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청 맞은편 미디센터.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노동단체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다. 3층의 서울일반노조 사무실은 이주노조와 같은 공간을 쓰고 있다.

“새롭게 위원장이 되셨다고요. 축하합니다.”

“그럼 전 위원장께서는….”

23일 저녁 임재경(40) 서울일반노조 신임 위원장과 김형수(43) 부위원장(전 위원장)이 이주노조 간부들로부터 느즈막히 축하 인사를 받고 있었다.

‘문학도의 꿈’을 키워 나가는 신임 위원장


20일 확정된 서울일반노조 ‘임원선거’. 이주노조는 한솥밥을 먹고 있는 사이지만 서울일반노조 위원장이 바뀐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러나 서로 업무에 바쁘다고 해서 애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 문제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사실 영세사업장 문제와 다른 문제가 아니거든요.”

“악조건에서도 더 힘들게 투쟁하는 분들이죠. 우린 쫓겨나지는 않으니까요.”

‘배고파 본 사람만이 배고픈 심정을 안다’고 했다. 임재경 서울일반노조 신임 위원장은 김형수 전 위원장과 같이 인터뷰를 진행하기를 원했다. 자신의 경력이 짧아 서울일반노조의 풍부한 얘기를 들으려면 김 전 위원장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2년 임기를 시작하는 임재경 신임 위원장은 ‘늦깎이’ 활동가다.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임 위원장은 학교 졸업 뒤 근 10년을 문학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일념으로 살아왔다. 자장면 배달, 이삿짐센터, 방수공사 보조공 등 막일 등 생계는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였다. “소설 쓰기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할 요량이었어요. 그런데 회사가 사람이 필요해서 있는 것인데, 부당하게 개인을 억압하는 측면을 너무 많이 느꼈죠.”

지난해 6개월 동안의 노무사 연수기간을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하게 된 임 위원장은 현 윤선호 교육선전집행위원의 권유로 일반노조에 가입했다. 올 3월에는 서울일반노조 사무국장이 휴가를 가면서 일주일 상근을 하게 됐다. 업무공백을 메꾸기 위한 일주일이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올 한해 그는 교육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어떻게 보면 위원장에 대한 검증이 덜 된 측면도 있었을 텐데. 파격적인 발탁이 아닐 수 없다. “짧은 기간이지만 상근하면서 본인의 몸을 돌보지 않고 밤샘근무 등 헌신적인 활동을 보였어요.” 전 위원장인 김형수 부위원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혼을 집어넣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가 두터워졌고, 위원장 소임을 통해 더 깊이 있는 활동가가 되리라 믿습니다.” 대놓고 하는 칭찬에 위원장은 몸둘 바를 몰라 했다. “아직 그 정도 아니거든요.”

위원장 당선 소감을 물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지역노조가 힘들고 해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도 큽니다. 하지만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강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는 김형수 전 위원장의 경험과 경륜을 믿는다는 말로 이야기의 바통을 넘겼다.

‘야학에서 일반노조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의 만남

김형수 부위원장은 서울일반노조 초대 위원장을 시작으로 연임을 계속 해왔다. 여기에 더해 서울비정규연대회의 의장, 민주노총 서울본부 북부지구협 의장, 전국일반노조협의회(준) 연대사업 위원장 등 굵직한 직함을 겸직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82년 검정고시 야학을 하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여학생의 손을 잡는데 굉장히 거칠었어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생인 오빠의 학비보조와 뒷바라지를 다 해주고 있었죠.”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김 부위원장.

일찍이 시작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의 만남은 그 뒤 운동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북부사랑노동자회’와 여러 단체에서의 활동에서도 중점은 ‘영세노동자들’이었다. 2001년 ‘북부사랑노동자회’는 노동자풍물패인 ‘참울림’ 및 ‘실밥노동자회’ 등과 함께 서울일반노조를 결성하게 된다.
 
“현장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음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던 차에 부산일반노조가 떴고, 30~50여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준비를 시작했죠.” 20여년 전부터 만들어나간 소중한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당시 만났던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없어질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의 맹세는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은 무엇일까? 김 부위원장은 2002년 초, 경기도 고양의 단추공장인 ‘로얄상사’를 꼽았다. 한 간부가 해고예고통보 당하면서 주변동료들이 모여 조합을 만들고, 단협을 쟁취하기까지의 과정. “영세사업장 운영이란 게 회사 사장 마음대로죠. 부모상 휴가도 잘 보이는 사람은 5일, 조합원은 3일 이런 식으로요. 그것을 단협을 통해 시정하게 된 경우입니다.”

목적의식적인 조직화 사업 아쉬움

또 하나가 있다. 2002년 5월 결성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분회. 복지관 사측의 탄압으로 조합원은 70명에서 1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190일 동안의 시청, 복지관 앞 농성투쟁을 전개하면서, 조합원들이 ‘이후’를 기약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 가운데 하나다. “복직 못하신 분들이 있는데, 현장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조합은 만들기보다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시간과 공간을 가장 최근으로 옮겨봤다. 말을 이어 받은 임 위원장은 프라자호텔 외식사업부의 ‘한화개발분회’ 파업권 쟁취를 꼽았다. “본격적인 투쟁을 위한 단초인 ‘파업권’을 쟁취한 것이 큰 의미입니다.” 서울지노위는 처음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 ‘노조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정리해고시 노조와 협의가 없었더라도 절차성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한화개발분회를 만들자 이제는 ‘이미 호텔사업부에 노조가 있으므로 복수노조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서울일반노조는 서울지노위의 부당한 행정지도에 맞서 ‘쟁의조정 신청’을 했고, 20여일 동안의 단식투쟁 등을 통해 10월24일 마침내 ‘조정종료’를 끌어냈다.

현재 서울일반노조의 조직상황은 그 역사에 견줘 다른 일반노조보다 조직률이 떨어진다. 10여개의 분회와 200여명의 조합원 숫자는 이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민주노총과 각 연맹이 서울에 밀집해 있는 이유가 크다. “전체 구도와 관계가 있죠. 지방은 연맹과 소산별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지역노조가 커버할 수 있으나 서울은 많은 부분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다른 일반노조에 앞서 서울이 잘 되어야 한다.” 다른 지역 일반노조 활동가들이 갖는 서울의 상징성과 기대감이다. “잘 되어야 하는데, 지방에 비해 자리를 잘 못 잡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력군을 못 잡아서 그런 부분도 있고요. 지방은 구청 등 공공분야에서 안정적인 조직을 꾸리고 있는 반면에 서울은 노조가 커버를 하고 있으니까요.” 지방과 달리, 주력군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김 부위원장의 말이 조심스럽다.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실망스런 수치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목적의식적인 조직화 사업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올해 주유소 등을 진행하다가 당면 현안에 매몰된 측면도 있고요.” 지난해 주유소 한 곳에서 노조 결성 상담이 들어왔는데 결국 집단적으로 사표를 쓰고 그만두게 된 것. 올초 설문조사를 하다가 주춤하면서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 대해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아쉬움은 큰 듯했다.

부 위원장은 그러나 “서울일반노조 자체 역량만으로 버거운 부분도 있다”며 근본적인 조직운영 방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지구협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미조직 사업을 같이 벌여야 광범위한 조직 확산이 가능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각 지역위원회와 민주노총 지구협과의 유기적인 관계. 인터뷰 내내 부위원장이 지속적으로 강조한 부분이다.

지구협과 당의 동력 ‘혼연일체’ 되어야


“지역운동에 대한 활성화를 같이 고민하는 속에서 일반노조의 유의미성이 있습니다. 지구협, 당과 밀접한 관계가 필요한데, 단시간 이동거리 내에서 연대의 틀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자리 잡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아무리 작은 분회라도 하나의 기업별 노조가 하는 똑같은 방식의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3명의 상근인력과 일년 조합비 3천5백여만원의 열악한 재정. 큰 일부터 작은 일까지 잡다한 일들은 상근자들을 괴롭힌다. “상근자 1명을 더 확보한다고 해서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일반노조와 지구협, 지역위원회 간에 유기적 관계가 절실하고, 조직과 투쟁을 같이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층 한두 사람의 결의로는 모자라고, 가능한 각 지역에서 모범을 만들고,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각 지역위의 비정규센터로의 전환’. 이미 민주노동당에서도 고민을 진행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논의와 실천을 본격적으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

“당에서도 1년 전보다는 깊이 있는 고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제안하기는 어렵고, 실질적인 노동위원회 활동과 비정규 조직화를 고민하고 있는 지역위 상근자와 함께 말이 아닌 구체적인 사업진행 속에서 역할분담 등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일반노조 과제에 대해 총평을 부탁했다. “분회가 조직다운 모습을 갖추려면 최소한 단협을 통해 주1회 전임이라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직이 본조와 분회, 조합원 등 유기적 관계가 되는데, 아직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년 활동의 주요한 과제이기도 하고요.” 김 부위원장은 두 가지를 더 들었다. 신입조합원 교육은 일정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간부 교육은 아직도 모자란다는 것. 그리고 목적의식적 조직 확대였다. “올해는 교두보 확보라는 목표조차 달성을 못했는데, 내년에는 기필코 이뤄야겠죠.”

내년 2월초 공식 출범할 전국일반노조협의회(준)에 대해 물었다. “전국단일노조는 아니고 ‘협의회’ 단계입니다. 기존 대표자회의보다는 전국적 통일성 확보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측면이죠. 전국적인 투쟁에 대한 요구도 높고요.” 김 부위원장은 ‘목적의식적인 조직확대’ 사업에 중심을 두고 내년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외부활동의 하중도 줄일 계획이다. 할 일은 많고 사람은 적어서 나타나는 문제. 그의 바램이 일거에 해결될지는 아직 쉽지 않은 문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업장을 향해

“많은 활동가들이 사회적 파급력이나 반향이 큰 곳만 주목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작은 곳을 향해 투쟁을 같이 해나가야 합니다. 민주노총과 당이 같이 만들어 가는 형태의 운동이 되었으면 합니다.”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의 희망이 되고자 하는 김 부위원장의 열망과 의지는 뜨거웠다.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를 위해 활동하면서 느낀 아쉬움과 답답함은 한둘이 아니리라.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서울일반노조 역사에 비해 조직 확대가 덜 된 부분입니다. 주유소 등 목적의식적인 조직 확대 사업도 하반기에 배치조차 못했는데, 내년에는 꼭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 위원장의 입술은 굳게 다물어졌다. “중소영세 비정규직 문제가 민주노총의 가장 앞선 사업, 운동의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위해 묵묵히 어깨 걸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업장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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