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7일 미국노총(AFL-CIO) 대의원대회 직전에 7개 가맹조직이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승리를 위한 변화’라는 이름을 가진 탈퇴 그룹에는 서비스노조(SEIU), 식품상업노조(UFCW), 트럭운전사노조(Teamsters), 건설공노조(LIUNA), 목수조립공노조, 농업노동자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추락하는 노조 조직률에 내부 분열까지 악재가 겹친 미국 노동운동의 내부 사정을 미국 노사관계 권위자인 코넬대 리처드 허드 교수로부터 들어보았다. 허드 교수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개원10주년 기념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인터뷰는 12월3일 이뤄졌다. 아래 내용은 허드 교수의 발언을 정리한 것이다.

미국노총이 분열한 이유가 무엇인가?

멈추지 않는 조직률 하락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1995년 미국노총 대의원대회에서 SEIU 위원장이었던 존 스위니가 개혁과 조직 확대의 기치를 내걸고 위원장직에 도전해 당선되었다. 당시 진보적 노동운동가들은 새 지도부 하에서 조합원 감소 추세를 반전시키고 미국 노동운동의 부흥을 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위니가 위원장에 당선된 이후에도 조직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 2000년 대선에서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조지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 결과 2001년부터 진보적 노동운동 진영 내부에서 미국노총(AFL-CIO)이 노동조합 전국조직(national center)으로서 조직 확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급기야 2002년에는 (대선에서 부시를 지지한 바 있는) 보수적 노조인 목수조립공노조가 미국노총을 탈퇴하게 된다. 목수조립공노조는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이지만, 노조 재정의 상당부분을 조직화에 투자하고 있다.

상황이 안 좋게 치닫자 존 스위니 위원장은 개혁파 가맹조직들의 지도부에게 목수노조 위원장을 설득해 다시 가입시키라는 부탁을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앤디 스턴 SEIU 위원장을 비롯한 개혁파 지도부들이 되려 목수노조 지도부에 설득되었고, 2003년 7월 (조직화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가맹조직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단결 파트너십’(New Unity Partnership, NUP)을 결성하고 적절한 시점에 미국노총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하였다. NUP는 이후 ‘승리를 위한 변화’(Change to Win, CTW)의 시발점이 된다.

존 스위니 지도부의 AFL-CIO와 ‘승리를 위한 변화’ 그룹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 그룹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1955년 AFL과 CIO의 통합으로 AFL-CIO가 만들어진 이후 미국노동조합은 조직화보다는 상대적으로 교섭과 로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분위기는 존 스위니가 위원장에 당선된 1995년까지 지속된다.

1930년대와 40년대에 AFL과 경쟁관계에 있던 CIO가 조직화에 적극 나서면서 미국 노동운동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CIO가 가맹조직들을 진두지휘하면서 조직화 캠페인의 선두에 섰다. 이러한 CIO의 주체적 노력이 루즈벨트 정권의 뉴딜정책, 그리고 2차 대전에 따른 ‘산업평화’ 시기와 맞물리면서 35%라는 최고의 노조 조직률을 달성한 배경이 된다. 하지만, 1955년 통합 이후 CIO의 조직화 전통은 약화되었고, 미국노총(AFL-CIO)은 사용자를 상대로 한 교섭과 정부·정당을 상대로 한 정치활동에 치중하였다.

미국노동운동 내부의 개혁파는 노동조합 전국조직으로서의 미국노총이 대사용자 교섭과 대정치권 로비 중심의 사업방식을 탈피해 조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고, 이들 ‘승리를 위한 변화(CTW)’그룹 이외의 다수 가맹노조들은 조직화만큼이나 기존 방식도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1995년 존 스위니가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모든 가맹조직들이 예산의 30%를 조직화 사업에 투자하자는 정책이 입안되었지만, SEIU나 목수조립공노조 등 몇개 노조만이 이를 실천했을 뿐 대다수 노조는 외면했다. 스위니가 위원장이기는 하지만, AFL-CIO 내부의 힘 관계로 인해 자신이 공약한 ‘조직화’ 운동노선(재정의 30% 이상 조직화 사업 투자)을 전체 가맹조직에게 강제하지 못했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록 AFL-CIO 차원의 조직화 사업이 지지부진함을 벗어나지 못하자 개혁파 노조들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세계적으로 노조 조직률이 저하되는 추세지만, 유럽 등 다른 선진국의 경우 그 폭이 완만하거나 거의 변화가 없다. 반세기 동안 미국의 노조 조직률이 세 동강난 이유가 무엇인가?

좋은 질문이다. 미국과 이웃한 캐나다와 비교해보자. 캐나다 역시 미국의 조직률이 35%일 때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캐나다는 지금도 거의 30%대 이상의 조직률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12%대로 급락했다.

우선 정치 측면에서는 70년대 후반 미국 민주당이 우경화되고 1980년대 들어 공화당의 보수정권이 출범한 것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민주당 지미 카터 행정부는 항공, 운수, 통신 산업에서 규제철폐 정책을 추진했다. 이 세 부문은 강력한 정부 규제가 존재했고, 노조 조직률도 대단히 높았다. 주(州)와 주를 왕래하는 항공과 운수 산업의 경우 중앙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았는데, 이걸 카터 정권이 없애버렸다. 다시 말해 민영화·자유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시장구조에 큰 변화가 생겼고, 결과적으로 저가 경쟁이 만성화되었다. 이때 항공사노조와 트럭운전사들의 노조인 팀스터즈가 큰 타격을 받았다.

통신도 마찬가지다. 미국 전체를 포괄하던 거대국영통신업체인 AT&T가 민영화되면서 몇개 회사로 쪼개졌고, 통신시장 역시 규제철폐 정책으로 경쟁이 심화되었다. 민주당 정부의 우향우 정책과 공화당 정부의 출범이 과학기술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전통적으로 노조가 강세였던 부문이 타격을 입은 것이다. 이게 70년대 말과 80년대에 일어났다.

둘째 경제 측면에서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세계화(globalization)가 큰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와 제철 산업이 대표적이다. 7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무역장벽’이 국내 시장을 보호하면서 노조 역시 기반을 잃지 않았으나, 80년대 들어 ‘자유무역’ 정책이 관철되면서 미국 국내의 산업기반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자동차나 제철 같은 전통적인 산업들은 노동조합이 강했던 부문인데, 이곳들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80년대에 일본자동차의 공세가 거셌다면, 90년대 들어서는 현대 등 한국자동차의 공세가 거셌다.

이와 더불어 즉시생산(just-in-time) 등 생산방식의 변화가 잇따랐고, 외주나 하청이 확산되는 등 기업·고용관계도 이전과 달라졌다. 노조가 잘 조직된 산업들은 구조조정에 휩싸이고, 노조가 취약한 산업이나 기업들이 확산되었다. 많은 노동력이 새로이 노동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는데, 이들에 대한 조직화가 뒤따르질 못했다. 그 결과 조직노동자 수는 크게 줄지 않은 데 반해, 상대적으로 조직률은 크게 떨어졌다.

미국노동운동의 향후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AFL-CIO에 남은 다수 노조 가운데는 진보적인 노조도 있다. ‘승리를 위한 변화(CTW)’ 그룹에 속한 노조 가운데는 목공노조처럼 보수적인 노조도 있다. 이런 점에서 탈퇴한 노조들을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그룹이라고 부를 순 없다. 미국의 노동법은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조항들이 있다. 남은 노조들은 이런 것부터 고치는 게 필요하고, 때문에 절반 가까운 재정을 조직화 사업에만 퍼붓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 CTW 그룹은 “노동에 불리한 법제도나 세계화 같은 도전들을 노동을 에워싼 상자라고 본다면, AFL-CIO에 남은 노조들은 상자를 직접 두드림으로써 상자를 부수려는 데 반해, 자신들은 몸집을 키움으로써 상자를 부수려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더 많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참여한다면, 현실에 존재하는 악법조항도 노조의 조직력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물론 미국노총에 남은 노조들도 조직화에 자원을 투자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아닌 만큼, CTW 그룹의 등장으로 미국노동운동은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둘러싼 경쟁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확히 50년 전, 미국 노동운동을 양분하던 AFL(미국노동연맹)과 CIO(산별노조회의)가 통합했을 때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35%였다. 미국 노동자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노조원이었던 셈이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03년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12.9%를 기록했다. 지금은 미국 노동자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노조원인 셈이다.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던 미국 노조운동은 1980년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확실하게 퇴조하기 시작했다. 1970년 31%이던 노조 조직률은 7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하락해 1980년에 25%를 기록하더니, 80년대 들어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 등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정권이 연이어 들어서고 세계화가 본격화 되면서 급락해버렸다. 그 결과 1990년에는 16.1%로 크게 낮아졌다. 90년대 들어서도 그 정도가 완만해지긴 했지만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고, 2000년엔 13.5%, 2003년엔 12.9%를 기록하면서 아직 바닥을 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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