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홍콩 각료회의에서 한국민중투쟁단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외교통상부가 '농업 양보'를 언급해 농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농림부마저 이에 반발하고 있어 정부부처 간 엇박자를 냈다.

14일 외교통상부는 각료회의에 앞서 미리 배포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기조연설문 초안에서 "농업을 포함해 아직도 국내적으로 민감한 일부 부문이 여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 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축적일 용의가 있으며, 협상에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연설문에는 "모든 협상 분야에서 균형된 성과를 확보하는 게 성공적인 협상 타결의 관건이라고 한국은 생각하고 있다"며 "특히 한국에는 NAMA, 서비스, 반덤핑 협상에서의 가시적인 성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혁 제네바 주재 한국대사도 정례브리핑에서 "공산품 등 우리나라의 수출품목에서 다른 나라의 관세가 내려가면 (우리가) 진출할 여지가 있는 만큼 (농산물 분야에서) 양보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도 있다"고 설명해 공산품을 위해 농산물을 양보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협상 전략은 농산물 관세감축폭을 최소화하는 등 우리 농업에 미치는 여파를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기존 방침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에 윤장배 농림부 통상정책관은 "김 본부장의 원고 내용은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며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실제 김현종 본부장의 기조연설문에서 해당 부분은 삭제됐으며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는 해명도 내놨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속내는 이미 알려졌고 이 소식은 반 WTO 시위를 벌이고 있는 농민단체에까지 전달돼 분노한 시위자들을 더욱 자극했다.

한편 13일 해상시위를 벌였던 시위자들은 이날 오전 WTO 사무총장에게 '서비스협정 반대, 공공서비스 사유화 반대' 등의 내용이 담긴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회의장인 컨벤션센터로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했다. 이어 오후에는 빅토리아 공원에서 아시아민중결의대회를 다시 열었으며, 이경해 열사 추모 촛불집회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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