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 이미지 개선, 내부개혁 미진’. 이 문구는 지난 2004년 5월 이용득 위원장이 보궐선거로 한국노총에 입성한 이후 100일을 맞은 그해 9월3일, 기자가 한국노총의 당시 모습을 평가하며 썼던 기사의 제목이다.

사실 이제 100일을 맞은, 시작에 불과한 집행부의 모습은 여러모로 미진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한국노총의 대외 이미지는 이전보다 크게 신장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물론 이용득 위원장은 당시 ‘사회연대강화’를 3대 정책 가운데 하나로 꼽았고, 이후 2005년 2월 임기선거에서도 주요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이를 중요시했다. 그리고 그후로부터 1년6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30여개의 시민단체 및 민중단체에 가입하거나 연대하고 있는 한국노총에서 이제 연대는 그냥 ‘평범’한 일이 됐다. 이전 집행부까지는 불과 2~3개 남짓의 연대단체가 있었을 뿐인데도.

이용득 위원장은 취임 이후 곧바로 민주노총을 방문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지만 한국노총이 사회연대를 꾸준하게 강화해 올 수 있었던 것에는 김동만 대외협력본부장의 숨은 노력도 크다. 그는 이용득 위원장이 한국노총에 첫발을 내려놓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1년9개월 동안 대외협력본부장을 맡아왔다. 이후 한국노총에는 새로운 인물도 영입되고 인사이동에 따라 모든 본부장들이 한번씩은 자리를 옮겼지만, 그는 아직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동만 대협본부장은 “한국노총의 변화된 모습은 알아주지 않고 과거의 행동만을 가지고 매도 당하고 비난 받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민중, 시민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서로를 더욱 잘 알아나가는 계기기 돼 이런 것들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다”고 지난 1년9개월을 소회했다. 6일 그를 만나 사회연대 부분에서의 변화된 한국노총의 모습을 들어봤다.


"연대는 한국노총 변화 확인하는 일"


- 이용득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사회연대강화’가 한국노총의 주요사업 중 하나였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만 한국노총이 어려울 때나 기쁠 때 이를 함께 해주는 단체들이 없었다는 게 가장 부족했던 점이었다. 한국노총이 어려울 때도 대부분의 단체들이 옆에서 힘을 북돋워주기보다는 어용으로 매도만 했다. 물론 그만큼 한국노총이 다른 단체와 연대도 부족했고 활동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사람들 또한 마음에서부터 죄스러움이 있다. 과거가 우리에게 안겨준 부끄러운 유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도 많이 변했고 노총도 변해 왔고, 변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많이 알려냈다. 물론 다른 단체와의 연대는 노동운동의 사회변화의 주체세력으로 거듭나는 과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 대협본부를 맡아 일해 온 지 벌써 1년9개월이다. 어떤 활동을 해 왔나.
“처음 대협본부장을 맡은 2004년 5월께는 한국노총에서 연대하는 단체가 민화협 등 2~3군데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30여곳의 단체해 가입하거나 연대해 활동하고 있다. 통일연대,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 민족통일운동부터 파병반대국민행동, FTA· WTO 반대국민행동 등 국제적 문제에도 활동을 하고 있다. 이경해 열사기념사업회와 우리쌀지키기 식량주권수호 범국민협의회 등 농민과 연대도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공무원 및 교수 노동권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대위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등 노동민중들의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일이 거론할 수 없지만 많은 단체와 함께 활동을 진행해 오고 있다. 지난 2년간 동안은 연대단위의 확대에 주력해 온 성과다.”

- 어떤 방식으로 연대를 하고 있나.
“가입단체는 논의부터 행사까지 같이하고 있다. 공동기자회견은 물론 행사에 임원들이 참여해 연대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인원이 필요하면 내부에서 사람을 조직하기도 한다. 파병반대운동이 한창일 때는 촛불집회도 열심히 다녔고, 최근에는 시민사회단체와 공동기자회견도 많이 했다. 노총 임원들도 예전보다는 많이 바빠졌다. 연대단체가 많아진 만큼 참가해야 할 행사도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주말과 휴일이 더 바쁠 때가 많다. 보통 행사들이 토요일과 일요일에 많기 때문이다. 이를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도 사실 일이다. 

"통일운동, 민주노총과 차이 없어"

- 많은 연대를 해 온 만큼 의미가 있었던 일들도 많았을 것 같다.
“전태일 기념사업회와 함께 한 ‘전태일 다리 및 거리 조성’은 생각보다 큰 성과를 냈던 사업 중 하나다. 동판 제작에 한국노총에서 약 650여명이 참가해 동판을 제작했다. 6천만원이 넘는 성금이 모였다. 참여한 단체 중에는 최고 많았다. 사실 시작할 때는 어려움이 많을 줄 알았으나 성과가 많이 남아 기억에 남는 사업 중 하나가 됐다. 그때 위원장과 함께 단위노조를 다닐 때마다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빈곤연대’와 함께 했던 기자회견과 삼보일배, 쪽방집 방문도 의미있는 연대사업이었다.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할 때는 산하조직에서도 10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등 내부적인 호응도 높았다. 지난해 4월께 했던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집회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 장애인들과 함께 전경들과 몸싸움도 많이 했다. 아울러 겉으로 많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공무원 및 교수 노동3권 쟁취 공대위’는 한국노총에서는 신경을 많이 썼던 연대활동이었다. 이들의 노동3권이 보장되는 날까지 한국노총은 함께 연대해나갈 것이다.”

- 통일운동 및 통일단체와 연대사업에 발전이 많았던 것 같다.
“이용득 집행부가 출범한 이후 내부적으로는 통일학교를 처음으로 열었으며 통일선봉대는 2004년 처음으로 구성돼 지난해 두번째 진행했다. 그전까지는 금융노조를 중심으로 ‘통일순례단’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했다.
처음 통일선봉대는 할 때는 지역에서 반발이 거셌다. 물론 선봉대로 바꾸면서 통일연대 소속으로 다른 단체들과 함께 활동을 하긴 했지만 ‘순례단은 하지만 선봉대는 못하겠다’, ‘우리 지역에는 오지 말라’는 등 반발이 있었다. 그만큼 한국노총의 사고가 경직돼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있고 노총도 변하고 있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동화돼 가고 있다고 본다.
또한 통일사업에 있어서만은 민주노총과 생각이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양대노총 운수노동자들의 개성회담, 향후 평양에서 열릴 직총과 민주노총, 한국노총 삼대 조직의 산별대표자회의 개최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피치, 못자리, 비닐 등 북한지원사업도 끊임없이 전개했다. 이런 부분은 민주노총과 함께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다.”

-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려운 점들도 있을 것 같다.
“이용득 위원장이 ‘사회연대 강화’를 강조했던 만큼 신경도 많이 썼다. 사회연대는 이 위원장이 큰 기조로 잡고 밀고 왔기 때문에 대협본부에서도 힘을 받고 여기까지라도 해 올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이 위원장이 요구했던 사안들을 모두 소화하기 힘들 때도 많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상황과 다름없었던 그때는 요구수준은 높고 실력은 미치지 못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외기노련이 산하조직인 만큼 통일사업에도 제약이 있었다. 통일운동을 하는 많은 단체들이 최근 평택미군기지반대 운동을 하고 있지만 한국노총은 참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외기노련 조합원들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문제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일방적으로 반대만을 외친다면 이들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예민하지만 이같은 고민도 갖고 있다.”

"국민 신뢰, 사회단체와 연대는 필수"

- 사회연대에 일정 부분 성과가 있긴 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사회단체와 연대는 필수다. 운동하는 조직끼리 힘을 모아 함께 나아가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잘 해왔다고 평가하지만 할 일은 갈수록 많다. 농민과의 연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연대는 우리가 앞으로 보다 강화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이제 연대단위가 넓어진 만큼 연대의 질을 도모할 수 있는 계획들이 수립되고 시행돼야 할 것이다.

노동단체가 매일 머리띠만 매고 요구만 하는 단체로 전락해서는 노동운동의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 지난해 지진해일이 인도양 해안을 덮쳤을 때 한국노총에서는 약 1억원의 성금을 모아 국제노동단체에 기부했다. 이같은 노력들이라도 지속돼야 한다. 노동운동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호응을 받았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이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지난 85년 한일은행노조에서 쟁의부장을 맡으면서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김 본부장은, 지난 99년 금융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하며 국민주택은행 파업 과정에서 구속된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노동운동이 사회의 주체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노동계가 더욱 거듭나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사회연대를 강화하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