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개의 분회와 200여명의 조합원. 서울일반노조의 조직상황은 2001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다른 지역 일반노조에 견줘 조직률이 떨어진다. 민주노총과 각 연맹 본부가 자리 잡고 있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인구 1천만명에 이르는 ‘공룡도시’ 서울.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상황은 여느 지역과 다를 바가 없다. 서울일반노조 소속 올림피아드학원분회의 운전기사, 인터컨티넨탈호텔의 룸메이드, 프라자호텔 외식사업부의 서빙 노동자 등…. 해고노동자들의 겨울나기는 혹독하기만 하다.

2005년 연말, 서울 성동구의 올림피아드학원. 잘 나가는 신생학원이다. 광진, 자양캠퍼스까지 합해 총 23대의 학원버스를 운영할 만큼 급성장하고 있는 것. 성동구에는 10대의 학원버스가 학생들을 부지런히 실어 나른다. 운전기사들은 오후 3시경에 집에서 나와 저녁 11~12시까지 등원과 하원 총 9탕을 뛰게 된다. 시험기간에는 새벽까지 운행시간이 연장된다.

이렇게 해서 운전기사들이 받는 월급은 210만원(25인승 기준) 가량. 올 초 3년 만에 처음으로 20만원이 오른 금액이다.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름값 50~60만원과 보험료 7만여만원, 분기별 15만원의 환경부담금, 월 평균 15만원 정도의 차 수리비 등 차량 유지보수비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학원이 아닌 기사의 몫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실 수령액은 100만원 안팎이다. 이마져 4대보험과 퇴직금이 없다보니 실수입은 더 떨어진다. 그래서 운전기사들은 오전 시간을 이용해 유치원 원생들을 태우는 일 등의 부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서 오전 부업을 맞추는 일도 피곤한 일이다. 노후한 차량이 말썽을 일으킬라치면 일은 더 커진다. 차량 수리를 새벽에 끝내야 오전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안 경조사 등 불가피한 일이 생겨 ‘대차’를 해도 전적으로 기사의 부담이다. 하루 대차에 15~20만원. 사람만 쓰면 10만원 정도다. “일주일 쓰니까 100만원 들더라. 참 나 그나마 아는 사람이라 그 정도지.” 운전기사들은 죽을 정도가 아닌 이상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입차주’ 형태로 운영되는 학원차량 운전기사의 실태다.

부당한 ‘차량용역계약서’ 거부에 해고


“기름값이 오른 것을 고려해 주십시오.” 박종갑 올림피아드학원분회 해고자는 이전 회사 회식자리에서도 학원 원장에게 항의한 경험이 있다. 너무나 정당한 말을 당당하게 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는 “반영하겠다”고 해놓고 뒤돌아서서는 바로 해고 통보를 날리는 어이없는 경험.

올 초 운전기사들의 노조결성 움직임을 파악한 올림피아드학원측은 운전기사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기 위해 부당한 ‘차량용역계약서’ 작성을 강요했다. 이전에도 1년 단위 계약직 신분이었지만 도급계약은 명확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운전기사들은 계약서 작성을 거부하면 해고 등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다.

그러나 박종갑씨는 부당한 용역계약서 작성을 거부했고, 지난해 11월 17일자로 해고되었다. 학원 앞에 천막농성을 진행하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방송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박씨. “운전기사들의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학원에 맞서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앞장서서 끝까지 투쟁할 겁니다.” 사회양극화의 주범은 ‘비정규직 확대’라고 굳게 믿고 있는 박씨.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는 처지. 아내는 집에서 봉제 일을 시작했지만 벌이는 40여만원 정도다. 아이들 학습지 가르치던 것도 이미 끊었다. 피켓을 들고 서있는 그의 눈은 언젠가 맺힌 한을 풀고 말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학원측은 노조의 교섭요구에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며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줄곧 지입차주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학원연합회 차원의 문제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올려주고 싶어도 학원연합회가 있어서 어렵다. 당신들만 올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 견고한 벽이었다. 애초 서울일반노조도 ‘학원연합회’와 교섭을 하려고 했으나 학원 운전기사들의 조직력은 아직 미흡했다.


“입바른 소리했다는 이유로 계약기간 만료를 들어 해고되었지요.” 인근 플러스학원에서 3개월 전에 해고된 같은 처지의 박현구(51)씨가 방송선전전을 같이 준비하고 있다. 곧이어 녹음된 해고노동자의 목소리가 학원가에 울려 퍼졌다. “학원차량 기사도 노동자다! 올림피아드학원은 노동조합 인정하라!”

학원차량 운전기사들은 레미콘 노동자들처럼 ‘지입차주’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 속에 생존의 위기에 몰리고 있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단위 학원을 대상으로 한 투쟁보다 학원연합회와의 투쟁이 중요합니다.” 김형수 서울일반노조 부위원장의 말처럼 일치된 학원을 대상으로 한 싸움에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노조의 조직력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할 터.

그러나 학원 운전기사들과 학원강사, 식당노동자들은 ‘행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용의무’ 해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서울지역, 또 하나의 대표적인 일반노조 사업장은 인터컨티넨탈호텔 분회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통지나 노동위원회의 ‘정규직화 명령’은 사용자에게는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인터컨티넨탈호텔(한무개발)의 하도급업체인 순원기업에 채용돼 룸메이드와 퍼블릭으로 파견되어 있던 노동자 김미자, 조옥희씨. 이들이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해 서울지노위는 지난해 8월 “호텔의 불법파견 근로자 직접 고용 거부는 부당한 해고”라고 판정했다. 인터콘티넨탈호텔측에 김미자, 조옥희 조합원을 직접 고용할 것을 명령한 것.

이보다 앞선 2004년 10월 강남지방노동사무소는 ‘불법파견’을 인정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따르지 않으면 그뿐이었다. 지난해 조합원들은 줄기차게 호텔측의 직접고용을 요구했으나 호텔측은 ‘직접고용할 의무가 없다’며 거부했다. 오히려 돌아온 것은 지난해 7월 ‘대기발령’에 이은 해고였다.

불법파견 판정과 정규직 고용의무 명령에도 꿈쩍하지 않는 호텔. 호텔측은 대법원까지 간다고 하니 해고노동자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갈 뿐이다. 6년째 파견근로 비정규직이었고,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할 것을 명령해도 사업주는 지키지 않으면 그 뿐이다. “지금 비정규법안 논의에서 ‘고용의무’를 해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고용의제’ 명령을 해도 듣지 않는 판인데, 고용의무에 벌금조항 들이밀면 어느 사업자가 그걸 지키겠느냐고요.” 김미자 해고노동자는 비정규 당사자로서 너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우리가 단지 인원이 적다는 이유로 언론에 부각이 안되었어요. 그런 점에서는 <매일노동뉴스>에 대해서도 서운해요. 달랑 기사 몇 줄 나가고, 진작에 할 것 안하고 말이지….” 비정규법안 입법과정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고용의무’와 ‘고용의제’의 차이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질책이었다. 민망하고 무안한 마음에 기자의 고개는 자꾸만 떨구어졌다.

인터컨티넨탈호텔 비정규노동자들은 2001년에도 전국여성노조에 가입해 용역직 룸메이드 4명에 대한 계약해지에 반발해 투쟁한 바 있었다. 당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그 뒤 몇 년간 소강상태를 보였다. 조합원들은 올해 서울일반노조에 재가입해 투쟁을 했다.

그러나 불법파견 판정과 고용의무 명령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해고노동자들의 복직과 정규직 전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태 집회 하느라 생계가 말이 아닙니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서는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김미자 해고노동자는 어느 해보다 가혹한 겨울을 맞고 있었다.

‘파업권’은 획득했지만 만만찮은 투쟁

일방적인 계약해지와 고용의 불안정 속에 비정규노동자들의 고통은 나날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 프라자호텔 ‘외식사업부’ 분회는 정규직 노동자들이지만 같은 정규직과의 임금차이, 고용불안정은 비정규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업부서에 따라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의 차이가 컸고, 언제 잘릴지 모를 불안감은 하고 싶은 말도 주저하게 만들었다. 2004년 4월 해고된 이대정씨는 프라자호텔 외식사업부에서 13년 동안 근무해왔다. 당시 외식사업부의 주력업종은 열차 식당칸 영업이었다.

그러나 KTX가 신설되면서 회사는 사업권을 포기하게 된다. 열차 식당인력은 명퇴대상이었다. “정리해고 며칠 전까지도 명퇴를 받는다는 말만 있었지, 정리해고란 말은 없었어요.” ‘계속 다니겠다’는 희망은 해고의 칼날로 돌아왔다. 졸지에 해고된 이씨는 2003년 노사협의회의장 선거에서 소위 ‘민주파’가 승리한 것이 해고의 직접적 이유로 추측했다.
노사협의회 의장을 한 사람이 13년 동안 계속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젊은 사원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회사 간부들이 찾아와 “선거에 나서지 말라”는 회유도 있었다. 그러나 바꿔보자는 결의는 결국 선거승리를 이뤄냈다.

이씨가 복직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일반노조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것을 파악한 회사측은 ‘어용노조’를 앞세워 노조무력화에 나섰다. “처음에는 ‘노조가 없다’는 이유로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하더니, 쟁의조정 신청을 하니까 이미 97년부터 노조가 있었다면서 회사측이 말을 뒤집었죠.” 지난해 8~9월경에 한국노총 산하의 어용노조를 급조해, 민주노조 활동을 원천봉쇄하려는 의도였다는 설명이었다.

2년여의 해고자 신세. 틈틈이 막노동과 시간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했고, 평생 집에만 있던 아내도 그의 해고와 함께 식당보조일을 시작했다. 해고자와 그 가족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서울지노위 앞에서 보름여 단식투쟁을 할 만큼 이대정 해고노동자는 투사가 되어 있었다.

서울지노위는 처음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 ‘노조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정리해고시 노조와 협의가 없었더라도 절차성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한화개발분회를 만들자 이제는 ‘이미 호텔사업부에 노조가 있으므로 복수노조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서울일반노조는 서울지노위의 부당한 행정지도에 맞서 ‘쟁의조정 신청’을 했고, 20여일 동안의 단식투쟁 등을 통해 지난해 10월 24일 마침내 ‘조정종료’를 끌어냈다.

프라자호텔 외식사업부의 한화개발분회원들은 ‘파업권’을 쟁취했다. 그러나 이것은 본격적인 현장 투쟁을 위한 단초일 뿐이다. 문제는 지금부터고 현장의 조직력이 중요하다. “신생회사는 정규직이 3~5%밖에 안된다.” 회사측의 공공연한 말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예고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비정규직으로 몰릴지 모를 처지인 조합원들은 매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상반기 투쟁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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