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정규직법 국면이 막바지를 향해 치달으면서 이목희 열린우리당 제5정조위원장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이목희 의원은 정부와 노동정책 조정을 총괄하는 위치인 당 제5정조위원장이며, 지난 4~6월 비정규 국회-노사정 협상을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 자격으로 주도한 바 있고, 당내에서 몇 안 되는 '노동통'이기도 하다.

이런 만큼 비정규직법 뿐만 아니라 꼬인 실타래처럼 복잡한 노정관계와 노사관계 로드맵 등 노동현안은 물론 노사정위 개편과 참여정부의 노동정책 등과 관련해 이 위원장의 역할은 막중하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5일 무려 8시간 동안 집권여당의 노동정책 분야를 총지휘하는 이 위원장을 만나 ‘노동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거듭난 그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었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이다.


- 정치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산전후 휴가를 90일로 늘리고 이를 사회보험이 부담하게 한 법안이 여야 만장일치로 본회의를 통과될 때 가장 기뻤다. 여성 노동자들이 지난해 6월부터 부탁한 법인데, 정부가 열달 넘게 반대했다. 여성 노동자와 비정규직 등 힘든 조건의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법이라서 더욱 기뻤다.”

- 열린우리당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지속적인 개혁과 경제와 내용적인 민주주의 추진, 지역주의 극복과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맞는 당이 우리당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하나는 수구기득권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는 현실적인 힘을 가진 정당도 우리당 뿐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혁신하고 개혁했다면 나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지역 지지자들을 만나 ‘어느 당이 옳냐’, ‘누가 소외계층에게 도움이 되냐’, ‘누가 이기냐’고 세 가지를 물어 탈당을 결심했다.”

- 그런데 요즘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낮다.
“세대와 계층, 지역 세 개를 모두 잃어서 그렇다. 개혁한다고 해놓고선 지지부진하니 젊은 층이 떠났고, 복지확대를 꾸준히 해 왔지만 눈에 확 띠는 게 없자 전통적 지지층인 서민과 중산층이 실망했다. 죽을 힘을 다해 개혁을 추진하고,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 확충에 전력을 다하면 세대와 계층의 지지는 반전될 것이다.

지역 문제는 복잡하다. 지역주의에 기대면 단기적으로는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패망한다. 한 지역에 집착하면 다른 지역을 잃는다. 당내 일각에서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데 이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그렇다고 양극화 해소만 전력한다고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극우·수구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정치구조와 문화를 혁신하고, 전략적 비전속에 민주개혁세력 대통합 등 개혁세력이 우리 사회의 주도성을 확립해야 대선과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

“토니 블레어만큼만 하면 좋겠다”

약력
1953년 경북 상주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국제경제연구원(산업연구원) 연구원
전국섬유노조 전문위원
한국노동연구소 소장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정책위원장
한국은행 독립성확보 연대회의 집행위원장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
대우자동차 희망센터 이사장
노무현 대통령후보 노동특보
현) 서울 금천구 제17대 국회의원
현) 열린우리당 제5정책조정위원장
- 정치적으로는 개혁정권이 연이어 들어서고 있는 등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대되고 있는데 비해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에는 군사독재정권의 성장전략이 깔려 있다. IMF와 부동산 폭등이 양극화를 불렀다. 당시는 부동산 폭등으로 거품이 끼었는데 경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거세게 몰려들면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가 늘어났다. 비정규직은 정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시장이 만들고 있다.”

- 참여정부는 영국의 토니블레어를 보는 것 같다.
“토니 블레어만큼이라도 하면 좋겠다. 지금 정권은 신불자와 비정규직 정책,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70점짜리 정책을 내놔도 ‘칼만 안 든 강도’라는 식으로 나온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람을 정면으로 막을 이는 아무도 없다. 대신 속도를 늦추거나 광풍의 방향을 틀고, 이 과정에서 낙오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함께 어깨 걸어주는 노력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가 중요하다.”

- 정부의 정책이 눈에 확 띠는 게 없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근로감독을 예로 들어보자. 솔직히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현대하이스코도 그랬지 않나.
“하이스코 사태 때 내가 밥과 물을 주라고 했는데 기업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경찰청장 말도 듣지 않았다. 내가 내려가서 농성하겠다는 말도 했다. 대기업은 구체적으로 자신들에게 법적 문제가 없으면 무작정 버틴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으면 되지만 사람이 물을 먹어야 살 것 아닌가. 그렇다고 정부가 다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체불임금 받아주는 게 주업무였다면 지금은 해야 할 감독이 많다. 당시 사건은 노동부의 의지나 법, 제도 등의 문제가 종합돼 있지만 총체적인 책임은 주무부서에 있다.”

- 요즘 이 의원이 노동분야에서 일인다역을 하면서 중심에 있다는 말도 들린다.
"중심이라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다만 ‘저 사람은 생각대로 정리하면 막 가더라’는 소리는 들어봤다. 노정관계가 좋지 않으니 노동부의 역할이 줄어들어 그런 게 아닌가 한다. 당정관계에서 세세한 정책은 정부가 하더라도 정책의 방향은 당이 틀어쥐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책임지는 쪽은 당이다. 내가 맡은 분야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당이 주도했다. 다른 분들은 점잖아서 경제부처와 별 갈등이 없겠지만 나는 경제부처들과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경제부처의 힘이 커지면 앞에서 막아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정책방향은 당이 틀어쥐어야”

- 차기 노동부장관 입각설이 있던데.
“장관을 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말해 본 적이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노정을 오가다가 (장관 입각설을) 들은 적은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이에게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고 한 적은 있다. 임명권자는 대통령인데, 한두 달 앞서 언론에 대고 뭐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고용이나 실업 문제 등에 대해 노사와 노정 관련해서 합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방향 등에서라도 먼저 호흡이 맞아야 한다. 만에 하나 그런 요청이 있다면 그런 노력을 해보고 나서 판단하겠다”

- 노동부장관의 기준을 꼽는다면.
“노사간 공정한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자신의 정책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경제부처가 막강한 힘을 갖고 있고, 사회정책이 아직도 경제정책의 종속변수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막아낼 만한 소신과 강단이 있어야 한다.”

- 정치인이 돼야 한다는 뜻인가.
“나를 말하는 게 아니라 능력과 의지가 있으면 정치인이 장관하는 게 좋다고 본다. 과거에는 정치인이 장관을 하면서 다른 일을 같이 하려거나 장관직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은 폐단일 뿐이다. 정치인은 민심을 듣고자 하는 자세가 돼 있고, 책임정치도 맞다고 본다. 노동부 출신이 장관 되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은데, 그렇게 하려면 지금의 노동부는 위상과 처신 등에서 많이 변해야 한다.”

- 노동부의 위상과 역할이 어떻게 변해야 하나.
“노동부는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인적자원 개발 등 세 가지 일을 맡는다. 예전 노동부는 노사관계 중심이었다. 노사관계 파행이 많았고, 이것이 근로손실일수로 이어지면서 대통령도 관심을 가졌다. 나머지 두 가지 역할은 단기간에 빛이 안 나는 일들이라서 역대 장관들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조정 역할의 노동위 이관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제 서서히 노동시장과 인적자원개발쪽으로 중심축이 옮겨지고 있다. 평생직업의 시대가 사라졌다. 한국이 갖고 있는 현실적 토대를 볼 때 우리의 경쟁력은 노동자의 손끝, 즉 기술에서 나온다.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노동을 통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 환경노동위를 환경위와 노동위로 분리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노동과 환경, 보건복지, 교육, 여성 등 사회 분야가 매우 중요하고 무거운 영역이다. 하지만 정치 현실상 노동과 환경을 떼어 놓으면 상임위 구성 자체가 힘들 것이다. 내년 5월 다시 원 구성을 할 때 환노위에 자발적으로 남겠다는 의원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환경-건교, 복지-노동을 합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 봤다.”

“노동부, 정성이 부족했다”

- 노정관계가 악화돼 있다고 하는데 동의하나. 그렇다면 해법은.
“당사자 중 한 쪽이 악화됐다고 하면 악화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악화돼 있다. 양비론에 동의하지 않지만 노정 모두 문제가 있다. 노동계는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비현실적 요구를 많이 한다. 지도부가 소수 강경파에게 휘둘리기도 한다. 전교조의 교원평가나 최근 쌀 비준안 사태가 그러한 사례이다.
노동부는 공정한 중재자로서 역할을 못한 측면이 있다. 물론 노동계는 ‘다른 정부부처들이 사용자편이니 노동부라도 노동자편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또 정부는 정책대상을 정성으로 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면도 있었다. 정책이나 능력이 부족했고, 특히 정성이 부족했다고 본다.”

- 노동을 잘 안다는 장관이 오히려 노동계와 더 싸우는 격인데.
“김대환 장관이 노사자치주의를 강조하고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지키려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일 처리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된 것이 문제가 됐다. 노동계든 노동부든 대화와 협의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가 될 부분이 있으면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지금 노정관계 악화는 세월이 약일 수도 있다.”

- 노동부든 노동계든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쌓여오다가 ‘치킨게임’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대화하고 타협하는 길밖에 없다. 가령 저출산 고령화문제나 양극화 해소, 문화적 격차 등은 총파업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도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서 협의해야 한다. 그런 문화를 정비해야 한다.”

- 노사관계 로드맵이 노사정 관계 갈등의 소재로 부상했다.
“로드맵은 노사 간에 주고 받는 게 있어서 비정규직법보다 해결하기 쉬울 것이다. 노사는 국제기준을 인용할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인용한다. 노사는 국제적 기준에 맞고 국민적 지지하는 부분에서는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대승적으로 양보하고 결단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입법예고 전이나 후에라도 노사정 대화를 주선하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좋다. 노정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정부가 나서기 힘들 것이다. 노동부가 하려고 해도 노동계가 거절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노동부의 여건이나 형편을 봐 가면서 당이 주선하거나 국회가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할 것이다.”

“총파업으로 양극화가 해소되나?”

- 노사정위 개폐론이 나오고 있다. 평가와 전망은.
“노사정위는 IMF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졌다. IMF가 없었다면 노사정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계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노사정위는 위기극복에 크게 기여했다. 민주노총이 탈퇴하면서 파행하고 작동이 잘 안 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도 많았다. 정부의 주요정책을 두고 협의하는 것은 노동계에게 중요한 경험이었다. 이를 통해 노동계가 사회적 지평을 넓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호로만 남는다. 주요 사회정책에 대해 관계장관이 설명하고 노동계가 정부정책의 형성과 집행에 참여하면, 그만큼 노동계가 사회의 책임 있는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폐지가 아니라 노사정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공론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노정관계 갈등이 해소되고 사회적 대화가 진전되면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노사정위를 개편하고 유지 발전해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말하는 것인가.
“노사정위와 연석회의는 역할이 다르다. 연석회의는 양극화 해소나 저출산 고령화 대책, 사회통합, 국민연금 같은 우리 사회에서 풀기 어려운 큰 주제들을 다룰 것이고, 경제사회정책은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노사정위를 ‘경제사회위원회’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참여정부에서 노사정위를 어떻게 하자는 방침을 정한 것은 없지만 대통령은 몇 가지 생각이 있는 것 같더라. 아직 개편논의를 본격적으로 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

- 비정규직법은 어떻게 할 건가.
“노동계의 정확한 요구가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쟁취하자고 하면서 합의가 안 되면 파업하겠다고 한다. 경영계는 내심 법을 안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한다면 정부안 비슷하게 해 달라고 한다. 노동계는 자신들의 안대로 하거나 최대한 반영해 달라는 것 아니냐. 그래서 법을 못 만들면 어떤 상황이 오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절단난다. 간단한 상황이 아니다.
물론 정부법안은 노사정위 공익위원안에서 후퇴했고, 현실에 비추어 보면 보수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안이 비정규직을 양산한다고 주장한다. 사실과 다르다. 지금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차별이 심한데 정부안 정도로 해소할 수 있느냐고 하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비정규직법을 2~3년전에 만들어서 시행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까지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못 만들면 2008년에 가서도 못 만든다.
비정규직법 입법의 4가지 원칙이 있다. 한국의 견실한 중소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비정규직을 줄이고 차별을 축소해야 한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실직을 가급적 최소화해야 한다. 어느 정도 선에서 법을 만들면 실업자가 몇명이 생기는지 등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지만 견실한 중소기업이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노동계 안이 이 원칙에 맞으면 당장이라도 하겠다. 하지만 노동계 안대로 하면 이 가운데 1개의 원칙도 충족하지 못한다.”

“노동계 안은 비현실적”

- 정부가 내걸고 있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유연성 확대)-사회양극화 해소’는 형용모순 아닌가. 비정규법도 결국은 이런 기조를 따른 것인데.
“물론 모순이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중요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가능한 헤지펀드를 들여와서는 안 되지만 외자유치는 해야 할 때도 있다. 부품소재공업을 발전시키려면 일본 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경제관료나 외자는 우리나라의 고용유연성이 높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오히려 상당히 높다. OECD에서 1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유연성이 높다면서 들고 나오는 것이 대기업의 사례이다. 대기업은 단협을 통해 유연성이 낮다. 이는 대기업 노사가 양보하고 결단해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대기업 노사가 빅딜을 해야 한다.
현대차를 예를 들자면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전환배치를 양보하고 생산성 향상에 협조하는 대신 사용자는 불법파견 2년 이상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도 점진적으로 고용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비정규직 보호에는 정부와 공공부문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안 되면 상용화라도 해야 한다. 정규직화하면 그에 맞는 인센티브도 줘야 한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 있기 때문에 고용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치권이 이런 문제를 조화시켜야 한다.”

- 지난 4월 비정규직법 노사정 협상에서 본 각 주체들의 태도를 비판한다면.
“노동계가 사용 사유제한을 프랑스식으로 하자는 등 비현실적 주장을 많이 했다. 또 대중이 동의하지 않는 강경투쟁을 벌였다. 노동계가 비정규직 대중의 종합적 이해를 대변하지 않고 목소리가 큰 소수의 비정규직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였다. 또 사적으로 만나 이야기할 때와 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도 그렇다. 원래 단체는 여러 눈치를 살피기도 해야 하지만 비겁한 측면도 있다. 지도자는 대중의 종합적 이익이 뭔지를 살피고 조직을 설득해야 한다.
경영계에게서 노동자의 삶에 대한 진한 애정이나 관심을 너무 많이 기대하면 안 된다. 노동자와 처지가 다르다. 그렇지만 경영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고통에 대한 이해가 정말 부족해 보였다. 비정규직 문제가 이대로 계속 가면 전체 산업의 경쟁력은 물론 기업과 국가경영에도 도움이 안 된다. 긴 안목이 부족했다.
정부는 판을 깰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부안이 흔들리는 것을 싫어했고, 정부안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노동자가 억울한 것보다 사용자가 억울한 것이 낫고, 사용자가 억울한 것보다 정부가 억울한 것이 낫다. 정부는 노사의 대화를 귀 담아 듣고 어떻게 하면 진전시켜 볼까 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 주체들의 그런 태도도 문제였겠지만 여당도 노사정에게만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한 것 아닌가. 비정규직법에 대한 여당의 소신이 있는가. 있다면 뭔가.
“4월 협상에서는 내가 안을 내놓은 적은 없지만, 대략 내가 생각하는 대로 왔다. 안은 나중에 공개하겠지만 협상을 주재하면서 결단하고 설득하고 압박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수정안을 갖고 있지만 내지 않은 이유가 있다. 수정안을 내게 되면 어쨌든 정부안보다 진전될 것인데, 만약 이대로 합의되지 않으면 수정안이 또 하나의 기준이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노동계는 더 내 놓으라 하고 경영계는 뒤로 넘어진다.”

- 그럼 현재 진행중인 노사 교섭에서 합의가 안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안 되면 결단해야 한다. 입법을 못하면 비정규직이 계속 증가하게 된다. 최저임금선을 받는 노동자들이 크게 늘어난다. 서비스업에서도 최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날 것이다. 나라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두 동강이 난다.”


“합의 안 되면 결단하겠다”

- 개인적 결단인가 여당의 의지인가.
“당의 의지라고 봐도 된다. 예전에 <닥터지바고> 영화를 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20세기 초 짜르 시대 말기에 군대가 군인을 모집하러 동네마다 돌아다녔다. 한 동네에 들어간 군인들이 ‘For our country!(우리나라를 위하여)’라고 외쳤다. 그랬더니 몇몇 청년들이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면서 ‘Not our country! But your country!(우리나라가 아니라, 너희들의 나라)’라고 소리쳤다.
이번에 비정규직법을 입법하지 못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점으로 볼 때 대한민국은 앞으로 ‘남의 나라’가 된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법안의 쟁점을 두고 노사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쟁점에 대해 어떻게 정리할지 생각을 갖고 있다. 결단을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지금 상태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짜증스럽다. 예를 들어 결단을 했을 때 ‘미흡하지만 진전됐고, 이것을 딛고 앞으로 나가자’고 하면 다행이다. ‘그것도 진전이지만 그정도 갖고는 안 된다’하는 것도 좋다. 그렇지 않은 채 반대하고 저지하고 나서면 갑갑한 상황이 온다. 반대하고 저지하는 쪽에게 ‘그럼 당신들이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져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정말 노동계가 총파업을 하더라도 이 이상은 절대 못 한다. 죽을 지경이다.”

빈농의 자식에서 노동운동가로, 정치인으로

섬유노조에서 해고된 그는 81년에 제3자 개입금지 위반으로 구속됐다가 82년에 출소했다. 출소 후 그는 경인지역에서 지하 노동운동을 했다.


어려운 시기였다. 80년대 초 그는 조직원들에게 팸플릿을 소지하지 말 것과 공안당국의 미행을 우려해 다른 조직을 찾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하루는 한 조직원이 다른 조직의 애인을 만나고 싶어 했단다. 그는 서울 가서 전철을 5번쯤 타고 내리면서 뒤를 살펴보고, 아무도 따라 오는 이가 없으면 만나라고 했다. 그에게 이 일은 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의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의 나이 34살이던 87년 7,8,9월에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졌다. 노동자의 물결에 ‘감동’한 그는 밥도 굶어가며 인천 곳곳을 뛰어다녔다. 그의 도움으로 하루에 5개의 노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는 "내 살아 생전에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 몰랐다"며 당시의 감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과 전노대 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점점 노조운동에서 ‘학출’들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현장 경험을 지닌 노동자들이 지도자로 부상했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도 진전되고 있었다. 90년대 중반 “이제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의 몫이 됐다”고 판단한 그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데” 자신이 뛰어들 만한 일을 모색했다. 그것이 정치였다.


그는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의 영입대상에 포함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국민회의 총재인 DJ에게 노동자와 영세서민이 밀집한 지역을 달라고 했다. 그는 인천 계양을 원했지만 안양 만안구로 배정됐다. 지역을 뺏기게 될 만안지구당 위원장이 DJ를 찾아가 ‘농성’을 한 것. 국민회의는 다시 그를 인천 남구에 공천했다. 그는 24명의 지역책 가운데 유일하게 공천을 반납하고,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1998년에 노사정위 상무위원으로 일했다. 2001년엔 대우차 희망센터 이사장도 맡았다. 임명되기 전날 밤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화염병을 던지는 꿈까지 꿨다. 하지만 희망센터 시절은 그에게 개인적인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사장을 그만둘 때까지 정리해고자 1,500명을 재취업시켰다.


“식당을 개업한 부부가 땀 흘리면 음식을 만들어 오는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다른 부부는 사무실에서 합격통지서를 받고 부둥켜 안고 울더라. 나도 돌아서서 울었다. 한 인간의 일할 권리가 어쩌면 지구의 무게보다 더 무거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대우처 노조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대한 '쓴소리'도 빠뜨리지 않았다. “당시 대우차노조는 ‘하지하(下之下)’ 전술을 썼다. 정리해고 과정을 보면 충분히 타협해서 해고를 최소화 할 지점이 있었다. 하지만 노조는 명분에 얽매여 다 놓쳤다.” 대우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대한 그의 시각이다.


그는 국민의 정부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당하고 있던 2002년 재보선에서 서울 금천구에 출마했다가 2등으로 낙선했다. 이어 지난 2004년 같은 지역구에 재도전해 52세의 나이에 첫 금배지를 달았다.
“산비 고용승계 책임지고 추진하겠다”
"정부정책으로 노동자가 억울해져서는 안 돼"
이목희 의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산업인력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책임지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현재보다 더 줄어들거나 나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 10월4일 환노위 국정감사차 찾은 강릉직업학교에서 산업인력공단 비정규노조(위원장 임세병·산비노조) 조합원들이 버스를 가로막고 시위를 벌였던 일과 지난 11월8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직업능력개발의 달’ 기념식장 시위를 거론하며 “그런 식으로 한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며 “직접 의원들을 만나서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하면 의외로 쉽게 풀 수 있는 일도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나 정치인이 노동자 때문에 억울한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정부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가 억울해져서는 안 된다”며 “공단 비정규직 고용승계는 내가 책임지고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직업전문학교와 기능대학 통폐합을 추진하는 노동부는 1년 단위 계약직 교사들과 직업상담사들로 구성된 직업학교 비정규직의 고용보장에 대해 현재까지 확답을 하지 않고 있다. 산비노조가 정규직 전환과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한달이 넘게 파업 중이지만, 노동부는 최근까지 당사자들과 진지한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현재 산비노조 170여명의 조합원 가운데 3년 이상 근속자가 50%를 넘고 대다수는 2년 이상 근속자이다. 노동부는 이들 가운데 폐교되는 학교 근무자 10여명과 1년 미만 계약직 30여명 등 40여명에 대한 계약해지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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