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꽃은 누가 뭐래도 조직 활동이다. 노동자의 힘은 단결에서 나오니, 조직 활동이야말로 노동조합의 꽃이다. 한 겨울에도 꽃이 피지만, 때 없이 핀다고 다 같은 꽃은 아닐 것이다.

1989년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여파로 인해서 80년대 이후 노동조합 조직률이 가장 높았던 시점이다. 그 후 2003년까지 노동조합 조직률은 18.6→10.8%로 떨어졌다. 남성 조직률은 21.8→14.5%로 떨어졌으며, 여성 조직률은 13.4→5.5%로 떨어졌다. 총 조합원 수는 194→155만 명으로 감소했는데, 남자 조합원수는 140→122만여 명으로 감소했고, 여성 조합원수는 53→33만여 명으로 감소했다(노동부 자료).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지난 16년간 노동조합운동의 화두는 계속 산별노조 건설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소기업,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기업별 노조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간 여성 노동자수는 약 202만여 명 늘어났으나, 여성 조합원수는 20만 명 정도 감소했다. 그러므로 여성 조직률 5.5%는 조직 활동의 성과라기보다는, 자연 감소를 방조했으되 기존에 설립된 노조의 덕으로 유지된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조직 활동을 안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기업단위 노조든 상급단체든 간에 모든 노동조합에는 조직부서가 있기 마련이고, 조직 활동은 꼭 조직부서가 아니더라도 모든 노조간부가 밥 먹듯이 하는 일이다. 다만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조직 활동을 한다는 게 문제다. 그 동안의 조직 활동은 이미 조직된 사람들을 지원하고, 또 조직하고, 조직하다 못해 이렇게 저렇게 재편하는 데 집중되었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기업별 노동조합을 또 어떻게 재편하고, 크기를 불리고, 힘을 집중할 것인가? 그래서 기업별 노조의 연합체가 이름이 달라지고, 크기가 달라지고, 집행부가 달라지면, 또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

미조직 분야에 대한 조직 활동은 대기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서 꽃을 피우는 듯하다. 기존의 기업별 조직 방식에 의거할 때 미조직자 중에서 상대적으로 조직하기 쉽고 효과적인 분야가 있다면, 역시 남성 대기업 사업장의 하청 노동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젊고, 억울하고, 정당하다. 현재 비정규직 이슈의 무게중심이 정규직-비정규직간의 불합리한 차별 철폐에 모아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정규직 노조는 구호뿐이더라도 비정규직 철폐, 즉 정규직 전환을 놓을 수 없다. 이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비정규직이 기득권자로서의 대기업노조의 표리부동과 무책임을 묻게 되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한 기업에서 10년 이상을 버텨온 정규직 조합원들은 90년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노조간부들 만큼이나 빨리 늙어가고 있다. 인적 속성별로 보면, 노조 조직률은 남성, 고학력, 중장년,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에게서 높게 나타나고, 일부 전통적 중견생산직을 제외할 경우에는 오히려 중상위 직종에서 높게 나타난다(통계청 자료).

여기에 일자리의 질적 차이가 차별문제만큼 이슈화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차별의 문제는 중요하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에서는 부분적인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소기업, 비정규직, 여성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권익은 여전히 보장될 통로가 없다. 30인 미만의 소기업에 상용고의 36%, 임시고의 78%, 일용고의 90%가 종사한다. 여성노동자의 64.8%가 30인 미만의 기업에 종사한다(통계청 자료).

지난 16년간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단순 미숙련, 판매 서비스, 여성 노조, 지역일반노조가 조금씩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예컨대 여성노조 6,000여명의 조합원수는 누구 말대로 현재 6만 여명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여성노조의 활동은 저임금 비정규직 직종의 기혼 여성 노동자들에게 파고 들었고, 절반의 무게 중심을 제도개선, 일자리 제공, 교육훈련, 모성보호, 탁아지원, 상담 등의 활동에 두는 듯하다. 이와 같이 소기업,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사회적 목소리는 기존의 기업별 노조와 같은 방식으로 모아지고 파급되고 배가되지 않을 것이다.

꽃 피울 공간은 넓지만, 아직 다른 할 일이 많다는 게 문제다. 전임자 수는 줄어들고, 복수노조는 다가왔다. 조직된 사람들을 계속 조직하면서 ‘풀뿌리 산별노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미련 없이 달력을 바꾸고, 초여름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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