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는 20대 초반의 2년차 어린이집교사다. 보라는 남쪽 바닷가 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도시로 왔다. 보라는 이사 오자마자 맞벌이를 시작한 엄마 아빠 대신 두 동생을 돌봤다. 다정다감한 보라는 언니 오빠들보다 더 동생들을 잘 돌봤다. 그런 보라를 보며 엄마가 말했다. “우리 보라는 유치원 선생님하면 딱 어울리겠다.” 그 때부터 보라의 꿈은 유치원교사였다. 

“유치원 선생님 하면 딱 어울리겠다”

보라네 부모님은 농부였다. 어떻게 해서든 농사로 자식들 교육을 시키겠다고 농협 빚을 얻어 유자농사를 지었다. 그렇지만 10년 가까이 고생해서 손에 쥔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농협 빚뿐이었다. 보라네 부모님은 결국 땅을 팔아 빚을 갚고 도망치듯 도시로 올라왔다. 도시에 올라온 보라네 부모님은 목재소에 취직했다. 일은 힘들어도 월급이 많았다. 남들은 힘들다고 피하는 잔업, 야간근무를 도맡았다.

보라 엄마 아빠는 어떻게 해서든 자식들만큼은 대학도 보내고 번듯한 직업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도시 생활 6년 만에 작은 빌라를 마련했다. 융자가 끼어 있어 부담이 크긴 했지만 오남매를 방 두 칸짜리 판잣집에서 키우기가 힘들어서 무리를 했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보람엄마는 가전제품들을 월부로 들여놓았다. 아이들과 남편 성화 때문이긴 했지만 보라엄마도 내심으로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열심히만 하면 그 정도는 너끈히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화투방에 드나들어 속 썩히던 보라아빠도 낮에는 목재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경비를 서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아이엠에프가 터졌다. 보라 엄마 아빠가 모두 일손을 놓고 말았다. 변변한 일자리 없이 1년을 보낸 보라네는 교육보험과 5년짜리 정기적금을 다 해약하고 말았다. 그 뒤 겨우 취직을 했지만 계약직이었다. 월급은 그 전에 받던 3분의 2 수준인데다 학자금도 다 끊겨버렸다. 생활비다 학자금이다 쩔쩔매다 할 수 없이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그 카드빚에 다리가 휘청거릴 무렵 맏딸인 보람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나갔고, 외아들인 대웅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이라도 하나 덜겠다며 군대에 자원입대해 버렸다.

논농사도, 유자농사도, 자식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했다는 자책이 늘던 보라 아빠는 오래 전 손을 뗐던 도박과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보라네 카드빚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몇 년 뒤 보라 엄마는 보라 아빠한테 빌라와 카드빚을 다 넘겨주고 이혼을 했다. 그리고 딸 넷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보육교사가 됐지만 이직을 고려하다

보라는 상고에 진학했다. 집안 형편을 뻔히 알면서 인문계에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보라는 언니 오빠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녀야했지만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다. 유치원교사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개인사무실에 취직해서 월급을 꼬박꼬박 모았다. 그리고 1년 뒤 보육교사 교육원에 등록했다. 보라는 보육사 과정 1년을 마치는 동안에도 빵집,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쉬지 않았다.

드디어 1년 뒤 보라는 어린이집 교사로 취직을 했다. 초봉이 65만원, 좀 더 돈을 많이 주는 학원은 퇴근시간이 여덟시가 훨씬 넘었다. 그래서 보라는 학원 대신 어린이집을 선택하고 방통대 유아교육과에 입학했다. 보라는 드디어 목표에 가까워졌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보라는 요즘 이 게 정말 자기가 원하던 일인지 의심이 든다. 어린이집교사는 일은 중노동이나 마찬가지고 월급은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친다. 처음에는 고졸이라는 학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통대 공부에 매달렸지만 가만 보니 2년제, 4년제 나온 선배들의 임금이나 대접이 자기보다 월등히 높은 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는 어린이집에서 영어, 발레, 바이올린 온갖 예체능교육과 언어교육을 해달라고 원한다.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육하는 것은 관심사가 아니다. 방통대에서 배우는 유아교육과 학부모들과 어린이집 원장이 요구하는 유아교육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요즘 보라는 이직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지금 보라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서비스업의 아르바이트자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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