에게 제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당 위기 극복방안 중심으로 진행되는 지금의 선거에서, 대국민 메시지가 공허하게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일까. 어디까지를 욕심내야 하는 것일까. 각 후보들의 자격 논란이 선거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이 아쉬울 따름이다.

사무총장 경선…공약은 있으되 예산대안은 없는

2004년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 공약과 타당 공약의 가장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주장에 따른 예산대안이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민주노동당은 예산대안까지 갖춘 공약을 낸 유일한 당이라고 자랑도 많이 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하기 위해선 얼만큼의 예산이 들고, 그를 위해 부유세를 얼마를 걷을 것이며, 뭐 이런 식이었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그대로 집행되진 않을 것이지만, 공약으로 예산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예산 편성 자체가 계급계층 간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선거 시기 “우리는 누구의 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주기 때문이다.

무려 300조에 이르는 국가살림을 나름대로 분석해, 예산의 굵은 꼭지라로 새로 편성해 본 민주노동당의 정책적 경험은, 2006년 1월 당직선거에서는 발휘되지 않는 모양이다. '불과' 122억 수준의 민주노동당 1년 예산안을 자신의 철학대로 재편해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철학이지, 그에 따른 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은 고등수학이 아니라 그냥 산수다.

이용길, 김선동, 두 명의 사무총장 후보는 몇가지 당 수입증대 방안과 절약 방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이미 보도된 것처럼(본지 12일자) 재편이라기보다, '빚 갚는 수준의 안'으로 생각된다. 또한 예산 합의의 중심 기제로 이용길 후보는 ‘상근자 노동조합’을, 김선동 후보는 ‘동지애와 헌신’을 주장했다.

하지만 예산편성 자체가 '정치'라는 전제로 보면,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허리띠 졸라매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두 후보 모두 알고 있을 것. 어느 부분의 예산을 뺄지를 답하지 않으면 ‘뭘 하겠다’는 말은 빈말이 된다. 그래도 이번 경선에 나온 두 명의 후보는 솔직하다. 과감히 (기존예산의 어느 부분을) 빼겠다는 주장이 없는 대신 과감히 (돈 많이 드는 일을) 하겠다는 주장도 없다.

한 예결산위원은 “두 후보의 공약으로만 보면, 예산구조가 획기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사무총장 경선이 너무 돈 문제로만 몰고 가서 재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정말 그게 문제였을까?

정책위의장 경선…지금 교리논쟁 중?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 이후, 진보진영 최대 브레인그룹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탄생한 정책위원회는 사실 오랜 고민의 결과로 디자인된 것은 아니었다. 총선 직후, 당의 급속한 팽창기에 기존 상근인력의 120%의 달하는 연구인력을 선발하는 데 들어간 시간은 불과 한달이었다. 최초 디자인도, 그나마 한발 앞서 원내진출 이후를 고민하던 원외 정책위 구성원 몇몇이 내놓은 안이 별다른 고민 없이 관철됐다.

최초 디자인을 하며 집중했던 주제는 ‘시민사회네트워크 구성’이었다. 부족한 의석을 채워 줄 수 있는 힘을 원외에서 끌어오기 위해 각 연구원들은 기존 시민사회, 민중진영의 정책적 성과와 민주노동당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관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축적된 정책역량은 정책기획실과 의정지원단을 거쳐 의원단으로 전달되고, 그 바탕위에서 정책정당의 모습을 갖추겠다는 구상이 현 정책위의 기본 디자인이었다. 이는 ‘거대한 소수’ 전략의 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초안은 수정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당시 정책위 디자인의 핵심을 담당했던 한 인사는 “뼈대는 남았는데 구상처럼 작동되진 못했다”고 지난 정책위 활동을 평가했다. 사실 디자인을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당시는 ‘추상화’를 그릴 수밖에 없던 시기였으므로.

2기 최고위원회 구성과 새로운 정책위의장 선발 과정은 최초 디자인의 맹점을 짚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기였다. 또한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책위의 주 활동방향이 원내 지원에서, 지역과 네트워크로 옮겨가고 있다. 이를 위한 최적의 조직구성은 어떠해야 할지는 아직 답이 없다. 이 역시 각 후보 진영이 안을 내놓아야 할 주제일 것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선거전을 보자. 정책위의장 선거는 현직 정책위부의장인 윤영상 후보와 지난 선거의 낙선자인 이용대 후보, 좌파적 대안을 강조하는 김인식 후보의 경쟁인 만큼 자연스레 ‘수성’ 대 ‘공성’의 구도로 가고 있다. 문제는 조직과 운영에 대한 관점보다, 지향에 대한 문제로 주쟁점이 형성됐다는 것 아닐까.

“다른 후보들이 정책위가 뭘 하는 곳인지 알고서 후보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윤영상 선본의 핵심 관계자)

“정책위가 설마 놀기야 했겠는가. 제대로 요구되는 역할을 했는지, 객관적 평가기준이 있어야 한다.”(이용대 후보)

거칠게 줄여보면, ‘뭘 알고 비판하냐’는 말에 ‘넌 잘한 게 뭐 있다고’라고 답하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선거는 참 알기 어려운 사상과 지향을 중심으로 향해하고 있다. 계승발전론을 내놓은 윤영상 후보가 ‘자기비판’의 쟁점을 잡지 않는 이상, 지휘통합기능 강화론을 내놓은 이용대 후보가 그에 걸맞은 ‘조직구성안’을 내놓지 않는 이상, 지루한 교리 논쟁은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김인식 후보가 각 후보들의 입장에 대해 이런저런 공세를 던지면서 선거전을 촉발하곤 있지만, 윤영상, 이용대 선본쪽에선 구태여 대응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솔직히, ‘하던 것을 더 잘 하겠다’는 후보와 ‘방향만 제시하고 있는 후보’ 사이의 경선을 놓고 재미있다고 할 유권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수성과 공성이 아닌, ‘자기 혁신’과 ‘새로운 디자인’이 구체적인 안으로 부딪쳤다면 정책위의장 경선은 대단히 흥미롭고 발전전인 논쟁이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되니, 더욱 아쉽다. 더불어, 모든 후보는 당선자가 되기 전에 더 유능하기에 더욱더 아쉽다.

정책위의장 선거는 대체로 ‘결선투표로 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선거에 낙선한 경험이 있는 이용대 후보와 인지도가 떨어지는 윤영상 후보, 조직세가 약한 김인식 후보 모두 일차선거에서 과반수를 득표하기 어렵다고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선투표는 1차투표보다 더 심한 ‘네거티브 선거전’이 될 수도 있다.


일반 최고…그나마 경선 같은


기자의 눈에는 김광수, 김정진, 이해삼, 김성진, 김기수 후보가 각축 중인 일반명부 최고위원 선거가 그나마 진보정당의 의제와 철학의 차이를 드러낸 경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더라도 당내 각 의견그룹의 대표적 인물들이 나와서 각축을 벌이고 있고, 자기 색깔이 분명한 후보들이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조직표를 기반으로 한 3명의 후보와 이에 대항해 “정파구도 척결”, “사회주의 성격 강화”라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의제를 들고 나온 2명의 후보가 나섰다는 점에서 그렇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흥미를 더한다.

지난 13일, 일반부문 최고위원 후보자토론회 역시 다른 선거구에 비해 후보들의 색깔이 잘 드러났다. 예를 들어 패널로 나온 구갑우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의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 임금의 규모와 지급방식을 알고 있는지, 개성공단의 미래는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질문에서 각 후보자들은 변별력이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이해삼 후보의 경우는 “남쪽의 노동3권을 북한에 강요하거나 적용하긴 어려운 일”이라면서 “북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북한의 사회적 노동관계 속에서 결정될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김광수 후보는 임금의 정확한 규모와 북한의 교섭관계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보이며, “북한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제약해선 안 될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김정진 후보는 “투자보증제도를 도입해, 남한의 문제점을 북한에 이식하는 식의 개성공단 운영은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제도적 장치의 문제로 접근을 한 것이다. 김성진 후보는 “남북경협과 통일을 중심으로 한 진전을”, 김기수 후보는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공기업 중심의 진출”을 말했다. 가치 기준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의 다름이 드러난 것이다.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식의 논란보단 진일보한 논쟁이 가능했던 것은, 패널의 날카로운 질의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있던 몇명의 후보(이 질문에 함량미달의 답을 한 후보도 있었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명부…선거꼴이라도 갖춰야

참 답답하다. 1인1표제에서 4명을 뽑는데 4명이 후보로 나선 것을 경선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당직자는 농담처럼 “한표도 못 받은 후보가 생길 경우, 당선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일이 유일하게 남은 쟁점”이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그럼 안에 있는 후보들이 상품성이 없는가?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기호2번 심재옥 서울시의원의 경우는 자타가 공인하듯 민주노동당에서 가장 유명한 광역시의원이다. 2002년 6월 지방선거 이후, ‘일 잘한다’는 이유로 언론에 가장 많이 얼굴을 비춘 전국적 차원의 유명인사다.

여기에다 심 후보는 지난해 말 출산을 하고, 동영상 유세를 벌이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의 여러 정당 가운데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여성이 지도부선거에 나설 수 있고, 유세를 벌일 수 있는 정당은 많지 않다. 아마도 민주노동당이 유일할 것이다. 가볍게 봐도 미담이다. 의미 부여하면 할말도 많아질 일이다. 양성평등 정당의 한 면으로 선전하고 홍보할 일 아닌가.

당의 어떤 유력인사가 말하길, “현직 유력 여성의원이 사퇴하고 여성 최고위원에 나서지 않는 이상, 현재의 4명의 후보를 꺾을 여성 정치인은 민주노동당에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식상한 ‘그 이유’ 때문이다. 양대 정파의 카르텔은 지분이 적은 세력의 진입을 완전하게 막았다. 당직선거는 장점을 죽이고, 문호를 닫았다. 맥 빠진 경선에서 미담이라도 건지려고 덤벼들 기자는 세상에 많지 않은 것이다.

두 가지 질문

결국은 쓸 것은 '정파'뿐인가. 그 이야기라면 책 한권 쓸 만큼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세상에 도움 되는 일도 아니고, 독자들도 좋아할 일이 아닐 것 같다. 또한 이번 당직선거에서 정파는 이미 변수가 아니라 역동성 없는 상수일 따름이다. 선거 장악력 역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빈 그곳을 채울 '내용'이 없는 것이 아쉽다.

민주노동당의 역대 공직선거 정책자료집은 보통 책 몇권 분량이다. 자료집에 있는 모든 주제가 다 득표에 도움이 되진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 분야에 대한 당의 입장을 내놓는다. 공약은 이룰 목표임과 동시에, 정체성에 대한 선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직선거 후보자들의 공약은 단순하고도, 단순할 따름이다. 몇가지 정치적 선언 이상은 없다. 왜 그럴까. 감옥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풍찬노숙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국가권력, 자본, 체제에 대항했던 ‘전사’들은 막상, 자신의 조직인 진보정당의 혁신 앞에서는 전혀 용감하다는 느낌이 없다. 왜 그럴까.

두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진보정당은 과연 지적 능력이라도 경쟁우위에 있는 집단인가."
“후보들은 과연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위해 당의 혁신과 자신의 입지를 바꿀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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