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빠뜨린 사건 하나가 있다. 대구에 사는 네살짜리 어린이가 집 안방 장롱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사인은 ‘영양실조에 의한 기아사’였다. 해당 행정단체가 좀더 정밀한 지역실사를 했더라면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기초자치단체에서 복지예산을 확충하고 사회복지사를 충원했더라면 네살짜리 어린이가 과연 영양실조로 사망에 이르렀을까. 보건복지부는 부랴부랴 '유아 장롱 사망 사건'과 관련, 독거노인이나 소녀소녀가장, 장애인 가정 등 소외계층을 돕기위한 복지인력이 절대 부족한 데 원인이 있다고 보고 사회복지사를 도울 수 있는 ‘복지 도우미’를 대거 배치키로 했다.

올해 7월10일 오전 3시40분. 경기도 광주시 목동의 한 가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여중생이 사망했다. 원인은 단전 이후 촛불을 켜놓고 생활하다가 불이 난 것. 각 구청별로 단전단수 가구에 대한 실사작업과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단전, 단수, 단가스 현황을 입체적으로 점검하고 복지대책을 세웠더라면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얼마전 가족의 무관심 속에 홀로 방치되다시피 생활하다 도사견에 물려 숨진 경기도 의왕시 D초등학교 3학년 권모 군(9)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담임교사가 권모 군의 집에 가서 전기밥통을 열어보니 밥이 먹을 수조차 없을 만큼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비닐하우스로 꾸며진 집의 내부 구조 역시 워낙 좋지 않아 불이 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일 정도로 열악한 조건 속에서 권군이 생활했다고 담임교사는 전했다.

숨진 권모군이 살던 비닐하우스 지역을 관할하는 경기도 의왕시청에 이달초 주민 신고가 접수되어 사회복지사가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더욱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좀더 일찍, 그리고 주민의 신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해당 자치단체에서 지역 사회안전망에 대한 종합적 대책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기초자치? 관변자치?

제주도 서귀포시는 방학 중 결식아동에 대한 점심식사 제공 방침에 따라 700여명의 초·중·고 결식아동들에게 1인당 2천5백원 기준의 식사를 제공했다. 그런데 결식아동에게 제공된 식사의 내용은 빵 1개, 단무지 2~3점, 게맛살 4조각, 삶은 메추리알 5개, 튀김 2개였다. 결식아동들에게 제공된 도시락 수준에 대해 온 나라가 분노했다.

자치단체를 견제하고, 예산을 승인하는 기초의회 의원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막중하다. 복지 사무가 중앙에서 자치단체로 이관되는 상황에서 이를 감시하는 역할 또한 기초의원의 역할이다.

그러나 앞서서 언급했던 수없이 많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현재의 기초의원들이 해결해 주기엔 상황이 너무도 암담해 보인다.

1995년 7월에서 2005년 2월까지 기초의원 7백69명이 뇌물수수 등의 부정부패행위 또는 선거법 등 위반으로 사법처리 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기초의원 중 대다수가 지역 '토호세력'으로 지방공무원과 결탁해 뇌물수수를 일삼기 때문에 진정한 주민참여와 지역복지를 책임지기 힘들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수도권 기초의회 의원 중 40%가 새마을운동, 바르게살기운동, 한국자유총연맹 등 이른바 빅3 관변단체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기초의회 의원 열 중 넷이 3대 관변단체 출신이며, 전국 광역의원은 30%가 이들 단체 출신이라 것에서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했던 10년의 지방자치는 사실 지역토호들과 결탁된 ‘관변자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기초의회에 진출하는 것은 이제까지 ‘풀뿌리 보수정치’의 막가파식 정치에 분열을 내는 것이다. 그것은 곧 지방행정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발생하지 않을 안타까운 죽음들을, 결식아동에게 빵 한조각과 단무지가 제공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회에 대거 진출하기 위한, 첫단추, ‘4인 선거구 분할저지를 위한 선거구획정투쟁’에 돌입했다.

2인선거구는 정치신인 봉쇄

지난 10월31일 서울특별시 자치구의원선거구 획정위원회는 내년 지방선거 기초의원 선거와 관련해 2인선거구 109개, 3인선거구 44개, 4인선거구 4개 등의 선거구 획정안을 결정했다. 획정위원회의 획정안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참여연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단체, 노동단체, 문화연대 등이 이미 4인선거구 분할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또한 장애인이동권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장애·환경·언론단체들과 위례시민연대, 구로시민센터, 참여자치마포연대, 은평시민회, 강동사랑시민연대, 성동건강복지센터, 송파시민연대와 각 지역의 청년회, 여성회, 생활협동조합, 노동조합, 교회 등 풀뿌리 단체들도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선거구획정이란 무엇이고, 어떤점이 잘못되어 이렇듯 서울에서만 60여개의 크고 작은 단체들이 선거구획정안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6월30일 국회는 여야 합의로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기초의회 선거에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1개 선거구에서 2인 내지 4인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했다.

다시 말해서 내년부터 지방선거부터 서울의 경우, 하나의 동에서 한 명의 기초의원(구의원)을 선출하는 기존의 소선거구제 대신 몇개 동을 합쳐서 다수의 기초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된다. 문제는 한 구에서 몇개의 동을 어떻게 나누어 몇명을 뽑을까에 있는데, 일단은 광역의원(시의원) 선거구를 기본으로 해서 선거구를 나눠야 한다.

마포구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면, 선거구획정안은 광역의원 선거구를 일괄적으로 2인선거구로 분할한 것을 알 수 있다. 애초 “광역의원 선거구를 기본으로 해서 기초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되, 필요한 경우 4인선거구를 2인선거구로 분할한다”로 되어 있는 법 취지는 무색해졌다. 예외조항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필요한 경우’가 ‘반드시 분할’로 둔갑한 것이다.

중선거구제는 관변단체나 지역토호들이 거대정당을 통해 의회권력을 독식하는 현행 소선거구제의 폐단을 극복하고 다양한 정치세력 및 정치신인들의 의회 진출을 보장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4인선거구가 분할되면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등 거대 양당이 기초의회를 독식하고 소수정당과 시민사회단체의 후보는 배제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동안 지방정치에서 철저히 배제돼 온 노동·여성·장애·환경 등 다양한 풀뿌리 세력들이 기초의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라도 4인선거구제는 필수적인 요소다. 중대선거구제의 취지상 4인선거구는 필요한 경우에만 분할하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한 2인 선거구로의 세분화는 개정 선거법을 훼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어느 구는 4인선거구를 유지하고 어느 구는 4인선거구를 일괄적으로 2인선거구로 나누어,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원칙없는 결정을 했다는 비난을 모면할 길은 없어 보인다.

남겨진 일정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은 지난 11월7일 서울시가 입법예고한 4인선거구의 2인선거구로 분할을 골자로 ‘서울특별시 자치구의회의원 선거구와 선거구별 의원정수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14일 청구했다.

서울시당은 법적 대응 이외에 15일 오후2시 서울시의회 개원에 앞서 1시 4인선거구 유지를 촉구하는 민주노동당 기자회견 직후부터 사상 처음으로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시당 및 지역위원회 위원장 등이 릴레이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사안이 중요하다는 것과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선거구획정 역시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안이 어렵기에 언론에서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언론은 고사하고 같은 진보진영 내에서도 큰 화두가 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오직 민주노동당만이 선거구획정을 위해 싸우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민주노동당은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우리가 기초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첨단 시대에 배고파서 장롱속에서 죽는 일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가장 ‘기초’가 되는 일이 ‘기초의회’ 진출이고, 이를 위해 4인선거구 분할 저지는 가장 중차대한 문제기 때문이다.

선거구획정은 12월5일 서울시의회 행자위에서 자치구의원 선거구획정 조례심의하고, 이후 12월14일 서울시의회 본회의 상정해 결정하게 된다. 언론과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 선거구획정투쟁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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