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면 신문이나 방송이 빼놓지 않고 등장시키는 인물이 있다. 동트는 새벽에 아무도 다니지 않는 거리에서 야광 조끼를 입고 거리를 비질하는 환경미화원. 이런 경우 카메라 렌즈는 대개 주름진 얼굴에 약간의 고집과 자부심이 깃든 표정, 그리고 오랫동안의 육체노동으로 약간 마른 몸집과 왠지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힘들고 궂은 일 하니 흥청망청한 연말연시나마 이들을 한번 생각해주자는 식이다. 이리하여 이들은 '혼자'가 되고, 노동자보다는 '근로자'가 된다. 그리고는 끝이다. 내년 연말연시면 언론은 다시 이들에게 카메라 렌즈를 들이댈 것이다. 그저 맡은 바 제 자리에서 묵묵히 열심히 하라는 것인가.

그러나 환경미화원들은 연말연시 한때 뉴스의 주인공이 아니다. 해서, <우리이웃> 신년호에 이분들을 모시기로 했다. 더이상 환경미화원들이 연말연시 '이벤트'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왜 진작 이 일을 안했을까 싶다니까!"


서울 성북구 정릉1동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최기수씨(47). "아, 씨바, 차를 이따우로…." 골목길. 이웃 생각하지 않고 저 편하자고 제맘대로 주차해놓은 차들로 쓰레기차가 옴짝달싹도 못하자, 기수씨가 운전대를 놓고 담배를 물며 한마디 한다. 성질 많이 죽었다.
기수씨는 야광 조끼를 입지 않고 있다. 아직 밤이 되지 않았으니, 조끼를 입고 안 입고는 스스로 알아서 할 나름이다. 실은, 환경미화원 조끼가 스타일을 살려주는 건 아니지 않은가. 기수씨 얼굴에는 주름 대신 까만 콧수염이 '내가 기수야, 기수'라고 호언하듯 붙어 있다. 가슴은 다부지고, 어느 한곳 왜소해 보이는 데가 없는 딴딴한 몸집이다. ‘행님들’ 특유의 팔자걸음이지만, 뒷모습은 민첩하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소싯쩍에' 한가락 했을 것만 같은 기수씨.

“한참 노조탄압 받을 때 남의 차 박아서 내가 물어 주기도 했다니까요!” 팔자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노조활동 하느라 기수씨 성질은 많이 죽었다. 연말연시에 언론에 달랑 한 장의 사진으로 등장하는 환경미화원. 그들은 언론에 의해 '풍경'으로 다루어진다. 그래도 그 풍경 속의 환경미화원은 공무원이었다. 우리의 기수씨는 성북구 쓰레기를 수거하고 성북구라고 선명히 찍힌 청소차를 운전하고 있지만, 성북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북구청과 청소대행계약을 맺은 태한환경이라는 생활쓰레기수거업체의 직원일 뿐이다. 기수씨는 쓰레기 수거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정릉1동 16번지 골목을 간신히 빠져나오자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기수씨의 표정이 풀린다. 16번지 골목에서 실은 쓰레기가 1톤트럭 짐칸에 한가득이다. 기수씨는 조심조심 '얌전히' 차를 몰아 정릉1동 산72번지로 향한다. 행여나 쓰레기가 떨어지면 차를 세워 다시 올려야 하는 것도 고역이지만, 그것보다는 쓰레기를 처치하는 기수씨의 사명감과 자존심이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10미터쯤 가다 차를 세우고 집 앞에 놓인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 트럭에 싣는다. 다시 차에 올라 10미터쯤 더 간 뒤 차를 다시 세우고 쓰레기를 또 싣는다. 반복되는 작업이다. 기수씨의 동작은 재빠르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이 나왔다. 기수씨는 트럭 위에서 큰 바구니를 꺼내 좁은 골목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윽고 골목 저 안에서 늠름하게 그 큰 쓰레기 바구니를 끌고나오는 기수씨의 모습이 보인다. 한번에 다 할 수 없어 좁은 골목길에서 쓰레기를 내오기 서너번.

이번에는 쓰레기 바구니를 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가파른 계단이 있는 골목길. 쓰레기봉투를 안고 들고 내온다. 연탄재까지 있다. 힘 없으면 못할 일이다. “쓰레기 치우는 이 일이 딱 체질이라. 봉제보다 나은데 왜 진작 이 일을 안 했을까 싶다니까!”

"화요일, 목요일에 치운다 안카요!"


고향이 대구인 기수씨는 1989년 결혼을 하고 1년 뒤 아내와 함께 상경했다. 서울에서 봉제공장을 하는 누나 밑에서 일을 배웠다. 기수씨는 재단, 아내는 미싱. 1년 정도 지난 익숙해지자 누나는 살림집 겸 공장 겸 쓸 집을 마련해 주셨다. 거래처는 누나가 확보해준 덕에 기수씨네는 일만 하면 됐다. 일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10명까지 있던 적도 있다. 출퇴근 시간도 없이 낮이나 밤이나 일만 해야 했지만 기수씨가 술만 안 먹고 농땡이만 안 부리면 특별히 문제없는 나날이었다. “아엠에뿌 오고 장사가 안 돼서 망해 묵었지. 그때 우리같은 봉제공장 열에 일곱은 나가 떨어졌을끼라.”

대책이 없던 기수씨는 술을 들이켰다. 과도한 음주는 화를 부르는 법. 술 먹고 주먹 딱 한번 날렸다 더 큰 곤욕을 겪게 됐다. “막판까지 가 보니까 마누라 생각은 안 나는데 새끼들 얼굴이 딱 떠오르는데…” 아이들을 생각해서 정신을 수습하게 된 기수씨. 당시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던 공공근로로 청소를 하면서 ‘쓰레기 청소업계’에 '입문'을 했다.

‘쓰레기 청소업계’ 일을 하는데 애로사항 중 하나가 민원이다. 산72번지 동네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쓰레기를 치우는데 주민 한 분이 나와 “연탄재를 왜 제때 가져가지 않냐”고 따진다. 그러니까 기수씨가 쓰레기 수거를 담당한 구역은 정릉1동이다. 정릉1동을 두 구역으로 나눠 하루는 1구역의 쓰레기를, 다른 하루는 2구역의 쓰레기를 수거한다.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이틀에 한 번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셈이다.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라 이틀에 한 번 오니까 매일 치울 수 없다고 하면 될 터인데. 말이 어눌한 기수씨, 고작 나온 얘기는 “이 쓰레기를 3년 동안 내가 치웠는데….” 항의하는 주민은 3년 동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주민은 “어떤 때 보면 사흘나흘씩 재여 있다”고 궁시렁거리면서 쓰레기를 언제 가져가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종당에는 으르렁거린다. 헌데, 이 역시 조곤조곤 설명할 수 있는 사항이다.


기수가 오후 4시30분부터 일을 해서 정릉1동의 한 구역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첫 탕'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시간. '첫 탕째'는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연탄재를 수거한다. '두번째 탕'을 돌 때도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연탄재. '세번째 탕'을 돌 때는 가정에서 나오는 제품 쓰레기다. '세번째 탕'을 돌 때면 대략 9시가 된다. 이때는 연탄재를 내놓아도 수거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연탄재는 집 앞에 사흘 동안 쌓여 있게 되고, 이러다 눈이 많이 와서 얼음길이 되면 무리해서 치울 수 없다. 이건 회사에서도 참작을 하겠다고 한 사항이다. 또 불가피한 사항으로 일반쓰레기나 음식물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날은 연탄재는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미룰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수씨는 얘기를 제대로 못하고, “아 알았십니데이. 화요일 목요일에 치운다 안카요.” 하며 허겁지겁 연탄재를 들어낸다.

쓰레기 수거 관련한 민원이 구청에 들어가게 되면 구청에서는 담당하고 있는 쓰레기 수거업체에 주의를 준다. 민원 발생은 업체측에서는. 이후에 재계약 여부를 좌지우지하는 큰 문제다. 이렇게 되면 그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환경미화원들에게 불똥이 떨어진다.
기수씨를 비롯한 환경미화원들이 늘 원리원칙대로 한다고 할 수도 없고, 주민들의 민원이 늘 사리에 맞는 것도 아닐 터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기수씨는 최악의 경우 해고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릉1동 산72번지 골목을 빠져나오던 기수씨. 부아가 나는지 담배를 한 대 문다. 진짜 성질 많이 죽었다.

7명이 싸워 20명이 넘게 되다

기수씨는 '뽁싱선수'였다. 대구 협성상고 2학년 때 경북신인왕전에 나가 8강까지 올랐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아' 달걀 행상하시는 어머니 호강시켜 드리고, 봉제공장 다니는 누나 공장 턱 하니 차려 주리라.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하고 고된 훈련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인생은 역전되지 않았다.


복싱 꿈나무가 아닌 주먹 센 열여덟 살 남자 아이는 싸움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협성상고 주먹들과 대성공고 주먹들이 크게 한판 붙을 때 기수씨도 '참전'했다가 그만 퇴학을 당했다. 기수씨가 주동이었다고는 하지만 집에서 나섰으면 퇴학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술 드시는 아버지, 달걀 행상 하시는 어머니가 무슨 힘이 있나. ‘말죽거리잔혹사’가 아니라 ‘범어동잔혹사’를 한 편 찍은 대가는 너무 컸다. 이 뒤로 1989년 결혼할 때까지 10여년 넘게 기수씨는 범어동의 ‘도그 행님’으로 지냈다.

아니 ‘행님’이 어떻게 쓰레기 수거를? ‘행님’들이란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폼생폼사’족들인데? 어쨌거나 쓰레기 수거가 본때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수씨 표정은 천하태평이다. “나는 진짜 이게 천직이다 싶다니까? 남 간섭 안 하지. 일 끝나면 술 한잔 묵고 집에 가서 자면 맘 편하고. 월급도 마누라 통장으로 꼬박꼬박 들어가지. 아~ 좋다니까!”

한때 잘 나가던 '행님'이 뒤늦게 ‘쓰레기업’을 천직으로 알고 조신하게 일하시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기수씨가 일하는 태한환경에 2002년 노동조합이 생긴 것이다. 별 관심 없던 기수씨였다. 노동조합뿐 아니라 직장생활이라고는 쓰레기수거업체에서 일하는 게 처음이었기에. 그런데 회사가 지부장을 비롯한 조합원을 너무 심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중간관리자들과 친하게 지내던 기수씨이었지만 역시 '이건 아니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차에 그만 기수씨도 회사측으로부터 억울한 경우를 당하게 됐다.

이리하여 기수씨는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의 '조직원'이 됐다. 당시 조합가입 대상자는 30여명, 조합원은 7명이었다. 노조 경험이 있을 리 없는 쓰레기수거업체가 쉽게 노조를 인정할 리 없다. 이 '황야의 7인'들은 사측의 탄압인지 시비인지 알 수 없는 온갖 일들로 고초를 겪어야 했다. 기수씨는 1톤트럭을 몰다 리어카를 몰아야 했다. 이래도 기수씨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한번 몸담은 조직에는 충성을 바쳐야 하는 게 기수씨의 세상 사는 법칙이다.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다 기수씨는 2004년 1월 징계해고를 당했다. 이유는 민원인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고, 불성실한 근무로 민원을 유발했다는 것이었다. 직장 질서 문란도 추가로 떴다.

민원인으로부터 금품 수수. 이런 내용이다. 쓰레기를 많이 내놓는 음식점에서 수고한다고 돈 만원 쥐어줬는데 이걸 거절 못한 것을 사측에서 문제 삼고 나왔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치사하다’, ‘내가 아무리 청소를 하지만 이런 꼴까지 당해야 되냐’며 손 털고 나올 수도 있다.

‘야마’가 뺑 돈 기수씨. 한때 ‘도그 행님’이셨다. 시시비비를 가려보자며 민원인들을 찾아가 사실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최기수씨는 금품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라고 적힌 종이를 일일이 받아 왔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구제신청을 넣고 사측과 공방을 벌였다. 2004년 3월, 사측과 노조의 화해로 재입사 형식으로 복직이 됐다. 승부 근성이 있었던 ‘도그 행님’과 노조의 승리였다.

2005년 4월 노조는 임금인상과 휴게실 문제 등으로 파업을 벌였다. 성북구 내 쓰레기수거업체보다 월급이 20여만원 낮았기 때문에 다른 업체와 비슷하게 해달라는 요구였고, 탈의실과 샤워시설이 없으니 만들어 달라는 거였다. 파업투쟁을 통해 환경미화원들은 속속 조합에 가입해 지금은 과반수가 넘는다. 어느 정도는 안정이 된 셈이다.

"지부장과 평생 함께 하기로 맹세를 했다고!"


요즘 기수씨는 한솥밥 먹는 환경미화원들이 일치단결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노조가 얼마나 중요한데. 노조활동을 하다 징계해고를 당했지만, 그 노조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복직이 되었겠는가. 노조 없는 업체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1년마다 사람을 내보낸다고 하지 않는가. 또 아직 확보하지 못한 탈의실과 샤워시설도 쟁취해야 되고.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기수씨가 생각하는 만큼 조합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를 않는 게다. 조직에 들어왔으면 조직의 장, ‘짱’의 말을 따라야 한다. 기수씨도 지부장과 평생 함께 하기로 맹세를 했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은 지부장의 말을 곱씹어 보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되물어 보기도 하니…. 이게 기수씨는 이해가 안 된다. 각자가 생각이 많은 것도 문제다. 생각은 지부장이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는 기수씨는 곧 있으면 민주노동당에 입당할 예정이다. 지난 파업투쟁 때 성북구 지역위원회에서 지원투쟁을 나오고,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기수씨는 이전까지는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걱정이다. '배신은 곧 죽음'으로 알고 있는 의리의 사나이 기수씨가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정릉1동 16번지를 두번째 돌고 있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쓰레기차를 따라온다. 기수씨가 차를 세우고 반갑게 인사를 하자 할아버지가 까만 비닐봉지를 내민다. “동치미요. 일하는 사람들이랑 나눠 드시오.” 기수씨는 인사를 몇번이나 하며 받아든다. “사람들이 아직 인정이 있어요. 청소한다고 무시도 안 하고. 얼마 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김장했다고 김치도 줬다니까요."

이런 문제가 빌미가 돼 징계해고까지 당했으면서 기수씨는 서슴지 않고 받는다. 왜냐하면 너무 고맙기 때문이다. 거절할 수가 없다. ‘사랑하지만 헤어진다’가 어불성설인 것처럼 ‘고맙지만 거절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지만 헤어지고, 고맙지만 거절하는 건 뒷일을 생각하는 먹물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게 기수의 생각이다. 물론 이건 세상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기수씨의 룰은 아니다.

기수씨의 표현에 따르면 “환경미화원은 주민들의 하인”이다. ‘하인’이라는 말처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건 전근대적이다. 이래서 한때 행님이었던 기수씨가 쓰레기 수거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수씨는 ‘정’이 좋고, ‘나와바리’가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회사나 구청, 세상은 근대적인 기준을 갖다댄다. 주민들에게 물 한잔 얻어 마셔도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주민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구청에서는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하는 한 기준으로, 회사에서는 직원을 평가하고, 어떤 경우에는 노무관리로 변하기도 한다. 기수씨 처지에서는 비정한 세상이다.

어쨌거나 동치미에 기분이 좋아진 기수씨. 어느 중국집 앞에 쓰레기차를 세우고는 '빠방빵~빵빵' 월드컵 경적을 울려 댄다. 중국집 문이 열리더니 쓰레기를 들고 나온다. 늘 이 시간이면 쓰레기가 나와 있는데 오늘은 미처 내놓지 못한 것 같아 일부러 챙겨 가는 것이다.

길음 시장을 지나는데 “아는 아줌마가 지나간다”며 기수씨는 그 아줌마에게 차 안에서 손을 흔든다. 한때 사교춤 실력도 대단했던 기수씨. 요즘 제일 예쁜 아줌마는 깔끔하게 쓰레기 버리는 아줌마다.

부부를 이어주는 가장 강력한 끈은 아이들
 
밤11시면 퇴근을 한다. 장위동 주택가의 다세대주택 2층. 전세 3000만원짜리 집이다. 아내 박정순씨(43)는 근처에 있는 봉제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고 있다. 정순씨의 퇴근시간은 보통 9시다. 이날은 10시가 되어 퇴근해 아직 식사 전이라고 했다. 부엌 한켠 밥솥에서 밥이 김을 푹푹 거리고 뿜으며 되고 있다.


손님을 달고 온 기수씨에게 정순씨는 묻는다. “인터뷰하면 월급 올라요? 회사에서 뭐라고 하는 것 아니에요?” 한참을 생각하던 기수씨는 “그런 게 아니고 지부장이 시켜서 한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성질 많이 죽었다.

기수와 정순씨는 2남을 두었다. 큰아들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인덕공고에 입학했다. 공부를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무난한 편이다. 중학교 3학년이 돼야 하는 작은아들은 걱정을 하게 만든다. 지난해 휴학을 하고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 정순씨는 속 깨나 썩지만 “사춘기”라서 이해하고 있다. 기수씨 역시 “사춘기 때는 옆에서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한다.

낯선 손님이 들어서자 두 아들은 인사만 꾸벅하고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곧 이어 작은 방에서 들려오는 컴퓨터게임 소리. 기수씨와 정순씨는 아이들과 얘기를 많이 나누지 못한다. 일하고 돌아오면 늦은 밤이다. 아이들은 자거나, 아니면 게임 중이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낮에 피곤하고 신경쓰이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어렵게 말을 붙이려 해도 각자 생활이 다르다 보니 마땅히 할 말도 없다. 미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기수씨와 정순씨를 이어주는 가장 강력한 끈은 아이들이다. 기수씨가 힘들 때 떠올린 얼굴은 아이들 얼굴이었다. 정순씨는 기수씨 때문에 속 상해 도망가고 싶을 때 아이들 생각해서 참았다. 지금도 정순씨와 기수씨의 가장 큰 소망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다. 아이들과 잘 되어야 하는데 부모로서 의식주 해결해주고, 학교 보내고 겨우 학원 보내주는 것이니. 하지만 남들도 이렇게들 산다. 엉뚱한 욕심 품지 않는 것에 만족을 할 줄 알게 된 기수씨다.

늦은 밤, 밥을 챙겨 먹고 난 뒤 네 식구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기수씨는 돈이 좀 모이면 개인택시를 하고 싶고, 정순씨는 다시 봉제공장 사장님이 되고 싶다. 기수씨가 그 꿈을 이루려면 우선 지금 하고 있는 환경미화원 일이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 월급도 더 올라야 한다. 일도 더 안전해야 한다. 정순씨가 그 꿈을 이루려면 기수씨가 애써 잡은 마음이 흐트러지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이 기수씨의 일상이고, 환경미화원들의 일상이다. 그들은 매일매일 쓰레기와 싸운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을 위협하는 게 있다면 그것과도 싸운다. 기수씨들은 연말연시의 '풍경'이 아니라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다.



 
 
기수씨의 월급은 150만원. 정순씨는 140만원이다. 12월에 자동차할부금 40만원이 끝이 났다. 부부는 홀가분한 표정이다. 저축 겸 각종 보험으로 30만원이 들어간다. 전기, 수도, 인터넷 요금으로 12만원, 핸드폰요금이 15만원 나간다. 쌀과 부식, 생필품 등 생활비로 50만원이 드는 것 같다.


한번도 가계부를 적어본 적이 없다는 정순씨. 아이들 옷 같은 건 생활비에 들어가는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단다. 아이들 학원비가 한달 50만원 가량 나간다. 아이들 용돈은 하루 2천원씩 준다. 2명이니까 12만원이 된다. 1월에는 큰아이 등록금으로 49만원을 내야 한다. 정순씨는 고등학교 가는데 1백만원 정도 들 것 같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교복도 사야 하고 가방도 사야 하고….


“한 명 벌어서는 도저히 아이들 공부시킬 수 없다”고 정순씨가 푸념을 해도 기수씨는 늠름한 표정이다. ‘이제 내가 착실해졌잖아! 그리고 우리는 빚도 없는데 뭐.’ 이런 생각인 듯. 다행히 빚은 없다. 봉제공장 망하면서 집을 처분해 청산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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