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많은 민중들의 참상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요즘 통 단잠을 이룰 수가 없다. 당비대위 활동과 의원직 수행으로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젊은 죽음들이 꿈과 생시를 구분 짓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9살 난 아이의 생떼 같은 죽음은 잠에서 깨서도 눈가에 눈물이 마르질 않게 한다.
우리 사회의 아동은 기본적으로 가족의 책임이다. 따라서 부모가 없거나, 한부모이거나, 돈이 없는 가족에게 속한 아동은 굶거나, 저녁 내내 방임되어 홀로 동네를 방황하거나, 학교를 쉬는 토요일은 점심도 굶어야 하고 개에 물려 죽고, 불에 타 죽고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저소득 가정 자녀의 고통

최근 저소득 한부모 가정과 조손 가정이 급속히 늘었다. 2002년 1월부터 2005년 6월까지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에 신고된 아동학대 사례 가운데 35.9%인 7,332건이 방임에 따른 학대로 밝혀졌다. 이러한 방임의 52%가 저소득 모부자 가정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수치가 이렇다보니 결국 ‘없는’ 부모가 더 자식을 학대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장애아동을 둔 한 어머니에게서 아이를 집에 두고 나올 수 없어 ‘일을 할 동안 차에 묶어두고 돈벌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저소득 가정의 양육을 둘러싼 이러한 일련의 피눈물 나는 사연을 듣고 우리는 단순하게 ‘학대’라고 말하기 불편함을 느낀다. 또한 이러한 방임이 학대라 한다 해도, 먹고 사는 것과 아동방임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은 상황을 개선할 능력이 모자라다. 그렇다면, 아동은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최저생계비 130% 차상위계층에 속하는(2인 가족 87만원 소득군) 저소득모자가정의 여성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다. 그녀들 중 82.2%가 간병, 청소용역 등의 임시 일용직이고, 74%가 월소득 82만원 이하의 저임금 노동으로 생계를 지탱하고 있다. 즉 여성가장들은 있는 힘을 다해 일을 하면서도, 빈곤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 속에서 아버지 없이 아이들을 키워온 억척스런 어머니들의 모습처럼, 여성가장들은 사회복지의 막연한 혜택이 아닌 노동으로 가족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늘어난 이혼과 소위 ‘정상가족’의 해체를 맞아 가족의 중심에 선 여성들은 국가의 단기적이고 계획적인 지원을 통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일자리 창출, 저소득 가족의 소비품목 중 가장 중요한 아동양육에 대한 실지원, 주거 지원이 있다. 올 여성가족위원회 예산기금심의소위원회에서 저소득모부자가정 아동양육비 월10만원을 주장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정부가 그렇게 염려하는 저출산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은 출산과 양육노동을 위해 여성들을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가족 혹은 여성의 몫으로만 치부되던 아동 복지와 양육의 문제를 가족 밖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한 여성농민의 안타까운 죽음

그러나 환금작물을 심고 식량작물을 수입했다가 외화가 부족하게 돼 사먹을 수 없게 되자, 결국 가난한 사람부터 굶게 된 인도의 사례를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정부의 쌀개방 정책으로 토지환경과 먹거리 안보가 사면초가에 선 지금 저소득층을 위한 이러한 정책이 얼마나 오래 실효성을 거둘 것인가에 대한 염려가 마음을 옥죈다. 이러한 정책에 실제 조달되는 먹거리가 모두 외국에서 사와야 한다면, 얼마나 좋은 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줄 수 있겠는가.

생명의 근간인 농토와 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한 여성 농민의 죽음 앞에서 어쩌면 이제 우리 모두가 그렇게 ‘결사’의 자세가 필요한 시기라 생각한다. 내 자식들 입에 내 땅에서 난 좋은 먹거리도 먹일 수 없다면, 이러한 정책들이 모두 공염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지와 식량안보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가 아동을 어찌 책임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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