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고 있는 빈곤사회연대는 ‘기초법 전면개정과 자활지원법 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기초법 공대위)를 구성하고 여의도 국회앞에서 57일째 농성중이다. 10월26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장차법 공투단)과 함께 농성에 돌입한 이후 여의도에는 천막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비정규직 보호법안 저지를 위한 노동계의 천막농성이 시작되면서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는 농성마을이 만들어졌다.

우리의 요구는 빈곤해결을 위해 기초법을 전면개정하여 사각지대 빈곤계층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라는 것이었고, 자활사업을 통해 빈곤을 탈출할 수 있도록 자활제도를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초법의 전면개정, 자활지원법 제정 이외에 장차법의 제정, 행정대집행법의 전면개정, 비정규권리입법 쟁취의 5대 요구를 걸고 공동의 투쟁을 진행했다. 빈곤단체 간 연대는 비록 느슨했지만, 결국 빈곤악법을 전면개정하고 권리법안들을 쟁취하는 것 모두가 빈곤 해결을 위한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돌아가며 공동문화제를 진행했고, 농성장간 소통을 위한 회의를 통해 서로 지켜야할 것들을 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12월2일 기초법은 일부조항만 개정된 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우리는 농성을 중단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이미 기초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중의 삶을 파탄내는 정권에 대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가 제기했던 5대 요구 투쟁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60일 가까이 여의도 농성장에 있으면서 투쟁조끼와 관련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특히 민주노총의 투쟁이 농성장 앞에서 연일 계속되면서, 전국노점상연합이 행정대집행법 전면개정을 위한 농성에 돌입하면서 느끼게 된 것인데, 왜 사람들은 저렇게 열심히 투쟁조끼를 입을까 하는 것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바람이 더욱 매서운 여의도 농성장 사람들의 옷도 대부분 두꺼운 파카로 바뀌었다. 몸이 꽤 부풀어 보이는 파카를 입고 또 그 위에 투쟁조끼를 입는 것이었다. 그러한 모습은 어떤 때는 우스워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집회에 참석하거나 투쟁이 없는 날에도 사람들은 투쟁조끼를 벗지 않았다. 요구안이 적힌 몸벽보도 아니고 소속조직과 ‘단결투쟁’이라는 글씨만 큼지막하게 박힌 투쟁조끼는 집회장소를 벗어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하고, 국회에 들어가는 데에는 매우 큰 실랑이거리가 되기도 했다.

투쟁조끼는 조직적 단결의 상징이다. 내가 속한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고,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넘쳐나는 투쟁조끼를 입은 노동자대오의 모습은 보다 질서정연하고 강인해 보인다. 그런데 거의 유일하게 조끼를 입지 않는 기초법과 장차법 농성장 사람들은 투쟁조끼의 물결을 보면서 묘한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나만 그럴 수도 있겠으나 투쟁조끼를 걸친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어도 동지가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 함께 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주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깃발이라도 꼭 들어야 한다.

빈곤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은 이렇게 강한 결속력을 주는 조직적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다. 조직형태나 성격이 노동조합과는 분명히 다르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주변화되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천막 안 가스난로에 의지하면서 내가 고민되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투쟁조끼는 어쩌면 우리 운동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5대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공동행동의 제안이 실천되지 못했고, 일하는 빈곤층을 양산할 비정규보호법안 저지투쟁에 나 또한 주변부에서 맴돌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여의도의 농성마을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투쟁조끼를 입었거나 입지 않았거나 하나의 대오로, 하나된 목소리로 여의도 국회를 뒤흔들 날이 오겠지. 올해가 아니어도. 또 농성마을은 만들어지겠지. 그때에 나는 투쟁조끼를 입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투쟁조끼를 벗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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