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항운노련)은 28일 오전 4시간 동안 '항만인력공급체제 개편을 위한 지원특별법안’에 반대하는 시한부 경고파업을 실시했다. 항운노련은 또 이날부터 29일까지 전면 총파업 돌입에 대한 찬반투표에 들어가는 등 특별법에 대한 항운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항운노련에서 법안에 대한 반대이유와 법안 처리과정에 대한 입장을 담은 아래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언제부터인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개혁대상이 되어 중세 ‘마녀사냥식’으로 단죄되는 역사의 퇴보현상이 거듭되고 있다. 정부의 각종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사전에 이해 당사자간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보편적 가치임에도 이 원칙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3년간 국민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정책 실험과 거듭되는 정책실패가 계속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자세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항만노무공급제도 개편’과 관련한 정부의 독선적 태도이다.

항만산업은 국제화물수송의 99.7%를 차지하고 있어, 대외무역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공공성과 기술적 특성면에서 절대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성에 따라 항만노사는 지난 100여년의 역사 속에서 항만노무공급과 관련한 가장 합리적인 제도를 발전, 정착시켜 왔다.


항만 현실 무시하는 정부

그런데, 정부가 그동안 노사가 정착시켜온 제도를 완전 무시함은 물론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일방적으로 항만노무공급제도를 정부 입맛대로 재단하려 하고 있다.

먼저, 정부는 상용화만이 인력감소를 통해 물류비를 절감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주장이다. 현재 항만하역노동자들은 작업량에 따라 1일 2교대 기준으로 잠도 자지 않고 24시간 36시간 심지어 48시간 이상까지도 연속근로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빠른 출항을 원하는 선주, 화주에게 편익을 제공하기 위해 하역노동자들이 감내하고 있으며, 현재의 노무공급제도 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상용화가 될 경우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어 1일 8시간, 주당 40시간 근로를 초과할 수 없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특정일, 특정주의 근로시간이 각각 12시간,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따라서 법 위반을 하지 않고 현재의 하역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 2교대 체제의 근로가 최소 3교대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현재보다 최소 30%이상의 인원을 증원시켜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논리적 근거 없이 상용화할 경우 30~40%의 인력감소가 예상된다는 정부의 주장은 허구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정부는 상용화할 경우 기업의 자율성 확대 및 기계화 촉진에 따라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땜질식 정책추진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한 주장이다.

지난 1996년부터 정부는 항만관리운영의 효율성 제고와 기계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 및 물류비 절감이라는 목적으로 TOC(부두운영회사)제도를 도입해 왔다.

그러나 TOC가 시행된 지 10년이 되어가는 현 시점에서도 그 기대효과는 차치하고 제도조차 정착되지 않고 있다. TOC의 시행은 전국 283개 하역업체 중 대형 8개 하역사에 집중하여 전국부두의 80%이상을 임대함으로써 신규업체의 진입이 차단되고 단순히 기존업체만 보호하는 이중특혜가 되었고, 부두의 기계화는 고사하고 하역사들은 기존에 유지하고 있던 장비들마저 다 팔아버리고 영세한 장비업자들로부터 장비를 임대하여 사용하는 등 하역작업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고 있음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상용화란 미명으로 하역노동자를 비정규직화로 전락시키는 졸속적인 정책추진에 앞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도부터 정착시켜 당초 목적을 실현시키는데 정부는 주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 법안으로 고용 등 근로조건 보장 못해

세 번째로, 그간 정부는 하역회사별 상용화를 전제로 우리 항만근로자들에게 현행 임금수준, 고용, 정년 등의 근로조건 보장을 약속하고 있다. 11월25일 농림해양수산위원회 법률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고용, 임금수준, 정년 등의 근로조건은 저하되지 아니한다”를 명시하여 의결되었다.

그러나 이는 실행여부가 매우 불투명할 것이며, 상당한 혼란과 파행이 예고될 것이다. 현행 노동관계법에서도 ‘근로조건의 저하금지’ 조항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고용, 임금, 정년보장은 노사 당사자간 협상을 통해 결정될 문제이다. 또한 정부는 현 항만노무공급체제가 기업 자율성을 침해하기 때문에 개편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법으로 자율성을 침해하는 모순을 낳게 되고, 이같은 방안은 세계적으로도 그 실례를 찾아보기 드물다. 근로기준법에서도 정리해고를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법과의 충돌과 노사간 적용여부에 있어서도 상당히 실현불가능하고 지켜질 수 없는 현실이다.

끝으로, 정부는 상용화가 될 경우 대외 신인도 향상으로 외국선사의 기항 및 투자유치 확대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국자본이 국내에 투자할 경우 가장 고려하는 점은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노사관계 문제이지, 노무공급제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를 보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간 항만산업은 노사관계에 있어서 산업평화를 가장 우선시함으로써 한번의 파업도 발생하지 않은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여 그간 우리 항만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하는데 많은 기여를 해왔다.

그런데 만일, 정부 정책대로 개별기업으로 상용화가 될 경우 기업별 노조로 전환됨으로써 선명성 경쟁 등으로 인해 노사분규가 빈번하게 발생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렇게 될 경우 대외 신뢰도 저하는 물론 외국자본 투자유치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될 것이 자명하다할 것이다.

당사자간 심각한 갈등 유발하는 항만 상용화는 철회돼야

따라서 정부는 현실을 외면한 허구적 논리와 이해 당사자간 심각한 갈등 유발이 자명한 항만 상용화 주장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영국 등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서 비롯된 인위적 상용화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며, 세계 10대 항만 중 적지 않은 항만이 노조, 노사, 노사정 등 공동운영체제를 두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선택 가능한 대안들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 보아야 한다.

결국, 항만노무공급을 개혁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있고 이에 따른 법안도 2개의 법안(김재원 의원 등 14인, 배일도의원 등 43인)이 제출되었음에도 국회가 ‘상용화’만을 고집하고 있는 정부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킨 것이 현장 하역노동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상용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정 간 충분한 논의를 통해 현행제도의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리는데서 올바른 개혁방향을 설정하자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지금 우리 국민들은 정부의 대책 없는 정책실험에 불안감과 염증을 내고 있다. 그나마 수출을 통해 지탱되고 있는 우리 경제의 교두보인 항만산업마저 정책실험의 대상으로 취급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항만노무공급제도 개편에 있어 정책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궤도수정을 해야만 한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 이미 몇 발자국 내딛었다고 그냥 내달리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다. 올바른 길을 찾아 잘못된 정책을 수정할 줄 아는 정부를 국민들은 환영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항만산업의 내부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노무공급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가장 최선의 대안은 바로 노사 자율을 보장하는 것임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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