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동거’…. 차라리 둘로 나뉘어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건설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생각 아래 기업노조(건설노련)와 지역·업종(전일노련) 건설노동자들이 1999년 12월17일 ‘건설산업연맹’으로 출범했다. 그리고, 5년 후 주변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고 지난해 연맹 ‘해산안’이 중앙위에 상정됐다.

연맹 해산안이 부결되긴 했지만 지난해부터 건설산업연맹은 사실상 ‘한지붕 두가족’ 체제로 운영되게 된다. 사무직 중심의 건설사무노조와 일용직 현장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업종노조협의회가 예산과 사업계획을 각각 집행하면서 단지 ‘연맹’이라는 지붕 밑에 있을 뿐이었다. 물론 이들 사업 계획 및 집행과 관련해 연맹은 아무런 권한도 없다. 건설사무노조와 지역·업종노조협의회가 각자의 조합원 수만큼 책정한 예산을 연맹으로 올려주면 연맹은 이 예산을 갖고 민주노총 사업을 진행할 뿐이다. ‘상급단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허수아비’ 연맹 위원장을 맡으려고 할 것인가. 아무런 권한도 없고, 얼굴마담(?) 역할만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그것도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는 건설사무노조, 지역·업종노조협의회를 아우르면서 말이다.


올해 나이 55세, 3년 뒤면 정년퇴임을 남겨 놓은 남궁현 삼환기업노조 위원장, 지난해 11월30일, 연맹 대의원대회에서 3기 통합연맹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기자가 당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남궁현 위원장은 손사래만 쳤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사무실만 지킬거야.” 위태로운 연맹을 지키고 있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했던 그다.

그리고 위원장 당선 후 1년이 채 안 된 지난달 25일 연맹 사무실에서 남궁현 위원장을 만났다. 역시나, “내가 답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요”라며 지난해와 동일하게 말했지만 그는 어느새 건설사무노조와 지역·업종노조협의회와의 균형을 맞춰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민주노총 한 간부의 비리로 불거진 민주노조운동이 위기 논쟁이 한참인 지금, 총연맹 비대위원으로서 누구보다 성실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직이라는 것은 어느 누가 혼자 하겠다고, 나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래도 가능한 거지, 지난해 ‘삐걱’ 거리긴 했어도 현재는 서로의 역할과 영역에서 모두 잘하고 있어요.”

실패가 가져다 준 경험, ‘단계적 산별’ 전환

약력
1951년  출생
1978년  삼환기업 입사
1989년  건설노련 창립발기인
1999년  삼환기업노조 5대 위원장
1999년  삼환기업194명 정리해고에 맞서
               100일 파업 주도
2001년  삼환기업 연봉제 저지를 위한
               49일 파업 주도
2002년  삼환기업 6대 위원장
2005년 현)건설산업연맹 위원장,
              민주노총 비대위원
현재 건설사무노조와 지역업종노조협의회 모두 산별노조를 준비하고 있다. 소위 공공연맹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우선 같은 직종, 업종끼리 통합을 하고 후에 다시 ‘통합’을 모색하는 단계적 소산별과 닮아 있다. 따라서 현재 산별논의 국면에서 갖고 있는 이들의 ‘단계적 산별전환’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건설산업연맹도 조직적인 기풍이 있고 1999년 한번 연맹으로 통합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렇고 사무직 건설노동자들과 현장 건설노동자들 서로 다른 이 둘을 어떻게 함께 갈까, 하고 고민을 무척 많이 했었다. 함께 가려고도 했으나 우린 이미 통합의 과정에서 ‘홍역’을 앓지 않았느냐. 해서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소산별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궁현 위원장의 이같은 말은 1999년 통합 이후 현장 내에서 건설사무노조와 지역업종노조협의회 간의 오래된 간극이 쉽게 풀릴 수 없음을 인정하고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섰다는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건설노동자는 하나’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하나의 산별로 꼭 가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처음 여수건설노조, 울산건설플랜트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건설노조, 포항건설노조 등 플랜트협의회 소속 노조들의 통합논의가 가장 먼저 나왔고, 이들의 통합은 내년 정기대의원대회를 치르면서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설사무노조가 내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산별전환을 결의, 연맹 내 직종, 업종별로 다투듯이 산별전환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마치 한번의 뼈아픈 실패가 이들의 결속력을 보다 빠르게 독려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단계적 산별로 전환했을 때 연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건설사무노조와 지역·업종노조협의회가 사실상 ‘소산별’ 구조로 움직이면서 예산과 사업계획 등에서 아무런 결정 권한이 없는데 말이다. 남궁현 위원장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다른 대안,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말한다.

“연맹으로서 조직·교육 사업 등을 직접 관장하고 진행하고 싶지만, 예산이 갖고 있는 한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연맹 내 조합원 숫자가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다행히 울산건설플랜트노조가 올해 투쟁을 통해 현재 조합원수가 3,000명으로 조직됐다고 들었다. 덤프연대도 8,000명으로 조합원 숫자가 급증했고, 이러한 조직 확대를 연맹이 주도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궁현 위원장이 연맹 위원장으로 당선되면서 내걸었던 공약은 다름 아닌 ‘조직확대’다. 현재 1만여명인 실질 조합원수를 3년 뒤 5만명으로 확대하겠다는 것. 특히 취약했던 지역·업종노조의 조합원 수 확대가 핵심이다. 이는 건설사무노조에 비해 예산 및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업종노조협의회가 실질조합원 수 확대를 통해서 힘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이를 통해 실패했던 통합산별노조 전환을 다시 꿈꿀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건설사무노조와 지역·업종노조협의회가 소산별로 전환, 외향적 변화를 꾀하면서 현재 가지고 있는 연맹의 무력화(?) 역시도 다시 재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건설사무노조와 지역·업종노조협의회가 향후 통합이 가능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자칫 두 조직이 소산별로 전환하면서 서로 자신의 길로 아예 갈라설 수 있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남궁현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 전일노련과 건설노련이 합쳤을 때 다들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고, 결국 연맹 해산까지 이야기가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 불가능한 일들을 도모하는 것은 우리가 건설노동자라는 이유 때문이다. ‘건설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한지붕 두가족’ 여전히 불안한 동거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리면, 건설사무노조와 지역건설노조간의 갈등은 한 현장에서 건설사무노조 조합원은 현장을 관할하고 책임지는 사실상 '사업주'의 역할 모델을 하고 있다. 반면 지역건설노조 조합원은 그 현장에 고용돼 일하는 일용직 건설노동자이기 때문에 마찰이 빚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지역건설노조에서 현장개선 및 각종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건설사무노조 조합원들인 현장소장에게 따지게 되고 또 건설업체쪽은 현장에서 빚어지는 문제에 대해 현장소장인 건설사무노조 조합원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이 결국 연맹을 해산의 위험으로 몰아갔고, 결국 연맹은 소산별노조라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갈등에 대해 노조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회사가 직접 나설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서기로 자체 방침을 정했다. 혹시나 부딪칠 경우도 개별노조가 해결하다보면 마찰이 더 커질 수 있으므로 각 현장에서 노조로, 노조가 연맹에 이야기해서 연맹 내에서 풀 수 있도록 했다. 다행히 올해는 단 한건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남궁현 위원장은 올해 한진건설 현장과 현대건설 현장에서 충돌이 빚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체적으로 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말이다. 이는 연맹의 한 울타리 속에 있는 두 노조가 문제를 해결했다기보다는 방치하고 외면하는 과정에서 더 소원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물론 한 현장에서 지역건설노조가 파업을 하고 건설사무노조가 함께 연대해 현장을 세울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그림이겠지만, 아직 현 수준에서는 서로 간 감정을 부추기지 않는 갈등의 지점을 최대한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여전히 연맹 내 갈등의 지점은 분명히 남아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마땅치 않다. 이는 연맹 내 분명한 한계로 작용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제 역시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말이다.

연맹위원장을 맡은 지 1년, 그런 그에게 또다른 짐이 짊어져 있다. 민주노총이 비대위 체계로 가면서 남궁현 위원장은 장기투쟁사업장을 담당하는 비대위원을 맡아야 했다. “진짜로 하기 싫었다. 왜 민주노총이 이꼴이 되었는지….” 매번 능력도, 그럴 만한 주제도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비대위원은 분명 버거운 짐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연맹위원장이라는 지도부의 역할을 맡긴 했지만 그 역시 다른 노동자와 동일하게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는 조직이어야 했다.


“민주노총 한 간부의 비리로 인해 불거진 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건설뿐만 아니라 현장순회를 하면서 느낀 점은 민주노총의 현장동력이 다 죽어 있었다는 지점이다. 사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봇물처럼 일어나고 그들의 삶의 피폐화가 사회 여론을 통해 조명을 받고 있긴 하지만 정규직노조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삼환기업노조 위원장이기도 한 남궁현 위원장은 IMF 이전 노조 조합원 수는 1,200명이었지만 IMF 당시 회사 위기를 운운, 정리해고,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5년이 지난 지금 조합원 숫자는 600명으로 줄어 있다는 것. 단기순이익을 따지면 회사는 IMF 이전보다 훨씬 성장했지만 노동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노조의 동력은 턱없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현재 논의되고 있는 비정규법은 비정규노동자들만의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규직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현장은 여전히 안 움직이고 있지.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정규직 조합원들은 언론과 자본이 공격하는 ‘고용불안’ 속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거든. 알면서도 모두 다 알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거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어.”

현장은 무너지고 있는데…, “답이 없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연맹위원장으로서가 아니라, 비대위원으로서가 아니라 30여년을 노동운동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남궁현씨 개인에게. “민주노총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의 질문이 기자에게 되돌아 왔다. 노동운동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더욱이 이론적인 것은 하나도 모른다는 그는 단지 세상이 뭔가 잘못되는 것 같고 이것을 어떻게든 바꿔야 하겠는데, 어렵고 힘없는 노동자들이 모두 ‘노동귀족’이 되는 날이 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되물었다.

남궁현 위원장은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조직도 갖지 못하고 있고 이를 지켜내기 위해서 계속 투쟁하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민주노총 내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갈라져 있다. 자칫 비정규직 노동자가 주축이 되는 새로운 주체가 형성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라며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민주노총 비대위원을 맡을 즈음 비정규직노조 간부 한 명이 ‘비대위원 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들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했더란다. 그래서 남궁현 위원장은 ‘그래야지’라고 답했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의 연대의 부재, 그로 인해 나타나는 갈등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힘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정규직노조 역시 지금처럼 자본의 공세가 계속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당면한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므로 말이다. 정규직, 비정규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어떻게 함께 노동자들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만 남기 때문이다.

단위노조 위원장으로,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으로, 그리고 현재는 민주노총의 비대위원이기도 한 그. 30여년을 노동운동을 해 온 남궁현 위원장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난 30여년간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살아 왔다. 노동운동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이론적으로 학습한 것도 아니고 그 흐름에 묻혀 흉내만 낸 노동자일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민주노총 비대위원으로 앉아 보니 말이다. 노동운동 하면서 잘났다고 똑똑하다고 말 꽤나 하는 놈들이 보면 다 자기 앞가림만 하고 있었던 거다. 참 잘 됐으면 좋겠는데, 열심히 이 땅에서 노동운동 하던 우리 노동자들 모두가 잘 됐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세운 조직, 민주노총이 ‘희망’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제 '노동자'로 살아갈 날조차 얼마 남지 않은 남궁현 위원장. 그가 마지막 던진 말처럼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의 희망의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항상 그가 이야기 하듯, 능력도, 주제도 되지 않아 연맹위원장 감도 아니고, 더욱이 민주노총 비대위원 감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입으로 ‘민주노총의 위기’를 이야기해야 할 때 드는 밀려드는 회환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해 나이 55세, 1978년에 삼환기업에 입사했다. 산업심리학을 전공한 그가 첫 발령받은 부서는 역시나 노무팀, 삼환기업에는 그로부터 10년 뒤인 1987년에 노조가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그는 노무과장이었음에도 조합원이 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아니 반가웠다.노무과장이 생각하기에도 열악했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은 '노조'만이 가능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삼환기업노조에서 조합원으로 또는 위원장으로 살아 왔다.


“한 직장에서 삼십년을 일했다고 하면 욕먹기 딱이죠. 요새 누가 정년 맞춰서 회사를 그만두나요. 비록 1년 남았지만 먼저 사직서를 내는 게 맞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정년을 앞둔 그이지만 여느 노동자들처럼 달랑 집 한채만 갖고 있을 뿐이다. 1녀1남을 둔 그에겐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지만 여전히 정년 후 무엇을 할지 막막하다. 시골가서 어머니 농사나 도울까…. 아무런 계획이 없다. 그렇다고 연맹위원장 감투를 갖고 노동운동을 계속 이어갈 자신도 없고.


두시간여의 인터뷰 내내 겸손을 넘어 솔직하게 자신을 이야기한 남궁현 위원장. 자칫 ‘무력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는 3기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으로서 당신이 당선 초기 약속한 '5만 실질조합원 확대'를 위해 지금도 계속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고 '함께' 고민하고 있다.
<편집자 주>'산별만이 길이다.' 누구나 그렇게 말한다. 굳이 외국의 경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말은 아마 정답일 것이다. 그리고,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심상히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성과들이 쌓여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산별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앞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산별 건설운동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부터 점검해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매일노동뉴스>가 산별위원장들의 목소리를 중계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