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취지에도 어긋나는 단결권 제한
참여정부에 들어 이전에 행자부가 주관이 되어 만든 ‘공무원조합법’을 ‘공무원노동조합법’으로 바꾼 것은 단순히 명칭의 변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노조의 조직체계상 전국단위의 노동조합을 인정한 이상으로 공무원도 노동자이고 따라서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참여정부는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하고 △법외조직을 제도화시킬 뿐 아니라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지향하고 나아가 △공무원을 공직사회 개혁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정부의 희망은 안타깝게도 입법과정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를 단결권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제노동기구(ILO)는 공무원의 단결권은 보편적인 권리임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군인과 경찰에 대해서만 그 제한을 국내법에 위임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선진외국의 관례를 보더라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공무원의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기도 하나 단결권은 결사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장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령 독일의 경우 공무원은 단체교섭권 자체를 갖지 못하고 미국의 연방공무원도 임금교섭권을 갖지 못하지만 단결권을 제약 당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먼저 공무원노조법에 따르면 6급 이하만 단결권이 보장되는데 이마저 다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즉 △다른 공무원에 대해 지휘·감독권을 갖거나 △인사·보수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 행정기관의 입장을 취하는 공무원, △교정·수사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 그리고 △기타 노동조합원으로서 업무수행에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공무원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다. 이러한 제한 규정은 시행령(안)에 의해 한 번 더 제한된다. 특히 법률이나 조례는 물론 “그 위임을 받아 규정되는 규칙이나 훈령·사무분장에 의하여 다른 공무원을 지휘·감독”하거나 “부서장을 보조하여 그러한 업무를 주로 수행하는 공무원”의 노조가입은 금지된다. 6급 중 여기에 해당되는 공무원은 무려 3만8천명으로 시군구의 93%, 광역 시도의 18%, 그리고 중앙부처 공무원의 32%에 이른다. 국제노동기준이 명맥만 남은 꼴이다.
파행이 예견되는 공무원 노사관계
이러한 상황에서 양대 공무원노조는 공무원노조법의 무력화는 물론 내년 1월28일, 공무원노조법이 시행되더라도 설립신고조차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법외노조를 제도의 틀 내에 끌어들여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창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중대한 도전을 맞고 있는 셈이다.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법외노조로 남겠다는데 아무리 단체교섭제도가 훌륭하더라도 그건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실제로 14만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전국공무원노조는 내년 1월 민주노총 가입을 계기로 대정부투쟁을 본격화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법외노조를 제도화시켜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여름 아침의 이슬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 노사관계가 ‘모범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많다. IMF 외환위기 이래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이미 노사분규의 핵이자 노정간 각축의 장으로 대두되었다. 이참에 국내최대의 단일노조이자 가장 파급력이 큰 공무원 노조마저 대립적으로 돌아선다면 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갈등적인 노정관계를 감안할 때 공무원 노사관계의 올바른 정립은 노정간 신뢰회복은 물론 노동운동에서 합리적인 세력의 대두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무원의 단체교섭구조가 정착되면 이는 곧바로 비공무원 단체교섭구조의 집중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참여정부 ‘공공개혁’의 최대 화두인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개선이 단체교섭구조의 개선 없이 가능이나 할 것인가? 나아가 공무원을 공직사회 개혁의 주체로 삼으려면 노조를 통한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노동조합의 입구를 깔때기만큼이나 좁혀놓고 노사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꾀한다는 건 애당초 어불성설이었다. 특히 시행령(안)은 모법이 정한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내외부적으로 온건파의 입지조차 없애버리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술을 권한다지만 정부가 노조내 강경파의 입지를 세워주고 있는 셈이다. 이럴 바에야 뭣 하러 공무원 노조법을 만들어 사회적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는가라는 질문이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갖기도 한다.
공무원노조법시행령(안) 재고되어야
공무원노조법 시행령(안)의 입법예고기간은 11월8일부터 28일까지였다. 그런데 시행령(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에서의 논의는 물론 해당노조와 한 번도 이마를 맞댄 토론이 없었다는 것은 입법과정상의 또 다른 문제점에 속한다. 물론 공무원노조법의 무력화에 매달리다보니 시행령(안)에 대해 오불과언으로 일관함으로써 시행령(안)은 물론 공무원노조법이 안고 있는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지 못한 공무원노조의 근본주의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다. 지난 해 공무원노조법 반대투쟁이 국민의 공분을 삼으로써 공무원노조법을 수정 없이 통과시키게 만든 전철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참에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나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지난 8월23일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본인의 글, “공무원노조, 이제는 단체교섭이다”는 만일 시행령(안)이 원안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한다면 취소하여야 할 것 같다. 당시 본인은 공무원 노조가 기존 입법을 받아들여 단체교섭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그리고 공무원노조법에 문제가 있다면 그 법의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시행령(안)이 모법보다 한 술 더 떠 기존의 노조원에게조차 노조탈퇴를 요구한다면 당시의 주장을 고집할만한 배짱이 없다. 부끄러움과 학자적 소신의 손상을 감수하면서 정부의 선의를 너무 믿었다는 자책감을 전할 뿐이다.
그럼에도 본인은 공무원노조법의 제정초기에 관여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 번 정부에 촉구한다. 현행법은 국제노동기준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모범적인 공무원 노사관계조차 약속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공무원노조법시행령(안)만이라도 정부는 재고하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참에 공무원노조법도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개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은 천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 참여정부가 공무원 노조법을 제정한 본래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지난번의 글을 취소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판단한다. 필자는 지난번 글이 시행령(안)을 바꾸기 위해 현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글이 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이런 연약한 지식인의 얄팍한 이벤트를 더 이상 보고 있기가 너무나 역겹다.
박교수는 학자적 부끄러움과 소신의 손상을 감수하면서 정부의 선의를 믿었다고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박교수에게는 학자적 부끄러움도 소신도 없다. 그러니 너무 자신을 자책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충고 드리는 바이다.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서 자책 할 필요가 없기에 하는 소리이다.
이번 박교수의 글은 결코 공무원노동조합을 위해서 쓰여진 글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현 정권의 노동정책 헤게모니를 둘러싼 참여정부 내 지식인들 간의 대립에서 파생된 결과의 성격이 보다 농후하다.
마지막으로 박교수에게 충고하지만 앞으로 이런 음모적이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집필은 삼가해 주시길 당부드린다. 그리고 이 정도의 글로 공무원노동조합이 강건, 온건으로 분리되지도 않을 것이며, 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노사관계 로드맵에 공무원노조가 말려드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박교수의 근신과 자숙을 다시금 요구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