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한국노총, 민주노동당,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는 "산재사망도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을 지난 4월27일부터 시작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 수반과 사회전반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매월 2회씩 연중기획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관련기사는 www.labortoday.co.kr에 마련된 별도의 공동캠페인 게시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편집자 주>


8명의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LCD제품을 세척하는 노말헥산에 중독돼 이른바 ‘앉은뱅이병’인 ‘다발성 신경장애’에 판정을 받은 사건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건강권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병에 걸린 여성 노동자들은 배기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작업장에서 보호장구 하나 없이 하루 평균 12시간의 이상 노말헥산에 노출돼 있었다. 8명 중 7명은 불법취업(미등록 이주노동자)한 상태라 ‘특수건강진단’도 받지 못했고, 결국 질병 가능성을 조기에 발견할 수도 없었다.

노동부 통계 등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노동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약 35만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이 영세 제조업체이나 건설현장 등 위험하고 힘든 사업장에서 일하다 보니, 산재에 노출되는 비율 역시 매년 높아지고 있다. 재해 예방책이 완벽하게 구비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제2, 제3의 노말헥산 사건이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증가세

실제 최근 3년 반 동안 8,555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했다는 통계는 위와 같은 우려를 뒷받침 한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국감 때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2년부터 올 6월까지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가 총 8,555명에 달하며, 하루에 7명꼴로 산재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표>

외국인노동자 재해 현황(단위:명, %)
년도총계불법취업 남자 불법취업 여자산업연수 남자 산업연수 여자 합법취업 남자 합법취업 여자
2002-
2005.6
8,5553,979464933872,690395
2005.81,20628423.5463.812710.5131.162551.81119.2
20042,72476127.91104.02509.2220.81,39351.11886.9
20032,6661,60360.11877.029311321.247317.7783.0
20021,9541,33168.11216.26313.5201.019910.2180.9

특히, 지난 2002년 1,954명, 2003년 2,666명, 지난해 2,724명 등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유해사업장 등에 대한 안전점검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월부터 9월까지 노동부가 실시한 외국인 고용 유해물질 취급 사업장 특별점검을 결과를 살펴보면 전체 3,988곳 중 91.8%인 3,659곳이 관련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이주노동자 10명 중 9명이 ‘예비 산재환자’임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결과다.

이에 대해 장복심 열린우리당 의원은 “외국인노동자의 경우 고용 및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산재 위험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며 “유해물질은 생명과 직결될 정도로 위험하기 때문에 작업환경에 대한 사업주의 세심한 배려와 정부당국의 적극적인 지도·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이 국감 당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ㄹ’ 제과의 경우 보호구착용 표지판조차 설치하지 않았고, 부산의 ‘ㅇ’ 섬유는 초산을 희석하는 작업자에게 방독마스크 및 보호안경을 미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특히, 지난해 산재를 당한 외국인노동자 2,724명 중 76%에 달하는 2,077명이 유해물질 취급 사업장에서 발생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작업환경 보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부실한 안전교육이 산재 불러

한편, 이주노동자의 산재가 증가하는 이유는 부실한 안전교육 때문이라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8월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이후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전교육이 강조되고는 있으나, 일단 교육시간이 매우 짧고, 사업주들이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관계로 교육 자체가 형식적 절차에 그치고 있는 수준이다.

또한,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의무적으로 입국 전 교육까지 수료해야 하는데, 일부 국가의 경우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하루(8시간)만에 △한국어 △한국문화 △기술기능 △산업안전 등의 과목을 끝내버리는 경우도 있다.

겨우 인사말 몇 마디 할 줄 아는 수준으로 입국해서 곧바로 사업장에 투입되기 때문에, 국내 체류기간이 짧을수록 산재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02년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모임이 실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입국 후 산재가 발생까지의 평균 기간은 1.9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통상 수습기간으로 두는 입사 3개월 안에 재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체류기간이 짧은 산업연수생(합법체류자)에 비해 체류기간이 길고 기술 숙련도가 높은 불법체류자가 산재에 노출되는 비율이 낮으며, 한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날수록 산재 발생률이 낮게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한국어 구사능력이 낮고, 국내 체류기간이 짧을수록 산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현지어’로 구성된 체계적인 산업안전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하종심 간사는 “특히 유해환경 사업장의 경우 어떠한 위험요소가 있는지, 부작용은 무엇인지, 어떠한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하는지,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회사가 자체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전문단체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 교육을 의뢰해 이주노동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재보상 청구? 그런 거 몰라요”

사업장 환경이 열악하고, 사업장 투입 전 안전교육도 부실하다보니 그 결과는 이주노동자 산재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산재를 당했을 경우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른다는 데 있다. 또한 한국 체류기간이 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산재청구하면 추방당한다’는 인식 때문에 자비를 들여 치료를 받거나, 그것도 아니면 치료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인터뷰·박스기사 참조>

이미 지난 94년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도 산재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정부도 산재환자에 대해서는 치료가 끝날 때 까지 강제추방을 유보하고 합법체류자격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많지 않다. 안전교육 부실과 정부정책에 대한 홍보 부족으로 빚어진 결과다.

이와 관련해 노무법인 참터의 유성규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 내에 이주노동자의 산재업무를 전담하는 부서가 신설하고, 지자체 등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보험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홍보 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율을 높이기 위해 “이주노동자 상담지원단체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산재요양 중인 중국동포 윤미자씨

“지난 2001년 친척의 초청을 받아 입국했고, 현재는 불법체류자(미등록 이주노동자)예요. 불법체류자도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입고도 닷새 넘게 치료 받을 엄두를 못 냈죠.”


돈 벌러 한국에 들어와 이일 저일 전전하다가 ‘매질’ 작업을 한지는 올해로 3년째가 된다는 윤씨. 그녀가 사고를 당한 것은 지난 9월1일이다.


“사고가 난 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어요. 평소 어지간히 아픈 건 거의 참아 넘기는 성미인데,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사고 직후 현장 관리자들이 와서 확인까지 했지만, 그들에게 치료를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불법체류자니까, 으레 다치면 내 돈 들여 치료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죠.”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산재를 당했거나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일시적으로나마 합법적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윤씨는 누구에게서도 그런 정보를 들은 적이 없다. 사고가 난 후 휴가를 얻어 닷새를 혼자 끙끙 앓다가, 증상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현장 관리자와 함께 근처 병원을 찾았다는 그녀.


“병원에 있으면서 나 같은 불법체류자를 도와주는 센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걸게 됐어요. 센터에서 나온 분이 불법체류자도 산재 승인 받으면 치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한편,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9월말 산재 승인이 났지만 윤씨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산재환자를 담당하는 병원 원무과 직원에게 “불법체류자는 치료가 끝나는 즉시 강제출국 될 수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치료 끝나면 쫓겨난다는 말을 듣고 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나 산재 안하겠다. 차라리 내 돈 들여서 치료 받겠다’고 했어요. 돈 벌러 한국에 왔는데, 이렇게 쫓겨난다고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났죠.”


윤씨는 “치료가 완전히 끝나면 예전처럼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기는 하겠지만, 곧바로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지원단체 담당자의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불법체류자도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처지의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근처 지원단체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세요.”
불법체류자, 산재보상 받으려면?
윤미자 씨와 같은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산재보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많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산재신청하면 곧바로 추방된다더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산재 신청 자체를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산재보험은 합법, 불법 체류자 모두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며, 특히 윤씨와 같은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는 치료와 보상이 끝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합법체류자격을 보장하는 비자(G-1)가 발급된다.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직접 근로복지공단을 방문해 산재요양신청을 내거나, 윤씨의 경우처럼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요양신청을 낼 수도 있다.


△산재보상 문의 : 근로복지공단 060-708-7008
△치료기간 내 합법체류비자 발급 문의 : 서울출입국관리소 02-2650-6212~5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 032-576-8114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 02-312-1688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 031-492-8785

파키스탄 이주노동자 4명 '접촉성 알레르기' 동시 발병…치료 포기하고 공장으로

진단 결과를 토대로 이주노동자들과 인권센터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신청을 냈다. 하지만 'K'양행은 “회사에 어떠한 유해물질도 없다”고 주장하며 사실확인조사를 거부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이주노동자들은 “그간 'K'양행은 근로복지공단 등이 유해환경 여부를 조사하러 나오면, 그때마다 모든 기계를 멈추고 사용하는 모든 약품을 감추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증언대로라면 그간 'K'양행에서는 제대로 된 현장조사 진행되지 못했고, 그 결과 작업장 내 유해 여부가 검증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와중에 이주노동자들이 ‘유해환경에 의한 산재’를 주장하고 나서자 회사는 “회사에는 유해물질이 없다”는 말로 이들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이에 인권센터는 이주노동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K’양행의 유해환경 실태를 근로복지공단에 알리고, 그 결과 'K'양행은 공단으로부터 이주노동자에 대한 ‘특별진단’을 시행하라는 명령서를 받게 된다. 정밀 진단을 받고 사업장 환경 조사만 실시하면 산재요양 승인이 가능한 상태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상담을 맡았던 인권센터의 하종심 간사에 따르면, ‘K’양행은 이주노동자들이 인권센터에 상담요청 한 것 자체를 문제 삼으며 “왜 센터에 알렸냐? 두고 보자, 해고 하겠다”는 식의 협박을 일삼았고, 이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후관리 책임이 있는 사후관리업체들은 수수방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를 받겠다’는 의지보다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더 커진 이들 파키스탄인들은 근로복지공단에 냈던 요양신청과 진정 등을 모두 취하하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갔다.


인권센터의 하종심 간사는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건의 경우, 사쪽이 현장 확인 등을 완강히 거부해 산재요양신청서를 제출하기도 어렵고, 이번의 경우처럼 힘들여 요양신청을 해도 ‘공장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주노동자 스스로 치료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하 간사는 또 “최근 ‘K’양행 이주노동자의 예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알레르기나 호흡기 질환 등을 호소해 오는 경우가 증가했다”며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하고 유해한 작업환경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제2, 제3의 ‘노말헥산 사태’가 발생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노말헥산 사태와 같은 끔찍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현지어로 된 안전교육이 강화돼야 하며, 작업장 내 보호장구 착용에 대한 감시 역시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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