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자연산 마(정력식품으로 알려진 뿌리 식물이나, 사실은 위염이나 갱년기 여성에 좋다 함)를 사러가자는 친구들을 따라 양평 근처로 나들이를 나갔었다.

막히는 길을 피해가긴 했지만 팔당대교를 넘어가는 즈음에서 병목으로 잠시 지체를 했다. 그런데 한 친구는 길이 막히니 그냥 집으로 가자고 징징댄다. ‘아니, 시간 맞춰 갈일도 아니고 차안에 있으나 산속에 있으나 시간의 총량은 같은데 뭘 그리 재촉이냐’ 했더니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갑자기 다들 한꺼번에 통쾌한 웃음을 토해낸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그게 잘 안되지?’ 하면서. 

뭐가 그리 급한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세계 최고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래 살 수 있다는 통계적 사실에 대해 기분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정부는 뭐라 호들갑을 떠는 것 같기는 한데 늘어나서 좋다는 소린지, 큰 일 났다는 소리인지 알 수도 없고 뭐 하나 실속 있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주5일제’, ‘삶의 질’, ‘여가활용과 휴식’, ‘웰빙과 운동’ ‘여행과 독서’ 등 갖가지 화려한 말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지만 우리는 그것이 다 환상이라는 것을 안다.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그럴만한 여유도 없고, 설사 좀 낫다 해도 그렇게 훈련되고 체득되지 않아 자기 삶 속에서 즐기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삶의 형태는 그런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말만 듣고 찾아간 유명산 근처의 천막집은 다행히 우리가 찾는 마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은 동네 슈퍼마켓과 가격비교를 하면서 비싸다는 소리부터 해댔다. 자연산이 비싼 거야 당연한 거고 그 만큼 값을 하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또 한소리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 벌만큼 벌면서 일이만원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전업주부든 직장을 가진 여성이든 살림을 살다보니 아끼고 절약하는 게 모두들 몸에 배어 있다. 미덕일 수도 있으나 그것이 지나쳐서 시간과 돈을 쓰는데 너무나 인색하다. 자기 자신에게 뿐 아니라 남한테도 그렇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런 불편한 심리가 자신들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한다. 그래서 그런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터지거나 생각만큼 변화가 오지 않으면 우울의 늪에 갇히고,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40대 후반의 내 또래들은 실제 우울증을 많이 앓는다. 아니면 적어도 인생이 우울하다.

시간과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선 동전의 양면이다. 사람을 만나든, 운동을 하든, 여행을 하든, 무엇을 배우러 다니든 돈 없이 되는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평생을 아끼고 아껴 자식들에게 투자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옷 한 벌, 책 한권에 발발 떤다. 내핍과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요구하면서, 그걸 알아주지 않는 남편과 자식들 앞에서 여성들은 서운하고 서럽다. 오죽하면 ‘장밋빛 인생’이란 드라마 땜에 못 살겠다는 남편들의 성화가 빗발치고 언제 종영하느냐는 질문이 쇄도했다지 않는가. 그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자신의 모습과 같아서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 않겠다며 아내들이 반란을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조금은 과감해지자

월급은 통장으로 고스란히 담겨 아내 손에 쥐어진다고 남편들은 엄살을 떨지만, 그 아내들은 실제 자기를 위해선 돈을 못 쓴다. 돈을 버는 내 친구들도 그러할진대 전업주부나 저임금노동자는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일정 비율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자. 그게 정신과 치료비보다, 아무도 듣지 않는 푸념 값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

늦가을, ‘긴 인생 아름답도록’이라는 CF를 보면서, ‘절약’과 ‘자신에 대한 투자’라는 두 마리 토끼잡기에 머리를 쥐어짜본다. 시간이든 돈이든 총량은 같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포기해야 한다. 조화와 중용이라는 어정쩡한 자세로는 긴 인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없다.

여성들이여, 이제 조금은 과감해져도 좋을 나이에 자기를 걸어 볼 그 무엇인가에 투자해보는 건 어떨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