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공전이 3주째로 접어든 가운데 임시국회 회기 내 비정규직법 처리가 불발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등원거부가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이면서, 환노위와 법안소위 정상화 확률도 지극히 낮아졌다. 열린우리당도 비정규직법을 최우선 처리 대상 법안에서 제외했다. 따라서 지난 1년 동안 국회와 노동계 안팎에서 상당한 갈등을 불러 온 비정규직법은 내년 1월이나 2월 임시국회를 기약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정규직법은 2단계로 밀려

열린우리당은 올해 안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1단계 처리 안건에서 비정규직법을 제외했다. 우리당은 새해 예산안과 부수법안,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 8·31부동산대책후속법(종부세법)을 최우선 법안으로 선정했다. 비정규직법과 방위사업법, 제주특별자치도 관련법은 회기 안에 처리할 2단계 대상 안건으로 삼고 있다.

1단계 법안은 한나라당 참석 여부와 상관없이 ‘직권상정’과 ‘질서유지권’ 발동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안건들인 반면, 2단계 법안은 국회 상황을 보아 가면서 처리하겠다는 안건들이다.

예산안·부동산법이 더 급해


그렇다면, 우리당이 비정규직법 처리 의지를 한 풀 꺾은 것일까.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아 보인다. 우리당이 비정규직법을 2단계로 늦춘 것은 의결정족수 충족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고, 그 열쇠를 민주노동당이 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표 계산을 해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예산안과 종부세법안이 28~30일 열릴 본회의에 상정되면 한나라당(125석)이 불참하더라도 우리당(146석)과 민주당(11석), 민주노동당(9석) 등의 협력으로 의결정속수인 과반(150석)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여당이 환노위에서 민주노동당의 반대 속에 비정규직법을 처리하는 식으로 민주노동당을 자극할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민주노동당이 항의하며 본회의에 불참하면, 의결정족수 충족이 불투명해진다. 지난 9일 사학법 처리 때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모두 참석했는데도 재석 의원은 의결정속수를 4명 넘긴 154명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하는 우리당은 구태여 비정규직법을 건드려 괜히 민주노동당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기간제 사유제한과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모두 수용할 의사도 없다. 따라서 우리당은 비정규직법 처리 전에 예산안과 종부세법을 먼저 처리하는 단계처리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분석된다.

파병연장안은 또 다르다. 파병연장안에서 민주노동당 본회의 불참은 ‘상수’이다. 이 안건에 이르면 우리당은 민주당, 국민중심당, 무소속 의원들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어야 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야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참석했는데도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 우리당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보고 있다. 파병연장 실패를 ‘한나라당 탓’으로 돌리고, 1월 임시국회라도 소집해 처리하자고 한나라당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파병연장안’ 처리를 중요시 여기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그림도 이것이다. 그래서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김원기 의장이 사회만 보지 않으면 등원할 수도 있다”는 타협 방안도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당 “처리 의지 확고”

우리당은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법 처리 의지는 확고하다고 거듭 밝혔다.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은 26일 “회기 내 국회 처리가 목표이지만, 정 안 되면 상임위 처리까지라도 마무리 짓겠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계속 불참해 법안소위에서 다루지 못하면, 상임위 전체회의를 소집해서라도 처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당은 한나라당 소속인 이경재 환노위원장이 당 방침에 따라 사회를 거부하면, 제종길 의원(환노위 우리당쪽 간사)이 사회권을 넘겨받아서라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필요할 경우 환노위 소속 의원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출석시키거나, 환노위원을 다른 의원으로 교체하는 ‘사보임’을 통해서라도 전체회의 처리까지 마치겠다는 것.

하지만 이경재 환노위원장이 당 방침을 어기고 전체회의를 진행하거나, 우리당에게 사회권을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여당 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한나라당이 등원하지 않는 한 상임위 처리도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은 26일 “여당 의원들이 ‘사회권을 넘겨받아서’라는 등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이 복귀하지 않는 이상 비정규직법은 소위를 빠져나올 수도 없고, 전체회의에서 다뤄질 수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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