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선거 패배 이후 당 최고위원회의 ‘사퇴’를 겪으며 당 전반에 걸친 ‘위기’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많은 동지들이 위기의 현상과 원인을 진단하고, 그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필자는 당의 지역활동을 책임지는 지역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우리의 위기는 바로 철저히 ‘민중 속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감지한다.

작년 총선에서 당의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에 필자와 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던 지역 주민들이 지금은 이렇게 아우성이다. “정말 살기 힘들다. 세금 좀 깎아달라. 한나라당은 세금을 깎준단다. 민주노동당은 뭐하는 거냐?”

위기의 ‘현실’

바로 이 지점이 지난 1년반 동안의 당의 실패와 위기를 가장 적절히 설명해주고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반대’, ‘빈부격차 해소’, ‘비정규직 철폐’ 등 구호는 있었지만, 실제 ‘감세정책’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정치권력의 노선에 그 어떤 파열구도 내지 못했다. 결국 민중들은 보수정치의 이데올로기에 편입되어 간 것이다.

총선을 통한 원내진출 이후 민중들에게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희망과 감동을 주지 못한 것, 민중들이 정치적 대안으로 보수정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현실’인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당 전체의 무능력’이다

필자 스스로가 반성하는 지점이 있다. 원내진출 이후 솔직히 나 자신 역시 소위 '제3당' 지위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신문지상에 나오는 당 지지율을 확인하는 것으로 자위해 온 것은 아닌지, 그저 국회의원들의 ‘입’에만 우리의 정치활동을 가둬버린 것은 아닌지, 정말 처절하게 반성해 보게 된다.

많은 동지들이 현재 당의 위기의 원인 중 1기 최고위원회를 장악한 특정 정파의 무능력이나, 민주노총의 비리 문제를 지적한다. 일면 타당한 이야기이며, 위기를 자초한 중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아니다.

과연 우리는 원내진출 이후 당의 노선과 정책에 기반한 대중적인 정치운동을 만들어냈는가에 대해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당의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표현했던 ‘부유세, 무상교육·무상의료 정책’에 대해 제대로 된 전당적 실천을 진행했는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지만, 중앙과 지역이 함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출했는가에 대해 깊이 있는 반성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이 ‘당의 무능력’의 현실이며, 여기서부터 우리는 ‘실패’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보수정치와 대별되는 당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못한 지점에서 당의 위기는 더욱 증폭되었다. 과거로부터 진보정당운동의 핵심은 바로 보수정치, 특히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대별되는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립’이었다. 하지만 당은 지난 일년 반 동안 자유주의 세력의 포섭에 끊임없이 흔들린 것은 아니었는가.

이는 의원단의 ‘개혁공조’ 노선이 그러했고,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열린우리당 2중대’ 파문이 그러했다. 결국 ‘독자성의 훼손’은 민중에게 당이 보수정치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정치세력으로 인식되게 하는데 실패했고, 그저 열린우리당과 차별성 없는 ‘소수정당’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진보-보수 정치구도의 형성을 명확히 하자

많은 동지들이 당의 ‘위기’를 얘기하고, ‘혁신’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혁신’을 위해서는 명확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그 원칙의 첫번째로 허구적 ‘개혁 대 수구’ 전선을 넘어서 사회주의적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진보 대 보수’ 전선 형성을 주장한다.

그동안 우리는 ‘범개혁진영 대 범수구진영’이라는 허구의 전선에 머무르며, 이 틀을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앞장서 편승하려 하지 않았는가 반성해봐야 한다. 그 결과 우리 민중들은 열린우리당의 상대적 진보가 절대적 진보인 양 인식하기 시작했고, 계속되는 생존권의 위기는 한국사회에서 진보의 가치를 형편없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이 지점에서 민중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으로 당을 ‘혁신’하기 위해서도 이제부터 현재의 ‘열린우리당 대 한나라당’의 구도가 허구적 ‘개혁 대 수구’ 구도라는 점을 민중들에게 인식시키고, 실질적인 ‘진보 대 보수’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수반하는 것이며, 민중의 의식 속에 사회주의적 가치가 자리잡게 만드는 것이다.

계급적 정책 전면에 내세워야

울산북구 재선거의 패배 이후 일부 동지들이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중간계급의 지지를 잃은 것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당이 대중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탈계급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결국 당을 더욱 위기로 빠져들게 할 뿐이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은 3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한 저연령층, 고학력층, 화이트 칼라층에서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뛰어 넘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농민, 빈민의 실질적인 이해를 활동으로 조직해야 하며, 이속에서 당의 핵심 지지층을 다시금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은 비정규직 철폐, 부유세 도입, 무상의료·무상교육, 토지 및 주택 공공성 강화 등 당의 계급적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노동자 계급 속으로,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또한 복수노조 출범 시기를 전후하여 노동운동의 전망을 놓고 벌이는 투쟁에 당은 적극 결합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특히 대산별 노조로의 조직체계 전환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이 진정 노동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당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의 지역조직은 대산별 노조의 지역지부의 정치적 센터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체계의 변환을 고민해야 한다.

천천히, 하지만 깊이 있게 나아가자

원내진출 이후 당내에서는 ‘2012년 집권’이라는 구호가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당활동을 하면서 ‘집권’의 꿈을 꾸지 않는 자가 어디 있던가. 하지만, ‘어떤’ 집권이며, 또한 ‘어떻게’ 집권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자칫 ‘집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경우 현실 정치일정과 정치논리에 매몰되어 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역사적 책무를 스스로 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필자는 향후 10년 간 우리의 과제는 한국사회에서 변혁역량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이 ‘변혁을 열어가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당 활동을 통해 노동자, 민중을 ‘정치의 주체’로 형성하고, 당을 중심으로 민중의 역량을 최대한 극대화 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을 탈각해 가는 과정이며, 민주노동당이 국회,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등을 통해 집권, 변혁 능력을 키워 가는 과정이며, 노동조합 등 대중운동을 탄탄히 세우는 과정인 것이다. 이는 조급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서두르지 않고, 깊이 있게 우리의 실력을 점검하고, 키우는 그 길을 이제부터라도 가야 한다.

당을 ‘사회운동적 대중정당’으로 전면 혁신하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은 단지 ‘집권의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무기’이다. 이를 위해 당원과 민중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스스로 운동조직으로서 사회운동 세력들과 함께 연대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바로 민중의 참여에 기반한 사회변혁의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당이 각종 선거를 통해 성장하지만, 민중운동과 사회운동이 몰락하거나 지체된다면 이는 곧 당의 성장이 ‘변혁성의 탈각’으로 드러날 것이다. 당이 민중투쟁과 사회운동을 주도하지 않고 의회 내에 머무를 때 그래서 당의 역량과 자원이 의회 내로만 몰릴 때 전체 운동은 의회만 바라보게 되고, 점차 힘을 잃을 것이 명약관화 하다.

그러기에 필자는 당이 ‘사회운동적 대중정당’으로서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당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민중운동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 또한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새로운 사회운동의 영역을 기존 조직과의 ‘연대’를 넘어 당이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그리고, 당의 지역조직은 지역의 노동조합, 생활협동조합 조직, 진보적 종교단체, 각종 복지단체 등 다양한 풀뿌리 사회운동조직을 묶어세우고, 지역적 쟁점을 형성하여 투쟁에 나서도록 조직하는 정치적 센터로서 기능해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아래로부터 ‘민중권력의 맹아’를 형성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에 주어진 역사적 책무는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활동이 부족했고, 오류가 있었음을 처절히 반성하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일 수 있다. 그리고 당을 창당했던 그 첫 마음을 잃지 않고, ‘혁신’의 길로 다시 나아가자. 당의 ‘혁신방안’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왠지 나 역시 원칙적 수준에만 머물러 있고,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느낀다. 구체적인 방안은 나와 동지들, 바로 우리 모두의 몫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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