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입법을 강조해 온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국회 등원 거부로 파행이 장기화되자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우원식 환노위 법안소위원장은 20일 오전 소집 예정이던 소위를취소했다.  한나라당이 돌아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지만 회의를 형식적으로 여는 것이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여당 "갈등 적게 처리"…해법 골몰

따라서 이날 소위 소집은 “연내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 한다”는 소위 시작 때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한나라당의 등원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 정도로 해석된다.

한편으로 우리당은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비정규직법안에 대한 각 단체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가 정상화되는 즉시 각 정당의 주장들이 소위에서 맞붙을 것인데, 큰 마찰 없이 법안을 처리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

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연말까지 장외투쟁을 계속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그래서 초조하다거나 불안한 기색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쓴 채 이라크파병연장 동의안과 예산안 처리까지 무시하고 등원을 계속 거부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당은 19일부터 민주노동당과 공조해 예결위 소위를 열고 예산안 심사에 들어가는 등 한나라당을 압박하면서, 한편으로 국회 등원을 전제로 감세안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식의 ‘당근’도 던지는 양면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한나라당 ‘등원만 하면 바로 처리…느긋’

등원을 거부하고 있는 한나라당도 여전히 비정규직법 연내입법이 가능하다며 느긋한 입장이다. 정부여당이 등원할 수 있을 만한 명분만 준다면 언제든지 등원해서 비정규직법을 심의 처리할 수 있다는 자세다. 여당같은 답답함이나 민주노동당같은 예민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나라당은 어차피 노사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연내 처리’보다 한나라당 안과 최대한 가깝게 법안을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한 목표로 보고 있다.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은 19일 “국회만 정상화 되면 비정규직법은 하루만에라도 처리할 수 있다”며 “대부분 조항들이 의결됐고 남은 조항이 몇개 안 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심의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등원 시기와 관련해 그는 “새해 예산안과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번주까지는 정상화가 곤란하겠지만 다음주쯤 되면 (정상화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민주노동당 ‘사유제한 쟁점화 노력’

민주노동당도 여유롭기는 한나라당이나 마찬가지이다. 민주노동당은 ‘개악안 저지’와 ‘권리보장입법 쟁취’라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연내처리’는 중요 목표가 아니다.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당내에서는 ‘사유제한’ 없는 법안을 입법하기보다는, 차라리 입법을 미루자는 의견도 존재한다.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느긋함 속에는 사회 양극화가 심각하고, 비정규직 문제가 양극화 문제의 핵심 사안 가운데 하나인데 이번에 법안을 처리하지 못한다고 해서, 여당이 과연 입법을 포기하겠느냐 하는 인식도 깔려 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시기 문제보다는 법안의 내용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최근 민주노동당은 기간제 사유제한의 폭을 확대하는 수정안을 던지고, 이를 수용할 경우 연내 처리에 ‘협조’할 수 있다는 마지노선을 제시했는데도, 여당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소위에서 다룰 땐 다르더라도, 이 문제가 여론화 돼 쟁점으로 부상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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